|
역자 머리말
이 책은 피터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1842―1912)의 저술 ‘The Conquest of Bread'(1892)(『빵의 쟁취』)를 번역한 것이다. 1842년 12월 9일 알렉세이 페토로비치 크로포트킨 공작(Prince Aleksey Petrivich Kropotkin)의 아들로서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그는 1857년부터 5년간 피터스부르그(지금의 레닌그라드)의 근시학교(近侍學校)에서 군인교육을 받고 수석으로 졸업한 후, 출세의 길로 나서기를 바란 측근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시베리아 연대의 코삭크 기병대 사관으로 부임하여 1862~67년 동안 그곳에서 군복무를 하는 한편 시베리아 각지의 지리학적 답사에도 종사했다. 1867년 퇴역을 결심하고 러시아로 돌아와 1871년까지 러시아 지리학회 지세과(地勢科) 간사로 있으면서 시베리아 각지의 탐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해 가을 지리학회 간사의 요직을 제의받았으나 안락과 명성이 약속된 그 자리를 사양하고 혁명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택하기로 결심했다.
1872년에 그는 스위스를 방문하고 제네바에서 여러 혁명가들을 만나고 아나키스트가 될 결심을 굳혔는데 이것은 쥬라산맥 지방의 노동자들과 함께 보낸 수 개월 동안에 확고부동한 것으로 되었다. 같은 해에 러시아로 돌아와서 챠이코프스키단에 가입하여 2년간 ????민중 속으로????라는 표어 아래 나로드니키 운동의 선전에 헌신했다. 이 일로 해서 1874년 봄에 체포되어 금고형을 받았다. 러시아과학회의 석방탄원과 황제의 특별 조치로 석방되었으나 옥중에서 얻은 괴혈병(壞血病)으로 재판소 부속병원으로 이감되었다. 6월 30일 동지들의 협력으로 탈출에 성공하고 핀란드와 스웨덴을 거쳐 영국으로 망명했다.
1867년에 다시 스위스로 갔고 1877년 파리에서 아나키스트 운동을 하였는데 동지들이 체포되자 다시 스위스로 도피하여 1880년까지 체류하면서 『전위』 『반역자』 『반역』 등의 아나키스트 운동 기관지를 차례로 발간하였다. 이런 선전 활동을 통하여 크로포트킨의 아나르코 코뮤니즘은 그 윤곽이 뚜렷이 드러났고 이들의 문서가 뒤에 『반역자의 말』과 『빵의 쟁취』 등으로 정리되어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크로포트킨은 재산이 인류 공동의 유산이므로 각 개인이 사유해서는 안되며 인류가 공동으로 그 결실을 향유해야 한다고 본다. 모든 것(의?식?주의 수단 및 문화 가치)은 만인에게 반환되어야 하며, 그것(코뮨)은 단순한 지방적 행정기관을 닮은 것이 아니라 코뮨들 상호간의 협동적 망상조직(網狀組織)이며 이것이 부르주아 국가에 대체되어야 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도 일부분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생산은 자본가에게 이윤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소비를 위주로 계획될 것을 요구한다. 자본주의에서 흔히 발생하는 경제공황을 경제학자들이 말하듯이 과잉생산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민중의 강요된 빈곤으로 인한 과소 소비와 비생산적 작업 때문에 일어난다고 그는 본다. 그러므로, 가령 사치품의 생산을 폐지하고, 관료적?군사적 활동에 잘못 사용되는 에너지가 사회의 유용한 일에로 전환되면 생산은 만인의 풍요한 소비생활에 넉넉할 것으로 전망한다.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이 일을 촉진할 것이다. 이런 입장에서 그는 자본주의의 어용 경제학자들과 집산주의자 및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비판?반박하고 있다.
크로포트킨은 사회주의가 결국은 세계적 규모로 실현되리라는 것을 낙관적으로 예상하면서 이런 조짐이 현실적으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있어 왔고 더욱 확대되어 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를 위해 현재와 같은 ????자본가의 예속????에서 생산을 해방할 것을 목표로 하는 새롭고 강력한 인터내셔널의 설립을 호소했다.
그는 또한 레닌에 의해 영도된 볼셰비키들의 공산당 정권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표방하고 있는 것을 간파하고 ????이것은 혁명의 장송(葬送)????이라고 예언하고 레닌의 인질(人質)정책을 준열히 규탄했다.
크로포트킨은 최후의 대저 『윤리학』의 저술에 그의 남은 힘을 기울이다가 1921년 2월 8일에 별세했는데 모스크바의 거리에는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2km나 그의 상여를 뒤따랐다고 한다.
역자
1. 우리의 부(富)
Ⅰ
인류는 어설픈 연장을 만들어 사냥에서 얻은 불확실한 노획물로 살고, 바위 밑의 움집과 돌을 쪼아서 만든 조잡한 도구와 그리고 그들의 비참한 생존을 위해서 싸워야 했던 광대한 미지의 무서운 자연만을 유일한 상속물로 자손들에게 남겨 주던 태고 적부터 기나긴 길을 헤매어 왔다.
이 혼란을 거듭한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에 인류는 그러나 무수한 재물을 축적해 왔다. 토지를 개간하고, 늪을 간척하고, 삼림을 벌채하고, 길을 만들기 위해 산을 뚫었다. 인류는 건설하고 발명하고 관찰하고 추리했다. 인류는 복잡한 기계를 만들고, 자연으로부터 그 비밀을 캐내어 마침내는 수증기와 전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문명인의 자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조상들이 축적한 거대한 자본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자본의 덕택으로 인간은, 그의 노동을 다른 사람들의 노동과 결합하면, 천일야(千一夜)의 동화에 나오는 동방인의 꿈도 능가할 부(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토지는 넓게 개간되어 가장 좋은 종자를 파종하기에 적합하고, 거기에 부어 놓은 숙련된 노동에 대한 풍부한 보수를 얻기 마련이고, 그것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고도 남을 정도이다. 합리적 경작방법도 이미 알려져 있다.
미국의 넓은 초원은 강력한 기계의 도움을 얻어 백 명이 수 개월 일하면 만 명을 1년간 먹여 살리기에 넉넉한 밀을 생산할 수가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소출을 두 배, 세 배, 백 배로 늘리기를 원한하면, 땅을 기름지게 만들고, 작물들을 적절히 가꾸어, 막대한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옛날의 수렵지는 그 가족을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해 오십 내지 육십 평방마일을 찾아다녀야 했지만, 문명인은 금나한 공간의 천분의 일의 땅에서 훨씬 적은 노력으로 더 큰 확실성을 가지고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기후도 이젠 장애가 되지 않는다. 햇볕이 모자랄 땐, 인공의 열로 그것을 대체하고, 인공광선이 식물의 발육을 자극하는 데 사용될 시대가 올 것도 내다보고 있다. 그때가 오기 전이라도 유리와 온수 파이프를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넓은 땅을 방치하지 않고 전에 비해 십 배 혹은 오십 배의 수확을 올리고 있다.
공업에서 이뤄진 성과는 더욱 놀랄 만하다. 대부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3,4대에 걸친 발명가들의 성과인 현대의 기계, 이 지적(知的) 존재의 협동에 힘입어, 지금은 백 명이 만 명에게 2년간 입을 의복을 제공하는 물자를 제조한다. 잘 운영되는 탄광에서는, 백 명 광부의 노동으로 매년 엄동설한에 1만 가족을 보온하기에 족한 석탄을 파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우리는, 수개월 내에 국제박람회를 위해서, 국민의 일상적인 작업을 조금도 방해함이 없이, 놀라운 도시들이 솟아나는 장관을 목격했다.
그리고 설령 제조업에서도 농업 또한 우리의 전 사회제도를 통해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의 노동과 발견 및 발명이 주로 소수자를 이롭게 하고 있다 할지라도, 인류는 이미 소유한 강철과 철의 제품들에 힘입어 그 구성원 전부에게 부유하고 편리한 생존을 벌써 확보할 수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정말이지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훨씬 더 부유하다. 우리가 이미 소유한 것에 있어서 부유하고, 우리의 실제적 기계 설비로써 생산할 수 있음에 있어서 더욱 부유하다. 우리의 토지, 우리의 공장, 우리의 과학, 우리의 기술적 지식에서 획득할 수 있을 것에 있어서, 만일 그것들이 모든 사람들의 복지를 초래하는 데 이용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비할 데 없이 부유하다.
Ⅱ
문명된 사회에서 우리는 부유하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보이는 이 빈곤은 무슨 까닭인가? 대중의 이 고통스런 고역(苦役)은 무엇 때문인가?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노동자들까지도 과거로부터 상속받은 풍부한 부의 한가운데 있으면서 그리고 하루 몇 시간의 노동에 대한 대가로써 모든 사람에게 안락을 보장할 수 있는 강력한 생산수단에도 불구하고, 내일에 대한 이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회주의자들은 이미 그 이유에 대하여 말했고 지칠 줄 모르고 그것을 되풀이해 왔다. 그들은 매일 그것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모든 과학에서 얻은 논증에 의해서 그것을 증명한다. 그것은 인류가 자연의 힘을 정복하기를 배우기 전에 생활해 온 약탈, 강제이주, 전쟁, 무지, 억압의 긴 역사 동안에 생산에 필요한 모든 것, 즉 토지, 광산, 기계, 교통로, 식량, 주택, 교육, 지식 등이 소수인에 의해서 독점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소수인이 과거에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권리를 이용해서 오늘날 인류 노동 생산물의 3분의 2를 자기네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가장 어리석고 수치스런 방법으로 낭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대중을 일개월 또는 겨우 일주일간의 생활수단에도 부족할 상태로 빠뜨려 놓고서 그 이득의 대부분을 자기네만이 차지할 그러한 조건 하에서만 사람들에게 일할 것을 허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소수자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것을 방해하고, 독점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보장하는 물건을 만들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가 주장하는 모든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실제로 어떤 문명국의 예를 들어 보자. 한때 그 나라를 덮었던 삼림은 채벌되고, 늪들은 배수되고, 기후가 개선되었다. 거기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곳으로 되었다. 이전에는 잡초만이 무성했던 토지가 지금은 풍부한 수확물을 공급하고 있다. 산골짜기의 경사진 암반지대도 계단밭으로 정지되어 알알이 익은 탐스런 포도덩굴로 덮여 있다. 먹지도 못할 열매와 뿌리밖에 맺지 못하던 야생식물이 여러 세대의 재배에 힘입어 자양분이 많은 채소와 맛좋은 과수밭으로 변했다.
수많은 고속도로와 철도가 육지를 횡단하고 산을 관통한다. 엔진 소리가 알프스, 코카사스 및 히말라야의 험한 골짜기에서 들려온다. 강들은 배가 다닐 수 있게 만들어졌으며, 해안은 조심스럽게 측정되어 접근하기 쉽게 되었으며, 바다의 광포(狂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힘들여 파낸 인공항만은 배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다. 바위 속에 깊숙한 굴대를 박고, 미궁(迷宮)같은 지하굴에서 석탄이 나오거나, 광물을 파낼 수 있는 곳에는 갱이 사방팔방으로 뚫렸다.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는 큰 도시들이 솟아났고 그 구역 안에서 공업, 과학 및 예술과 같은 여러 보물들이 축적되었다.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으며, 그 주인들에 의해서 억압되고 학대받고 고역에 기진맥진했던 모든 세대들이 이 거대한 유산을 우리의 세기에 전수해 주었다.
수천 년 동안 수백만의 사람들이 삼림을 벌채하고, 늪의 물을 빼고, 육지와 하천에 큰 길을 내기 위해 일해 왔다. 유럽에서 우리가 경작하는 땅의 한 루드 한 루드(영국의 면적 단위, 약 300평 : 역자주)가 여러 민족들의 땀에 의해 관개되었다. 한 에이커 한 에이커의 땅이 강제노동, 용서할 수 없는 고역, 인민의 수난이 깃든 사연을 지니고 있다. 한 마일의 철도, 한 야드의 터널마다 인류의 피의 몫을 나누어 왔다.
광산의 굴대들은 아직도 그 바위의 벽면에 그것을 발굴하기 위해 일한 노동자의 곡괭이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하 굴에 있는 받침기둥 하나하나 사이의 공간은 광부의 무덤이라고도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이 무덤들의 하나하나가 가지는 눈물의 대가, 상실의 대가, 폭발성 메탄가스, 낙반 또는 홍수에 의해서 한창때에 숨져 간 광부의 보잘것없는 임금에 의존한 가족들의 말로 다할 수 없는 비참의 대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그 누구이겠는가?
철도와 수로에 의해서 서로 연결되는 도시들은 수 세기 동안을 살아온 유기적 조직이다. 그 밑을 파 보면 당신은 시가지의 기초, 집들과 극장들 및 공공건물들의 초석이 서로 겹쳐져 있는 것을 볼 것이다. 그것들의 역사를 탐구한다면 당신은 그 도시의 문명, 산업, 특징들이 얼마나 서서히 그 주민들의 여러 세대에 걸친 협동을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하여 드디어 그것이 오늘 있는 것과 같이 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있어서도 지금은 죽어서 매장된 수백만의 노동자들의 축적된 노동에 의해서 만들어진 주택, 공장 및 창고, 그 하나하나의 가치는 지금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현존과 노동 바로 그것에 의해서만 유지된다. 우리가 ?국부?(國富라고 부르는 것을 구성하는 그 미세한 부분의 하나하나는 그것이 큰 전체의 일부라는 사실에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런던의 조선소나 파리의 거대한 창고는, 만일 그것들이 국제 교역의 큰 중심지에 위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의 광산, 우리의 공장, 우리의 작업장 및 우리의 철도는 해륙으로 매일 운송되는 거대한 양의 상품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수백만의 인류가 오늘날 우리가 스스로 자랑하고 있는 이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일해 왔다. 전 지구에 산재해 있는 다른 수백만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일한다. 그들 없이는 50년 이내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고 파멸할 것이다.
어떤 사상이나 발명도 과거와 현재에서 태어난 공공재산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유명 무명의 가난 속에서 죽어간 수천 명의 발명가들이 인간의 천재성을 말해 주는 이 기계들의 하나하나를 발명하는 데 협력했다.
수많은 저술가, 시인, 학자가 지식을 증가시키고, 오류를 없애고, 그것 없이는 우리 세기의 놀라움들이 결코 나타나지 않았을 과학적 사고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일했다. 그리고 수많은 철학자, 시인, 학자, 발명가들이 지난 여러 세기의 노동을 통해 뒷받침해 왔다. 그들은 생애를 통해서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모든 종류의 수많은 노동자와 기술자에 의해서 고무되고 육성되었다. 그들은 그 원동력을 환경으로부터 얻어 왔다.
세간(S?guin:1786-1875, 프랑스의 기사, 연관 煙管 보일러의 발명자)이나, 마이에르(Mayer:1814-1878, 독일의 의사, 열의 作業當量의 최초의 계산자)나, 그로브(Grove:1811-1896. 영국의 물리학자, 화학전지의 발명가)와 같은 천재들은 확실히 세계의 모든 자본가들 이상으로 공업을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공헌했다. 그러나 그러한 천재들도 공업과 과학이 낳은 아들이다. 수많은 증기기관들이 끊임없이 열을 역학적인 힘으로 변형시켜, 이 힘이 소리, 광선 및 전기로 바뀌는 것을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다년간 작동했을 때 비로소 천재들의 통찰력이 물리적 힘의 기계적 기원과 그 결합을 주장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만일 19세기의 소산물인 이 사상을 우리가 파악했다면, 만일 우리가 이제 그것을 응용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그것은 오랜 세월 축적된 여러 세대에 걸친 일상의 경험이 그 길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18세기의 사상가들도 그런 착상을 알았고 말로 표현도 했다. 그러나 그 사상은 발전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는데 그 까닭은 18세기가 우리 세기만큼 증기기관에 관해서 발전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왓트(Watt)가 소호(Soho)에서 그의 착상을 금속 속에 구현시켜 그 결과로 그의 엔진의 모든 부품들을 완성시키고 그리하여 완전한 기계장치 속에 갇힌 수증기가 한 필의 말(馬)보다 더욱 온순하게, 물보다도 더욱 다루기 쉽게 만들어져 드디어 근대공업의 핵심이 되게 한 숙련공을 만나지 않았다면, 근대산업을 발전하게 만든 이 법칙에 대해 우리가 무지한 상태로 몇십 년간이 지나갔을는지 모른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기계 하나하나는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즉 잠 못 이루는 밤들과 가난, 실망과 즐거움,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그것 없이는 대부분의 생산적 착상이 열매를 맺지 못한 채 남아 있었을 사소한 개량을 최초의 발명에 추가한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발견한 부분적 개량의 역사인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모든 새로운 발명은 기계학과 공업의 광대한 분야에서 그것에 앞서 행해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명들의 종합이며 그 결과이다.
과학과 공업, 지식과 응용, 발견과 새로운 발견에로 이끄는 실제적 응용, 사고와 두뇌 노동과 손의 재주, 두뇌와 근육의 노동, 이 모든 것들이 함께 협력한다. 발견의 하나하나, 진보의 하나하나, 인류 재산의 하나하나의 증가는 그 존재를 과거와 현재의 육체적, 정신적 노력에 힘입고 있다.
그렇다면 무슨 권리로, 어느 한 사람이 인류의 오랜 세월에 걸친 노력의 집적물 중 어느 적은 부분이라도 사용(私用)하여, 이것은 나의 것이지 너의 것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Ⅲ
그러나 인류가 긴 세월을 지나는 과정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생산할 수 있게 하고 그 생산력을 증가시킬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이 소수인에 의해서 탈취된 결과가 되었다. 아마도 언젠가는 이것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우리가 규명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사실을 진술하고 그 결과를 분석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날 토지는 증가 일로에 있는 인구의 필요에 의해서 그 가치를 얻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토지는 소수자에게 소유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경작하지 못하게 방해할 수가 있고 또한 실제로 방해하고 있으며, 아니면 그것을 현대적 방식에 따라서 경작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다.
광산은 수 세대의 노동을 나타내며 그 유일한 가치가 나라의 공업과 인구의 밀도라는 수요에서 나오는 것인데도 그 광물들 역시 소수자에 속해 있다. 그리고 그 소수자는 만일 그들의 자본에 대한 더욱 많은 이익을 주는 투자를 발견하면 석탄의 생산을 제한하거나 중지한다. 기계도 또한 소수자의 배타적 소유가 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기계가 분명히 최초의 조잡한 발명에 대해서 3~4세대에 걸쳐 노동자들이 개선을 가한 개량의 결과를 나타내는 경우에도, 그것은 여전히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속해 있다. 그리고 만일 한 세기 전에 레이스 제조 기계를 처음 만든 바로 그 발명자의 후손들이 오늘날 바젤이나 노팅검에 있는 레이스 제조 공장에 나타나서 그들의 권리를 주장한다고 하면 그들은 이런 말을 들을 것이다. ????손대지 마시오! 이 기계는 당신의 것이 아니오????라고. 만일 그들이 그것을 소유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들은 피살될 것이다.
철도는 유럽의 넘칠 정도로 많은 인구, 공업, 상업과 시장들이 없다면 고철(古鐵) 이상의 가치가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마 중세기 왕들의 그것보다도 더 많은 수입을 그들에게 가져다주는 노선의 행방조차도 아는 바 없는 소수의 주주들에 속해 있다. 그런데 만일 철도의 개설과 터널 공사 동안에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자손들이 어느 날 굶주리고 누더기를 걸친 모습으로 모여 들어 주주들에게 빵을 요구한다면, 그들은 해산시키고 자기네 ????이권????을 보호하기 위한 총검 세례를 퍼부을 것이다.
이 괴상한 제도 때문에 노동자의 자손은 태어날 때, 그가 생산하게 될 것의 대부분을 주인에게 넘겨 줄 것을 승인하지 않으면, 그가 경작할 수 있는 어떤 땅도, 그가 조작할 어떤 기계도, 그가 파낼 어떤 탄광도 갖지 못할 것이다. 그는 소액의 불확실한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 된다. 그의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이 농토를 매수하고, 이 공장을 건설하고, 이 기계를 완성시키기 위해 일했다. 그들은 그 일을 위해서 전력을 쏟았다. 그리고 그 이상 더 무엇을 그들이 바칠 수가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후손은 가장 미개한 야만인보다도 더 가난하게 세상에 태어난다. 설사 그가 그 밭을 경작할 허가를 얻는다고 해도 그것은 생산물의 사분의 일을 토지의 주인에게 바치고, 다른 사분의 일을 정부와 중개업자에게 인도한다는 조건 아래서일 것이다. 그리고 국가, 자본가, 대지주 및 중간상인이 그에게 부과하는 세금은 항상 불어나고 그것은 그의 경작 방법을 개선하는 자력마저도 그에게 남겨주지 않는다. 그가 공업 방면으로 진출한다고 해도 그는 법률이 그 기계의 소유주라고 인정하는 사람에게 생산품의 반이나 삼분의 이를 양도한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일할 것이 허용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반드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농민이 그의 수확의 사분의 일을 영주에게 바치지 않는 한 한 치의 땅도 경작하지 못하게 금지한 봉건귀족에 대해 극구 비난을 한다. 우리는 이 때를 야만적인 시대라고 불렀다. 그러나 가령 그 형태가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관계는 그대로 남아 있다. 노동자는 자유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봉건적 복종을 받아들이도록 강제당한다. 왜냐하면 그가 가려는 어느 곳에서나 그는 더 좋은 조건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주인의 사유재산이므로,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굶어 죽어야 한다.
이런 사태의 결과로서 우리의 모든 생산이 잘못된 방향으로 행하여지고 있다. 기업은 그 지역사회의 필요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그것의 유일한 목적은 투기자의 이득을 증가하는 데 있다. 따라서 끊임없는 산업 변동과 주기적인 공황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부를 그들의 임금으로써 구매할 수가 없으며, 산업은 다른 나라의 재산가들과 결탁, 해외로 진출한다. 유럽인들은 동양이나 아프리카에서, 이집트에서, 통킹(현재의 베트남 - 역자주)에서, 콩고 등 도처에서 이와 같이 노예제의 성장을 촉진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곧 그들은 도처에서 비슷한 경쟁자들을 만나게 되며, 시장제패를 위한 전쟁 ― 끊임없는 전쟁 ― 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동양의 영토를 소유하기 위한 전쟁, 바다를 지배하기 위한 전쟁, 수입세를 부과하기 위한 전쟁과 이웃 국가에게 여러 가지 조건을 강제하기 위한 전쟁, 반항하는 ????흑인들????에 대한 전쟁 등등! 포성이 이 세상에서 끊일 날이 없으며, 종족 전체가 학살되며, 유럽의 나라들은 그 예산의 삼분의 일을 군비에 소비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 세금이 얼마나 무겁게 노동자들의 생활을 압박하는지를 안다.
교육도 여전히 소수자의 특권으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의 자녀는 13세가 되면 광산으로 들어가든지 농장에서 그의 아버지를 도와주지 않을 수 없게 될 때, 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과도한 노동에 지쳐 머리가 둔감해진 채 저녁 늦게 귀가하는 노동자에게 공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사회는 두개의 적대적 진영으로 갈리게 마련이며, 이런 조건 아래서 ????자유????는 헛된 말이다. 급진주의자는 한편으로 정치적 권리의 확대를 요구하면서도, 자유의 숨결이 급속하게 무산계급의 대두로 이끌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되돌아서서 그의 의견을 철회하고 총검에 의한 강압적 입법과 통치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이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법정, 파산, 검사, 경찰관들과 옥리(獄吏)들의 거대한 계열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기관들은 차례로 밀정, 위증, 스파이, 공갈과 부패 등 온갖 부조리의 원인으로 되고 있다.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이러한 제도는 사회적 감정의 발달을 저지한다. 정직성, 자존심, 동정과 상호부조가 없다면, 인류는 마치 약탈에 의해서 살아가는 몇 종류의 동물과 노예를 사육하는 개미가 멸망한 것처럼 멸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지배계급의 취향에 맞지 않으며, 그래서 그들은 그 반대를 증명하기 위해 모든 사이비 과학 체계를 애써 만들어낸다.
훌륭한 설교자들이 성서의 구절에 따라 가진 자들은 가지지 않은 자들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이 원리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감정들은 모두 시(時)에서는 그럴싸하지만 실제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더럽히는 것이다????라고 우리는 말한다. 그런데도 모든 문명 생활은 하나의 거짓이 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과 우리 자녀들을 위선과 두 얼굴을 가진 도덕의 실천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리고 두뇌는 거짓말을 하기에 불편하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궤변으로써 기만한다. 위선과 궤변은 문명인에게 있어 제2의 천성이 된다.
그러나 사회는 이렇게 해서는 살 수가 없다. 사회는 진실로 되돌아가든지 아니면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리하여 원초적 독점행위에서 나오는 결과는 사회생활에의 전체에 파급된다. 멸망을 피하기 위해 인류사회는, 생산수단이야말로 인류의 집합적 제작물이기 때문에 그 생산물은 백성의 공동재산이 되어야 한다는 근본원칙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개인적 점유(占有)는 공정하지도 유용하지도 않다. 모든 것은 모든 사람에 속한다. 모든 물건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그것을 필요로 하며, 모든 사람이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그들의 힘의 정도에 따라 일했고 그리고 세계 분의 생산에 있어서 각 개인의 역할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물건은 만인(萬人)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 거대한 양의 도구들이 있다. 여기에 우리가 기계라고 부르는 모든 쇠붙이의 노예들이 있어, 그것들은 톱질하고 대패질하고, 우리를 대신해서 실을 뽑고 베를 짜고, 변형하고 개조하면서 원료들을 가공하여 우리 시대의 놀라운 물건들을 생산한다. 그러나 누구도 이 기계들 중의 단 한 개라도 잡고 ????이것은 내 것이다. 만일 당신이 그것을 사용하고자 하면 당신이 생산한 것의 하나하나에 대한 세금을 나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없다. 그것은 마치 중세의 봉건영주가 농민에게 대해서 ????이 언덕, 이 목장은 나의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수확하는 옥수수의 한 다발마다, 쌓아 올리는 풀더미 하나하나에 대한 세금을 나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만인의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그들의 공평한 작업 분담량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들은 모든 사람에 의해서 생산된 모든 것에 대하여 그들의 공평한 몫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그 몫은 그들에게 복지를 보장할 것이다.
????일할 권리???? 또는 ????각자에게 그의 노동의 모든 결과를????, 이러한 애매한 공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복지를 누릴 권리, 즉 만인의 복지이다!
2. 만인의 복지(福祉)
만인의 복지는 꿈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우리의 생산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행한 모든 것에 힘입어 가능하고 실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정말로 생산자들은 문명국 주인의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지만 현재도 어느 정도의 위안을 각 가정에 가져다 줄 수 있을 만큼의 재품을 생산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아가서 만일 오늘날 남들의 노력의 과실을 낭비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여가를 유용한 일에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우리의 부는 생산자들의 수에 비례해서 더욱 증가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끝으로 우리는 말사스 ― 중산계층 경제학의 대변자 ― 에 의해서 선언된 이론과는 반대로 인류의 생산력은 그 인구증가의 힘보다도 더욱 빠른 비율로 증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상에 인구가 밀집하면 할수록 그들이 부를 창조하는 힘의 성장은 더욱 빨라진다.
이리하여 영국의 인구는 1844년에서 1890년까지 62%만이 증가했지만 그 생산력은 줄잡아도 그 두 배의 비율, 즉 130%가 성장했다. 프랑스에서는 인구가 더 서서히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력의 증가는 매우 빠르다. 농업이 빈번히 겪어 낸 공황, 혈세(血稅), 병역, 은행, 금융, 공업에 대한 국가의 간섭에도 불구하고 지난 80년 동안에 프랑스의 밀 생산은 네 배가 증가했고, 공업 생산은 열 배 이상이 증가했다. 미국에서의 진보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민이 밀려들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유럽의 잉여노동자의 유입 덕택으로 미국은 그 부를 열 배로 증가시켰다.
그러나 이 숫자는 보다 좋은 조건 하에서 우리의 부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매우 희미한 관념밖에는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를 생산하는 우리 힘의 급속한 발전과 더불어 게으름뱅이들과 중개상인 계층의 수가 엄청나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점차로 소수인의 손에 집중하고, 그래서 사회는 소수 대부호의 재산을 몰수하여 그것을 합법적으로 상속해야 할 터인데도 사회주의자의 이 예언과는 반대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즉 타인의 노동에 기생하여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더욱더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직접생산에 참여하는 자는 주민 30명에 대해 10명도 되지 않는다. 프랑스 농업 생산고 전체가 700만 미만 사람들의 작업에서 나오고, 양대 산업, 즉 광업과 방직물에 종사하는 노동자도 2백 50만 명 이하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착취자의 수는 몇 명이나 되는가? 영국에서는 1백만 명을 약간 넘는 남녀 미 어린이들이 모든 직물업계에 고용되어 있고, 90만 명 미만이 광업에, 2백만 명보다 훨씬 적은 사람들이 토지를 경작하고 그리고 최근의 산업조사에 따르면 다만 4백만 명을 약간 넘는 남녀 및 미성년자가 전체 산업에 고용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013,711명이 현재 국립조병창을 포함한 53개의 각종 산업에 고용되어 있고, 241,530명이 철도 건설과 그 유지에 종사하고 있으며 그들의 총생산은 1,041,037,000이며 실질 생산고는 406,799,000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통계 담당자들은 4천 5백만 인구에 대한 8백만 생산자라는 최대치를 입증하기 위하여 모든 숫자를 과장해야만 했다. 엄격히 말해서 영국으로부터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수출되는 상품들의 제조자는 다만 6~7백만 명의 노동자이다. 그런데 먼 데와 가까운 데서, 노동의 허가된 소귿에 추가하여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스스로 끼어들어 옴으로써 불로소득을 쌓아 올리는 주주들과 중개업자의 수는 얼마나 되는가?
그뿐이 아니다. 자본의 소유자는 생산을 제한함으로써 항상 생산고를 감소시킨다. 지금까지 부자만 먹도록 남겨 두었던 진미(珍味)를 대중의 식품이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대량의 굴이 바다 속으로 버려진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수많은 사치품들 ― 직물, 음식물 등등 ― 이 굴과 같은 방법으로 취급된다는 데 대해서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가장 필요한 물건들의 생산이 제한되는 방법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수많은 광부들은 매일 석탄을 파내어서 그것을 추위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너무나도 흔히 그들 중의 삼분의 일 또는 이분의 일까지도 일주일의 사흘 이상은 일하지 못하게 금지 당하는데, 그 이유는 물론 석탄 값이 비싸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직공(織工)들의 가족이 누더기를 걸치고 있고, 나아가 유럽 인구의 4분의 3이 옷다운 옷을 가지고 있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더 많은 시간을 베틀에서 일하지 못한다.
수백 개의 용광로, 수천 개의 공장들이 정기적으로 휴업을 하고, 다른 것들도 반 이상이 가동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모든 문명국에는, 일자리를 요구하지만 그들에게 일거리가 거절되는 약 2백만 명의 인구가 항구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거칠어진 땅을 수확이 많은 옥토로 바꾸는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면 얼마나 즐겁게 그 일을 할 것인가! 이렇듯 일할 기회를 빼앗긴 인력이 일년 동안 잘 관리된다면, 지금 목장으로밖에 쓸모없이 있는 이 나라의 수백만 에이커 땅의 생산을 다섯 배로 늘리고, 또는 현재 에이커당 약 8부셀의 밀만을 수확하는 프랑스의 남부에 있는 미경작 토지의 생산을 다섯 배 증가시키기에 넉넉할 것이다. 그러나 부를 생산하는 활동의 여러 분야에서 대담한 개척자가 되는 것을 즐겁게 여길 사람들은 실업상태에 있어야 하는데, 그 까닭은 토지, 광산 및 공장들의 소유자가 그들의 자본 ― 그 지역사회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 을 터키 또는 이집트 채권에, 또는 파타고니아 금광에 투자하여 이집트의 농부들, 이태리의 실향민 및 중국인 쿠우리들을 그들의 임금노예로 만들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생산의 직접적이고 계획적인 제한이다. 여기에 덧붙여 간접적이고 비계획적인 제한이 있는 바, 그것은 인류의 노력을 전적으로 무용한 대상에 또는 오직 부자의 어리석은 허영심을 만족시켜 주는 데에만 쓰도록 낭비하는 것이다.
생산에 필요한 기계를 준비하는 데 이바지해야 할 부(富)가 간접적으로 제한된 정도나 에너지가 낭비된 정도를 숫자로 계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군비, 즉 시장 지배권을 획득하고 그렇게 해서 이웃 나라에 자국의 상품을 강요하고, 국내에서는 착취를 더욱 쉽게 만드는 또 하나의 목적을 위해 유럽이 소비한 막대한 금액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매년 그 기능은 그 나라의 경제활동을 조작하는 소수자들의 ????권리???? ― 즉 소수의 부자들의 권리 -를 유지하는 모든 종류의 관리자들에게 수백만금의 돈을 썼다. 수백만금이 판사, 감옥, 경찰관 및 소위 사법의 부속물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도시의 빈곤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면 그만큼 범죄가 현저히 감소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끝으로, 수백만금이 이런 저런 당파, 정치가, 투기가 집단의 이익이 되도록 잘못된 뉴스와 해로운 관념들을 선전하는 데 소비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완전한 낭비로 돌아가는 모든 노동을 고려해야 한다. 즉 여기서는 부자의 마구간, 개 집, 시종 드는 사람을 가지기 위해서 또는 사교계의 부인들의 허영심과 유행을 쫓는 저속한 취미를 만족시키기 위한 일들, 또한 소비자에게 그가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사도록 강요하고, 또는 허위 광고로 불량품을 억지로 떠맡기는 일, 그리고 또 제조업자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전혀 유해한 식료품을 생산하는 데 소비되는 노동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낭비되는 노동은 유용한 물건을 두 배로 생산하는 데 충분할 것이며, 그래서 우리의 공장을 현재 국민의 삼분의 이에게 부족되고 있는 상품으로 곧 상점들을 넘치게 만들, 기계로 가득 채우기에 충분할 것이다.
현재의 제도 하에서는 모든 국가의 생산자들의 사분의 일은 일년간 3~4개월 동안 휴업하지 않을 수 없으며, 반이 아니라면 사분의 일의 노동력은 부자들의 향락 또는 공중의 착취 이외의 다른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일에 강제된다.
이리하여 만일 우리가 문명국들이 그들의 생산력을 증강하는 속도를 생각하고 또한 그것이 직접적으로든 또는 간접적으로든 현존하는 조건들에 의해서 그 생산에 대해 제한이 주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약간 더 합리적인 경제제도를 몇 년 동안에 그들이 ????충분하오! 우리는 충분한 석탄과 빵과 옷가지를 가지고 있소! 우리는 쉬면서 우리의 힘을 최선으로 사용하는 법과 우리의 여가를 가장 잘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합시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될 만큼 많은 유용한 제품들을 쌓아 올릴 수 있게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아니다. 만인에 대한 풍족은 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에이커의 땅에서 몇 부셀의 밀도 얻어 내 수가 없었고, 또한 손으로써 그가 농업과 공업에 사용되는 모든 연장들을 만들어야만 했던 시대에 있어서는 정말로 꿈이었지만 말이다. 지금은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약간의 철과 몇 자루의 석탄을 가지고서 한 마리의 말처럼 힘세고 말 잘 듣는, 그리고 가장 복잡한 기계를 움직이도록 힘을 주는 발동기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인에 대한 복지가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이 거대한 자본 ― 도시, 집, 목장, 경작지, 공장, 고속도로, 교육 ― 은 독점자가 그의 좋을 대로 처분하도록 되는 사유재산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선조들이 힘들여 얻었고, 건설했고, 만들었고 또는 발명한 이 훌륭한 재산은 공동의 재산이 되고 그래서 사람들의 집단적 이익이 그것으로부터 만인에게 가장 큰 선을 얻을 수 있도록 되어야만 한다.
재산의 몰수가 필요하게 된다. 만인의 복지는 목적이고, 몰수는 그 방법이다.
Ⅱ
재산의 몰수는 이리하여 역사가 20세기의 사람들 앞에 제기한 문제이다. 사람의 복지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의 공유제로의 복귀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입법의 수단에 의해 해결될 수가 없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부자나 빈자나 현존하는 정부도 가능한 정치적 혁명에 의해서 나타날지도 모르는 정부도, 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다. 그들은 사회혁명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부자도 빈자도 다같이 이 혁명이 임박해 있으며, 그것이 수 년 내에 일어날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한다.
19세기의 후반기에 사상의 큰 진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 진화는 유산계급에 의해 억압되고 그 자연적 발전이 부정되었기 때문에 이 새로운 정신은 이제 그 기반을 실력에 의해서 타파하고 스스로를 혁명에 의해서 실현해야만 한다.
혁명은 어디에서 올 것인가? 그것은 그 도래를 어떻게 선언할 것인가? 아무도 이 질문에 대답할 수는 없다. 미래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물을 잘 바라보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징후들을 잘못 해석하지 않는다. 노동자들도, 착취자들도, 혁명가도, 보수주의자도, 사상가도, 행동인들도 모두 혁명이 우리의 문 앞에 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자, 그렇다면, 그 혁명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혁명의 극적인 측면을 많이 연구해 왔으나 혁명의 실제적 작업은 거의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위대한 운동에서 단지 무대 효과만을, 첫날의 싸움만을, 그 바리케이드만을 보기가 쉽다. 그러나 이 싸움, 이 첫 번째의 작은 싸움은 곧 끝나며 진정한 혁명 사업은 낡은 제도가 붕괴한 후에 시작된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사면에서 공격을 받아 피로하고 무력해진 낡은 지배자들은 폭동의 숨결에 의해서 곧 일소된다. 1848년의 지배자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루이 필립(Louis Philippe)은 마차를 타고 도망해 버리는 동안 파리는 이미 그 ????구국왕????을 망각해 버렸었다. 1871년 3월 18일에 티에르 (Thiers:프랑스의 정치가, 1797~1877, 공화국 초기의 대통령 ― 역자주)의 정부는 수 시간 내에 사라지고, 파리를 스스로의 운명으로 남겨졌다. 그런데 1848년과 1871년은 다만 봉기에 불과했다. 민중혁명 앞에서는 ????구질서????의 주인공들은 놀라울 정도로 빨리 사라진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안전하게 모의를 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복귀 대책을 꾀하기 위해 그 나라를 떠난다.
이전의 정부가 소멸하면 군대는 여론의 물결 앞에서 주저하면서 빈틈없이 도망가 버린 지휘관들에게 더 이상 복종하지 않는다. 군대는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거나 아니면 봉기한 사람들에 가담한다. 경찰도 편한 자세로 군중을 진압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혁명정부 만세!????를 외칠 것인지 주저한다. 일부는 ????새 정부의 뜻을 기다리기 위하여???? 그들의 숙소로 되돌아간다. 부유한 시민들은 그들의 짐을 싸서 안전한 곳으로 간다. 민중은 남는다. 이것은 하나의 혁명이 시작되는 모습이다.
몇몇 대도시에서는 혁명정부가 선포된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거리에 떠다니며 저녁때에 그들은 급조된 클럽 안으로 밀려들어와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고 공적인 일들을 열렬하게 토론한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들에게 관심을 가진다. 어제는 전혀 무관심했던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열광적일 것이다. 도처에 많은 온정과 승리를 굳히려는 열망이 팽배한다. 최고의 헌신적 행위들이 일어나는 것이 이 때다. 민중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에만 가득차 있다.
이 모든 것이 화려하고 숭고하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은 혁명은 아니다. 반대로, 이제야 혁명가의 사업이 시작되었을 따름인 것이다.
틀림없이 복수 행위들이 일어날 것이다. 와트린(Watrin)씨나 토마스(Thomas)씨 같은 사람은 그들이 인심을 잃었던 것에 대한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단순한 우발적인 싸움이지 혁명은 아니다.
사회주의 정치가, 급진주의자, 무시당한 저널리즘의 천재들, 정담(政談) 연설가들 ― 중산계급 및 옛 근로자 ― 은 시청이나 정부 청사로 서둘러 달려가 빈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를 금은(金銀)의 레이스로 장식하며 좋아할 것이다. 장관실의 큰 거울에 비치는 그들 자신을 찬미하고 그들의 새로운 직책에 어울리는 거드름을 부리고 명령을 내리는 연습을 할 것이다. 편집실이나 공장의 동지들을 감동시키기 위해 그들은 붉은 장식 띠, 수놓은 모자와 권이 있는 몸짓을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공문서 속에 몰두하여 전심전력을 다하여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할 것이다. 그들은 법률을 만들고 과장된 말로 된 법령을 반포할 것이나 아무도 그것을 실행하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이 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지지 않았던 권위를 몸에 배게 하기 위하여 낡은 정부 형식의 승인을 추구할 것이다. 그들은 ????임시정부????????공안위원회????????시장????????시총독????????총경???? 등등의 이름을 붙일 것이다. 선거 또는 지명에 의해 선출된 그들은 이사회 또는 콤뮨 위원회를 구성하여 집회를 할 것이며 거기에는 다른 파벌에서 온 10명 내지 20명의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개인적 신도????로서가 아니라, 혁명의 범위, 방향, 목표에 관한 많은 서로 다른 생각들로써 대표할 것이다. 현실주의자, 집산주의자, 급진주의자, 자꼬방(Jacobin)파, 블랑키스트(Blanquist)들은 서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말싸움으로 시간을 낭비할 것이다. 정직한 사람들의 꿈은 오직 권력이며, 그들의 발판이 된 군중들을 차 던지는 야망가들과 함께 아무렇게나 어울릴 것이다. 정반대의 사상을 가지고 한데 모인 사람들은 모두 단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을 다수파를 만들기 위해 하루살이 연합을 이루도록 강요된다. 말다툼을 하고, 서로를 반동, 권위주의자, 악한이라고 매도하며, 중요한 대책에 대한 합의에도 이를 수가 없으며, 사소한 일들에 대한 토론에 끌려들어가며, 결국 공소한 선언들만 남발할 것이다. 혁명의 참다운 힘은 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자기네들에게만 굉장한 중요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은 신파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할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아직도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동안에도 민중은 피해를 당한다. 공장은 놀고, 작업장은 문을 닫는다. 상업은 정체된다. 노동자는 이전에 그가 받았던 그 빈약한 임금마저도 벌지 못한다. 식량 값은 비싸진다. 민중은 그들을 특징지었던, 그리고 큰 위기에 처해서는 숭고한 경지에까지 이르는 그 영웅적인 헌신을 가지고 참을성 있게 기다릴 것이다. 1848년에 ????우리는 공화국을 위해 3개월의 궁핍을 바친다.????고 그들은 서로 말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표자들????과 새 정부의 신사들은 ― 가장 하급관리까지 ― 그들의 봉급을 규칙적으로 받았던 것이다.
민중은 고생을 하고 있다. 민중은 어린이 같은 믿음과 그 지도자들을 믿는 순박성을 가지고, 그들은 ????높은 데????, 즉 의회에서, 시청에서, 공안위원회에서 그들의 복지가 고려되고 있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높은 데???? 있는 자들은 민중의 복지만 빼놓고는 태양 아래 모든 것들을 토론하고 있다. 1793년에 기아가 프랑스를 괴롭히고 혁명을 위태롭게 하고 있을 때, 샹젤리제 거리는 보석과 사치를 자랑하는 부인들의 마차들이 줄지어 있었지만 민중은 비참의 밑바닥으로 떨어져 있었을 때,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는 자코방 당원들에게 영국 헌법에 관한 그의 각서를 토의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1848년에 노동자는 산업의 전반적 정지 때문에 고생하는 동안 임시정부와 국민의회는 위기 속에서 민중이 어떻게 살아가려고 애쓰는가에는 아랑곳없이 군인의 연금과 죄수의 노역에 관해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또한 프러시아군의 대포 밑에서 태어나서 70일밖에 존속하지 못한 파리 콤뮨을 비난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잘못 ― 즉 혁명은 그것을 지지하여 싸운 투사들을 먹여 주지 않고서는 승리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하루에 15펜스로써는 성벽에서 싸우면서 동시에 가족을 부양할 수가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서일 것이다.
민중은 고생을 하고, ????어떻게 하면 이 난국을 벗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Ⅲ
이 질문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의 대답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각자가 구(舊)사회에 있어서의 그의 지위가 무엇이든, 신체가 강하든 또는 약하든, 유능하든 무능하든, 무엇보다도 우선 ????생존권????을 가지며, 그리고 사회는 그것이 처분할 수 있는 생활수단을 모든 사람에게 나눠 줄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큰 소리로 선언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선언하고 그것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혁명의 첫날부터 다음과 같이 일이 되어야 한다. 즉 노동자는 새로운 시대가 그 앞에 열리고 있는 것, 앞으로는 아무도 궁전이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다리 밑에서 웅크리고 살 필요가 없으며, 아무도 털옷이 가득 차 있는 가게 부근에서 추위에 떨도록 강요될 필요가 없으며,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만물은 만인을 위하여 있다는 것, 그리고 끝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에게 ????의무????에 대해 훈련시키기 이전에 그들의 ????필요????를 생각하는 혁명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의회의 법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만인의 복지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즉각적이고 효과적으로 소유하게끔 하는 데서만이 실현되어질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해야 할 진실로 과학적인 방법이며 민중의 다수가 이해하고 소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는 민중의 이름으로 곡창이나 옷으로 가득 찬 상점이나 주택을 소유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지체하지 말고 굶주린 사람들을 먹게 하고, 모든 욕망을 만족시켜 주고,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고, 어떤 사람의 특별한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 전체로서 그 생활과 발전을 위해 생산하게끔 조직해야만 한다.
????일할 권리????와 같은 애매하기 그지없는 말은 이제 듣지 않겠다. 1848년에 사람들은 이 말로해서 오도(誤導)되었고, 이런 말들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만인의 복지는 지금부터는 가능하며 반드시 실현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용기를 갖자.
1848년에 노동자들이 일할 권리를 요구했을 때, 국립 및 시립 공장이 세워졌고, 노동자들은 그곳에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1실링 8페니를 받았다! 그들이 ????노동자의 조직체????를 요구했을 때 대답은 ????여러분 좀더 참으시오, 정부는 그것을 하도록 주선하겠소. 그동안 1실링 8페니가 여기에 있소. 평생 동안 고된 일을 해온 노동자 여러분, 쉬십시오.????이었다. 그리고 이럭저럭 하는 동안에 대포가 점검되고 예비군대가 소집되고 노동자 자신의 조직은 부르주아 계급에 잘 알려진 많은 방법들에 의하여 해산당했다.
그리고 1848년 6월, 즉 전 정부가 전복된 지 4개월 후의 어느 날 노동자들은 이런 말을 들었다. ????아프리카로 가서 식민지를 개척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들을 총살하겠다????라고.
만일 그 노동자들이 ????복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한다면 그 결과는 매우 다른 것일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그들은 사회의 부를 모두 소유하여 각 가정의 필요에 따라 살 집을 얻어서 살고, 양식의 창고를 손에 넣고, 안락의 맛을 알면서, 그것을 소비하는 권리를 요구한다. 그들은 모든 사회적 부 ― 과거와 현재의 세대들의 노동의 과실 ― 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선언하고, 지금까지 너무나도 오랫동안 부르주아에 의해서 독점되어진 예술과 과학의 보다 높은 즐거움을 그들이 누리게끔 그 부를 이용한다.
그리고 편안히 사는 그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안 그들은 더욱 중요한 것, 즉 이 안락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그것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을 생산해야 하는지, 그리고 더 이상 가치가 없는 것으로서 무엇을 버려야 할 것인가를 그들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주장한다.
????복지의 권리????란 사람답게 살고 자녀들을 우리보다도 더 나은 사회의 구성원이 되게끔 양육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에 반해 ????노동의 권리????란 오직 장차 부르주아 계급에 의해서 항상 지배되고 착취되는 임금 노예, 고역자가 되는 권리를 의미한다. 복지권은 사회혁명이며, 노동권은 기껏해야 산업적 징역인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노동자는 공동유산에 대한 권리를 선언하고 그것을 장악할 호기이다.
3. 무정부 공산주의
Ⅰ
사적소유를 폐지한 모든 사회는 무정부 공산주의로 스스로를 조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나키는 공산주의로 통하며 공산주의는 아나키로 통한다. 양자는 다 같이 현대사회의 지배적 경향인 평등의 추구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때 농가는 자기가 심고 거둔 옥수수나 오두막 안에서 짠 털신 옷가지를 그 가족의 노동의 생산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그때에도 이와 같은 사고방식은 모두 올바른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공동으로 만든 길과 다리가 있었고, 공동의 노력에 의해서 배수된 늪이 있었고, 모든 사람에 의해서 보수되어 유지된 생울타리에 둘러싸인 공동의 목초지가 있었다. 베틀이나 직물의 염색을 위한 염료가 어떤 사람에 의해서 개선되면 그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왔다. 당시의 농가는 많은 경우 혼자 살 수는 없었고 수천 가지 방식으로 마을과 공동체에 의존해야만 생활할 수 가 있었다. 하물며 오늘날 산업국가에 있어서는 모든 것들이 상호의존해 있고, 생산의 각 분야가 다른 부분들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그 생산물에 대해서 개인적 기원을 주장하려는 시도는 절대로 지탱할 수가 없다. 문명국에서 직물공업이나 광업이 놀라운 완성에 도달했다고 하면 그것은 다른 수많은 대소 산업의 동시적 발전과 철도망의 확장, 해양간의 향해, 수많은 노동자들의 숙련과 노동자 계급 전체의 일반적인 문화 정도 등등, 요컨대 세계의 모든 지방에서 이루어진 사람들의 노동에 의하는 것이다.
수에즈 운하를 만드는 동안 콜레라로 죽었거나 또는 상 고다아르 터널에서의 관절강직(關節剛直)으로 죽은 이태리 사람들, 그리고 노예제 폐지를 위한 전투에 휩쓸린 미국인들도 만체스터와 루안(Reuen)의 공장에서 창백하게 쇠약해 간 소녀 직공이나, 그리고(어떤 노동자의 암시에 따라서) 직기의 개량에 성공한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 및 영국의 면사공업 발전에 공헌을 했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그 축적을 위해 공헌한 부에 대해서 각자의 몫을 어떻게 추산할 것인가?
생산에 대한 일반적이고 종합적인 견지에서 본다면, 우리는 각인에 의해서 주어진 노동시간에 비례해서 지불함이 이상적 장치이며, 또는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발걸음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집산주의자(集散主義者, Collectivist)들과 동조할 수가 없다.
상품의 교환가치가(아담 스미스와 리카르도가 제창하고 마르크스가 그 예에 따랐듯이) 정말로 현 사회에서 그 생산에 필요한 노동량에 의해서 측정되는지 어떤지는 지금 토의하지 않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되돌아오기로 하고, 여기서는 그 집산주의의 이상은 노동의 도구를 공동의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원리에 입각한다면 이러한 사회는 즉시 모든 형태의 임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 것이다.
집산주의 제도라고 하는 완화된 개인주의는 토지와 생산도구가 만인에 의한 소유라고 하는 부분적 공산주의와는 공존(共存)할 수가 없을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새로운 형태의 소유는 새로운 형태의 보수를 필요로 한다. 새로운 생산형태는 낡은 형태의 정치조직에 적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비의 낡은 형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임금제도는 토지 및 생산도구의 사유에서 일어난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생산 발달의 필수 조건이었고, ????이익분배????의 모양으로 위장하려고 하지만 자본주의와 함께 없어질 것이다. 노동용구의 공동소유는 필연적으로 공동노동의 과실을 공동으로 향유하도록 만들 것이다.
우리는 더 나아가서 공산주의는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개인주의에 입각한 현존 사회는 끊임없이 ????공산주의를 향하여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 3세기 동안 개인주의의 발전은 특히 자본과 국가의 횡포에서 개인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노력에 의해서 설명된다. 한때 개인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완전히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사상을 대변해 주는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돈으로써 필요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그 개인은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었으며 근대사는 개인에게 설사 그의 금고가 황금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만인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근대사를 통해서 개인주의적 조류와 나란히 고대의 부분적 공산주의의 잔재들을 유지하고, 다른 편으로는 근대 생활의 수많은 발전 속에 공산주의 원칙을 수립하려는 경향을 발견한다.
10, 11 및 12세기의 콤뮨은 교회나 세속적 영주로부터의 해방이 성공하자마자 곧 공동노동과 공동소비를 급속히 확대-발전시켰다.
도시 ― 개인들이 아닌 ― 는 제품을 배에 싣고 대상을 보내어 먼 외국과 무역을 하고, 얻어지는 이익은 개인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모두에 의해 나누어졌다. 도시는 역시 그 주민들을 위한 양식을 구입, 비축했다. 이런 제도의 흔적이 19세기까지 유지되어 민중은 그들의 전설 속에서 그 기억을 경건하게 간직했다.
지금 그것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시골의 읍에서는 아직도 이 공산제의 마지막 자취를 보존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국가가 무력으로써 간섭하지 않는 한 그것은 성공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각인의 욕구에 따라?서 라는 같은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조직이 수많은 형태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의 공산주의적 경향이 없이는 현존 사회는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품생산이 사람들에게 주는 좁은 이기적인 성질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에의 경향은 항상 나타나고 있으며,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의 관계 속에 들어와 있다.
옛날엔 사용료가 부과되었던 다리는 공공의 기념물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이다. 이제 여행자에게 도로의 통행료를 징수하는 곳은 동양을 빼고는 없다. 박물관, 무료 도서관, 무료 학교, 어린이에 대한 무료 급식, 공원이나 공개된 정원 등은 모든 사람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또한 포장되고 조명도어진 가로, 제한 없이 각 가정에 공급되는 물 - 이런 시설은 모두 ????필요한 만큼 가지시오????라고 하는 원칙에 입각해 있다.
전차와 철도는 이미 월별 및 계절별 승차권제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최근에 헝가리와 러시아 두 나라는 그 철도에 구역방식을 채용하여 같은 요금으로 오백 내지 팔백 마일을 여행할 수 있게 했다. 또한 우편 업무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는 것과 같은 단일 요금제도 멀지 않아 실시될 것이다. 이런 모든 혁신에 있어서의 경향은 개인적 소비를 계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800마일을, 다른 사람은 500마일을 여행하려고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욕구이다. 한 사람은 그의 욕구가 두 배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보다 두 배를 지불해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없다. 이런 것들이 현재 우리의 개인주의 사회 안에서까지도 나타나고 있는 징조들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까지는 미약하지만 개인의 욕구를, 과거에 그가 지역 사회에 대해서 했고 앞으로 하게 도리 봉사 이상으로 존중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를 전체로 보고 그 각 부분이 다른 부분들과 매우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한 사람에 대한 서비스는 모두에게 행해지는 서비스라고 생각하게끔 되어 가고 있다.
공공 도서관 ― 파리의 국립도서관뿐만 아니라 대영박물관 부속도서관이나 베를린 도서관 ― 으로 들어가면 사서(司書)는 당신이 사회에 대해서 어떤 공헌을 했는지를 묻지 않고 당신이 요구하는 책을 50권이라도 대출해 준다. 만일 당신이 카탈로그를 다루는 방법을 모르면 당신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일정한 입회비를 지불하면 ― 입회에는 대개의 경우 연구업적에 의해 선택되지만 ― 학회는 각 회원에게 그가 다아윈(Darwin)과 같은 학자이든 또는 평범한 아마추어이든, 박물관, 정원, 도서관, 연구소와 연례 간담회를 개방한다.
세인트 피터스부르크(St. Petersburg)에서 만약 당신이 무엇을 발명하고자 하면 특별연구소에 가는데, 거기에는 장소와 목공소와 회전식 선반과 모든 필요한 도구와 과학적 기구들을, 당신이 그것들을 사용하는 방법을 알기만 한다면 얻을 수가 있고 당신이 원하는 만큼 언제라도 일을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연모들이 준비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지게 할 수도 있고, 각종의 동료 숙련공들과 공동작업을 할 수도 있고, 또는 당신이 원한다면 혼자서 일할 수도 있다. 비행기를 발명하거나 아무것도 발명하지 않거나 ― 그것은 당신 자신의 문제이다 ― 어떤 착상이 당신의 탐구심을 자극한다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마찬가지로 구명정 선원들은 난파선의 선원으로부터 증명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보우트를 물에 띄우고, 성나 날뛰는 파도에 생명을 걸고, 때로는 희생을 무릅쓰기도 하는데, 그것은 모두가 그들이 얼굴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조난자들에 대해 알 필요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들은 인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으로 그들의 권리가 성립된다. 자 도우러 가자!????
이러한 것들이 개인주의를 가르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한복판 도처에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현저하게 공산주의적인 경향인 것이다.
보통 때에는 아주 이기적이던 우리의 대도시 중의 하나가 내일 어떤 재난 ― 예컨대 어떤 포위공격 ― 을 당한다고 가정하자. 그때에는 이 도시는 맨 먼저 어린이들과 노인들을 보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결정할 것이다. 그들이 사회를 위해서 어떤 봉사를 했으면 또는 앞으로 할 것인가를 묻지 않고도 그 도시는 제일 먼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줄 것이다. 그 다음에 각자가 발휘한 용기나 지혜에 관계없이 전투원들이 돌봐질 것이며 그리고 수많은 남녀들이 자기를 희생하고 다투어 부상자를 간호할 것이다.
이런 경향은 현존하고 있다. 각자의 가장 긴급한 필요가 충족되자마자, 그리고 인류의 생산력이 증가하는 데 비례해서 강해지고 어떤 위대한 사상이 나타나서 우리 일상생활의 보잘 것 없는 선입견을 밀어낼 때는 언제나 더욱더 강해진다.
그렇다면 생산용 도구가 만인에게 봉사하게 되어졌을 때, 작업을 공동으로 행하고 노동은 그 명예로운 사회적 지위를 회복하여 만인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많이 생산할 때를 우리는 어찌 의심할 수 있으며, 우리는 (이미 이렇게 강력한) 이런 힘이 그 행동 영역을 확대하여 사회생활의 지배적인 원리가 될 때까지 넓혀 나갈 것을 어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이 징후들에 따라서 그리고 나아가서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게 될 수용의 실제적 측면을 고려할 때, 혁명이 현제도를 지지하는 권력을 타파하게 될 때 우리가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체하지 말고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것일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의 공산주의는 푸리에(Fourier)와 팔런스테리안들(Phalanstericans:푸리에의 주창에 의한 사회주의적 공동생활 단체 ― 역자 주)의 공산주의자가 아니며,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아나키스트 공산주의 즉 정부 없는 공산주의, 즉 자유인의 공산주의이다. 그것은 인류가 여러 시대를 통해서 추구해 온 두 개의 이상 ― 경제적 자유와 정치적 자유 ― 의 종합이다.
Ⅱ
????아나키????를 정치 조직의 이상으로 삼음으로 해서, 우리는 인류 진보의 또 하나의 현저한 경향을 표현하고 있을 따름이다. 유럽 사회들은 어느 정도의 발전을 이룩했을 때는 언제나 강권의 질곡을 떨쳐 버리고 개인적인 자유원리에 입각한 제도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에서 부분적 또는 전반적 혁명에 뒤이어 낡은 정부가 뒤집히는 기간에는, 경제적 및 지적 분야에서 공히 갑작스런 진보를 이룩한 시대이기도 했음을 안다. 그것은 중세의 콤뮨(공동체)의 해방인 바 그 기념물 ― 자유로운 결합(길드)의 자유로운 노동의 성과 ― 을 능가하는 것은 그 후 만들어지지 않았다. 혹은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교황권을 위태롭게 만든 농민 봉기가 그러했었고, 또 다시 구세계의 불만자들이 대서양의 다른 편에 창설한 자유 사회에서도 그러했었다.
그리고 문명국의 현재의 발전을 관찰한다면, 정부의 행동 영역을 더욱더 제한하고 개인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려는 현저한 경향의 운동이 뚜렷이 있음을 우리는 본다. 이 진화는 과거에서 이어받은 잡동사니 같은 제도들과 여러 가지 편견에 의해서 방해되기는 하지만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것은 모든 발전과 같이 앞길을 가로막는 낡은 장애물을 넘어뜨리고 혁신된 사회에서 자유로운 도약을 이룩하기 위하여 다만 혁명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를 사회에 봉사케 함과 동시에 개인에게 복종을 강제할 수가 있는???? 정부를 수립한다는, 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성과 없는 오랜 노력을 해 온 후에 드디어 모든 형태의 정부로부터 해방되고 같은 목적을 추구하는 개인 및 집다들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서, 조직에 대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려 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작은 지역 단위의 독립이 긴급하게 필요하다. 공동의 합의가 법률을 대체하고 국경을 넘어서 일반적 목적을 위하여 개개의 이해를 규제한다.
한때 정부의 기능으로 간주되었던 모든 것이 오늘날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국가의 개입 없이 일들을 더욱 쉽게 그리고 더욱 만족스럽게 처리한다. 그리고 이 방향으로 이뤄진 진보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인류가 정부의 개입을 제로까지 줄이는 것, 즉 사실상 부정의 억압과 독점의 화신인 국가를 폐지하는 데로 향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이미 개인이 더 이상 법률의 올가미에 의해서가 아니고 다만 사회적 습관 ― 우리 각자가 이웃의 지지, 협조, 동정을 구하는 데서 느끼는 욕구의 결과 ― 에 의해서 결합되어 있는 세계를 예견할 수가 있다.
틀림없이 국가 없는 사회라는 생각은, 적어도 사유자본이 없는 사회의 경제학처럼 많은 반대를 일으킬 것이다. 우리는 국가의 섭리적 기능에 관한 여러 가지 편견에 의해 양육되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교육, 학교에서 배운 로마의 역사, 그 후에 로마법의 이름 아래 공부한 비잔틴 법전, 그리고 대학에서 배우는 여러 가지 과학은 정부가 곧 신의(神意)에 의한 섭리 덕택임을 우리로 하여금 믿도록 길들였다.
이런 편견을 유지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철학의 체계가 공들여 만들어지고 가르쳤다. 같은 목적으로 법이론도 편성되어졌다. 정치도 이 원칙에 입각해 있다. 소속 당파의 색깔이 무엇이든 모든 정치가는 언제나 민중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당에게 권력을 주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아주 무겁게 억누르고 있는 비참한 상태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키려고 하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할 수가 있소.????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이 원리에 의해 인도된다. 사회학이나 법률학에 관한 어느 책이나 펴 보라. 거기에는 정부와 그 조직이나 법령이 너무나도 많은 지면을 채우고 있어, 그 때문에 우리는 정부와 정치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게끔 길들여져 있음을 알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도 온갖 수단을 다해 우리에게 같은 것을 가르친다. 모든 지면이 의회의 토의와 정치가의 음모에 대해 충당되고 있는 반면, 국민의 방대한 일상 생활에 관한 기사는 경제문제, 법률이나 경찰의 소송사건들의 보도에 곁들여 몇 줄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당신이 신문을 읽어도 우리의 무지함 때문에 아주 크게 만들어진 소수의 인물이 인류를 뒤덮을 정도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있는 반면 자라나고, 죽고, 슬퍼하고, 일하고, 소비하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수많은 사람들, 즉 인류에게는 생각이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인쇄물에서 실생활 그 자체로 옮겨와서, 사회를 일별하자마자 우리는 정부의 역할이 극도로 작은 데 놀란다. 이미 발작(Balzac)은 어떻게 수백만의 농민들이 좋든 싫든 지불하도록 강요당하는 무거운 세금 이외에는 국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그들의 전생애를 보내고 있는지에 관해 주시했다. 매일 수백만 건의 거래가 정부의 개입 없이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들 중의 대부분이 ― 상업 및 증권거래 ― 계약 당사자들 중의 하나가 그 계약을 이행하지 않을 의도를 가진다고 해도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업에 정통한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보면 그는 당신에게 상인들의 일일 상거래는 상호신용에 입각하지 않는 다면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약속을 지키는 습관, 신용을 잃지 않으려는 소망만으로 상호간의 성실을 유지하기에 충분하다. 화려한 레텔을 붙여 유해한 약품을 팔아 고객을 중독시키고도 조금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도, 계약에는 명예를 걸고 지키려고 한다. 치부(致富)가 유일한 동기이고 목적인 현재의 상태 아래서도 이러한 상대적 도덕성이 발달할 수가 있었다면, 다른 사람들의 노동의 과실을 사용(私用)하는 일이 더 이상 사회의 기초가 되지 않을 때 우리는 도덕성의 급속한 진보를 의심할 수 있겠는가?
우리 시대를 특징지우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 생각을 더욱 잘 뒷받침한다. 그것은 개인적 독창력에 의한 기업 분야의 끊임없는 확장과 모든 종류의 자유로운 조직체들의 놀라운 발전이다. 이것에 관해서는 자유 계약이란 장에서 좀더 상세하게 논의할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그런 사실들이 너무나도 많고 또한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비록 정치에 관한 저술가나 사회주의 저술가들이 그것을 무시하고 정부의 기능에 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그것들이 19세기 후반기의 본질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언급함으로써 족하다.
자유스럽고 무한히 많은 이 조직들은 우리 문명의 매우 당연한 소산이다. 그것들은 매우 급속히 팽창하며 아주 쉽사리 연합한다. 그것들은 문화인의 욕구가 계속 성장함으로써 나타난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리고 끝으로 그것들은 매우 유효하게 정부의 간섭에 대치되어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그것들 안에서 사회 생활에서 더욱더 중요한 요인을 인정해야만 한다. 만일 자유로운 조직이 아직도 생활의 전면에 파급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은 노동자의 가난이다. 현존 사회의 계급분열, 자본의 사유(私有)와 국가 속에서 넘을 수 없는 장애물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장애물을 제거하라, 그러면 당신은 자유로운 조직이 얼마나 문명인의 활동에 광대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알 것이다.
과거 50년의 역사는 대의정체가 우리가 배당하려고 했던 모든 기능을 다하는데 무능하다는 산 증거를 제공해 준다. 장차 19세기는 대의제도가 실패한 시대로 인용될 것이다.
이 무능은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의회주의의 결함과 대의제 원리의 근본적인 단점은 아주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에 대해 비판한 몇몇 사상가들(J.S Mill, Leverdays(1835―1890):정치와 경제 문제 저술가, 특히 Assemlbees Parlantes(1883)에서 비판함)은 다만 민중의 불만을 표현하는 데 불과했다. 정말로 몇 사람을 지명하여 그들에게 ????당신들의 어느 누구도 그것들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라도 좋으니 우리 생활의 모든 분야를 구제하는 법률을 만드시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알 것이다.
다수인에 의한 정치란 나라의 모든 일을 의회나 선거위원회에서 다수파 즉 기회주의자들, 요컨대 자신의 의견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시작했다.
인류는 새로운 출발점을 원하고 있으며 이미 그것을 발견하고 있다. 국제 우편연합이나 철도연합, 그리고 각 학회는 법률 대신에 자유계약에 입각한 해결의 실례(實例)를 우리에게 부여 준다.
오늘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단체들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단결하려고 할 때, 그들은 더 이상 무엇을 해도 좋을 대의원들로 구성되는 국제적 의회를 선출하여 ????규칙을 만들어 주시오. 그것에 따르겠소????라고 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취할 것이다. 직접 만나거나 서신에 의한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경우에는, 현안 문제에 정통한 대표들을 파견하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러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합의를 보도록 노력하시오. 그리고 당신네들 호주머니 속에 법률이 아니라 합의안(合議案)을 가지고 돌아오시오.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소????라고.
이런 것이 이미 유럽과 미국에 걸쳐 있는 대상사, 학회 및 거의 모든 종류의 단체들이 쓰고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자유사회의 방법이어야 하는 것이다. 농노제에 입각한 사회는 절대군주제와 어울린다. 임금제와 자본가에 의한 대중의 착취에 입각한 사회는 의회주의에 만족한다. 그러나 공동유산의 소유권을 다시 찾은 자유사회는 자유로운 집단과 집단의 연합 속에서, 역사의 새로운 경제 단계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조직을 탐구해야만 한다.
각 경제 단계에는 그 정치적 단계가 대응한다. 정치적 생활의 새로운 양식을 발견하지 않고서는 사유재산에 손을 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4. 수용(收用)
Ⅰ
로스차일드(Rothschild)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1848년의 혁명에서 그의 재산이 위협당하는 것을 보고 그는 다음과 같은 잔꾀를 생각했다. ????내 재산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하고 얻었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한다. 그러나 만일 그것을 유럽의 수백만의 사람에게 분배한다면 각인의 몫은 오직 4실링밖에 안 될 것이다. 좋소, 만일 나에게 그것을 요구한다면 4실링을 각자에게 주도록 하겠소.????
이 약속에 대한 그럴 듯한 홍보를 한 다음 우리의 백만장자는 아주 침착하게 프랑크푸르트의 거리를 산책하고 있었다. 서너 명의 통행인이 그에게 4실링을 요구했다. 그는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그것을 지불했다. 그의 장난 꾀는 성공했다. 그래서 그 백만장자의 가족은 아직도 그 부를 소유하고 있다.
부르주아 계급 가운데 유능한 자들이 다음과 같이 이유를 꾸며대는 것도 거의 같은 수법이다. ????아, 수용이라고요! 그 뜻을 압니다. 당신은 모든 외투를 모아서 그것들을 쌓아 올려놓고 각자가 마음대로 그것 중의 하나를 가지라고 한다면 그들은 가장 좋은 것을 가지려고 싸움질을 할 것이오.????
그러나 이것은 악취미의 농담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산더미같이 쌓아 놓은 외투의 재분배가 아니다. 하기야 이런 경우에도 추위에 떠는 사람들은 거기서 얼마의 이익을 찾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또한 로스차일드의 돈을 꼭 같이 나눠 갖자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의 기회들, 즉 첫째로 어떤 유용한 직업을 배우고 그것에 숙달되는 기회와 그리고 다음으로 자기의 하는 일에 주인이나 소유주의 허락을 구하거나 그가 생산하는 것의 제일 좋은 부분을 지주나 자본가에게 넘겨주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는 기회가 보장되도록 우리를 조직하는 것이다. 로스차일드가나 반더빌드가가 소유하는 부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공동생산을 보다 잘 조직하는 데 소용될 것이다.
농부가 그 생산물의 반을 상납하지 않고 땅을 갈 수 있게 되는 날, 풍요한 수확을 위해 땅을 가꾸는데 필요한 기계들이 경작자의 마음대로 무료 사용이 가능한 날, 공장의 노동자가 독점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공동사회를 위해서 생산하는 날 ― 그날이야말로 노동자는 넝마를 입고 다니지 않을 것이며 제대로 먹는 날일 것이며, 거기에는 더 이상 로스차일드가나 기타의 착취자들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때는 아무도 생산하는 것에 비해 열악한 임금을 위하여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좋소????하고 우리의 비판가는 말한다. ????그러나 로스차일드와 같은 사람이 외부에서 들어올 것이다. 중국에서 수백만금을 모아 온 사람들이 당신들 가운데 사는 것을 어떻게 막겠는가? 그가 자기 주위에 하인들과 임금노예를 모아 놓고 그들을 착취하고 그들을 희생시켜 치부(致富)하는 것을 여러분은 어떻게 저지하려고 합니까????? 계속해서 말할 것이다.
????당신들은 동시에 전세계에 혁명을 일으킬 수가 없소, 그렇다면 당신들은 당신 나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수색하여 그들이 가지고 오는 돈을 압수하기 위해 국경에 세관을 세우려고 합니까? 여행자들에게 발사(發射)하는 아나키스트 경찰관이란 좋은 구경꺼리겠군요!????
그러나 이런 논쟁의 근저에는 큰 잘못이 있다. 그것은 부자들의 재산이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를 한 번도 물어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한다면 이 재산은 가난한 사람들의 빈곤에 그 발단을 가진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는 그들을 착취하기 위한 부자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막대한 재산가가 나타나기 시작했던 중세를 일별하기로 하자.
어떤 봉건 영주가 비옥한 유역을 강점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 비옥한 땅에 주민이 살지 않는다면, 우리의 귀족은 부자가 아니다. 그의 땅은 그에게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달 속에 재산을 소유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귀족은 치부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그는 농민을 ― 가난한 농민을 찾는다!
만일 모든 농민이 땅값이나 조세가 없는 한 조각의 땅을 가졌었다면, 또한 경작에 필요한 가축과 농구를 가졌었다면 누가 귀족의 땅으로 갈 것인가? 각자가 자기의 토지를 돌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서는 전쟁이나 한발이나 유행병 때문에 파멸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말(馬)도 가래도 갖지 않았다(철은 중세에는 매우 비쌌고, 역마(役馬)는 더욱 비쌌다.)
이 빈민들은 모두 나은 상태를 추구하고 있다. 어느 날 그들은 영주의 토지와 경계한 도로에서, 이 토지에 정착하는 노동자는 그의 움집을 짓고 일정의 연수(年數)동안은 세곡(稅穀)을 바치지 않고 밭에 씨를 뿌릴 도구와 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음을 알리는 내용의 공고판을 본다. 그 세금면제의 연수는 게시판에 십자 기호로써 나타냈으며 이 십자 기호의 뜻을 농민은 이해한다.
이와 같이 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영주의 땅에 와서 정착한다. 그들은 길을 만들고, 늪의 물을 빼고, 마을을 건설한다. 9~10년이 지나면 영주는 그들에게 임대를 강요하고 그 후 5년 뒤에는 소작료를 올린다. 그 다음에 그는 그것을 두 배로 늘린다. 그런데도 농부는 이 새로운 조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곳에서 그보다 나은 조건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주들이 만드는 벌률 때문에 농부의 가난이 점차로 영주의 부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농부를 약탈하는 것은 영주뿐만이 아니다. 고리대금업자들이 떼를 이루어 마을들을 덮치며 그 수가 많을수록 농민의 가난이 심해진다.
이런 일들이 중세에 행해졌다. 그런데 오늘날도 그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농부가 마음대로 경작할 수 있는 놀고 있는 땅이 있다면 그는 한 조각의 땅을 팔아 주는 자작님 친절에 대해서(Shabble of a Duke) 50파운드를 지불할 것인가? 그는 생산물의 삼분의 일을 빼앗는 과중한 임대료를 지불할 것인가? 그는 절반 소작인이 되어 수확의 반을 지주에게 주는 데 동의할 것인가?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래서 그는 토지를 경작하여 생활할 수만 있다면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이고 그래서 지주를 돈벌게 만들 것이다.
19세기에 있어서도 중세기와 꼭 같이 지주의 부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농민의 빈곤이다.
Ⅱ
지주의 부는 농민의 가난에 의해서 늘어나고 있다. 자본가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해서 2만 파운드를 저금한 부르주아가 있다고 하자. 물론 그는 연간 2천 파운드씩 자기 돈을 쓸 수 있다고 가정하자. 이것은 오늘날 볼 수 있는 분별없이 몰상식한 사치와 비교하면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그는 10년 후에는 무일푼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인????인 인간이라면 그는 자기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고 상당한 연수입을 얻을 수 있는 쪽을 택하게 된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매우 용이한 일이다. 왜냐하면 도시나 시골이나 한 달 또는 심지어 보름 동안 살아갈 돈도 가지지 않는 노동자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부르주아는 공장을 세운다. 특히 그가 유능하다는 명성만 있으면 은행들은 그에게 다투어 2만 파운드를 대출해 준다. 그리하여 이 상당한 금액을 가지고 그는 500명의 노동자를 부릴 수가 있다. 만일 그 부근에 사는 모든 남녀들이 매일 먹을 빵이 보장되고 일상 필수품이 충족된다면 누가 우리의 부르주아에게 일하러 가겠는가. 아무도 반 크라운으로 생산되는 상품이 시장에서 1크라운 이상으로 팔리는 물건을 제조하는 자본가를 위해 일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잘 안다 ― 도시의 빈민굴이나 부근의 마을들에는 어린이들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공장이 완성되기도 전에 노동자들은 채용되기 위하여 달려간다. 백 명이 필요한데도 삼백 명이 문 앞에 몰려온다. 그리고 공장의 조업을 시작하자마자 그 소유주가 보통의 사업능력만을 가진다면, 그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한 사람당 연간 40파운드의 순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고용주는 상당한 재산을 저축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어떤 수지맞는 사업 부분을 선택하고 경영능력이 있다면, 그는 곧 공장을 확장하여 착취하는 사람들의 수를 배로 늘림으로써 그의 수입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그는 나라의 명사가 된다. 그는 다른 명사들 ― 그 지방의 유력자, 시, 법조계 및 정계의 거물들 ― 을 만찬에 초대할 수 있게 된다. 그는 그 재산을 다른 사람의 재산과 연결시키고 곧 자녀들을 유리한 지위에 앉히고, 아마도 정부로부터 특권을 얻어 군대 또는 경찰용 납품계약을 따낼 것이다. 그의 저축은 더욱더 불어나고 드디어는 전쟁 또는 전쟁에 관한 풍설 또는 주식거래소에 대한 투기가 그에게 좋은 기회를 준다.
미국에서 이뤄지는 큰 재산의 십분의 구는 헨리 조오지(Henry George)가 그의 ????사회문제????에서 잘 말한 것처럼 국가의 보조 하에 이뤄진 대규모의 부정행위에 기인한 것이다. 유럽에 있어서도 우리의 군주국 및 공화국에서 이뤄지는 재산의 십분의 구는 같은 출처에서 온 것이다. 대부호가 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을 수 없다.
이것이 부의 비밀의 전부이다. 굶주리고 가난한 자들을 찾아내어서 그들에게 반 크라운의 돈을 주고 5쉴링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생산하도록 함으로써 재산을 축적하는 것이다. 그 후는 국가의 도움을 얻어 좋은 기회를 잡아서 재산을 증식한다.
저축한 잔돈이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 한 단순한 저축 그 자체는 아무런 이익도 가져오지 못하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저축으로 해서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조금의 재산에 관한 이야기를 더 계속할 필요가 있겠는가?
구두장이 예를 들어보자. 그는 좋은 보수를 받고 많은 고객을 가지며 엄한 검약에 의해서 하루에 18페니 내지 2쉴링까지 저축하고 한 달에 2파운드를 저축한다고 하자.
우리의 구두장이는 한 번도 병들지 않고 검약에 열중하면서도 식사는 충분히 하고 있으며,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고, 결핵에 걸려 죽지도 않으리라고 가정하자!
그럼에도 그는 50세의 나이에 800파운드도 저축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일을 못하게 되는 노년 동안 살기에 충분할 만큼의 돈도 되지 않을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재산을 만드는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구두장이의 경우를 보자. 단 몇 페니를 저축하자마자 그 돈을 저축은행에 소중히 갖다 맡길 것이다. 그 저축은행은 막 ????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즉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하려는 자본가에게 그 돈을 빌려준다고 가정하자. 다음에 우리의 구두장이는 도제(徒弟) ― 불쌍한 가난뱅이의 아들 ― 를 고용하면 그 가난뱅이는 그의 자식이 5년이나 그 일을 배워서 겨우 그의 생계를 벌 수 있다면 다행으로 생각할 것이다.
도제는 구두장이에게 이익을 줄 것이다. 그리고 장사가 잘 되면 그는 곧 두 번째의 도제, 그리고 세 번째의 도제를 고용할 것이다. 얼마 후에 하루 5쉴링 상당의 일을 하고서도, 반나절 임금에 감사하는 불쌍한 빈민 중에서 둘 또는 셋의 직공을 고용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구두장이가 ????운이 좋다면????, 또한 충분히 교활하다면 그의 직공들과 도제들은 하루에 1파운드 가까이를 그에게 더 벌게 해줄 것이다. 그는 사업을 확장할 수가 있고 점점 더 부자가 될 것이며 생활 필수품을 더 이상 절약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약간의 재산을 그의 아들에게 남길 것이다.
그것이 세간에서 ????절약하고 검소한 생활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혈을 착취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무역은 예외인 것 같이 보인다. ????누구 누구는 중국에서 차를 사서 그것을 프랑스로 수입하여 자기 지출의 30퍼센트의 이익을 얻고 있다. 그는 아무도 착취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은 마찬가지다. 만일 우리의 상인이 그의 차를 등에 메고 운반했다면 그 말은 옳다! 중세 초기에 있어서는 외국 무역은 바로 그런 식으로 행해졌다. 그래서 아무도 현대와 같은 어지러울 정도로 큰 재산을 쌓아 올리지 못했다. 중세 상인들은 오랜 위험한 향해 후에 몇 개의 금화를 얻을 수 있었다. 그를 무역에로 내몬 것은 돈에 대한 애착보다는 여행과 모험심이었다.
오늘날은 방법이 더욱 단순하다. 자본을 가진 상인이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무실을 떠날 필요가 없다. 그는 백 톤의 차를 사도록 대행인에게 전보를 친다. 그는 용선을 하고 몇 주일 이내에, 만일 돛단배일 경우는 3개월 이내에 배는 그에게 화물을 가지고 온다. 차와 선박이 보험에 들어 있기 때문에 그는 항해의 위험을 부담할 필요조차도 없다. 그리하여 만일 그가 4천 파운드를 소비했다면, 그는 5천 또는 6천 파운드 이상을 손에 넣을 것이다. 즉 만일 그가 어떤 신기한 상품에 투기해서 그의 재산을 배로 늘리던가 아니면 그것을 몽땅 잃던가 하는 그런 모험을 시도하지 않을 경우에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그는 중국까지 왕복하며 보잘것없는 적은 돈을 받고 어려움을 견디고 힘든 일을 하고 그들의 생명을 걸고 바다를 횡단할 사람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가? 어떻게 해서 그는 ????기아를 면할 정도의 임금????을 받고 배에 짐을 싣고 내리고 하는 부두 노동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던가? 어떻게 해서 말인가? 그것은 그들이 가난하고 비참했기 때문이다. 항구에 가서 부두에 있는 작은 식당이나 선술집에 들어가 보라. 또한 배에서 일거리를 얻으려고 이른 새벽부터 몰려와서 선창문에 밀집하여 고용되려고 와 있는 사람들을 보라. 또한 몇 주간이나 몇 개월을 기다린 후에 먼 항해를 하는 일자리에 고용되어 좋아하는 선원들을 보라. 그들은 평생 동안 이 배 저 배를 타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다른 배를 타고 항해를 하며 끝내는 파도에 생명을 잃을 것이다.
그들의 움막으로 들어가서, 누더기를 걸친 채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을 보아라. 거기서 당신은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것이다.
더 많은 예를 들어보자. 상업이나 금융업, 제조업 또는 토지에서나 크고 작은 모든 재산의 기원을 생각해 보라. 어디에서나 부자의 부는 빈자의 가난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아나키스트 사회는 미지의 로스차일드(Rothschild)가 돌연 출연하여 정착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만일 공동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몇 시간의 생산적 노동을 한 후에는 문명이 가져다주는 모든 즐거움과 예술이나 과학이 소양 있는 사람에게 주는 심원한 향수(享受)에 대한 권리를 가질 것임을 안다면, 그는 약간의 식량을 위해 그의 노동력을 팔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당신의 로스차일드를 부자로 만들기 위해 일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은화는 다만 그만한 수의 쇳조각들일 뿐일 것이며 그것들은 여러 가지 목적에 유용할 것이나 더 이상 많은 돈을 낳지는 못할 것이다.
위의 반대론에 대답하면서 우리는 동시에 수용의 범위를 결정했다. 수용은 만인 ― 그가 은행가이든, 산업가이든 또는 지주이든 ― 이 다른 사람들의 노동의 소산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에 적용되어야 한다. 방식은 단순하고 포괄적이다.
우리는 누구로부터도 그의 외투를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에게 그것 때문에 누가 그들을 착취하게끔 하는 모든 것들을 되돌려 주기를 원한다. 우리는 누구나가 아무것도 결핍되지 않도록 되어, 어느 한 사람도 그 자신과 그의 자녀가 살아나가기 위해서 팔의 힘을 팔도록 강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수용에 대해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기간 동안에 우리가 할 의무일 것이며 그 혁명의 도래는 지금부터 200년 후가 아니라 매우 가까운 장래라고 우리는 본다.
Ⅲ
아나키즘의 일반관념 특히 수용의 관념은 독립적 개성을 가진 사람들과 게으름을 최상의 이상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공감을 얻고 있다. 우리의 친구들은 우리에게 흔히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그래도 너무 지나치지 않도록 주의하시오! 인류는 하루 사이에 바뀔 수가 없소. 그러니 당신들의 수용이나 아나키의 계획을 너무 크게 서둘지 마시오. 그렇게 하면 당신들은 영구적인 결과에는 하나도 도달하지 못하는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라고.
그런데 수용에 관해서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수용이 너무 소규모이기 때문에 영속하지 않는다는 것, 혁명적 약동이 중도에서 저지되고, 도중에서 기진맥진하여 아무도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또한 사회적으로 굉장히 혼란과 기능의 정지를 야기하면서도 생활력을 갖지 못하고 ― 다만 전반적 불만의 씨를 퍼뜨리고 숙명적으로 반동의 승리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는 우리가 그것을 부분적으로만 공격한다면 실제적으로 변개(變改)할 수 없는 여러 관계들이 있다. 우리의 경제 조직의 여러 가지 기구는 매우 복잡하게 서로 밀접히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 전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일부분도 바꿀 수가 없다. 이것은 어떤 것을 수용하려고 한다면 곧 알게 될 것이다.
어느 지역에서 일정 한도의 수용이 시행되고 있다고 가정하자. 예컨대 여러 번 시사된 바와 같이 대지주들의 재산만이 사회화되고 이에 반해서 공장들은 손대지 않고 놔두는 것, 또는 어느 도시에서는 가옥만 공유화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사유로 남겨 두는 것, 또는 어떤 공장지역에서는 공장은 수용하지만 대토지 소유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 따위이다.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경제생활의 끝없는 혼란이 초래되는 데도 새로운 기초 위에서 경제생활을 재조직할 수도 없다. 산업과 금융이 정지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의의 원리에로의 복귀는 이뤄지지 않고 사회를 조화로운 전체로 재건할 수도 없게 될 것이다.
농업이 대지주로부터 해방된다고 해도 공업이 자본가나 상인이나 은행가에서 해방되지 않는다면 사실은 아무것도 성취한 것이 아닐 것이다. 농민은 지주에게 소작료를 지불해야 하는 일로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현재의 조건도 전체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농민은 농업노동에 비해서, 6펜스의 값어치밖에 없는 가래 하나에 반 크라운을 지불하도록 하는 상인에게 착취를 당하며, 관리의 무서운 계급조직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이나, 또한 각국의 산업이 시장 획득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고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어딘 가에서의 착취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분쟁 때문에, 또는 언젠 전쟁이 발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국가가 군대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비용 등등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농민은 시골의 인구 감소로부터도 고통받고 있다. 농촌의 청년들은 사치품의 생산자가 일시불로 주는 높은 임금의 유혹이나, 보다 활기 있는 생활의 즐거움 때문에 대도시에로 이끌려 가고 있다. 농민은 또한 공업의 인위적 보호, 외국의 산업적 착취, 주식시장 조작 성행, 토지 및 생산기계 개량의 곤란성 때문에 괴롭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날 합쳐져서 농업에 불리하게 작용하는데 농업은 소작료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착취에 입각한 사회의 복합된 조건 전체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설사 토지의 수용이 수행되고 그래서 소작료 없이 최선의 편의를 얻어서 누구나 땅을 갈고 그것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농업은 비록 일시적 번영 ― 이것도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지만 ― 을 누린다고 하더라도 곧 그것은 오늘날 처해 있는 수렁 속으로 다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모든 것이 더욱 증가된 새로운 어려움 속에서 또다시 시작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공업에 대해서도 같은 것이 해당된다. 반대의 경우를 보자. 농민을 토지의 소유자로 만드는 것과 같이 공장을 노동자에게 인도한다고 하자. 공장주는 없어지거나 지주에게는 그의 땅을, 은행가에게는 그의 돈을, 상인에게는 그의 주식거래소를 남겨 준다고 하자. 노동자의 노동에 얹혀사는 게으름뱅이들의 무리, 다수의 중개인인들, 무수히 많은 관료들을 가지는 국가를 그대로 남겨 둔다고 하자. 그때 공업은 정체하게 될 것이다. 여전히 가난한 농민 대중 사이에서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원료의 재고가 없고, 일부는 거래의 중단 때문에 그리고 특히 공업이 전세계에 보급되었기 때문에 제품을 수출할 수가 없고, 그래서 제조업자들은 노력할 의욕을 상실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은 거리에 쫓겨나게 될 것이다. 이 굶주린 군중들은 그들을 착취하기 위해 나타나는 첫 번째 음모가에게 항복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일거리만 보장해 준다면 심지어 옛 노예제로 되돌아가는 데까지도 동의할 것이다.
또는 끝으로 지주의 토지를 수용하고 공장을 노동자에게 되돌려 주면서도 제조업자들의 제품을 팔아넘기는 동시에 대상가에서 옥수수와 밀가루, 고기와 야채를 투기하는 중간상인의 패거리에는 손을 대지 않고 버려둔다고 가정하자. 그때는 교환이 정체하여 생산물의 유통이 멈추고 대도시에서는 빵이 결핍되고 제조업자들이 생산하는 사치품은 고객을 찾지 못하게 되어 ― 반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1815년, 1848년 및 1871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무서운 반동이 다시 일어나서 시체를 짓밟고 도시에서나 농촌에서나 기관총을 맞대고 처형과 유형의 향연에 빠지게 될 것이다. 문명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호 관련되어 있다. 전체를 바꾸지 않고서는 어느 한 부분도 개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유재산의 한 형태 ― 토지나 공장 ― 에 공격을 가할 때에는 다른 모든 사유재산도 공격해야만 할 것이다. 혁명의 성공 자체가 그것을 요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비록 그것을 바란다고 해도 부분적 수용에 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일단 ????신성한 소유권????의 원리가 흔들리면 이론가들은 그 원칙이 토지의 노예에 의해서 혹은 기계의 노예에 의해서 파기되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만일 대도시 ― 예컨대 파리 ― 가 주택이나 공장만을 수용했다고 해도 이 추세로 해서 은행가가 이전에 대출한 돈에 대한 이자로서 2백만 파운드를 시에서 받아갈 권리는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게 될 것이다. 시는 농민과의 관계를 가지게 되며 필연적으로 지주로부터 농민을 해방시킬 것이다. 시는 시민들의 식량을 확보하고 생산을 위해 철도를 수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끝으로 물자의 낭비를 방지하고 1793년의 파리 콤뮨처럼 밀의 매점을 상인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도시는 시민들에게 식료품을 시외 창고에 비축하여 생산물을 분배하는 일을 위임할 것이다.
일부 사회주의자는 그러나 아직도 또 하나의 구별을 하려고 한다. ????물론 토지나, 광산이나 공장이 수용되어야 한다. 우리도 그것을 바란다. 이것들은 생산의 도구이고 공공재산으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은 옳은 것이다. 그러나 소비재 ― 식량, 옷가지 및 주택 ― 는 사유재산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보통, 상식이 이 교묘한 구별보다 한수 위에 있다. 우리는 숲 속에서 나뭇가지 밑에서 살고 있는 야만인들이 아니다. 문명인에게는 가옥, 방, 난로 및 침대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에게 침대나 방이나 집은 태만의 보금자리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자에게는 따뜻하고 밝은 방은 도구나 기계와 마찬가지로 생산의 도구이다. 그것은 내일의 노동을 위해 쓰일 신경과 근육을 회복시키는 장소이다. 노동자의 휴식은 기계의 정기적인 수리와 같은 것이다.
같은 이론이 식량에 대해서 더욱 명백히 적용된다. 방금 언급한 구별을 하는 소위 경제학자들도 기계 안에서 연소되는 석탄이 원료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생산에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식량 없이는 인간이란 기계가 움직일 수 없는데 생산 불가결한 것들의 리스트에서 제외될 수가 있겠는가? 이것은 종교적 형이상학의 유물이란 말인가? 부자의 향연은 정말이지 사치에 속하는 일이지만 노동자의 음식은 증기기관에서 태우는 석탄과 마찬가지로 생산의 일부이다.
옷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뉴기니아의 야만인이 아니다. 그리고 부인들의 화사한 의상은 사치품이지만 아마, 면이 아니면 모로된 일정량의 물건들은 생산자의 생활 필수품이다. 노동자가 입고 일하러 가는 셔츠와 바지, 하루의 힘든 노동이 끝난 후에 그가 입은 쟈켓은 모루와 망치와 마찬가지로 필요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이 우리가 그것을 좋아하든 말든 민중이 이해하는 혁명이다. 민중은 정부를 청소하자마자 무엇보다도 먼저 그 자신들에게는 아담한 거주처와 충분한 식량과 옷가지를 ― 임대료 없이 ―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민중들의 그러한 욕구는 옳을 것이다. 민중들의 이 방법은 생산도구와 소비재 사이에 아주 많은 구별을 하는 경제학자들의 방식보다도 훨씬 더 과학적일 것이다. 민중들은 이것이야말로 혁명이 착수해야만 하는 제일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들은 과학이 될 자격을 요구할 수가 있고 ????인류의 필요와 그것을 만족시켜 주는 경제적 수단에 관한 연구????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유일한 경제학의 기초를 쌓아 갈 것이다.
5. 식량
Ⅰ
다가올 혁명이 사회 혁명이기 위해서는 그 목적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그 방법에 의해서도 종전의 폭동과는 구별되어야한다. 새로운 목적은 새로운 수단을 요구한다.
지난 1세기 동안 프랑스에서 일어난 세 개의 큰 대중운동은 여러면에서 서로 다른 성격을 갖고 있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민중은 구제도를 전복하려고 그들의 고귀한 피를 바쳤다. 그들은 전투의 정면에서 맞선 후에 또다시 세상에 묻히고 말았다. 다소 정직한 사람들로 구성된 정부가 새로운 제도, 즉 1793년의 공화국, 1848년의 노동당, 1871년의 자유 콤뮨을 조직하려했다.
그러나 자코방(Jacoban)의 사상에 물들어 있던 정부는 무엇보다도 먼저 권력기구의 개조, 행정의 숙청, 교회와 국가의 분리, 시민적 자유와 기타의 정치적 문제들에 몰두했다.
노동자들의 클럽이 새 정부를 감시하고, 흔히 그들의 의견을 강요했던 것은 진실이다. 그러나 이들 클럽에 있어서조차도 지도자가 부르주아 계급이든 노동자 계급이고간에 지배적인 것은 언제나 부르주아 관념이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정치 문제들을 매우 많이 토론했지만 빵의 문제는 잊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위대한 사상들이, 세계를 움직인 사상들이 나타났다. 일세기 이상이 지났지만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말들이 거론되었다. 그러나 민중은 빈민굴에서 굶주리고 있었다.
혁명이 발발하자마자 노동은 불가피하게 중지되었다. 생산품의 유통이 저지되고 자본이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때에도 고용주는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주위의 곤궁을 이용해서 투기하지는 않았지만, 재산 이익에 의해서 배불리 먹었다. 그러나 임금노동자는 곧 하루살이 생활로 빠져들었다. 식량과 필수품의 결핍이 예고되었다.
생활난, 그것도 구제도 하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생활난이 모습을 드러냈다. 1793년 일부 노동자들은 ????지롱드 당원들(Girondists)이 우리를 굶게 한다!????고 외쳤다. 그래서 지롱드 당원들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전권이 ????산악당????과 ????파리 콤뮨????에 의해 장악되었다. 콤뮨은 정말 빵 문제에 관심을 보였고, 파리 사람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영웅적 노력을 했다. 리용(Lyons)에서는 후세(Fouche) 및 코로데르보아(Collot d Herbios)가 시 곡창을 만들었지만 그 창고들을 채우는 데 소용될 예산은 매우 부족하였다. 시의회는 곡물을 생산하기 위해 큰 노력을 하였다. 밀가루를 매점한 제빵업자는 교수형을 망했지만 빵은 더욱더 부족하기만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왕당파의 음모자에게 비난을 집중했다. 그들은 하루에 12명 내지 15명을 단두대에서 처형했다 - 여기에는 종들과 공작부인들이 함께 보내어졌으나 특히 종들이 많았다. 왜냐하면 공작부인들은 코블렌츠(Colblentz:서독에 있는 도시 - 역자 주)로 도망가고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매일 백 명의 공작이나 자작의 목을 잘랐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로 절망적이었을 것이다.
궁핍은 더욱 극심해져 갔다. 임금 없이는 하루도 연명하기 힘든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지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 구의 시체들이 배를 불리는 데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곧 민중은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신들이 큰소리친 혁명이 이 꼴입니다! 당신들인 이전보다도 더욱 비참하오????하고 반동가들은 노동자들의 귀에다 속삭였다. 그리하여 부자는 조금씩 용기를 얻어 은신처에서 나타나 굶주리는 민중들이 보는 데서 그들의 사치를 뽐내면서 활보했다. 그들은 향수냄새를 풍기는 멋쟁이로 성장을 하고 노동자들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어리석은 짓은 지긋지긋하오! 당신들은 혁명에서 얻어낸 것이 무엇이오? 이제 그만 하시지!????라고.
혁명가는 드디어 가슴이 터지고 더 참기 어려운 심정으로 ????또 혁명은 실패했다????고 자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들은 오두막집으로 되돌아가서 그 후는 운명에 맡겼다.
이번에는 반동이 자랑스럽게 얼굴을 내밀고 쿠데타를 수행했다. 혁명은 죽었고 그 시체들을 짓밟는 것만이 남았다.
백색 테러가 시작되었다. 피는 흘러 강물을 이루었고, 단두대는 쉴 사이가 없었으며, 감옥은 만원을 이루었고, 그 동안에 상류사회의 꽃수에가 그 옛날의 모습을 다시 드러내어 이전처럼 즐겁게 행진을 했다.
여기에 우리의 모든 혁명의 진상이 있다. 1848년에 파리의 노동자들은 ????곤궁의 3개월이 지난 후 그들은 기진맥진했는데도 불구하고 6월에 마지막 필사적 노력을 했었는데, 이 노력은 유혈 속에 가라앉고 말았다.
1871년에 콤뮨은 전투원의 부족으로 망했다. 콤뮨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법령을 내는 것을 잊지 않았으나 민중에게 빵을 주는 일을 소홀히 하여 때를 놓치고 말았다. 파리에서는 상류계급의 화장을 한 자들이 콤뮨의 사람들을 우롱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꺼져 버려! 바보들아! 너희들이 몇 푼의 돈을 받고 살인을 하는 동안에 우리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향연을 즐기고 있었단다!????
드디어 콤뮨은 그 잘못을 깨닫고 공동 급식소를 열었으나 그것은 너무 늦었다. 벌써 베르사이유의 군대가 몰려오고 있었다.
????빵이다. 혁명에 필요한 것은 빵이다!????
다른 사람들은 화려한 선언문을 발표하는데, 황금의 레이스로써 몸치장을 사치하게 꾸미는데 열중하는데. 정치적 자유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들의 시간을 소비하도록 내버려 두어라!……
그러나 우리가 할 임무는, 혁명의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모든 지역에서 빵이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게끔, 한 사람의 부인도 제빵업자의 문 밖에서 지친 군중들과 한 덩이의 조잡한 빵을 자선받기 위해 서 있어야만 하지 않도록, 한 명의 어린이도 식량 부족으로 고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부르주아 계급의 관념은 ????위대한 원리???? ― 차라리 큰 거짓말! ― 에 관해서 목청을 높이는 것이었다.
민중의 관념은 만인에게 빵을 주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부르주아 및 부르주아 사상에 감염된 노동자가 ????담화실????(의회)에서 잘난 척하고 있는 동안에, 그리고 ????실제가????들이 정부의 형태에 대해 끝없는 토론을 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은 매일의 빵에 관해서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만인이 배부르게 먹어야 하며 또한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 만인에게 빵이라는 표어를 가지고서 만이 혁명은 승리할 것이라고 대담하게 선언한다.
Ⅱ
우리는 유토피아 주의자이며 ― 이것은 잘 알려져 있다. 사실 유토피아 주의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유토피아를 추진시키고 혁명은 만인에게 의식주를 보장해야 하며 또 보장할 수 있음을 확신하는 것이다 ― 이것이 당파색에 관계없이 부르주아들이 극도로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 까닭은 배부른 민중을 억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그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장을 바꾸지 않는다. 혁명을 하는 민중에게 빵을 보장해야만 하고 빵의 문제야말로 모든 것에 우선해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만이 혁명은 옳은 길로 나설 것이다. 그리고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평등의 원리가 채택되어야 하며 이것에 의해서 우리와 상이한 일체의 해결은 배제되는 것이다.
다가올 혁명은 ― 1848년의 혁명과 마찬가지로 ― 산업적 대공황 가운데 일어날 것임이 확실하다. 최근 반세기이래 이미 우리는 격동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사태는 악화일로에 있다. 모든 것이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 세계시장 획득을 이해 경합하는 신흥 국가들, 전쟁, 가중되는 세금, 국가적 내일의 불안, 지구의 각처에서 행해지고 있는 거대한 식민지 계획이 그것이다.
이 순간에도 유럽에서는 수백만의 실업노동자들이 있다. 혁명이 일어나 화약의 도화선에 불을 지른 것처럼 퍼질 때 사태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유럽과 미국에 바리케이트가 세워지자마자 실업자들의 수는 배가 될 것이다. 이들 대중에게 빵을 주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 ????실제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자문해 본적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임금제도를 유지하려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므로 실업자들에게 식량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국영공장????과 ????공공사업????을 들고 나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1789년과 1793년에 국립공장이 개설되었고, 1848년에도 같은 방법이 취해졌고 나폴레옹 3세도 공공사업을 일으켜 18년간 파리의 무산자들을 만족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 그것은 오늘날 파리에 대해 8천만 파운드의 부채와 한 사람당 3~4파운드의 시민세를 부담시키고 있다.???? 그 때문에 ????맹수를 길들이는????것과 같은 이 좋은 방법은 로마에서, 그리고 4천년 전의 이집트에서도 널리 행해졌었고 또한 전제자, 국왕 및 황제들이 채찍을 손에 잡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민중들에게 빵을 던져 주었던 것이다 따라서 ????실제적인 사람들???? 사람들이 임금제도를 영구화시키는 이 방법을 극구 칭찬할 것은 당연하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Pharaoh: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 - 역자 주)가 사용할 방법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는 자가 있는데 우리가 이런 것에 머리를 짜내 본들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혁명이 이런 길을 가도록 오도된다면 그것은 실패할 것이다.
1848년 2월 27일에 국립공장이 열렸을 때 파리의 실업자는 8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주일 후에 실업자는 49,000명으로 증가했었다. 실업자는 곧 각 지방에서 흘러 들어온 자들을 계산에 넣지 않고서도 10만 명이 됐다. 그러나 당시 프랑스의 상업과 공업은 오늘날에 비해 반 정도도 고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 아는 바와 같이 혁명 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교역과 공업이다. 정말로 직접 간접으로 수출품의 제조에 일하는 노동자의 수와 소수의 부르주아를 고객으로 하는 사치품 산업에 고용된 사람들의 수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유럽의 혁명은 공장들과 작업장들의 적어도 반이 불가피하게 조업을 정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수백만의 노동자와 그 가족을 거리로 내모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 가공할 상황에서 우리의 ????실제적인 사람들????은 국영공장 즉 실업자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하여 즉석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산업의 방법을 준비할 것이다!
50년 전에 프루동(Proudhon)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재산에 대한 아무리 작은 공격도 사기업과 임금제도에 입각한 체제 전체의 완전한 분해에로 이끌어 갈 것임이 분명하다. 사회 자체가 모든 생산을 전반적으로 손에 넣고 그것을 민중 전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도록 재조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재조직은 하루 또는 한 달 안에 달성되어 질 수가 없고 생산제도를 재조직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 기간 동인 수많은 사람들은 생계의 수단을 빼앗길 것인 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조건하에서 정말로 실제적인 해결책인 단 한 가지뿐이다. 그것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대사업에 대담하게 직면해서, 우리 자선이 옹호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을 일시 미봉만 하려고 시도하지 말고 새로운 기초원리에 따라서 생산을 재조직하는 것이다.
이리하여 민중이 봉기한 공동체들이 모든 식량을 즉각 장악하고 그것 모두에 대한 상세한 목록을 만들고, 빵 하나도 낭비해서는 안되며, 축적한 자원을 만인이 이용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실제적으로 활동할 필요가 있다. 그 기간 동안 공장 노동자들과 협정을 체결하여 그들이 필요로 하는 원료를 공급하고, 그들의 생활을 수개월 보장하여 주고, 농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잊어서는 안될 것은 프랑스가 독일의 은행가 부인이나, 러시아의 황후나, 샌드위치 섬(하와이)의 여왕을 치장하기 위한 비단을 짜든가, 파리가 전 세계의 부자들을 위해 멋있는 장신구와 노리개를 만드는 일만 한다면, 프랑스 농민의 3분의 2는 조명할 램프도 없어지고 근대 농업에 필요한 농기를 갖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끝으로 남아 있는 토지를 이용하고 또 집약재배나 시장용 야채재배의 방식을 사용할 경우에 비해 4분의 1내지 10분의 1밖에는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토지를 개량하는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실제적 해결책이며 또한 바라든 말든 사태의 추세로 인해 그것이 요구되어질 것이다.
Ⅲ
현재 자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임금제인 바 그것은 간단히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필요한 자본을 가진 한 사람 또는 여러 사람의 집단이 어떤 기업을 시작한다. 그들인 공장이나 작업장에 원료를 공급하고, 생산을 조직하고, 제품을 팔고, 노동자들에게 일정한 임금을 지불할 것을 맡는다. 그리고 끝으로 기업의 경영을 하고 당면하는 위험이나 그 제품의 시장가치의 가격변동에서 오는 손해를 보상한다는 구실아래 잉여가치 또는 이익을 제 것으로 만든다.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하여 현재 자본을 독점하는 사람들은 몇 개의 양보를 하려고 할 것이다. 예컨대 이익의 일부를 노동자들과 나누어 갖는다든가 아니면 이익이 높을 때 임금을 올려 주게 되는 ????연동제????를 제정하는 것이다. 즉 그들은 산업을 계속 관리하고 그 이익의 ????첫머리???? 부분을 차지하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조건으로 약간의 희생을 하는데 동의 할 것이다.
집산주의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존 질서에 몇몇 변경을 가져오지만 임금제는 그대로 유지한다. 그것은 개인 고용자를 국가 즉 전국 또는 지방의 대의제 정부가 대신할 뿐이다.
집산주의 하에서는 산업의 관리자는 국민이나 콤뮨의 대표자들과 그들의 위임자 및 관료들이다. 생산의 잉여를 만인에게 이익이 되도록 사용하는 권한을 보유하는 자도 그들이다. 뿐만 아니라 집산주의에서는 노동자와 숙련노동자 사이에 매우 교묘한 그러나 결과는 매우 큰 차별을 한다. 미숙련 노동자는 집산주의자의 눈에는 단순 노동자 일뿐이다. 그러나 기능공, 기계공, 기사, 과학자 등등의 일은 마르크스가 말하는 복잡한 노동이며, 그래서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노동자도 기술자도 직조공도 과학자도 모두 국가의 임금 노동자이며, 최근에는 ????모두가 관리????라는 달콤한 말로 속이고 있다.
그렇다면 장차의 혁명이 인류에게 할 수 있는 최대의 봉사는 모든 형태의 임금제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공산주의 즉 임금제도의 부정을 들고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상태를 창출하는 일일 것이다.
집산주의적 개혁은 만일 번영과 평화의 시기에 ― 이런 조건 하에서까지도 그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지만 ― 점차적으로 도입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나 무기를 들고 일어선 다음날부터 수백만의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하는 혁명 기간에는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정치혁명은 산업의 기초를 뒤집지 않고도 수행될 수가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민중이 소유에 손을 대는 혁명은 불가피하게 교환과 생산을 돌연 마비시킬 것이다. 국고에 있는 기백만 프랑의 돈으로는 수백만의 실업자에게 임금을 주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새로운 기초에 입각한 산업의 재조직(그리고 이 문제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에 대해 지금 곧 보여 줄 것이다)은 수일 이내에 완성될 수는 없다. 또한 무산계급은 임금제도를 지지하는 이론가들을 위해서 몇 년간에 걸쳐 곤궁을 참을 수도 없을 것이다. 궁핍의 시기를 잘 넘기기 위해서는 그들이 이런 경우에 언제나 요구해 왔던 것 ― 생필물자의 공동화 ― 즉 식량의 배급제를 요구할 것이다.
인내심을 설교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민중은 더 이상 참지 못할 것이며 만일 식량이 공동화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제빵업소를 약탈할 것이다.
만일 민중의 압력이 충분하지 않다면 그들은 총살될 것이다. 집산주의가 실험될 수 있기 위해서는 질서가, 규율과 복종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본가는 혁명가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민중이 사살될 때, 민중이 혁명을 혐오하게끔 만드는 최선의 수단임을 재빨리 눈치채고, 그들은 반드시 질서의 옹호자들을 - 설사 그들이 집산주의자라고 해도 - 원조 할 것이다. 그 후 집산주의자들을 차례로 유사한 방식으로 분쇄할 수 있다고 그들은 보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이와 같이 해서 ????질서가 회복되면???? 결과는 쉽게 예견된다. ????약탈자들????만을 총살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질서????의 옹호자들은 ????폭동의 지도자????를 색출할 것이다. 그들은 또다시 재판소와 교수대를 재건하고 가장 열렬한 혁명가들이 단두대에 보내어질 것이다. 1793년과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다.
18세기에 반동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잊지 말자. 맨 먼저 에베르(Hebert)파들과 과격파가 단두대로 보내어졌다. 그들은 미네(Miggnet)가 그 투쟁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아나키스트????라고 부른 사람들이다. 당톤(Danton)파가 곧 그들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Robespierre)가 이 혁명가들을 처형했을때 그들은 다음 차례로 처형대에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리하여 민중은 유혈에 싫증이 나고 혁명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는 반동들이 마음대로 하도록 방치했다.
????질서가 회복되면???? 집산주의자는 아나키스트를 교수 할 것이고 현실주의자는 집산주의자를 교수대로 보내고 마지막으로 그들 자신은 반동파에 의해 교수당할 것이라고 감히 말하겠다. 이리하여 혁명은 끝장이 날 것이다.
그러나 민중의 힘은 충분히 강대하며 혁명이 일어나면 무정부 공산주의의 사상이 자리를 굳히게 될 것임을 우리는 모든 면에서 확신할 수 있다. 그것인 우발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불어넣어 준 것은 민중이며(무정부), 공산주의자의 수는 다른 모든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해 짐에 따라서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만일 민중의 압력이 충분히 강대하다면 사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줄 것이다. 봉기한 도시의 민중은 빵집을 약탈하고 다음날은 단식을 하는 대신에 밀 창고, 도살장, 식품창고 - 요컨대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양식을 손에 넣을 것이다. 선의의 남녀 시민은 각 창고나 곡물 보관소에서 넉넉하게 찾아낸 물품의 목록을 만드는 일에 곧 착수 할 것이다.
만일 이런 혁명이 프랑스에 즉 파리에 일어난다면 봉기한 콤뮨은 24시간 이내에 파리에 통계 위원회가 있음에도 그 양을 모르고 있는 것, 그리고 1871년의 포위공격 동안에도 그 양을 알지 못했던 것 - 즉 얼마만큼 양식을 보유하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48시간 이내에 모른 식량과 그것이 저장된 장소들과 그리고 분배 방법들을 보여 주는 정확한 일람표가 충분히 인쇄될 것이다.
모든 가옥의 구역과 길거리에, 도시의(區)에 일단의 자원자들이 조직되어 조화롭게 일하고 서로서로 할 일이 있음을 알릴 것이다. 만일 쟈코방의 총칼이 개입하지 않고, 자칭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가들이 끼어들어 혼란을 일으키고 서로 사이가 나빠지게 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아니면 그들이 명령하는 권한을 가지지 않는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그러면 민중, 특히 프랑스 국민의 모든 사회계층에 내재해 있지만 실천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저 놀랄만한 조직정신이 혁명으로 끓어오르고 있는 저 파리와 같은 대도시에도 나타나 필요 불가결한 식량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공급하기 위한 거대한 작업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만 민중이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하라. 그러면 10일 이내에 식량의 공급이 훌륭하고 정연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민중을 본 일이 없는 자들이나 평생을 책에 파묻혀 보낸 자들만이 그것을 의심할 것이다. ????오해된 위대한 존재???? 즉 민중의 조직적 정신에 대해서는, 파리에 바리케이드가 나날이 늘어날 때, 또는 50만 명의 굶주리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던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라. 그러면 그들은 민중이 벼슬아치 근성의 관료적 무능보다 얼마나 더 우월한가를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보름 내지 한 달 동안 어느 정도의 불편과 혼란을 견디어야만 할 것이나 그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 것이다. 대중에게는 그것은 그래도 이전의 상태보다는 좋은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혁명의 시대에 있어서는 사람들인 약간의 건빵과 치이즈를 가지고서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담소하면서 먹을 수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절박한 필요성 때문에 자발적으로 생겨 나오는 방식은 방에 처박혀서 헌 책들 사이에서 또는 시청의 위원회 석상에서 생각해낸 어느 것보다도 훨씬 더 훌륭한 것일 것이다.
Ⅳ
대도시의 민중은 전시민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단순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들에 이르는 모든 식료품을 장악할 것이다. 그것이 빨리 이루어질수록 더욱 좋으며 그만큼 곤궁이 줄어들고 내부의 싸움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초 위에 조직되어야 식량을 공동으로 처분할 수 있는가? 이것이 처음에 당면하는 문제이다. 거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유일한 방법은 공산주의가 공정하게 수립되는 것이며, 그것은 정의감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현실적인 방법이다. 즉 그것은 유럽의 농업공동체가 이미 채택한 방식인 것이다.
아무데나 있는 농민 공동체라도 예를 들어 보자. 쟈코방파가 모든 짓을 다하여 공동체적 관행을 모두 파괴한 프랑스의 경우를 보자. 공동체가 가령 숲을 소유한다고 하자. 그러면 거기에 넉넉한 묘목이 있는 한 누구나 원하는 만큼의 목재를 가질 수가 있다. 거기에는 이웃들의 세론(世論) 이외에는 아무런 금지가 없다. 재목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할당제가 취해진다.
공동의 목초지도 마찬가지이다. 목초지가 충분할 경우 각 농가의 어떤 가축이 풀을 먹든, 또한 그 마리 수가 얼마이든 제한을 받지 않는다. 부족하면 초지와 목초의 할당제가 시행된다. 스위스 전체 및 프랑스와 독일의 많은 공동체들의 공동 목초지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 방식이 실행되고 있다.
그리고 큰 숲들이 많고 토지도 부족하지 않는 동유럽 제국에서는 농부들이 그들이 필요한 만큼 나무를 벌채하고 재목이나 토지를 개인의 것으로 분할한다는 생각이 없이 각자가 필요로 하는 만큼의 땅을 경작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러시아에서와 같이 어느 하나가 부족하게 되면 각 가정의 필요에 따라서 재목이 할당되고 토지는 분배된다.
한마디로 그 제도는 이렇다. 지역사회가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절약이나 제한을 하지 않으나 희귀하고 부족되기 쉬운 물품들은 평등하게 분할?분배한다는 것이다. 유럽에 사는 3억 5천만 가운데 2억이 아직도 자연적 공산주의 제도에 따르고 있다.
주의할 만한 사실은 대도시에서도 풍부하게 존재하고 있는, 즉 각 가정에 공급되는 물에 대해서는 같은 방식이 행해진다는 것이다.
공급이 달릴 걱정이 없는 한 수도회사는 각 가정에서 소비하는 물을 제한하려고 하지 않는다. 필요한 만큼 쓰시오! 그러나 혹서가 계속되어 만일 공급이 잘 안 될 우려가 있다면 수도회사는 물의 부족함을 신문지상에 몇 줄의 광고로써 알리면, 시민들은 물의 소비량을 줄이고 물을 낭비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실제로 물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배급제에 의지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다. 이 방법은 매우 자연적이며 또한 사람들의 정신에도 합당한 것이기 때문에 1871년 파리가 두 번 포위를 당했을 때 두 번에 걸쳐서 식량의 배급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분배가 현재 행해지고 있는 모든 것보다 더 공정하고 평등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식량의 분배가 어떻게 행해지고 있는가를 상세히 설명하고 통계표를 작성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통계표를 만들고 상세한 설명을 하여도, 민중에게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곧 서로 싸움질을 하는 야만인의 집단으로 생각하는 부르주아나 부르주아의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납득시키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민중이 배당을 하는 주인공이 된다면 그들은 가장 순수한 정의와 공정의 감정에 따라서 그것을 행할 것임을 의심하는 것은 해방된 민중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자 뿐이다.
민중의 모임에 가서 맛좋은 것 ― 꿩고기 등등 ― 은 게으른 미식가인 귀족을 위해 남겨두고, 입원중인 환자에겐 검은 빵을 주어야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는 말을 한다면 당신은 야유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모임이나 길모퉁이나 시장에서 당신이 가장 맛좋은 진미는 허약한 사람들 특히 병자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설득하라. 그러면 파리 시내에 다섯 마리의 꿩밖에 없고 한 상자의 백포도주 밖에 없다고 해도 그것들을 회복기의 병자나 입원 환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병자 다음에는 어린이라고 말하라. 모두에게 줄만큼 충분한 양이 없는 우유와 산양의 젖은 어린이에게 먼저 주어질 것이다. 그 사회가 극도로 궁핍해 진다면 마지막 고깃덩어리는 어린이와 노인에게 주고 마른 빵은 건강한 사람에게 주어져야 한다!
요컨대 어떤 식량이 부족해져서 배급을 해야 할 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자에게 우선적으로 할당을 해주어야 한다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의 의견은 만장일치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포식한 자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민중은 이것을 이해하며 언제나 이해해 왔다. 그러나 포식해온 사람도 가두에 내쫓기어 대중과 접촉하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론가들 ― 그들에게는 군인의 제복과 병영안의 식사가 문명의 극치이다 ― 은 아마도 국영식당과 무료급식소 제도를 도입하도록 요구할 것이다. 그들은 누구나 와서 일정량의 수우프와 빵과 야채를 얻어먹을 수 있는 큰 식당을 설치함으로써 연료와 식량을 절약하는 이점(利点)을 주장할 것이다.
우리로서도 이들 이점에 반대하지 않는다. 인류가 각자 빵을 만드는데 사용했던 손절구와 빵을 굽는 냄비를 차례로 버림으로서 연료와 노동력을 절약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백 가구가 제 각기 불을 피워 수우프를 만드는 것보다는 한꺼번에 백 가구의 식구가 먹을 수 있는 수우프를 만드는 것이 더 경제적임을 알 수가 있다. 또 감자의 요리법은 여러 가지이나 백 가구를 위해 하나의 큰 냄비에 요리를 만들어도 맛이 나쁘지 않음을 안다.
끝으로 요리의 다양성은 요리사나 주부가 하는 양념에 좌우되며, 다량의 감자를 함께 요리한다고 해도 각 요리사나 주부가 각기 좋아하는 방법으로 양념을 하고 상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안다. 그리고 고기를 삶아낸 국물은 다른 입맛에 맞는 수많은 다른 수우프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는 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주부가 자신의 불에서 자신의 냄비에 그녀 스스로 요리하고자 한다면, 이미 공공취사장에서 요리된 감자를 가져오도록 강제할 권리가 없다고 확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각자가 자기의 가족과 함께, 또는 그의 친구들과 함께 또는 좋다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자유가 있기를 원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식상을 일으킨 레스토랑을 대신해서 큰 공중식당이 반드시 생겨날 것이다. 이미 파리의 주부는 수우프 국물을 고깃간에서 얻어 와서, 그것을 그녀가 즐기는 수우프로 만들고 있으며, 런던의 주부들은 돈을 조금만 주고 고기점에서 고기와 사과와 야채 파이를 만들어 달라고 할 수가 있으며, 이리하여 시간과 연료를 절약하는 법을 알고 있다. 그리고 상업적 식당 ― 미래의 공동 제빵소 ― 은 더 이상 속임수나 위조나 식중독의 장소가 아니라, 거기에 가서 기성 식품의 주요 부분을 구하여 그 후에 각자의 입맛에 따라서 완제품으로 만드는 일이 습관화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법률로 만들어, 이미 요리된 음식을 가정에 가져와서 먹는 것을 의무화한다면 그것은 현대인에게 수도원(修道院)이나 병영의 관념, 즉 명령에 의해서 부패되거나 종교교육에 의해서 왜곡된 두뇌 속에 생긴 병적인 관념만큼이나 비위에 맞지 않게 될 것이다.
누가 공동체의 식량에 대해 권리를 가질 것인가? 이것은 확실히 우리가 스스로 물어보게 될 첫 번째 질문일 것이다. 각 도시가 스스로 대답을 할 것이며, 우리로서는 그 회답이 모두 정의감에 의해서 지시될 것임을 확신한다. 노동이 조직화되지 않고 혼란기가 계속되는 한, 그리고 상습적 게으름뱅이들과 순수한 노동자들을 구별할 수 없는 한, 이용가능한 식량은 예외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속해야한다. 새로운 질서에 대해 적대시했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공동체에서 그 모습을 숨길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도량이 넓었고, 아무런 앙심도 없었던 많은 민중은 수용자나 피수용자를 가리지 않고 그들과 함께 남아있는 모든 사람들과 그들의 빵을 기꺼이 나눌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념에 고취되어 있다고 해도 혁명은 손실을 입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노동이 다시 시작될 때 어제의 적들이 같은 공장에서 얼굴을 맞댈 것이다. 자유롭게 노동하는 사회에서는 게으름뱅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양식은 한 달 이내에 없어질 것이다????라고 비판자는 말할 것이다. ????그것이 더욱 좋다????고 우리는 대답한다. 그것은 민중이 태어난 후 처음으로 배불리 먹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한 물자를 보급하는 방법 ―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문제이다.
Ⅴ
혁명 상태에 있는 한 도시는 실제로 식량을 보급받을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 의존할 수단은 지방 그리고 이웃 나라들의 혁명의 성격에 의존하게 될 것임이 명백하다. 만일 전국토 또는 나아가서 만일 전유럽이 동시에 사회혁명을 수행하게 되고 그래서 철두철미한 공산주의에로 출발할 수가 있다면 그것에 따라서 활동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유럽의 몇몇 공동체들만이 공산주의를 시도한다면 다른 수단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 방법이 결정되는 것이다.
우선 유럽의 상태를 일별하기로 하자. 에언자연 하지 말고, 혁명이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또는 적어도 그것의 본질적 특징이 무엇인가를 보아야한다.
유럽전체가 한꺼번에 봉기하여 도처에서 수용이 행하여지고 그리고 도처에서 공산주의 원리에 고취되어지는 것이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전반적 봉기는 우리 세기의 과업을 훨씬 더 용이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징조들로 봐서 그런 일은 일어나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혁명이 유럽을 둘러싸리란 것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만일 유럽대륙의 4대 도시 ― 파리, 비엔나, 브뤼셀, 베를린 ― 의 하나에 혁명이 일어나서 그 정부를 전복한다면 다른 세 도시들도 수 주일 이내에 그 예를 뒤따를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뿐만 아니라 이베리아 반도와 런던 및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도 혁명이 연이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이 띨 성격이 어디에서나 같은 것일지 ― 이것은 매우 의심스럽다.
수용(收用)이 도처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될 것이라는 것, 그리고 유럽의 대국 중 어느 하나에 의해 실행된 이 정책은 모든 다른 나라들에게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많다. 하지만 혁명의 발달은 지방에 따라 커다란 차이를 나타낼 것이며, 그 발전도 나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789 ― 1793년에 프랑스 농민이 봉건적 권리의 상환을 결정적으로 폐지하고, 부르주아가 왕권을 타도하는데 4년이 걸렸다. 우리는 이것을 유의하자. 혁명이 어느 정도 서서히 전개한다는 것, 어디에서나 같은 보조로 진행한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을 예기하자.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혁명이 시초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질 것인지 어떤지는 의심스럽다. 독일은 아직도 완전히 통일 제국이며 그 나라의 진보적 정파들은 1848년의 자꼬방 공화국과 루이 블랑(Louis Blanc)의 노동조직을 꿈꾸고 있으며, 한편 프랑스의 민중은 무엇보다도 공산주의적 콤뮨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유로운 콤뮨을 원하고 있음을 상기하자.
앞으로 다가올 혁명에서 독일은 1793년의 프랑스보다도 앞서 가리라는 것은 모든 점에서 믿을 수 있다. 프랑스는 18세기에 부르주아 혁명 수행으로 17세기의 영국보다 훨씬 빨리 전진했다. 프랑스는 왕권과 더불어, 영국보다 강대한 세력을 이루고 있던 토지 귀족의 권력까지도 철폐했다. 그러나 설사 독일이 1848년의 프랑스보다 앞서 가서 더 나은 상태로 발전한다고 해도, 혁명의 발단을 고취한 관념은 확실히 1848년의 그것이며, 그것은 러시아에서의 혁명이 19세기의 지적 운동에 의하여 어느 정도 수정된 1789년의 그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여기에 더 이상의 중요성을 부여하지 말고 우리는 이렇게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혁명은 유럽의 각국에서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며, 부의 사회화가 달성되는 수준도 모든 곳에서 동일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그렇다면 선진 국민들은, 때때로 말해지는 것과 같이, 후진 국민들에게 그들의 보조를 맞추어야만 하는가?
모든 문명국들이 공산주의 혁명이 성숙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분명히 결코 그렇지 않다! 비록 그것을 바란다고 해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지각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는 것처럼 어떤 한 나라에서 혁명이 일거에, 순식간에 성취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프랑스의 5 내지 6대 도시들 ― 파리, 리용, 마르세이유, 리일, 셍떼띠엔(Saint-Eteienne), 보르도 ― 의 하나가 콤뮨을 선언하면 다른 도시들도 그 뒤를 따를 것이며, 또한 많은 소도시들도 함께 할 것이다. 아마도 여러 탄광지들과 공업 중심지들이 ????주인들????을 축출하고 자유로운 집단을 결성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시골 지역들은 그 정도까지 나아가 있지 않다. 이런 지역들은 봉기한 코뮨들과 대조적으로 개인주의적 제도에 따라 생활을 계속할 것이다. 집달리가 세금을 독촉하러 오지 않는걸 보고 농민들은 혁명가들에게 적의를 가지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새로운 사태를 이용해서 지방의 착취자들과 결판을 낸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농민 봉기를 언제나 특징지워 주는 저 실제적 정신(1792년의 감격적인 노동을 상기하자)을 가지고서 그들은 세금과 저당에서 해방된 만큼 더욱더 애착심을 느끼게 되어 토지를 열심히 경작할 것이다. 외국에서도 도처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양상은 각양각색이며 여기에서는 통일주의적(국가사회주의적)이고 저기서는 연합주의적이기도 하지만 어디에서나 다소 사회주의적일 것이며 획일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Ⅵ
이제 우리는 혁명을 일으킨 도시로 되돌아 와서, 그 시민들이 어떻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자. 만일 그 국민 전체가 아직도 공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필요한 식량을 어떻게 구할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다. 예컨대 프랑스의 대도시들 가운데 하나 - 그 수도를 생각해 보자. 파리는 매년 수 천톤의 곡물, 40만 두의 소, 30만 두의 송아지, 40만두의 돼지, 2백만 두 이상의 양, 그 밖의 굉장히 많은 엽조수류를 소비한다. 그 뿐만 아니라 파리는 2천만 파운드 이상의 버터, 2억 개의 달걀 및 다른 산물도 같은 비율로 필요로 한다.
파리는 밀가루와 곡물을 미국, 러시아, 헝가리, 이태리, 이집트 및 인도에서 수입하며, 축산물은 독일, 이태리, 스페인, 루마니아 및 러시아에서까지도 수입한다. 그리고 식료잡화류에 대해서는 세계에서 파리에 공헌을 하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
먼저 프랑스의 각 지방에서 재배되어, 소비되기만을 기다리는 생산물이 어떻게 해서 파리나 기타 대도시에 공급되는지를 알아보자.
강권주의자들에게는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해 보일 것이다. 그들은 먼저 모든 강압기관 ― 경찰, 군대, 단두대 ― 으로 무장한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성립할 것이다. 이 정부는 프랑스에서 수확되는 모든 생산품에 관한 통계를 만들고 나서 전국을 몇 개의 식량공급 구역으로 나누어, 일정한 양의 특정 식량이 어느 날 일정한 장소에 수송되어질 것, 특정의 역에서 특정의 관리에게 인도되어 일정한 창고에 보관할 것을 명령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결책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코 실행에 옮겨질 수가 없을 것임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것은 순진한 공상이다!
사람은 손에 펜을 들고 이런 꿈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은 1793년에 증명된 것이다. 이런 이론들은 인간성에 있어서의 독립정신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그런 시도는 일반적인 봉기로, 3개 내지 4개의 벤데(Vendees)싸움, 도시에 대한 농촌의 싸움, 즉 농촌에 이런 제도를 부과하려고 강제하는 도시에 대해 전국적인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자코방적 공상은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 다른 형태로 조직이 되는 경우를 보기로 하자.
프랑스 혁명(1793년)동안 지방은 대도시들을 굶주리고 했고 혁명은 망치고 말았다. 그런데도 프랑스의 곡물 생산은 1792~3년 동안 감소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증가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농촌 부르주아들은 영주의 토지 중 가장 좋은 부분을 입수하고, 그 토지에서 수확을 한 후에 그들의 밀을 지폐를 받고는 팔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저장하여 가격의 등귀나 금화(金貨)의 유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점유자들에게 밀을 팔도록 강제하기 위한 국민공회 위원의 가장 엄중한 방책도 형의 집행도, 농민의 불매동맹(不買同盟)에 이길 수가 없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민공회 의원들은 매석하는 자들을 단두대에 처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민중도 식량에 투기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그래도 곡식은 나오지 않았고 도시민들은 굶주렸다.
그러나 농민에게 그들의 힘든 일 대신 무엇이 주어졌는가? 가치가 매일 하락하는 종이 조각인 아시냐(assignats) 화폐였다. 40파운드 짜리 지폐로 한 켤레의 신발을 살 수 없었으며, 그래서 농민들은 셔츠 한 장도 살 수 없는 종이 조각과 일년의 노동을 교환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인 당연했다.
가치 없는 종이 돈 ― 그것이 아시냐라고 불리든 또는 ????노동권????이라고 불리든 ― 을 농민에게 제공되는 한, 사태는 언제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골은 그 생산물을 내놓지 않을 것이며 그래서 비록 고집쟁이 농부들이 전과 같이 단두대에서 처형될지라도 도시인들은 식량을 얻지 못할 것이다. 농민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것은 그의 노력의 대가로 가치없는 지폐가 아니라, 그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상품이다. 농민들은 땅을 갈 적당한 도구, 악천후로부터 몸을 보호해주는 옷가지, 그들의 희미한 골풀양초나 수지양초와 대치시킬 램프와 기름, 가래, 갈퀴, 쟁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농민들은 이 모든 것들 없이 지내도록 강요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궁핍과 격심한 노동의 생활에서는 수많은 유용한 물건들이 그 비싼 값 때문에 그들의 손에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시는 때를 놓치지 말고 부르주아의 아내들을 위한 장신구를 만드는 대신 농부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조하는 일에 열중하라. 파리의 재봉틀로 영국이나 러시아의 지주들과 아프리카의 금광졸부의 부인들을 위한 값비싼 야회복 대신에 농민을 위한 일상 작업복과 일요일에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도록 하라. 프랑스 포도주와 교환하기 위해 영국이 보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공장은 농업용 기계나 가래나 갈퀴 등등을 생산하도록 하라.
도시는 농부들의 생산물을 일정한 곳으로 가지고 가라는 명령을 내리기 위해 붉은, 푸른 또는 여러 개 색깔의 견장을 한 감독관을 보내는 대신, 친구나 형제를 보내어 우정어린 태도로 그들에게 ????당신들의 농산물을 우리에게 가져오시오. 그리고 우리의 창고나 가게에서 당신들이 좋아하는 모든 공산품들을 가지고 가시오????라고 말하도록 하라. 그리면 식료품이 사방으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농민은 자신이 필요한 것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역사상 처음으로 도시민들이 그들의 착취자가 아니라 전우이고 형제라는 느낌을 가지고 도시로 보낼 것이다.
이것이 산업의 완전한 변형을 필요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확실히 어떤 산업 부문에 대해서는 그것은 참이다. 그러나 그밖에 농민에게 의복, 시계, 가구 및 지금 도시가 매우 고가로 팔고 있는 농기구를 농부에게 공급하는 일과 갈이 급속히 바꿀 수 있는 많은 산업부문이 있다. 직조공, 제봉사, 제화공, 철공, 가구공 및 많은 직업은 쉽사리 사치품 생산을 그만두고, 유용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만드는데 그들의 정력을 쏟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때 일반 사람들이 이 변환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정의와 진보의 행위로 간주해야 하며, 더 이상 이론가들이 귀중하다고 보는 몽상을 ― 혁명은 잉여가치를 장악하는데 국한하고 생산과 상업은 현재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있다 ― 가지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의 생각으로는 문제의 전부이다. 농민에게 그 생산물과 교환할 때 무엇이 적힌 종이 조각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 현물을 주어라. 그렇게 하면 식료품이 도시로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도시에는 기아와 그 결과 반동과 파멸이 올 것이다.
Ⅶ
이미 말한 바와 같이 대도시는 필요한 밀, 밀가루, 육류 등을 지방에서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사오고 있다. 향료, 어류, 사치 식품, 막대한 양의 밀과 육류를 외국으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그러나 혁명 때에는 이 도시들은 외국에 대해서 거의 의존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밀, 이태리나 인도의 쌀, 스페인이나 헝가리의 포도주가 서유럽의 시장에 넘치고 있지만, 수출국가들에서 그것이 남아돌게끔 많아서도 아니고, 이런 생산물이 마치 목장의 민들레처럼 스스로 자란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러시아의 농민은 곡물을 수출하여 지주와 정부에 소작료와 세금을 내기 위해서 하루에 16시간 노동을 하고 일년에 3개월 내지 6개월간 반기아 상태에 있다. 오늘날 러시아의 마을에서는 수확을 끝내자마자 경찰이 나타나서 농민의 곡식을 수출업자에게 팔아넘기고 또한 자발적으로 내놓지 않으면 체납된 세금과 소작료를 받아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은 말이나 소를 공매 처분한다. 그래서 농민은 불리하게 짐승들을 팔아버리지 않기 위해, 9개월분의 양곡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팔아버린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음 수확 때까지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형편이 좋으면 3개월, 형편이 나쁘면 6개월 동안 밀가루에 자작나무 껍질과 완두를 섞어서 먹는다. 그러나 이때 런던에서는 사람들이 그의 밀로 만든 비스킷을 먹고 있다.
그러나 혁명이 일어나자마자 러시아의 농민은 자기와 자녀들을 위한 빵을 확보할 것이며,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농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도인들도 혁명을 꿈꿀 것이고, 미국의 농민도 유럽이 겪는 곡물의 부족을 모두 메꾸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유럽은 외국에서 오는 밀과 옥수수에 의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부르주아 문화는 전적으로 열등민족과 후진의 공업국들을 착취하는데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혁명이 가져다주는 첫 번째 은혜는 이 ????문명????에 위협을 주고 소위 열등민족을 해방시키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큰 은혜는 서유럽의 대도시로 쏟아져 들어오는 식량공급의 확실하고도 현저한 감소로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농민은 더 이상 놀고먹는 사람들을 부양하기 위해서 일하도록 강제 당하지 않게 되므로 곧 생산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토지가 개간될 것이며 보다 더 개량된 기계가 일을 시작할 것이다.
????농민이 그렇게도 오랫동안 바라던 토지를 영주로부터 되찾았던 1792년 만큼 열심히 토지가 경작된 일은 일찍이 없었다.????고 미슐레(Michslet)는 대혁명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개량된 기계, 화학 비료 등이 콤뮨에 의해서 공급되면 머지 않아 집약재배가 모든 농민에게 가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점으로 봐서 프랑스에서도 다른 데에서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농업생산이 감소될 것으로 생각된다.
어쨌든 국내 및 외국으로부터의 공급이 감소할 것임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이 부족을 어떻게 보충할 것인가?
물론 가능하다! 우리 스스로 보충하는 것이다! 해결책이 바로 옆에 있는데 일을 일부러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대도시도 지방과 마찬가지로 토지를 경작할 필요가 있다. 생물학에서 말하는 ????기능의 통합???? 즉 분업에 뒤따라서 ????협업????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전 자연계가 뒤따르고 있는 길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철학을 제외하고 모든 사태의 추세가 그렇게 돌아갈 것이다. 파리는 8개월이 지나게 되면 빵이 부족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파리 사람들은 밀을 재배하는 일을 시작할 것이다.
토지가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도시의, 특히 파리의 주변에는 여러 개의 공원이나 중산계급의 초지가 있으며, 이들 수천 에이커의 토지는 농민의 현명한 노동에 의해서, 남부러시아의 건조한 대초원 지대보다도 훨씬 더 비옥하고 생산적인 밭이 되어 파리를 둘러 쌀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력 또한 부족하지 않다. 파리의 2백만 시민은 더 이상 러시아의 공작들, 루마니아의 귀족들 및 베를린의 재벌 부인들의 의상을 만들거나 호사스런 도락과 오락의 뒷바라지를 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들은 무엇에 주의를 하겠는가?
금세기의 모든 기계를 사용하고, 개량된 기구를 익숙하게 다루는 노동자의 기술적 숙련, 발명가, 화학자, 식물학자 간느빌러(gennevillier)의 야채 재배, 기계를 늘리고 개량하는데 요하는 실비,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리의 민중의 조직적 정신, 그들의 용기와 정력 ― 이 모든 것들을 동원한다면 파리의 아나키스트 콤뮨 연합의 농업은 아아던(Ardennes:프랑스 북부)지방의 조방(粗放)농업과는 아주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증기, 태양력 및 풍력도 거기서 이용될 것이다. 거친 준비작업에는 증기 가래와 증기 써레를 사용하여 신속히 행해질 것이다. 그리하여 토지는 부드럽게 비옥하게 되며, 인간, 특히 여자가 적절한 손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성한 작물에 덮을 것이며, 그것도한 해에 3~4회 되풀이 될 것이다.
남자도 여자도 아이들도 전문가로부터 원예 재배 기술을 배우고 그 목적으로 배당된 작은 면적의 토지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험을 해보고, 가장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지나친 피로나 과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육체 작업을 함으로써 도시에서 해치기 쉬운 건강과 체력을 회복하고, 이제는 고역이 아니라 즐거움이며, 축제이며, 인간적 존재의 갱신(更新 )이 되는 들 일을 즐겨 하게 될 것이다.
????불모의 땅은 없다! 토지의 가치는 인간의 가치이다???? ― 이것이 현대 농업의 결론이다. 토지는 사람이 구하는 것을 준다. 단지 문제는 구하는 방식이 현명한가 어떤가 하는 것이다.
세느(Seine) 및 세느 에 오와즈(Seine-et-Oise)와 같이 작은 두 현에서 파리와 같은 대도시를 부양해야만 한다고 해도, 실제도 혁명이 주위에 야기시키는 식량 부족을 메꾸기에 충분할 것이다.
농업과 공업과의 결합, 농부이면서도 동시에 기계공인 것, 이것이야말로 수용의 길을 단호하게 나아갈 때, 무정부 콤뮨이 우리를 이끄는 바로 그것이다.
오직 혁명만이 그러한 장래를 약속한다. 혁명이 파멸하는 것은 기아 때문이 아니다. 위험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위험은 겁 많은 정신. 편견, 중단에 있는 것이다.
위험은 단톤이 프랑스를 향하여 ????대담하게, 그리고 더욱 대담하게!????라고 외쳤을 때 그가 본 그곳에 있다. 특히 지성의 대담이 요구되며, 여기에는 반드시 의지의 대담이 수반할 것이다. 먼저 대담한 사상을 가져라, 그러면 반드시 대담한 행동이 뒤따를 것이다.
6. 주택
Ⅰ
노동자의 정신적 움직임을 세밀히 지켜 본 사람들은 하나의 중요한 질문 - 민중의 주택 - 에 관해서 언제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프랑스의 도시 노동자들은 점차로 주택이 국가가 인정하는 특권계층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상은 민중의 마음 속에 자연적으로 이뤄진 발전이며, 그래서 그들은 주택의 소유권이 정당한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주택은 그 소유자가 지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제재소에서, 벽돌 공장과 작업장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죽을 힘을 다 내어 일하게끔 강요당한 수많은 노동자들에 의해서 세워지고, 장식되고, 설비되었다.
소위 소유주가 쓴 돈은 정당한 노동의 소산이 아니었다. 다른 모든 부와 마찬가지도 노동자에게 그가 마땅히 받아야만 하는 금액의 3분의 2 또는 2분의 1만을 지불함으로써 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택의 실제 가치는 소유자가 그것으로부터 취득하는 이익에 의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익은 그의 집이 도시 안에 세워졌다는 것, 즉 도로가 포장되고, 조명이 되고, 다른 도시들과 정규적인 통신을 할 수 있으며, 공업, 상업, 학문 및 예술에 관한 건조물이나 시설이 모여 있는 도시에 세워졌다는 것, 도시가 다리나 부두나 기념 건조물도 장식되어 거기에 사는 주민에게 농촌에서는 알지 못하는 많은 위락과 편익을 주고 있는 것, 20~30세대 동안이나 사람들의 노동에 의하여 도시가 살기 좋고, 위생적이며 아름답게 되었다는 것 ― 이런 사정에 유래하는 것이다.
파리의 어떤 지구의 가옥은 백만 프랑이나 하는데, 그것은 그 집의 벽안에 백만 프랑의 노동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고 그 집이 파리에 있기 때문이며 몇 세기 동안이나 노동자, 예술가, 사상가, 학자 및 문화인이 오늘날의 파리를 산업, 상업, 정치, 예술 및 학문의 중심이 되게끔 공헌했기 때문이다. 파리는 과거를 가졌기 때문인 것이다. 문학 때문에 그 거리의 이름이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파리가 오랜 세기 동안의 노동의 소산이며, 오십 세대에 걸친 전 프랑스 국민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이 땅의 가장 작은 조각도, 또는 이 도시의 가장 보잘것없는 건물도 극악의 부정을 범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할 권리가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누구에게 공동 유산의 최소 부분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권리가 있을 것인가?
이 점에 관해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노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무료 주택의 사상은 파리 포위동안 매우 명백히 표명되었는데, 그것은 집주인들이 요구한 조항들의 무조건적 파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1871년의 파리 코뮨 동안에 재표명되었다. 이때 파리의 노동자들이 코뮨 평의회에 대해서 집세의 폐지에 관한 대담한 결정을 기대했던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장차 혁명이 일어날 때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될 것이다.
혁명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노동자에게는 비를 피할 수 있는 곳, 즉 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집이 아무리 조악하고 비위생적인 것이라도 언제나 거기에는 그를 쫓아낼 수 있는 집주인이 있다. 하기야 혁명의 와중에서는 집주인은 집달리나 경관으로 하여금 당신들의 옷가지나 가재도구를 거리에 내던지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새 정부가 겉으로 혁명적인 척하면서도 또다시 폭력을 내새워 한 떼의 경관을 보내어 움집 밖으로 여러분을 내쫓지 않으리라고 누구도 장담 할 주가 없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파리 콤뮨은 4월 1일까지만 지불할 집세의 파기를 선언했다. 그 후 파리는 대혼란 상태에 빠져 산업이 정지한 때에도 집세는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때문에 파리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연맹군????의 병사들은 하루 15펜스의 수당 외에는 그와 그의 가족이 의지할 곳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 노동자는 집주인에게 집세를 주기를 거부함으로써, 단순히 권력 해체의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는 집세의 폐지는 말하자면 대중의 동의에 의해서 인정되고 재가 된 원리라는 것, 무료 주택은 민중에 의해 소리 높이 선언된 권리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성실한 사람들의 정의감에 입각한 이 방법이, 임시 정부의 부르주아 분자들 사이에 산재하는 몇 명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채택되기를 기다리려 하는가?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민중은 오래 ― 정말이지 반동이 되돌아올 때까지 ― 기다려야 할 것이다.
여기에 진지한 혁명가는 유니폼과 뱃지 ― 권위와 예속의 외부적 표시들 ― 를 거부하고 민중들 가운데서 민중으로 머물면서 가옥의 수용을 기정 사실화시키기 위해 민중들과 함께 일할 것이다. 그들은 사상이 이 방향으로 자라도록 기초를 마련하고 장려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러한 사상이 실행에 옮겨지고 성숙할 때, 민중은 틀림없이 방해가 되는 이론들 ― 즉 집주인에 대한 보상을 지불하고 나서 우선 필요한 기금을 찾아낸다는 등의 어리석은 이론들 ― 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가옥의 수용에 착수할 것이다.
가옥의 수용이 행해지는 날이야말로 착취되어 온 노동자들은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 노동자는 더 이상 부자와 권력자의 사슬에 묶이지 않을 것임을, 평등이 공공연하게 선포되었다는 것, 혁명은 현실적인 사실이지 지금까지 그렇게도 많이 보아온 것들과 같은 연극적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Ⅱ
만일 수용의 개념이 민중에 의해서 채택된다면 우리가 흔히 협박당하는 ????넘을 수 없는???? 여러 가지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실천에 옮겨질 것이다.
물론 번쩍거리는 제복을 입은 채 내각이나 시청의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자들은 장애물을 쌓아 올리기에 분주할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집주인들에게 보상을 지불하는 일, 통계를 만드는 일, 그리고 장문의 보고서 작성에 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너무나 오랫동안 긴 보고서를 작성할 것이며, 그래서 강요된 게으름 속에서 기다리고 굶주리던 민중은 관리들로부터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하자 혁명에 대한 정열과 신뢰를 잃고 반동자들이 하는 대로 방치하여, 결국은 관료주의적 수용이 모든 사람들의 눈에 가증스런 것으로 비치도록 만들고 말 것이다.
사실은 여기에 우리의 희망을 파멸시킬는지도 모르는 암초가 있다. 그러나 만일 민중이, 그들을 현혹하기 위해 사용되는 그럴 듯한 논의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새로운 생활은 새로운 방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들이 그 일을 스스로 한다면 ― 그때야말로 수용은 큰 어려움 없이 시행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어떻게 해서 수용이 행해질 수 있는가?????하고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우리는 이 문제에 조건부로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수용 계획을 가장 세세한 점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사람 또는 집단이 오늘날 시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의 생활에 의해서 극복되어질 수 있을 것임을 우리는 안다. 인간 생활은, 이미 말했듯이, 예견되던 것보다 더욱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정부의 개입 없이도 수용이 성취될 수 있는 방법을 말하는 데 있어서, 그 일이 불가능하다고 연명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우리는 어떤 특정의 조직, 방법을 지지할 의사는 없다. 우리는 다만 수용이 민중의 발의에 의해서 실행되어질 수가 있을 것이며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도 실행되어질 수가 없을 것임을 보여 주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수용이 옳게 시작되자마자 모든 지구, 시가 및 집들의 일부에서 자원자들의 단체가 나타나서 비어 있는 집들과 너무 많은 가족이 사는 집들, 비위생적인 주택 및 큰 저택 때문에 과밀한 주택에서 질식하는 사람들을 살게 할 수 있는 집들의 수를 조사할 것이다. 이 자원 봉사자들은 며칠 내에 모든 아파트, 주택, 가정용 큰 저택들 및 별장들, 모든 거실들과 방들을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그 크고 작음에 따라 비위생적 주택이나 호화주택 등에 관해서 지구와 지역별로 완전한 일람표를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자원 봉사자들은 그 리스트를 자유롭게 서로 알려 주고 곧 완전한 통계를 작성할 것이다. 거짓된 통계는 개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간단한 것으로부터 복잡한 것으로 올라감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럴 때 시민들은 누구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고 아마도 비참한 다락방과 움막집에 살고 있는 그들의 동지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동지여, 이번에는 진정한 혁명이오.???? 오늘 저녁에 이러이러한 장소로 오시오. 모든 사람들이 거기에 와서 주택을 재분배 받게 될 것이오. 만일 당신이 지금의 빈민굴 다락방에 싫증이 났다면 다섯 개의 방으로 된 아파트 중의 하나를 고르시오. 거기에 일단 입주하면 당신은 계속 살 것입니다. 두려워 마시오. 당신을 감히 축출하려는 자는 무장한 민중이 선처해 줄 것이오!????
????그러나 제각기 좋은 집 아니 넓은 아파트를 원할 것이오!????라고 말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물통 속의 달(月)을 내놓으라고 시끄럽게 요구하는 민중은 없다. 그 반대로 민중이 부정을 고치려고 시도하는 것을 볼 때마다, 민중이 양식과 정의감에 고취되어 있음에 대해 우리는 감동한다. 불가능한 것을 민중이 요구하는 것을 우리는 본 일이 있는가? 두 번의 포위 동안 또는 가공할 1792 - 1794년의 공포기간 동안, 파리의 민중이 식량이나 땔감을 위해서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았던가? 1871년에 그들 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인내심과 체념은 언제나 외국 신문기자들이 찬탄한 바였다. 그런데도 이들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제일 늦게 오는 사람은 그날 음식도 불도 없이 보내야만 한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고립된 개인에게는 많은 이기심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이기심을 불러일으키게 살찌워 주는 바로 그 방법은 거주의 문제를 어느 관청의 부서 또는 위원회에, 어떤 형태의 관료주의의 미숙한 자비심에 맡기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때 정말이지 모든 종류의 사악한 감정이 솟아나며, 그래서 그것은 그 부처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아주 사소한 불평등에도 말다툼과 상호비방을 일으킨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아주 작은 이익이 주어진다면 굉장한 고함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만일 민중 자신이 거리나 구역이나 군별로 단결하여 빈민가의 주민들을 부르주아의 넓은 주택으로 옮기게 하는 일을 한다면 사소한 불편이나 작은 불평은 쉽게 해결될 것이다.
사실 대중의 양심에 호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기는 혁명의 시기에 때때로 그런 일이 있었기는 하지만 그것은 침몰하는 배를 고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일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노동자는 언제나 이 호소에 대해서 영웅적인 자기희생으로 응했다. 그리고 다가올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여러 가지 부정의가 존재할 것이며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이기주의의 깊은 수렁에 빠져 건져 낼 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개인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불법이 있는가 없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수를 어떻게 해서 줄어들게 할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모른 역사, 모른 경험, 그리고 모든 사회심리학은 입을 모아서 가장 올바른 방법은 일은 당사자에게 맡기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직 당사자만이 모든 관료주의적 재분배에서는 누락되는, 많은 사소한 일들을 고려하고 결정할 수가 있을 것이다.
Ⅲ
그런데 문제는 모든 거주 시설을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재분배하는 것이 아니고, 수용의 도상에 있는 사회에서는 약간의 세대가 아직도 겪고 있는 불편이나 불이익이 쉽게 개선될 것이라는 것이다.
석공이나 목공들 즉 건축에 관계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이 보장될 때 하루에 몇 시간씩 그 전문 분야에서 더 일하는 것 이상의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일단의 하인들을 필요도 한 대저택을 개조하여, 몇 개월 내에 현재의 것과는 다른 위생적인 주택을 출현시킬 것이다. 아직도 쾌적한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나키스트 콤뮨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동지들이여, 참아 주시오! 곧 자유도운 도시의 지상에 자본가가 세운 어떤 주택보다도 더 훌륭하고 위생적이고 쾌적한 아름다운 궁전과 같은 주택이 세워질 것이오. 그것은 이제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무정부주의 콤뮨은 수지 타산의 입장에서 집을 짓지 않소, 시민을 위하여 세워진 공동 정신의 소산인 기념 건조물은 전 인류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 그것은 만인의 것이 될 것이오.????
혁명을 일으킨 민중이 가옥을 수용하여 주택의 무료화, 가옥의 공동화 및 각 가정의 위생적인 거주에 대한 권리를 선언한다면 혁명은 처음부터 공산주의적 성격을 띠고 그래서 그것은 결코 쉽사리 거기서 이탈할 수 없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혁명은 개인적 소유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것이다.
주택의 수용은 이리하여 사회혁명 전체의 맹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 여하에 따라 뒤따르는 모든 것의 성격이 좌우된다. 아나키스트 공산주의에로 통하는 광대한 길이 열릴 것인가, 아니면 강권적 개인주의의 진흙탕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가해질 이론적 혹은 실제적 많은 반대론을 예기하기는 용이하다. 반대자들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재의 부정의 유지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므로 물론 ????정의의 이름으로???? 말할 것이다. ????파리의 사람들만이 좋은 저택을 소유하는 반면 시골에 사는 농민에게는 움막집만이 배당된다면 심히 수치스런 일이 아닌가?????하고 그들은 외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되어 있지 않다. 이들 정의의 열광자들은 그들의 본성 때문에 그들 자신이 암암리에 옹호하고 있던 ????심한 불평등????을 망각하고 있다. 그들은 파리 안에서도 노동자는 부자의 저택을 창 너머로 보면서 처자식과 함께 악취로 숨이 막하는 다락방에 살게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공기와 일광이 부족한 밀집가에서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다는 것, 이와 같은 부정을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제일의 임무라는 것을 잊고 있다.
제멋대로 내놓은 반대론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끝내기로 한다. 실제도 혁명의 초기에는 도시와 농촌 사이에 불평등이 존재하지만 이것은 날이 갈수록 감소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농민이 지주나 제조업자나 고리대금업자나 국가 등의 고된 일꾼이 되는 것을 그만둘 때, 농촌은 현재보다도 좋은 주거를 입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불평등을 피하기 위하여 몇 세기 이전부터 존재해 온 오랜 부정을 유지해야만 할 것인가?
실제적이라고 자칭하는 반대론도 이제는 유력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무일푼의 가난뱅이가 있다고 하자. 그는 궁핍을 견디어 가족과 살기에 좋은 집을 사서 아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여러분은 그를 거리로 내쫓으려고 하는가? 확실히 그런 것은 아니다. 그의 집이 그 가족을 겨우 살게 할 정도의 크기라면 물론 거기에 그대로 살아도 좋다! 또한 창 밑에 작은 채소밭을 경작해도 좋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필요하면 그를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의 집에 타인에게 세놓은 방이 있을 경우에는 그 세든 사람을 찾아내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동지여, 당신은 더 이상 방세를 내지 않아도 좋소, 거기에 그대로 살면서 한푼도 내지 마시오. 이제 집달리 따위를 겁낼 필요가 없소. 이것이 사회주의단 것이오.????라고.
또는 집주인이 여러 개의 방을 혼자서 쓰고 있으며, 그 부근에서 5명의 자녀를 가진 부인이 방 하나에 살고 있다고 하면, 그런 경우 사람들은 거기에 가서 몇 개를 개조함으로써 이 빈 방들이 어머니와 5명의 자녀가 살 수 있는 방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지 조사해 볼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 어머니와 자녀가 한 다락방에서 시들어 가는 반면에 높으신 분은 텅 빈 저택에서 편히 앉아서 쉬고 있는 것보다는 더욱 공정한 일이 아니겠는가? 뿐만 아니다 그 높으신 분도 아마 지진해서 그런 일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 많은 방을 더 이상 정돈해 줄 시종들이 없어지면 그 집 마나님도 다루기에 힘드는 큰 집의 반을 기꺼이 내놓을 것이다.
우리를 비판하는 법과 질서의 옹호자들은 이렇게 떠들어댈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려고 한다. 축출과 이전에 끝이 없을 것이다. 차라리 모든 사람들을 다 집 밖으로 내쫓고 나서 추첨에 의해서 집을 재분배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만일 정부가 이 일에 개입하지 않고 모든 개혁이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성립된 단체의 손에 맡겨진다면 이전의 회수는 현재 집주인의 강요 때문에 일년 동안에 일어나는 회수보다도 적게 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다.
첫째로, 많은 대도시에는 수많은 빈 집과 빈 방이 있으며 이것은 현재 빈민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을 입주시키기에 거의 충분할 정도이다. 호화 저택이나 고급 아파트에서는 노동자 가족의 대부분은 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명의 하인들의 손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그것을 이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입주한 사람들도 사치스럽지 않은, 은행가들의 부인들도 손수 요리를 할 수 있는 집을 찾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총칼로 위협하여 은행가를 다락방으로 데려가거나, 다락방에 사는 사람을 은행가의 저택으로 가서 살게끔 할 필요는 점차로 없어지고 사람들은 가능한 한 혼란을 일으키지 않고서 현재의 집에서 다정하게 살아갈 것이다. 농촌 콤뮨은 소수의 토지 소유자들을 될 수 있는 대로 방해하지 않고 농지를 재분배하는 것을 볼 것이다. 그것은 단지 콤뮨이 하는 방식의 양식과 총명을 확증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콤뮨이 농지의 이전을 행한 것은 개개의 지주가 법정에 호소해서 한 것보다도 적었다. 유럽의 대도시 주민은 러시아나 인도의 농민보다도 어리석고 조직의 능력도 결핍되어 있다고 믿게 하려고 하는가?
뿐만 아니라 혁명은 모든 일상생활의 어떤 혼란을 의미하며, 부르주아가 그의 수우프 남비를 뒤집는 일도 없이 이 대위기를 잘 넘기려고 바라는 사람들은 실망하게 된다. 선량한 부르주아가 식사 시간을 걸르지도 않고 정부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써는 사회가 자기를 양육해 준 사람들에게 범한 죄는 보상되지 않는다.
혼란이 일어날 것임은 확실하다. 다만 이 혼란을 손실로 만들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최소한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반복되지만, 관청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당사자를 상대함으로 해서 비로소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는 불이익과 불편을 보다 줄일 수가 있는 것이다.
민중은 그들의 대표자가 되는 명예를 열심히 구하고, 무엇이나 할 수 있고, 무엇이나 다 알고 있으며, 무엇이나 조직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경솔한 사람들로부터 대의원을 선거하지 않으면 안 될 때에는 큰 실수를 되풀이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민중은 자기네들이 알고 있는 것, 직접 접촉하고 있는 것을 조직해야만 할 때에는 관청이 하는 것보다도 이것을 더 잘하고 있다. 사람들은 파리 콤뮨 때 이것을 보지 않았던가? 또 런던의 최근의 파업에서는 또 어떤가? 하나 하나의 농촌 콤뮨에서 매일 이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7. 의복
가옥이 도시의 공동 자산이라고 생각되고, 또 식량도 배급되어지면서 사람들은 한 발 더 전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의복 문제를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여기서도 유일한 해결은 민중의 이름으로 의복 상점이나 창고를 모두 수용하고 만인에게 개방하여 각자가 원하는 것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의복의 공유화와 각인이 필요한 의류를 공동의 창고에서 꺼내거나 혹은 기성복 공장에서 주문하는 권리, 이것이 가옥 및 식량에 공산주의의 원칙이 적용된 후에 곧 요청되는 해결책이다.
이 때문에 기지도 있고 재주도 있는 우리의 비판자들이 주장하듯이 모든 시민으로부터 양복을 빼앗아 쌓아 두고 추첨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양복을 가진 자에게는 그대로 그것을 가지도록 두어두는 것이 좋다. 그가 양복을 열 벌 가지고 있다고 해도 아마도 누구 한 사람도 그로부터 그것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부르주아가 걸치고 다니던 양복보다는 새 양복을 택할 것이며, 또한 새 옷이 충분히 있기 때문에 낡은 옷을 징발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대도시의 상점이나 창고에 쌓여 있는 의복이나 옷감에 대한 재고 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파리, 리용, 보르도 및 마르세이유에는 코뮨이 남녀 각 시민에게 공급하기에 충분한 의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의복을 찾아낼 수 없을 때에는 공동의 공장이 곧 그 부족을 메꾸어 줄 것이다. 오늘날 대규모 생산에 적합한 기계를 설비한 의복 공장이 얼마나 신속하게 작업을 하는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누구나 흑담비 가죽으로 안감을 댄 코트를 바랄 것이오. 부인들은 모두 빌로도의 옷을 요구할 것이다????라고 우리의 반대자들은 고함을 지를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모든 부인이 빌로도 옷을 좋아하지도 않으며 모든 남자가 흑담비 가죽으로 안감을 댄 코트를 바라지도 않는다. 지금이라도 파리의 부인들에게 각자 옷을 고르라고 하면 유행계의 괴상한 장식을 붙인 것보다는 간소한 의복을 고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람들의 취미는 시대에 따라서 바뀌며, 혁명 시대에 유행하는 멋진 차림은 틀림없이 간소한 것일 것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도 겁 많은 시기도 있고 또한 영웅적인 시기도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는 편협한 개인적 이해의 추구에 빠져 있는 매우 초라한 모습이지만 그것은 큰 위기가 올 때는 다른 모습으로 일변한다. 그것은 위대하고도 감동적인 시기가 된다. 용기 있는 사람들은 오늘날 거간꾼의 손 안에 있는 모든 권력을 되찾을 것이다. 헌신적인 삶이 나타날 것이며, 위대한 행위들이 모방의 실례가 될 것이다. 에고이스트마저도 남에게 뒤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관대하고 용감한 사람과 보조를 맞출 것이다.
1793년의 대혁명에서 이런 종류의 실례가 많다. 그리고 인류를 전진시키는 숭고한 비약이 보여지는 것은 이와 같은 정신적 부흥 ― 개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사회에 있어서도 자연적인 ― 의 시기가 있어서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휼륭한 정열이 행할 역할을 과장하려고 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해서 우리의 이상 사회에서 기대를 걸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이런 정열이 가장 곤란한 시기를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여도 아무런 과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헌신이 일상 생활에 계속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당초에는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이것이 필요로 하는 것의 전부이다.
새로운 아나키스트 사회가 우애의 약동을 필요로 하는 것은, 대지를 청소하고 수 세기에 걸친 노예제와 억압에 의해서 쌓인 찌꺼기와 쓰레기를 쓸어 없애기 위해서이다. 그러고 난 후에는 희생의 정신에 호소하지 않고서도 무정부주의 사회는 존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억압이 제거되고 그래서 모든 연대감이 넘치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혁명이 우리가 묘사한 것과 같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면 개개인의 자유로운 창의성은 광범한 활동 분야를 발전하여 이기주의자들 쪽으로 휩쓸리지 않게 될 것이다. 거리마다 구역마다 집단이 생겨 의복을 공급하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봉기한 도시가 보유하는 물자의 목록을 만들고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의 대강을 파악할 것이다. 시민들은 의복에 대해서도 식량에 대한 것과 같은 원칙을 적용할 것임은 거의 확실하다 ― 즉 풍부하게 있는 것은 자유롭게 가지고, 한정된 양의 것은 배급한다.
모든 남자에게 흑담비 가죽으로 안감을 댄 코트를, 모든 부인에게 빌로도의 옷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는 아마도 불용품과 필수품을 구별할 것이다. 그리하여 적어도 당분간은 흑담비나 빌로도의 옷은 불용품으로 분류하고, 오늘날의 불용품이 내일에는 흔해 빠진 것이 될 것인지 어떤지는 사태의 진전에 맡길 것이다. 무정부주의 도시에서는 필요한 의복은 각 주민에게 보장하지만 당분간 사치품으로 생각되는 것은 허약자나 병인에게 주든가, 모든 시민의 일상적 소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병약한 자에게 공급한다든가 하는 일은 사적 활동에 맡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평준화이며 회색의 세계이다. 모든 예술작품과 인생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모든 것의 소멸이다????라고 말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확실히 그렇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근거로 하여 무정부주의 사회는 그 시민들에게 백만장자의 부를 주지는 않지만 어떻게 하면 그들의 가장 예술적인 취미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에 관해서 곧 설명할 것이다????
8. 재원 (財源)
한 사회, 한 도시 또는 한 지방이 그 주민들에게 생활 필수품(우리는 생활필수품의 개념을 사치품을 포함하도록 넓힐 수 있는지를 알 것이다)을 보장하려고 한다면 생산에 불가결한 것, 즉 토지, 기계, 공장, 운수기관 등을 장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적 소유자의 손에서 자본을 수용하여 공동사회에 되돌릴 것이다.
실제로 부르주아 사회조직을 비난하는 것은 단순히 자본가가 각 산업 및 상업상의 이익의 대부분을 독점하고서 일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주된 불평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일체의 생산이 전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향해져 있으며 만인의 복지를 확보하는 목적으로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것이 규탄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아직은 상품 생산이 만인을 위해서 운영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바라는 것은 자본가에게 그 속성에서 빠져 나와서, 자기의 치부를 구하는 사적 기업자임을 그만두지 않고서는 이룩할 수 없는 직분을 요구하는 것이다. 개개의 각 기업자의 사적 이익에 입각하는 자본주의 조직은 거기에서 바랄 수 있는 모든 것을 사회에 주었다. 그것은 노동의 생산력을 증대했다. 자본가는 증기나 화학 및 기계의 급속한 발달이나 금세기의 여러 가지 발명이 가져온 산업상의 혁명을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인간 노동의 효율을 높이는 데 힘써서 크게 성공했다. 그러나 그에게 이것과는 별개의 사명을 주는 것은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예컨대 이 우수한 노동 생산력을 사회 전체를 위해서 사용할 것을 바라는 것은 그에게 박애나 선(善)을 구하는 것이며 자본주의 기업은 자선을 토대로 설 수 없는 것이다.
이제 사회가 해야 할 것은 첫째로, 현재 어떤 산업에만 국한되어 있는 이 큰 생산성을 일반화하여 그것을 만인의 선(善)에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높은 노동생산성을 만인의 복지를 보장하도록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일체의 생산수단을 장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학자들은 그들이 늘 주장하는 바와 같이 어떤 특수한 산업 부문에 있어서, 어떤 특수한 부류의 젊고 건강한 숙련 노동자들이, 비교적 안락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킬 것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자랑스럽게 지적하는 그것은 언제나 이들 소수자이다. 그러나 몇몇의 특권적인 권리로 주어지는 이 안락마저도 확실한 것이겠는가? 아마 내일이라도 그들의 부주의, 무비(無備) 또는 고용주의 탐욕 때문에 이 특권적인 사람들도 그 일터를 빼앗기고 길거리로 내쫓겨서 그때까지 누렸던 안락의 기간을 수개월 또는 수년의 가난이나 비참으로써 보상받게 될 것이다. 단명한 산업뿐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중요산업(직물, 제철, 제당 등등)이 혹은 투기 때문에, 혹은 노동의 자연적 이동의 결과로서, 혹은 자본가 자신들 사이의 경쟁의 결과로서 휴업을 하든가 폐업하는 것을 우리는 보아 오지 않았던가! 모든 직물업이나 기계공업이 1886년과 같은 공황을 경험했어야 한다면 정기적 휴업을 특징으로 하는 소공업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부류의 노동자의 비교적인 행복에 대해서, 어떤 대가가 지불되는지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것은 농업의 파괴, 뻔뻔스러운 농민 착취, 대중의 비참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다.
약간의 안락을 향유하는 이 소수 노동자들에 비교하여 얼마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임금도 없이, 그들을 필요로 하는 어느 일자리에라도 달갑게 여겨 겨우 연명할 정도로 살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보잘것없이 적은 수입을 받고 하루 14시간이나 노동을 하고 있겠는가! 자본은 지방의 인구를 줄어들게 만들고, 식민지와 공업이 미개발된 국가들을 착취하고,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들이 전문적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들의 현 직업에서조차도 열등한 위치에 머물러 있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고 자본주의 제도의 필연성이다. 어떤 부류의 노동자들에게 보다 나은 보수를 주기 위해서, 농민은 사회의 무거운 짐을 지는 동물이 되어야만 한다. 지방은 도시를 위해서 황폐화되어야만 한다. 소규모 수공업은 보통 임금을 받는 구매자들이 대기업의 제품을 살 수 있도록 대도시의 불결한 변두리에 밀집하여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수천 가지의 잡제품들을 만들어야만 한다. 조악한 천의 옷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팔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 옷은 기아임금으로 만족해야 하는 재봉공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소수의 특권적 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어떤 한정된 안락을 얻기 위하여 동양 제국은 서양에 의해 착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존 체제의 악은 로드베르투스(Rodbertus)나 마르크스(Marx)가 말한 것처럼 생산의 ????잉여가치????가 자본가의 손에 넘어간다는 데 있지 않다. 이와 같이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개념 빛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일반적 견해를 좁히는 것이다. 잉여가치 그 자체는 보다 더 깊은 원인들의 한 결과에 불과하다. 악은 각 세대가 소비하고도 아직 남아 있는 잉여가 아니라, 잉여가치라고 하는 것이 현존할 수 있는 데 있다. 왜냐하면 잉여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남녀 및 어린이들이 기아를 면하기 위해, 그들의 노동이 생산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노동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의 작은 부분을 얻기 위해 그들의 노동을 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악은 생산의 도구가 소수자에 속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사람들이 재산 소유자들에게 토지를 경작할 권리나 기계를 가동케 하는 대가로 무거운 세를 내도록 강요당하는 한, 그리고 토지와 기계의 소유주들이 최대량의 생활필수품이 아니고 그들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은 무엇이나 생산할 자유를 가지는 한, 행복은 매우 적은 사람들에게 잠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을 뿐이며, 그것은 사회의 대부분의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서 얻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동시에 수많은 다른 노동자들이 착취당해야 한다면 한 산업에서 얻어진 이익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문제는 만인의 복지에 가장 필요한 최대량의 재화를, 인류의 에너지를 가능한 한 최소로 소비해서 생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체적 목표는 사적 소유자의 동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 목표를 이상으로 하는 사회는 전체로서 부를 생산함과 동시에 만인의 복지에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수용(收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회는 토지, 공장, 광산, 통신수단 등을 장악해야만 할 것이며 그 뿐 아니라 생산의 방법 및 수단을 연구함과 동시에 만인의 이익을 위하여 무엇을 생산해야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Ⅱ
사람은 그 가족에게 풍부한 영양, 쾌적한 주택, 필요한 의복을 확보하기 위하여 하루에 몇 시간이나 일을 해야만 할 것인가. 이 문제는 흔히 사회주의자들의 관심을 모으는 것이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4시간 내지 5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때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한다는 조건 하에서 그런 것이다. 지난 18세기 말에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 한계를 5시간으로 정했다. 그 후 위락에의 욕구가 늘어났다고 해도 생산력 또한 그것보다도 훨씬 더 급속하게 증대했다.
농업에 관해서 좀 더 말하게 뒷장에서, 오늘날 행하는 것과 같이 잘 가래질하지 않은 토지에 씨앗을 되는 대로 뿌리지 말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경작할 때 땅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볼 것이다. 미국의 서부 대농장에서는 그 크기가 어떤 것은 30평방 마일이나 되지만 문명국들의 비옥한 땅보다도 빈약한 토양을 가지기 때문에 에이커 당 10~15부셀밖에 수확을 못하는데 이는 유럽의 농장이나 미국 동부 각주의 농장 소출의 반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하루에 4에이커의 땅을 갈 수 있는 기계에 힘입어 100명이 일년에 10,000명이 일년 동안 먹을 양을 생산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하여 한 사람이 같은 조건 하에서 일년 내내 먹을 빵을 얻기 위해 30시간 즉 매일 5시간씩 6일의 반나절 노동으로써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다섯 식구의 가족에게 같은 것을 보장하기 위해 30일간의 반나절 노동을 하면 족하다.
우리는 오늘날 실제에서 얻어진 자료에 의해서 집약 농업을 한다면 6일 이하의 반나절 노동으로 전 가족에게 빵, 고기, 야채 및 고급 과일까지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또 오늘날 대도시에 세워지는 노동자 주택의 건설비를 조사한다면 영국의 대도시에 노동자를 위해서 250파운드에 건립되는 작은 집을 짓기 위해 1400내지 1800일간 5시간씩 반나절 노동을 하면 충분할 것임을 보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조율의 집은 적어도 50년은 견디므로 연간 28일 내지 36일의 반일 노동으로 한 가족에게 필요한 일체의 위락시설을 갖추고 가구가 잘 마련된 건강에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있는 셈인데 고용자로부터 같은 정도의 아파트를 임차할 때는 노동자는 연 75일 내지 100일의 노동을 지불한다.
이 숫자들은 우리 사회의 결함투성이인 조직 때문에 오늘날 영국에서 주택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최고치를 나타낸다는 것임을 주의하기 바란다. 벨기에에서는 노동자의 주택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세워졌다. 그래서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잘 조직된 사회에서는 연 30내지 40일의 반나절 노동으로 안락한 주택을 확보하는 데 충분할 것임은 단언할 수가 있다.
이제 옷이 남아있다. 그것의 적확한 가치는 확정할 수가 없는데 그것은 한 떼거리의 중간상인들이 차지하는 이익을 추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양복의 천을 보더라도 지주, 면양 소유주, 양모상, 모든 중개업자, 그리고 철도회사, 제사공장, 직공들, 기성복 상인, 소매상 및 도매상들의 손에 들어가는 돈을 합계해 보면 여러분은 하나하나의 의복에 대해서 부르주아 전체에게 얼마나 지불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분이 런던의 큰 가게에서 3파운드 또는 4파운드를 지불하는 오버코트 하나가 몇 날분의 노동을 나타내는가를 말하기란 완전히 불가능한 것이다.
확실한 것은 현재의 기계로써도 엄청나게 많은 양의 직물을 값싸게 그리고 신속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몇 개의 예를 들면 충분할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서 751개의 면방적 공장들(방적 및 직물)에서 175,000명의 남녀가 2,033,000,000야드의 면제품과 그밖에 상당히 많은 양의 면사를 생산한다. 평균해서 면제품만도 12,000야드 이상이 매일 9시간 반 일하는 300일간의 노동에 의해서 생산된다. 즉, 10시간에 40야드의 면직물을 생산하는 셈이다. 한 가족이 일년에 기껏해야 200야드를 필요로 한다고 할 때 이것은 50시간의 작업량 즉 매일 5시간씩 10일간의 반나절 노동에 상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밖에도 바느질 실과 면교직의 모직물을 짜는 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직물만 보아도 미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1870년에 노동자 한 사람이 하루 13~14시간 일하면 일년에 10,000야드의 백면포를 생산한다는 것이다. 16년 후(1886년)에는 그는 주당 55시간만 일함으로써 30,000야드를 짰다.
날염한 면직물에 있어서까지도 그들은 직조와 날염을 포함해서 일 년의 2,670작업 시간에 32,000야드를 생산했는데, 이는 즉 시간당 약 12야드가 된다. 이와 같이 하여 당신이 200야드의 백면포 및 날염 면직물을 만들기 위해 연간 17시간의 작업이면 족할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원료는 거의가 밭에서 채집된 그대로의 상태로 공장에 운반되어 이것이 면포로 바꾸어지는 공정이 17시간의 과정에서 완료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200야드의 면포를 상인으로부터 사기 위해서는 높은 보수를 받는 노동자라도 아무리 적어도 매일 10시간씩 10 내지 15일간의 노동 즉 100 내지 150시간의 노동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리고 영국 농민은 어떤가? 그는 이 사치품을 얻기 위해서 한 달 또는 약간 더 많이 일해야만 한다.
이 예에 의해서 우리는 이미 잘 조직된 사회에서는 연간 50일의 반나절 노동으로써 오늘날의 중하류 계층이 입는 것보다 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상에서 말한 모든 것을 가지고 본다면 우리는 토지의 생산물을 얻는데 매일 5시간씩 60일, 주택을 위해서는 40일, 그리고 의복을 위해서는 50일의 반나절 노동을 필요로 할 분이며 그것도 휴일을 뺀다면 일년의 노동일은 300일이므로 그것은 반년의 노동에 불과한 것이 된다.
거기에는 아직도 150일의 반나절 노동이 남아있는데, 이것은 기타 생활필수품 즉 포도주, 설탕, 커피, 차, 가구, 수송 등을 위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계산은 근사치일 뿐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다른 방법으로써도 증명될 수가 있다. 소위 문명국에서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사람들, 소멸할 운명에 있는 유해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끝으로 무익한 중간 상인의 직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헤아릴 때, 각 국민 중에서 본래의 생산자의 수를 두 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 그리고 만일 필수품을 생산하는 데 10명이 아니고 20명이 종사한다면, 그리고 만일 사회도 인간의 에너지를 절약하는 데 힘쓴다면 이들 20명은 생산을 감소시키지 않고 하루에 5시간만 일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요치도 않는 많은 하인들을 가진 부잣집, 또는 주민 10명 또는 심지어 6명마다 한 사람의 관리를 두고 있는 관청에서, 낭비되고 있는 인간의 정력의 소비를 줄이고 이 남는 힘을 생산의 증가에 이용한다면, 현재 수준의 생산으로 만족할 경우, 하루의 노동을 4시간 내지 3시간으로까지도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에 관한 연구에서 얻은 고찰에 입각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농업 및 기타의 산업에 종사하는 수백만의 주민을 가지는 한 사회 ― 예컨대 세느 에 오아즈(Seine-et-Oise)현을 포함한 파리를 상상해 보자. 이 사회에서는 모든 어린이들이 손과 동시에 두뇌를 가지고 일하는 것을 배운다고 가정하자. 어린이 교육에 종사하는 부인들 이외의 모든 성인들이 20세나 22세부터 45세나 50세까지 하루 5시간 일할 의무가 있으며, 그리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인간의 노동 분야들 가운데서 그들 스스로 선택한 직업에 종사한다고 하자. 이런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에 대한 복지 즉 오늘날 부르주아 계급들이 누리는 것보다 더욱 현실적인 복지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이 사회에 속하는 각 노동자는 그가 과학, 예술, 그리고 필수품의 범주에는 들지 않지만 개인적 욕구에 충당할 수 있는 시간을 하루에 적어도 5시간은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금후 인간의 생산력이 증대하고 지금은 사치로운 것 혹은 근접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필요한 것의 부류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9. 사치에 대한 욕구
사람이란 살아가는 목적이 먹고, 마시고, 자신이 살 집을 가지는 것만으로 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물질적 욕망이 충족되자마자 일반적으로 말해서 예술적 성향이라 할 수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날 것이다. 이들 욕구는 매우 여러 가지이며 개인에 따라 모두 다르다. 그리고 사회가 문명화될수록 개성이 더욱더 발달할 것이며, 욕망도 더욱더 다양해질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어떤 쓸모없는 것들을 구하기도 하고, 특정의 쾌락이나 지적 또는 물질적 향락을 얻기 위해 필수품을 스스로 절약하는 남녀들을 볼 수 있다. 기독교 신자나 금욕주의자라면 사치에 대한 이 욕망을 부정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는 생활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고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쓸모없는 사소한 것들이다. 사람이 매일 노동만 하고, 개인적 취미에 따른 단 하나의 즐거움도 얻을 수 없다면 인생이란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겠는가?
물론 우리가 사회혁명을 원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사람들에게 빵을 주기 위해서이다. 즉 유능한 노동자들이 그들을 착취하게 될 고용주를 찾아내지 못하고 두 팔을 늘어뜨리고 걸어 다니며, 부인이나 어린이들이 잠잘 집이 없어 방황하고, 온 가족들이 마른 빵으로 연명만 하고, 어린이들이 돌봐지지 아니하며 심지어 영양 부족 때문에 죽어 가고 있는 현실을 날마다 대하는 이 저주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 것은 이 불공정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으로부터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 간신히 생존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투쟁하도록 강요당하는 노동자는, 과학과 예술 즉 과학적 발견과 예술적 창작의 보다 차원 높은 즐거움, 즉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즐거움을 알지 못하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사회혁명은 만인에게 매일의 빵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현재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어 있는 즐거움을 사람들 모두가 얻을 수 있게 보장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여가를 주어 그 지적 능력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빵이 확보된 후에는 여가가 최고의 목표이다.
확실히 수많은 인류가 빵이나 석탄, 의복과 주택이 부족되어 있는 오늘날 사치는 하나의 범죄이다. 사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아이는 빵이 결핍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필요한 식량과 주택이 있는 사회에서는 우리가 오늘날 사치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더욱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닮지도 않았고 닮을 수도 없기 때문에 (취미와 욕구의 다양성이야말로 인류 진보의 주요한 보장이다) 어떤 특정 방면에서 보통 개인들과는 동떨어져 있는 욕망을 지니는 남녀들이 언제나 있을 것이며,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바람직한 것이다.
누구나가 다 망원경을 원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천체를 연구하기보다는 현미경을 통해서 사물을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조각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회화를 좋아한다. 어떤 사람은 죽어도 좋은 피아노를 가져야겠다고 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아코디온으로 만족한다. 취미는 서로 다르지만 예술적 욕구는 만인에게 존재한다. 현재의 불쌍한 자본주의적 사회에서는 예술적 욕구를 지닌 사람도 그가 대자산의 상속자가 아니라면 그것을 만족시킬 수가 없다. 그러나 그는 ????열심히 일하여???? 자유직업에 종사할 수 있는 지적자본을 가짐으로써 언젠가는 그의 취미를 다소라도 만족시킬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에 대하여 각 개인의 물질적 생활을 그 유일한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당신들은 아마도 모든 사람들을 위한 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네의 공동 창고에는 아름다운 그림이나 광학기기나 호화로운 가구나 보석류 ― 요컨대 무수히 다양한 인간의 취미를 만족시켜 주는 것들 ― 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콤뮨이 만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빵과 육류 그리고 모든 시민에게 입히려고 하는 회색의 아마포의 의복 이외에는 아무것도 입수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모든 공산주의 체제 앞에 제기되는 문제이며 미국의 광야에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사람들이 결코 이해하지 않았던 반대론이다. 그들은 공동체가 그 구성원의 모두에게 입힐 충분한 옷감을 가지고 있고 ????형제들????이 음곡(音曲)의 하나를 탄주하거나 때때로 간단한 연극을 할 수 있는 연주장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예술적 감정이 부르주아와 마찬가지로 농민에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예술적 감정의 표현은 교양의 차이에 따라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언제나 같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들의 공동체는 공동의 생활 필수품을 보장하고 교육에 있어서는 개성을 발달시키는 것은 모두 금지하고 성서만 읽도록 강제했지만, 그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 개인적 취미가 분출하여 일반적 불만이 되었다. 피아노나 과학용 기기를 사려고 할 때 언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진보의 요소들이 쇠퇴해 갔다. 그런 사회는 일체의 개인적 감정, 일체의 예술적 경향, 일체의 발전을 절멸한다는 조건으로써 만이 존립할 수 있었다.
무정부주의 콤뮨도 같은 길로 끌려 들어갈 것인가?
분명히 그렇지 않다. 그것이 물질적 생활에 필요한 모든 물질의 생산을 확보함과 동시에 인간 정신의 모든 발현(發現)을 만족시키는 일을 이해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면 분명히 그렇지 않다.
Ⅱ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주위의 빈곤이나 고통의 심각성을 생각할 때, 일자리를 찾아서 가두를 방황하는 노동자들의 비통한 외침을 들을 때, 다음과 같은 문제 즉 모든 사람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세브로(S?vre)산 도자기나, 벨벳의 드레스를 가지고자 하는 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란 문제를 더 이상 토론하기조차도 싫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을 것이다. 즉 먼저 빵을 확보하자. 도자기나 빌로도는 그 후에 하자.
그러나 사람은 음식물 이외에 다른 욕구를 가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그리고 아나키의 힘은 그것이 모든 인간 능력과 모든 정열을 이해하고 그 어느 하나도 무시하지 않는다는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사람은 그의 지적 및 예술적 모든 욕구들을 만족시켜 줄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에 관해 간단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45~50세까지 하루에 4~5시간 일함으로써 사회에 안락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물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5시간만이 아니다. 그것은 연간 300일, 일평생에 걸쳐 하루 10시간 노동이다. 그 때문에 그의 지력은 둔화되어진다. 그러나 작업을 바꿀 수 있을 때, 그리고 특히 육체노동을 정신노동과 교대로 바꿀 수 있을 때, 그는 하루 10~12시간 일을 해도 피로를 느끼지 않고 즐겁게 일에 몰두할 수가 있다.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4~5시간의 육체노동을 한 사람은 여분으로 5~6시간을 그의 취미에 따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밖의 5~6시간은 다른 사람들과 협동한다면 만인에게 보장된 필수품에 추가해서 그가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먼저 전원이나 공장에서 일반적 생산에 대한 그의 분담으로서 사회에 해야만 하는 일을 다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하루하루, 매주, 또는 일 년의 후반(後半)을 그의 예술적 또는 과학적 욕구 혹은 취미를 만족시키는 데 사용할 것이다.
여러 가지 취미와 여러 가지 가능한 기호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수많은 단체가 생겨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여가시간을 문학에 할애할 것이다. 그들은 다음에 저자, 인쇄공, 인쇄업자, 조판공, 도안사 등 공통의 목적, 즉 그들에게 귀중한 사상의 보급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망라하는 단체를 형성할 것이다.
오늘날 저술가는 그의 책을 하루 몇 실링으로 출판을 맡길 수 있는 짐 나르는 짐승, 즉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인쇄소가 어떤 것인가를 알려고는 하지 않는다. 식자공이 연독(鉛毒)으로 해를 입고, 기계를 지키는 소년이 빈혈증으로 죽는다고 해도 그들을 대신할 다른 불쌍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적은 돈을 위해 노동력을 팔려고 하는 극빈자가 더 이상 없어지고 오늘의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교육을 받고, 그리고 종이에 글을 써서 남들에게 전달할 그 자신의 사상을 가질 때, 작가나 학자들은 그의 산문이나 시를 인쇄하기 위해서는 인쇄공과도 단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작업복과 육체노동을 열등의 표지로 생각하는 한 저술가가 그 자신의 책의 활자를 조판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만일 오락을 위해서라면 체조나 경기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육체노동에 부착된 불명예가 사라졌을 때, 아무도 대신해서 그것을 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모두가 자기의 두 손으로 일해야 될 때, 저술가와 그 애독자들은 곧 식자판과 활자를 다루는 법을 배울 것이다. 그들은 활자를 심고 그것에 페이지를 매기고 인쇄기에서부터 처녀처럼 순수한 아름다움으로 인쇄되어 나오는 것을 보는 즐거움을 알 것이다. 지금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것을 돌리는 어린 직공에 대한 고문의 도구이지만 이 아름다운 기계는 그들이 애독하는 저술가의 사상을 발표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의 원천이 될 것이다.
그것에 의해서 문학은 무엇을 잃을 것인가? 시인은 야외에서 일을 하든가 또는 그의 저작을 늘이기 위해 돕는 것으로 해서 시인이 줄어들 것인가? 소설가는 숲 속에서 또는 공장 안에서, 도로나 철로를 부설하는 일에서 다른 사람들과 협력한 후에 인간성에 관한 그의 지식을 상실할 것인가? 이 질문의 제기 그 자체가 곧 그 회답인 것이다.
아마도 어떤 책은 면수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그때보다 적은 면수에 더 많은 것이 언급될 것이다. 아마도 쓸모없는 책의 출판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인쇄된 것은 더욱 주의 깊게 읽혀질 것이고 더욱 잘 평가될 것이다. 책은 더욱 교육받은 독자들에게 광범위하게 호소할 것이며, 그 사람들은 보다 적절한 평가를 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쇄 기술은 구텐베르크 이래 거의 진보하지 않았으며 아직도 유치한 단계에 있다. 10분 동안에 씌어진 것을 활자로 조판하는 데는 2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사상을 더욱 신속하게 번식시키는 방법들이 연구되고 곧 발견될 것이다.
모든 저술가가 자기 저작의 인쇄를 거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면 인쇄술은 이미 얼마나 더 진보했을 것인가! 우리는 더 이상 17세기의 활자를 사용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Ⅲ
모든 사람이 생산자가 되고, 과학이나 예술을 계발할 수 있는 교육을 받고,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여가를 가짐으로써 각자가 분담하는 육체노동을 제공하면서 그들의 작품을 발간하기 위해 단결할 사회를 생각하는 것은 꿈이겠는가? 이미 수많은 학문, 문학 및 기타의 협회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협회는 어떤 분야의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저작들을 발간할 목적으로 연합된 사람들의 자발적인 집단들인 것이다. 이들 협회의 정기간행물에 기고하는 저술가는 보수를 받지 않으며, 그리고 그 정기간행물들은 한정된 부수 이외는 비매품이다. 그것들은 지구상의 모든 지역에 같은 분야의 학문을 하는 협회에 무료로 보내어진다. 그 협회의 어떤 회원은 그의 견해를 요약한 한 면의 논평을 그 잡지에 게재할 것이며, 다른 회원은 다년간의 연구 결과인 방대한 논문을 거기에 발표할 것이다. 또 회원들은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으로서 그 회지를 참조할 것이다.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저자들과 독자들이 모두가 관심을 가지는 연구와 저술의 생산을 위하여 연합되어 있는 단체이다.
개인 저술가와 마찬가지로 학회도 출판사에 원고를 가지고 가며 거기에는 인쇄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있다. 오늘날 자유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육체노동을 경멸하고 있으며 사실 그 노동은 매우 혹독한 조건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구성원에게 풍부한 철학적, 과학적 교육을 시키게 될 공동사회에 있어서는 육체노동으로 하여금 인류의 자랑이 되도록 조직하는 방법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의 학회는 과학의 연구자와 애호가 및 노동자의 조합이 될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육체적 일을 할 수 있고 동시에 과학에 흥미를 느낄 것이다.
예컨대 지리를 연구하는 학회라면 회원 전운이 지층의 탐험에 기여하고 조사를 분담할 것이다. 그래서 백 명보다 만 명이 관찰하여, 오늘날 20년이 걸려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일년 동안에 해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여러 저술을 출판할 때는 여러 가지 일들에 숙련되어 있는 수많은 남녀들이 지도를 그리고, 도안을 새기고, 조판을 하고, 그것을 인쇄하는 일에 기꺼이 협조할 것이다. 그들은 즐거움을 가지고 여름에는 탐험에, 겨울에는 실내 작업에 그들의 여가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저술이 출판되어 나오면 그 책은 그들의 공동 저작에 관심을 가지는 백 명, 아니 만 명의 독자들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이미 진보가 걸어가고 있는 방향이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영국이 영어 대사전을 만들려고 할 때는 이 일에 자기의 일생을 바칠 리트레(Littre)의 탄생을 기다리지 않아도 자원자들을 모집했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무보수로 즐겁게 그들의 봉사를 제공하여 도서관들을 뒤지고, 기록을 하고 해서 한 사람이 평생 동안 해도 완성할 수 없는 작업을 수 년 내에 완성했다. 지적 활동의 모든 분야에서 같은 정신이 발휘되고 있다. 미래는, 개인적 작업을 대신해서 이런 집단적 협동이 나타날 것임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성에 관해서 매우 적은 지식마저도 결여하게 될 것이다.
이 사전과 같은 작업이 진실로 집단적이기 위해서는 많은 자원자들, 즉 저술가, 인쇄자, 교정자들이 공동으로 일을 할 수 있게끔 조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출판사에서는 이미 그런 것이 행해지고 있으며 그것은 육체노동과 지적노동을 결합한 실례를 제공하고 있다. 거기서는 집필자가 스스로 그 논문을 투쟁 기관지를 위해 인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사소하고 미미한 것이긴 하지만 장차 진화기 이뤄질 길을 지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또 자유에로의 길이다. 장래는 어떤 유익한 것, 그 세기의 사상을 초월하는 말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 주는 편집자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인쇄의 일을 알고, 또 그의 새 저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 중에서 협력자를 찾아내어 그들과 함께 책이나 잡지 등을 출판할 것이다.
이리하여 문학도 저널리즘도 더 이상 남을 희생해서 돈벌이나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문학이나 저널리즘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한때 문학을 보호한 사람들, 오늘날 문학을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비속성(卑俗性)이나 대다수인의 악취미에 영합하기 쉬움으로 해서 그것에 돈을 대주고 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문학이 해방되는 시대가 올 것을 바랄 것이다.
문학이나 과학은 그것이 일체의 금전적 속박에서 해방되어 그것을 애호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애호자를 위해서 연구되어질 때만이 인류 발전의 사업에서 참다운 제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Ⅳ
문학과 과학 및 예술은 자유인에 의해서 계발되어야 한다. 이런 조건 하에서만 그것들은 국가나 자본의 속박에서 그리고 그것을 질식시키는 부르주아의 비속성에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그가 관심을 가지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가지는가? 그는 백 명 중의 한 사람의 후보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관례를 지키겠다고 구체적으로 약속하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국가의 보조를 요청해야 하는가? 우리는 프랑스 과학원이 다윈을 어떻게 거부했는지를, 세인트 피터스부르크의 한림원이 멘델레예프(Mendeleeff)를 어떻게 경멸적으로 대했는지, 그리고 런던의 왕립협회가 열의 기계적 등가성을 결정한 줄(Joule)의 논문을 어떻게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출판을 거절했는지를 여러분은 기억할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에 혁명을 일으킨 모든 위대한 연구나 모든 발견은 학사원이나 대학 바깥에서, 다윈(Darwin)이나 라이엘(Lyell)처럼 독자적으로 연구할 수 있을 만큼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서 이뤄졌거나 또는 가난 속에서 일함으로써 건강을 해치고 흔히 대궁핍 속에서 연구소도 없이 많고 많은 시간을 잃으면서, 그리고 연구에 필요한 기구와 책도 구입할 수 없으면서도 희망을 배반당하고도 굽히지 않고 연구하며 때때로 연구의 도중에 죽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이런 사람들의 이름은 무수히 많다.
대체로 국가의 보조제도는 폐단이 많고 과학은 언제나 그것에서부터 자기를 해방시키려고 애써 왔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는 수많은 학회가 존재하고 있다. 그 가운데는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여, 국가의 보조를 받고 있는 학회들의 전 자산이나 은행가의 부의 모두로써도 그 재보(財寶)를 살 수가 없을 정도이다. 정부가 설립한 어느 학회도 오직 자발적인 기부금에 의해 유지되는 런던 동물학협회만큼 넉넉하지는 못하다.
이 협회의 동물원에 있는 수천 마리나 되는 동물들은 사들인 것이 아니다. 그 동물들은 다른 학회들 및 전 세계의 수집자들로부터 보내어진 것이다. 봄베이의 동물학회는 코끼리를 선물로 보내 왔고, 이집트의 자연학자들은 하마 또는 물소를 보내어 왔다. 그리고 이들 훌륭한 선물들 ― 새들은 매일 지구상의 모든 곳으로부터 도착하고 있다. 파충류들, 곤충 등 ― 이런 기중에는 흔히 세계의 모든 금을 주고도 살 수 없을 동물도 들어 있다. 그 중에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잡아서, 이제는 마치 자기 아이처럼 사랑하던 동물을 거기라면 틀림없이 보호되어질 것임을 믿고 기증한 경우도 있다. 무수히 많은 방문객들에 의해서 지불되는 입장료는 그 거대한 기관의 유지에 충분하다.
런던 동물학회 및 그 밖의 유사한 학회들에서의 결점은 협회에의 기여가 회원들의 자발적인 일을 가지고 이뤄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큰 조직의 유지자들과 수많은 피고용자들은 협회의 회원으로 인정되지 않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명함에 F.Z.S(Fellows of the Zoological Society : 동물학회 회원)란 머리 문자를 기재하는 것 이외에는 협회에 기여도가 없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애와 연대감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관해 말한 것과 꼭 같은 말을 발명가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위대한 발명가들이 당한 고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잠 못 이루는 밤들, 빵이 없는 가족들, 실험용 도구와 자료의 결여, 이것이 우리 문명의 참으로 정당한 자랑인 발명으로써 공업을 살찌운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나쁘다고 보는 이런 상태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특허제가 시험되었으나 그 결과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바와 같다. 굶주린 발명가는 그의 특허를 몇 파운드를 받고 판다. 그리고 그 자본을 빌려 준 사람은 흔히 그 발명으로부터 막대한 이익을 제 것으로 한다. 뿐만 아니라, 특허는 그 발명가를 고립시킨다. 특허는 그로 하여금 그의 연구를 비밀로 하도록 만들고 그래서 실패로 끝나게 한다. 이에 반해서 기본적인 착상에는 그 사람보다 덜 열중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매우 단순한 암시가 때때로 발명을 살찌우고 그것을 실용화하는 데 충분한 때가 있다. 모든 국가 통제와 마찬가지로 특허는 산업의 진보를 방해할 뿐이다. 사상은 특허되어질 수 없기 때문에 특허는 이론적으로 심한 불법이며, 실지로 그것은 발명의 급속한 발전에 대한 큰 장애물들 중의 하나가 된다.
발명 정신을 촉진시키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사상의 각성, 개념의 대담성인데도 우리의 교육은 모두 이것을 약화시키려고 애쓰고 있다. 필요한 것은 과학교육의 보급이며, 연구자의 수를 백배로 증가시키는 것이며, 일보 전진하려고 하는 인류의 의식이다. 왜냐하면 모든 위대한 발명가를 고취한 것은 대개가 열정, 즉 선을 행하려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사회혁명만이 사상에로의 충동, 대담성, 지식, 만인을 위해 일하려고 하는 확신을 줄 수가 있다.
그때 우리는 모든 종류의 원동력과 도구가 구비된 큰 연구소, 즉 모든 연구자에게 개방된 거대한 공업 시험소를 가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서 연구자들은 사회에 대한 그들의 의무를 다한 후에 그들의 꿈을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거기서 5~6시간의 여가를 보내며 실험을 할 것이고, 거기서 그들은 어떤 어려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 와 있는 다른 산업 분야의 동지들과 전문가들을 만나서 서로 돕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다렸던 해답을 찾아낼 수 있게 해 주는 사상과 경험의 만남이 이뤄지는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말하겠는데, 이것은 꿈이 아니다. 소라노이 고로도크(Solanoy Gorodok)는 피터스부르크에서 기술적 사항들에 관해서 그것을 부분적으로 실현했다. 그것은 공구들을 잘 갖추고 모든 사람에게 개방된 제작장이다. 공구들과 동력은 무료이며 오직 금속과 목재만을 원가로 공급받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10시간의 노동으로 완전히 피로해진 밤에만 거기에 갈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현대 사회의 독소이며 지적 및 도덕적 진보의 도상에 가로놓인 장애물인 특허와 자본주의 때문에 그 발명을 주의 깊게 서로 감추고 있다.
Ⅴ
그리고 예술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모든 면에서 우리는 예술의 타락에 관한 탄식을 듣는다. 정말로 우리는 르네상스의 거장들에게는 아득히 뒤떨어져 있다. 예술상의 기교는 최근에 크게 진보했다. 어느 정도의 재능을 타고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분야의 예술을 계발하지만 그러나 예술은 문명을 등지고 도망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교는 전진하지만 그러나 영감은 이전만큼 예술가의 작업실을 찾아오지 않는다.
정말이지 영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위대한 사상만이 예술을 고취할 수 있다. 예술은 우리의 이상에 있어서는 창조와 같은 뜻이며 그것은 앞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러나 매우 드문 몇몇 예외를 빼고 직업적 예술가는 너무나도 속된 사람이어서 새로운 지평을 예지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이 영감은 책에서 올 수도 없다. 그것은 생활로부터 끄집어내져야 한다. 그러나 현 사회는 그것을 환기시킬 수가 없다.
라파엘(Rophael)이나 무리료(Murillo)는 새로운 이상의 탐구가 낡은 종교적 전통과 타협하고 있었던 시대에 그림을 그렸다. 그들은 어떤 도시의 수 세대의 경건한 작업을 나타내는 교회들을 장식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신비로운 외관을 가지고 그것을 도시의 생활 그 자체와 연결시키는 교회당은 화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다. 화가는 민중의 기념비를 만들기 위해 일을 했으며, 그를 동료 시민들에게 이야기를 걸고 대신에 그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교회의 본당이나 기둥이나 색유리의 창문이나 조각상들이나 조각을 한 출입문이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말을 했다. 오늘날 화가가 바라는 가장 큰 영예는 도금된 액자에 넣은 자기 그림이 미술관 ― 일종의 골동품 가게 ― 에 걸리는 것을 보는 것이다. 여러분은 프라도(Prado) 미술관에서와 같이 벨라스케스(Velasques)의 거지와 필립 2세(Plilip Ⅱ)의 개 옆에 걸려 있는 무릴료(Murillo)의 승천도를 볼 것이다. 불쌍한 벨라스케스여! 불쌍한 무릴료여! 옛날에는 그 도시의 아크로폴리스(Acropolis)에서 살았었지만 이제는 루브르(Louvre) 박물관의 붉은 커텐 아래서 질식하고 있는 불쌍한 희랍의 조상(彫像)들이여!
희랍의 조각가는 그의 대리석을 끌질할 때 그 도시의 정신과 마음을 포용하려고 애썼다. 그 도시의 모든 정열, 그 모든 영광의 전통이 그 작품 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연합된 도시는 존재하지 않으며, 거기에는 더 이상 이념의 공동체도 없다. 도시는 서로 알지도 못하며 서로 상대방을 희생시켜서 자기들이 치부하는 일 말고는 공통의 관심사가 없는 사람들의 우연한 모임이다. 조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적인 은행가의 넝마주이가 어떤 조국을 공유(共有)할 수 있겠는가? 도시나, 지방이나, 국가나 또는 국가들의 집단이나가 그들의 통일 안으로 사회생활을 되돌려 왔을 때만이 예술은 도시나 도시 연합이 공동으로 가지는 이상들에서 그 영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건축가는 더 이상 사원이나 감옥이나 요새가 아닌 그 도시의 기념비를 착상할 것이며, 그때 화가, 조각가, 장식 제작가는 그들의 캔버스나 그림이나 장식을 어디에 놓을 것인가를 알 것이다. 그들은 그 동일한 생명력의 원천에서 그들의 힘을 얻어 와서 미래를 향해서 모두 함께 영광스럽게 행진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예술은 무위로 있을 뿐일 것이다. 현대 예술가의 최고의 회화는 자연, 마을, 계곡, 위험한 바다나, 그 웅장한 산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그러나 화가는 관상만 하고 상상만 하는 데 그치고 스스로 한 번 그 즐거움을 맛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들일을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설사 그가 그것을 안다고 해도 마치 후조가 이동 중에 지나가는 지방을 아는 정도밖에는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나타내겠는가? 활기가 넘치는 청춘 시대의 새벽에 쟁기를 잡고 또한 그 노랫소리로써 주변의 공기를 가득 차게 만드는 발랄한 처녀들과 큰 낫을 크게 내저으면서 옆에서 일하는 건장한 건초부와 힘을 겨루면서 풀베기하는 즐거움을 모른다면 어떻게 그것을 나타내겠는가? 토지와 그 위에서 자라는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은 화필로써 스케치하는 것에 의해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다만 토지에서 일하는 데에서만 얻어진다. 토지를 사랑하지 않고서 어떻게 토지를 그리는가? 여기에 최상의 화가들이 그리는 모든 작품들이 이런 의미에서는 아직도 매우 불완전하며, 생명에 충실하지 않으며, 거의 언제나 감상주의적일 따름인 그 이유가 있다. 그 속에는 힘이 없다.
일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몰을 본 일이 있어야 한다. 농부의 멋을 눈 속에 담아 두기 위해서는 그들과 나란히 농부가 되어 본 적이 있어야만 한다.
고기잡이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밤낮의 모든 시간을 어부와 함께 바다에 나가서 당신 스스로 고기를 잡아 보고, 파도와 싸우고, 폭풍우를 만나고, 그리고 거친 노동 후에 무거운 어망을 들어올리는 즐거움 또는 그것이 비어 있는 것을 본 때에 실망을 경험해 봐야만 한다. 인간의 힘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고 그것을 예술 작품에 표현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창조적 노동의 피로와 즐거움을 알고, 용광로의 강렬한 불꽃으로 쇠를 벼리고, 기계에서 생명을 느껴본 적이 있어야만 한다. 요컨대, 당신은 민중의 감정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그 속에 투신해야만 한다.
과거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민중의 생활을 그리게 될 미래의 예술가의 작품은 잘 팔릴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들의 작품은 살아 있는 전체를 구성하는 일부이며 그 전체는 그것 없이는 이들 작품이 완전하지 않듯이 그 작품들 없이는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예술가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도시로 갈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창작품들이 생기 있고 고요한 아름다움은 마음과 정신에 유익한 효과를 나타낼 것이다.
예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라스킨(Ruskin)과 위대한 사회주의 시인 모리스(Morris)가 그렇게도 여러 번에 걸쳐 증명한 바와 같이 많은 중간적 단계를 통하여 산업과 결합하고 융합되어 있어야 한다. 자택에서, 가두에서, 또한 공공 기념물의 내외에서 인간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순수한 예술적 형태를 구비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만인이 안락과 여가를 즐기는 사회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때 비로소 각자가 그 재능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협회가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은 그것을 보충하는 수많은 육체적 작업 및 기술적 작업 없이는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예술협회들은 마치 에딘버러의 친절한 자원자들인 젊은 화가들이 그 도시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대병원의 벽과 천정을 장식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협회원의 가정을 아름답게 꾸미는 일을 할 것이다.
인간적인 감정이 깃든 작품을 만들어 낸 화가나 조각가는 그것을 사랑하는 부인이나 친구에게 기증할 것이다. 사랑에 고취되어서 제작된 그의 작품은, 오늘날 그것이 비싸기 때문에 속물의 허영심을 만족시키는 작품에 비해 더 못할 것인가?
생활필수품 이외에 구하는 일체의 향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랜드 피아노를 원하는 사람은 악기 제작자협회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의 반나절의 여가의 일부분을 그 협회를 위해 일함으로써 곧 그는 꿈의 피아노를 가질 것이다. 천문학을 좋아하는 자는 천문학자협회에 가입할 것이다. 그 협회 회원인 철학자, 관측가, 계산자, 천문 기계의 제작자, 과학자들 및 아마추어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것이며, 그는 그 공동 작업의 분담을 수행함으로써 바라는 망원경을 입수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문관측소에서 필요한 것은 특별히 거친 일들 ― 즉 벽돌공, 주조공, 기계공의 일이고 전문 기사는 그 정밀 기계에 최후의 손질을 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생활필수품의 생산에 몇 시간을 바친 후에 각자가 자유로이 보낼 수 있게 될 5~7시간으로 무수히 많은 가지가지의 사치에 대한 모든 욕구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다. 수많은 협회들이 그것을 준비해 줄 것이다. 그래서 현재 극히 소수자의 특권인 것이 만인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사치는 부르주아 계급의 어리석고 야단스런 허영이 아니고 예술적 즐거움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더욱 행복하게 될 것이다. 바라는 목적 ― 책, 예술작품, 또는 사치품 ― 을 이루기 위해 유쾌한 마음으로 수행되는 공동 작업에서 각자는 생활을 즐겁게 만드는 데 필요한 자극과 위로를 발견할 것이다.
주인과 노예의 구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일함으로써 우리는 양자의 행복을 위해서,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다.
10. 유쾌한 노동
Ⅰ
사회주의자가, 자본으로부터 해방된 사회는 노동을 유쾌하게 만들 것이며 불쾌하고 비위생적인 모든 고역을 폐지할 것이라고 주장할 때, 사람들은 그들을 비웃는다. 그런데 오늘날에 있어서도 이 방향으로 현저한 진보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런 진보가 이루어진 곳에서는 어디서나, 고용주들은 그것으로 인해서 얻어진 에너지의 절약에 대해서 좋아하고 있다.
공장을 과학연구소처럼 건강하고 쾌적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임은 명백하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유익하리라는 것은 더욱 명백하다. 넓고 환기가 잘되는 공장에서는 작업이 더욱 잘된다. 거기서는 그 하나 하나가 시간과 수고의 절약이 되는 많은 사소한 개량을 가하는 것도 용이하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공장의 대부분이 불결하고 비위생적이라면 그것은 노동자가 공장 조직에서 고려되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며 또 인간 정력의 가장 무의미한 낭비가 현대 산업제도의 현저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현재에도 극히 예외적으로 여러 곳에서, 물론 노동이 하루에 4~5시간 이상 계속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이 각자의 취미에 따라 노동을 바꿀 수 있다고 가정했을 때, 잘 정돈되어 있고 그 안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로 즐거움일 듯한 몇몇 공장을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떤 공장 ― 불행하게도 병기 제조를 하고 있지만 ― 은 보건상 그리고 지적인 조직에 있어 아무런 결함이 없다. 이 공장은 50(영국)에이커의 부지에 세워졌고 그 중 15에이커는 천장이 유리로서 되어 있다. 내화벽돌로 된 바닥은 광부의 집의 그것처럼 깨끗하며, 유리 지붕은 그 일만 전담하는 일단의 노동자에 의해 정성들여 청소된다. 이 공장에서는 20톤이나 되는 강철 주괴(鑄塊)가 벼려진다. 불꽃의 온도가 천도 이상이 되어, 그 큰 입에서 강철의 괴물을 토해 낼 때 비로소 그 존재를 알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괴물을 조종하는 것은 불과 3~4명의 노동자이며 그들은 활전(活栓)을 열어서 거대한 기중기를 수압으로 움직이고 있다.
귀청이 터질 듯한 압단기(壓斷機)의 소리를 들을 것을 기대하고 공장에 들어가지만 거기에서는 압단기를 찾아볼 수 없다. 100톤이나 되는 거대한 대포와 대서양 횡단 기선의 크랭크 축이 수압에 의해서 벼려지며, 노동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강철을 성형하기 위해 전(栓)을 돌리기만 하면 아무리 두꺼운 강괴로부터도 갈라진 금이나 조그마한 흠도 없는 등질의 주철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굉장한 소음을 예상하지만, 그런데 보이는 것은 치이즈를 자르는 데 필요한 소리 이상을 내지 않고 30피트 길이의 강괴를 자르고 있는 기계뿐이다. 안내하던 기사에게 감탄사를 발했을 때 그는
????경제문제일 따름입니다. 강철을 평평하게 하는 이 기계는 42년간이나 사용해 왔습니다. 만약 그 각 부분의 조화가 잘못되었거나 너무 약하거나 평반이 움직일 때 서로 부딪치거나, 삐걱거리게 되면 10년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용광로 말입니까? 열을 이용하지 않고 버리는 것은 낭비 아닙니까? 방열 때문에 몇 톤의 석탄과 맞먹는 열이 손실될 때 왜 주조공을 나무랍니까?????
????5리이그(리이그는 약 3마일) 떨어진 곳에 있는 건물을 진동시키는 압단기도 좋지 않습니다. 충격에 의해서 보다도 압력에 의해서 더 잘 벼려집니다. 그리고 비용의 손실도 적습니다.????
????각 작업대의 넓이, 공장의 조명, 그 청결 등도 모두 경제문제입니다. 물건이 똑똑히 보이고 팔꿈치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때 일도 잘 됩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되기 이전에는 우리도 비좁고 답답했습니다. 대도시 부근에서는 토지는 매우 비싸고 지주는 아주 탐욕스럽지요????하고 그는 말했다.
광산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는 졸라(Zola)의 묘사나 신문의 보도를 보고 오늘날 광산이 어떤 모습인가를 안다. 그러나 장래의 광산은 통풍이 잘되고, 온도는 연구실처럼 완전히 조절되고, 지하에서 죽을 운명의 말(馬)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지하의 견인차는 갱구(坑口)에서 운전하는 자동 케이블에 의해서 움직여질 것이다. 환풍기는 항상 돌아가고 있으며 폭발 따위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광산은 결코 꿈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영국에서 볼 수 있으며 나는 그 중의 하나를 찾아본 일이 있다. 여기에서도 정리정돈은 경제문제일 뿐이다. 지금 내가 말하는 광산은 430미터나 되는 매우 깊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겨우 200명의 광부가 매일 1천 톤 즉 광부 일인당 하루 5톤의 석탄을 파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1890년대의 초에 이 탄광을 방문했을 때 영국에서 2천 개의 갱당 평균 채탄량은 일인당 연간 겨우 300톤이었다.
만일 필요하다면 물적인 조직에 관해서 푸리에(Fourier)의 꿈이 유토피아가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예를 얼마든지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사회주의 신문들에서 빈번하게 논의되었기 때문에 여론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공장도 제작소도 광산도 현대 대학의 최고 실험실처럼 위생적이고 훌륭한 것으로 할 수가 있다. 그리고 조직이 잘되면 잘될수록 사람의 노동은 더욱 생산적으로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일꾼????이 어떤 조건 하에서도 몸을 팔도록 강요되지 않는 평등한 사회에 있어서는 노동은 실제로 즐거움이고 위락이 될 것임을 우리는 의심할 수 있겠는가? 비위에 맞지 않는 불건강한 일은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조건은 사회 전체에 대해 유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예라면 그것에 복종할는지 모르나 자유인은 그 일을 더욱 즐겁고 무한히 생산적인 노동의 새로운 조건을 창조할 것이다. 오늘의 예외는 내일의 통례가 될 것이다.
같은 일이 오늘날 사회가 인류의 고역자―부인들에게 짐지우고 있는 가정 노동에 관해서도 일어날 것이다.
Ⅱ
혁명에 의해서 다시 태어날 사회는 가정노예 ― 노예제의 최후 형태 ― 아마도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가장 완강한 형태를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다만 그 사회는 푸리에 주의자들이 꿈꾼 방식이나 강권적 공산주의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푸리에주의는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아무리 수줍은 사람이라도 확실히 공동 작업을 위해서는 그의 동료들과 만날 필요성을 느끼며 그 작업은 그가 자신을 더 큰 전체의 일부로 느낄수록 더욱더 매력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휴식과 친교를 위해 주어지는 여가 시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푸리에주의나 공동주택주의까지도 이 점을 고려하지 않거나 아니면 인위적인 집단회에의 이 욕구에 응하려 하고 있다.
사실상 거대한 호텔에 불과한 푸리에주의는 일부 사람들을, 그리고 그 생애의 어느 시기에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매우 많은 사람들은 가족생활(미래의 가족생활을 뜻하지만)을 더 좋아한다. 그들은 고립된 아파트를 선택할 것이며 앵글로 색슨인이라면, 가족 또는 일단의 친구들과 따로 떨어져 살 수 있는 6개 내지 8개의 방이 있는 집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일반적 원칙이 되면 싫증이 난다. 사교에 보낸 몇 시간에 대신하는 고독은 인간성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감옥에서 가장 심한 고통의 하나 ― 혼자일 수가 없는 상태 ― 는 이 때문이며 또한 수 시간의 사교 생활과 교대될 수 없을 때 이번에는 독방의 고독이 고통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때로 푸리에주의에 편들어 강조되는 경제적 고려와 같은 것은 인색한 장사꾼의 경제에 지나지 않는다. 합리적인 경제란 오로지 생활 자체를 만인을 위해서 유쾌한 것으로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생활에 만족하는 자는 자신의 경우를 저주하는 자보다 훨씬 더 많이 생산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회주의자들은 푸리에주의자를 배척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가정의 일을 어떻게 조직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들은 각자가 ????자기의 일????을 한다고 대답한다. ????나의 아내는 집을 관리하오. 부르주아의 부인들도 마찬가지 일을 할 것이오.???? 그리고 만일 말하는 자가 사회주의자의 흉내를 내는 부르주아라면 그는 자기 아내에게 품위 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여 ????여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당신도 하녀 없이 일을 할 수 있겠지? 당신도 우리의 친구 폴의 아내처럼 또는 목공 존의 아내처럼 일을 할 수 있겠죠?????하고 말할 것이다.
하녀든 아내든, 남자는 지금도 언제나 가사의 일은 여자가 하는 것으로 치부한다.
그러나 부인도 역시 결국은 인류해방에의 참가를 요구한다. 부인도 더 이상 가정의 일 짐승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녀의 양육에 생애의 많은 세월을 바쳐야 한다는 것은 이젠 그만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더 이상 요리인, 수리인, 집의 청소인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부인들은 그들의 요구를 얻어내기 위해 솔선하고 있으므로 미국에서의 일반적 불평은 고분고분하게 가사를 돌보는 부인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숙녀는 예술이나 정치나 문학 또는 도박대를 좋아한다. 여자 공원도 마찬가지이며 이제는 하녀를 찾아볼 수가 없다. 미국에서는 앞치마 노동을 승인하는 아가씨나 부인은 드물다. 따라서 그 해결, 즉 매우 간단명료한 해결책이 생활 그 자체에서 직접 나타난다. 가사의 4분의 3을 기계가 떠맡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구두를 닦는다. 그리고 당신은 이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안다. 구두를 솔로는 20번 내지 30번 문지르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있겠는가? 유럽 인구의 10분의 1은 비참한 잠자리와 불충분한 음식을 얻기 위해 그 스스로를 팔아서 이 지루한 일을 해야 하며, 부인은 자신의 노예라고 생각하고 수백만의 여성들이 매일 아침에 하는, 그런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발사는 이미 대머리나 곱슬머리에도 그 머리칼을 빗는 기계를 가지고 있다. 같은 원리를 반대쪽 끝에 응용해서는 안 되는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오늘날 구두 닦는 기계가 미국 및 유럽의 큰 호텔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호텔 밖에까지 보급되고 있다. 학생들이 교사의 가정에 하숙을 하고 있는 영국의 큰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에 천 켤레나 되는 구두를 닦는 단 한 대의 기계를 설비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탁은 어떤가! 가사 노동의 일이 존중되지 않는 마당에서 보통 손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더러운 작업을 싫어하지 않는 주부가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미국에서는 잘하고 있는데, 거기에서는 많은 도시에서 이미, 마치 유럽에서 찬물이 송수되듯이, 집집마다 더운물이 보내어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문제는 간단하며 그래서 어느 부인―코크레인 부인―이 그것을 해결했다. 그녀의 기계는 3분도 못 되어서 20다스의 쟁반이나 접시를 씻고 닦고 건조시킬 수가 있다. 일리노이주 어느 공장에서는 이 기계를 만들어 중류 정도의 가정에서도 살 수 있는 가격으로 팔고 있다. 작은 세대도 신발과 마찬가지로 식기류도 공동 시설에 가서 씻을 것이다. 닦고 씻는 두 개의 일을 아마도 한 조합에서 하게 될 것이다.
식칼을 간다던가, 손의 껍질이 벗겨지기도 하고 손을 비틀기도 하면서 내의류를 세탁한다던가, 바닥을 쓸고 융단에 손질을 하다가 먼지 구름이 일어나고 그 먼지를 털어내는 데 애를 먹는다던가, 이러한 일은 모두 부인이 이전에 노예였기 때문에 그 손으로 했었지만, 그것이 기계에 의해서 훨씬 더 잘해 낼 수 있기 때문에 그 일은 이제 사라져 가고 있다. 개개의 주택에 동력이 보내어지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기계가 가사에 도입될 것이다.
이런 기계는 제작하는 데 돈이 별로 들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아직도 그것을 비싸게 산다면 그것은 그 기계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특히 토지, 원료, 제품, 판매, 특허, 세금 등등에 의해서 사리(私利)를 도모하고 허식을 좋아하는 산사들에 의해서 기계에 매겨진 엄청난 세금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용의 소형 기계가 가사노동에서 해방시켜 주는 최종의 것은 아니다. 가정은 현재의 고립에서 탈피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개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다른 가정들과 연합해서 공동으로 하기 시작하고 있다.
사실로 장래에는, 각 가정에서 구두 닦는 기계나 접시 씻는 기계나 기타의 것들을 비치할 필요가 없다. 장래에는 공동 난방을 설치하여 구역 전체의 방에 열을 보내어 연료를 절약한다. 이것은 이미 미국의 약간의 도시에서 행하고 있다. 큰 난방 장치가 모든 집과 모든 방에 온수를 공급하고 있다. 물도 파이프에 흐르고 있다. 온도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꼭지를 돌리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어떤 방을 난방코자 하면 중앙 저장소로부터 난방 목적으로 특별히 공급되는 가스에 점화할 수가 있다. 그런데도 불 피우는 난로를 가지려고 하겠는가. 굴뚝 청소와 불이 계속 타도록 하는 많은 일 ―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에 대해서는 부인이 안다 ― 의 전부가 사라져 가고 있다.
촛불, 램프 그리고 가스마저도 과거의 것이 되었다. 단추를 누르면 도시 전체에 불이 일제히 켜지는 장소가 여러 개 있다. 요컨대 전등의 사치를 자신들에게 주는 것은 단순한 경제와 지식의 문제이다. 그리고 끝으로 역시 미국에서 거의 모든 가사노동을 없애기 위한 단체를 만드는 것이 이미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집으로 된 구역마다 가사서비스 센터를 둠으로써 충분할 것이다. 차가 집집마다 문 앞에 와서 닦을 구두, 씻을 식기, 세탁할 의류, 자질구레한 수선물(수선할 가치가 있을 때), 솔질한 융단을 수집해 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맡긴 일들을 훌륭하게 완성해 가지고 올 것이다. 몇 시간 이내에 더운 커피나 잘 구운 계란이 여러분의 식탁에 나올 것이다. 정오부터 2시 사이에 2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과 그만한 수의 영국인이 구은 쇠고기나 양고기, 삶은 돼지고기, 요리한 감자 및 계절의 야채를 요리하는 데 적어도 8백만개의 불이 2시간 내지 3시간 동안 필요하다. 즉 8백만 명의 부인들이 기껏해서 10접시 이내의 음식물을 요리하는 데 이만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로도 충분한데 50개의 난로가 탑니다!????라고 어떤 미국 부인이 언젠가 썼다. 만일 그렇게 하고 싶으면 가정에서, 식탁에서 당신의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몇 잔의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왜 50명의 부인들이 그들의 아침 시간을 모두 낭비해야 하는가, 당신 스스로 생각해 보라! 이 모든 고깃덩이와 이 모든 야채를 요리하기에는 두 사람과 단 하나의 불로 충분한데 왜 50개의 불을 쓰는가? 만일 당신의 특수한 식성이 있다면, 자신이 좋아하는 쇠고기나 양고기를 골라서 구우면 될 것이다. 당신이 특별한 소오스를 좋아한다면 당신 입에 맞도록 야채에 양념을 치면 될 것이다! 그러나 넓은 요리장 하나와 충분히 잘 설비된 요리용 부엌을 사용하고 그것을 아름답게 정돈하라.
왜 부인의 노동은 한번도 고려되어진 일이 없는가? 왜 각 가정에서 어머니와 서너 명의 하녀들이 요리에 대해서 그렇게도 많은 시간을 소비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인류의 해방을 바랐던 사람들마저도 부인의 해방을 꿈에 포함시키지 아니했고, 그들이 이 혹사된 사람들 ― 부인 ― 의 양 어깨에 지워 준 ????부엌일???? 따위를 고려하는 것은 남자의 우월한 존엄성과 권위를 끌어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인의 해방이란 대학, 재판소, 또는 의회의 문호를 부인에게 열어 주는 것만이 아니다. 왜냐하면 ????해방된???? 부인은 언제나 가정의 노역을 다른 부인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이다. 부인을 해방시키는 것은 부엌과 세탁장의 지루한 고역으로부터 부인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것을 원한다면 그녀의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그대로 사회 생활에도 참가할 수 있는 충분한 여가를 가질 수 있도록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때가 올 것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이니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 자유, 평등, 연대 등 아름다운 말에 도취된 혁명도 그것이 가정의 노예를 보존한다면 혁명이 아닐 것임을 충분히 이해하자. 부엌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류의 반(半)은 아직도 다른 반에 대해서 반역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1. 자유 협약(協約)
Ⅰ
우리는 유전적 편견이나 전적으로 잘못된 훈육이나 지육 때문에 도처에서 정부, 입법 및 사법 이외에는 눈에 보이지 않게 길들여져 왔으며, 그래서 경관이 우리를 지켜보지 않을 때에는 야수처럼 서로 싸우고 찢을 것이며, 어떤 대동란이 일어나서 권력이 붕괴되면 혼란에 빠져 버릴 것이라고 믿게 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법률의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고 사람들이 자유로이 결성하고 그런데도 정부의 보호 아래에서 이뤄지는 것보다 무한히 우월한 결과를 성취하고 있는 수많은 집단을 간과하고 있다.
일간신문을 펴보면 그 지면은 전적으로 정부의 하는 일 및 정치적 부정 사건에 바쳐져 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은 그것을 읽고 증권거래소의 거래를 제외하고는, 유럽에서는 주인의 명령 없이는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신문에서 정부의 명령 없이도 발생하고, 성장하고 그리고 발전하는 협회들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아무것도 없거나 아니면 거의 전무다! 거기에 ????이런 일 저런 일????이란 난에 표제가 있는 경우에도 그것은 사건이 경찰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게재될 것이다.
3억 5천만의 유럽인이 서로 사랑하거나, 미워하거나, 일하거나, 혹은 금리로 생활하거나,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거나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나 그들의 행위는(문학이나 연극이나 스포츠를 빼고는) 정부가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것에 간섭하는 경우가 아니면 신문은 묵살해 버린다.
역사에 있어서조차도 그렇다. 우리는 국왕의 생애나 의회에 관해서는 아주 상세한 것까지도 알고 있다. 정치가의 연설은 내용이 좋고 나쁘고는 묻지 않고 어느 고참 의원의 말처럼 ????단 한 사람의 표를 얻을 만큼의 영향도 없었던????것까지도 모두 보존되어 있다. 국왕의 방문, 정치가들의 기분의 좋고 나쁨, 그들의 농담과 음모 등이 모두 자손을 위해서 조심스럽게 기록된다. 그러나 우리는 중세의 도시를 재건하거나, 한자동맹 도시들 사이에 행해진 대규모의 상업 기구를 이해하거나, 또는 르앙(Rouen)시가 어떻게 그 대성당을 세웠는가를 알기는 매우 어렵다. 어떤 학자가 이 문제를 연구하는 데 그 생애를 바쳐도 그의 저술은 알려지지도 않는다. 그런데 의회의 역사 ― 즉 그것이 사회생활의 일면 만을 다루기 때문에 잘못된 것임 ― 는 자꾸만 나오고, 배부되고 학교에서 가르쳐진다.
이와 같이 하여 우리는 사람들의 자발적 집단이 매일 수행하는 현세기의 주요한 사업인 업적을 알아차리기조차 아니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들 가장 두드러진 사업의 일부를 지적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이해가 절대적으로 상충하지 않는다면 서로 제휴하고 조화롭게 행동함으로써 매우 복잡한 문제에 관해서도 공동으로 활동한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사유재산 ― 약탈, 인색 및 어리석은 개인주의 ― 에 입각한 현재의 사회에서는 이런 종류의 사실은 필연적으로 제한된다는 것은 명백하다. 여기서 협약은 언젠가 완전히 자유롭게 이뤄진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그 목적도 흔히 타기할 정도는 아니지만 비속(卑俗)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맹목적으로 모방해야 할 실례(實例)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며,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사회는 그러한 실례를 제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질식시키는 강권적 개인주의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활 전체 안에는 오직 자유협약에 의해서 활동하고 있는 매우 큰 부분이 늘 남아 있다는 것과 그래서 정부 없이 해내는 것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용이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것으로 철도에 대해서 앞에서 말했으나 한번 더 그것에로 되돌아가기로 한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유럽에는 175,000마일 이상의 철도망이 있고 이 철도망을 통해서 당신들은 오늘날 북에서 남으로, 동에서 서로, 마드리드에서 페테르부르그까지, 그리고 칼라이스(Calais)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지체하지 않고, 심지어 차를 바꾸지도 않고(급행일 때) 여행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어떤 역에서 맡긴 화물은 터어키이든 중앙 아시아에 있는 어디이든 그 행선지에 도달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보내는 데는 종이 조각에다 행선지를 써넣는 절차만이 필요하다.
이런 결과는 두 가지 방식으로 얻어질 것이다. 나폴레옹이나 비스마르크 같은 사람이나 전제군주라면 유럽을 정복하고 지도 위에 파리, 베를린 또는 로마에서 철도 선로를 긋고 기차의 운행을 규정할 것이다. 백치인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는 이런 것을 꿈꾸었었다. 그는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그 사이의 철도 설계 도안을 보았을 때, 자를 잡고 러시아 지도 위에 있는 이 두 도시 사이에 직선을 긋고는 ????이것이 선로이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철도는 깊은 계곡을 메우고, 현기증 나게 높은 철교를 세우면서 직선으로 부설했지만 (영국)마일당 약 120,000내지 150,000파운드의 비용이 들자 몇 년 뒤에 중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한 가지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다른 방식이 행해졌다. 철도 노선은 한 구간씩 건설되었고 각 구간이 서로 연결되었다. 이들 구간을 소유한 많은 다른 회사들은 기차의 발착 시간을 맞추고 선로가 바뀔 때마다 화물을 바꿔 싣지 않고 어디에서 오는 화물차조 통과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을 맺는데 힘썼다.
이 모든 것이 자유협약에 의해서, 서신과 제안의 교환에 의해서, 그리고 회의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 회의에서는 대표자들은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특정의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서 모이며, 회의가 끝나면 대표들은 법률이 아니고, 승인되든가 거부되어질 협정안을 가지고 각자의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도중에 어려움을 겪었다. 설득시키기가 어려운 완고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공동 이익이 버거운 사람들에 대해서 군대를 보낼 필요 없이 결국은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서로 연결된 이 거대한 철도망과 그것이 일으킨 거대한 수송량은 확실히 19세기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을 이룬다. 그리고 그것은 자유협약의 결과이다. 만일 누가 그것을 80년 전에 예언했었다면 우리의 할아버지들은 바보 아니면 미쳤다고 생각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었을 것이다. ????수많은 회사들의 주주들을 이치에 따르도록 만들 수는 도저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유토피아이며 동화이다. ????철의 통치자????를 가진 중앙정부만이 그것을 강요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런데 이 조직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철도의 유럽 중앙정부가 없다는 것이다! 철도장관도 없고, 독재자도, 대륙의회도, 관리위원회마저도 없다! 모든 것이 자유협약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를 신뢰하여 ????수송을 규정하는 일만 가지고도 중앙정부 없이는 아무것도 안 된다????고 주장하는 국가주의자에게 이렇게 묻겠다.
????그렇다면 유럽의 철도회사는 중앙정부 없이 어떻게 경영하고 있는가? 그들은 어떻게 수백만의 여행자와 산더미 같은 화물을 대륙의 도처에 수송하는가? 만일 청도를 소유하는 회사들이 협의할 수 있었다면 철도를 장악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로 협의할 수가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페테르부르그―와르소(Peterburg―Warsaw)회사와 파리―벨포트(Paris―Belfort)회사가 공동 지배인이라는 불필요물을 두지 않고 원만하게 운영할 수가 있다면, 자유노동자들의 집단으로 구성된 우리의 사회 안에서 정부는 왜 필요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Ⅱ
오늘날에도 현존 사회의 조직을 지배하는 부정과 사악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권력의 개입 없이도 협의에 도달할 수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실례로써 입증하려고 노력하면서도 우리는 제기됨직한 반대론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들 실례에는 잘못된 측면도 있다. 왜냐하면 강자에 의한 약자의 착취, 부자에 의한 빈자의 착취에서 제외된 단 하나의 조직을 예로 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주의자들은 누구나 다 아는 그들의 논법으로 틀림없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이 착취를 없애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역사의 교훈을 잊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국가 그 자체가 무산자를 만들어 내고, 그들을 착취자에게 넘겨줌으로써 어느 정도까지 현존의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 공헌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첫째 원인 ― 사유 자본과 국가가 국민의 3분의 2를 인위적으로 몰아넣은 빈곤 ― 이 존속하는 동안은 착취를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도 잊고 있다.
철도회사들간의 완전한 협정에 대해서도 부르주아의 숭배자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 된다.
????철도회사들이 그 피고용인과 여행자를 얼마나 억압하고 학대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은 알지 않습니까! 노동자나 공중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개입해야 하오!????라고 말이다.
그러나 자본가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권력의 남용도 계속될 것이라고 우리는 반복하여 말하지 않았던가. 회사가 오늘날 소유하는 독점과, 우리들에 대한 그 권리를 회사에게 준 것은 바로 국가 ― 자칭의 보호자 ― 인 것이다. 국가는 여러 가지 허가나 보증을 만들어 내지 않았는가? 국가는 파업중의 철도 노동자들을 진압하려고 군대를 보내지 않았는가? 국가는 파업 중의 철도 노동자들을 진압하려고 군대를 보내지 않았는가? 그리고 최초의 시운전중(러시아에서는 아주 최근에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국가는 그것이 보증하는 주식의 하락을 막기 위해 신문에 철도 사고의 게재를 금지할 정도로 철도사업가의 특권을 확대하지 않았던가? 국가는 P.L.M.회사, C.P.M.회사, 성 고타르(St. Gothard)회사의 중역들, 소위 ????현대의 왕들????을 성화(聖化)하고 그들에게 독점이란 특혜를 주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우리가 철도회사들 사이에 행해지는 암암리의 협정을 예로 든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경제적 관리 이상도 아니고 더구나 기술적 조직의 이상도 아니다. 그것은 자본가들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킨 대가로 그들의 이익배당을 늘리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면서, 국제성 따위를 만들지 않고서도 성공적으로 철도를 경영할 수 있다면 ― 노동자의 조합도 유럽 철도성 장관 등을 임명하지 않고서도 잘, 경영할 수 있을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얼핏 보아 더욱 중대한 다른 반대론이 제기된다. 우리가 말하는 협약은 완전하게 자유롭지 않으며 대회사는 소회사를 압박한다. 예컨대 국가가 지원하는 독일의 돈 많은 어떤 회사가 베를린에서 바젤까지 가는 여객을 라이프지히 노선을 통과하지 않고 콜론과 프랑크푸르트 경유로 가게끔 강요하거나 또는 이런 회사는 유력한 주주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화물을 130마일이나 우회하는 노선(장거리의 경우)으로 운반함으로써 이류 회사 노선을 몰락시키기도 하는 예를 들 것이다. 미국에서는 반더빌트(Vanderbilt)와 같은 사람의 주머니에 달러가 흘러들어가게 하기 위해 여객과 화물이 때로는 엄청나게 우회하는 노선을 지나가도록 강요당한다고 한다.
이것에 대한 우리의 대답도 같은 것이다. 즉 자본이 존재하는 한, 대자본은 소자본을 압박할 것이다. 그러나 압박은 자본으로부터만 오지 않는다. 대회사가 소회사를 압박하는 것은 국가가 대회사에게 주는 지원에, 그리고 대회사들을 위해 만들어 주는 독점권에서도 유래하는 것이다.
영국 및 프랑스의 초기 사회주의자는, 영국의 입법이 소산업가를 파산시키고, 농민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아무리 적은 노임을 받고라도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가난한 사람들의 무리를 대산업가에게 인도하기 위해서 어떻게 했는가를 매우 잘 지적했다. 철도 입법도 마찬가지다. 전략적 노선, 보조선, 국제 우편의 독점권을 얻은 회사, 금융계의 거물들이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각가지 방법이 활용되었다. 유럽의 모든 국가들에 대한 채권자인 로스차일드(Rothschild)가 철도에 투자하면 그의 충복인 장관들은 그가 더 많이 벌도록 온갖 주선을 할 것이다.
미국 ― 강권주의자들이 때로는 이상으로 내세우는 민주주의 ―에서도 철도에 관계되는 모든 것에는 가장 추악한 부정이 끼어들어 있다. 예컨대 어떤 회사가 보다 싼 운임으로 그 경쟁자들을 넘어뜨릴 수 있는 것은, 대개의 경우 국가가 뇌물을 받고 그 회사에게 양도한 토지에 의해서 저운임의 보상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밀 거래에 관해서 최근에 발표된 문서에 의하면, 우리는 국가가 강자에 의한 약자의 착취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잘 알 수가 있다. 여기에서도 역시 국가는 대자본의 세력을 10배 또는 100배로 늘어나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대회사에 대항해서 소회사들을 보호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철도회사 신디케이트(기업조합) ― 자유협약의 소산임 ―를 볼 때 국가가 보호하는 대자본의 막강한 힘에도 불구하고 자유 협의가 보여 준 고유한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국가의 편파성에도 불구하고 작은 회사들은 존재하고 있다. 중앙집권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오직 5~6개의 대회사 밖에서는 볼 수 없지만, 영국에는 110개 이상의 대회사가 있고 이 회사들은 훌륭하게 협정을 맺고 있으며, 프랑스와 독일의 철도회사 보다도 더 잘 조직되어 있고, 여객과 화물을 신속하게 수송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우대를 받는 대자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다고 보면 언제라도 소자본을 분쇄할 수가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의 것이다. 유럽의 철도를 소유하는 수많은 자본주의 회사들 사이에 체결되는 협정이, 여러 회사에 대해서 법률을 제정하는 중앙정부의 개입 없이 직접 체결되었다는 것이다. 협정은 회사의 대표자로 구성되는 회의에 의해서 유지되지만, 그들 사이에서 토의되고 그들의 위임자에게 제출하는 것은 법률이 아니고 초안이다. 이것은 군주제 또는 공화제, 절대제 또는 대의제의 어느 것을 불문하고 일체의 정부적 원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원칙이다. 이것이 아직은 주춤거리지만 유럽의 관습 속에 도입된 혁신이며 그러나 장래가 유망한 혁신이다.
Ⅲ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의 저술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얼마나 자주 읽었던가? ????그렇다면 누가 미래 사회의 운하 수송을 규제할 것인가? 만일 당신들 아나키스트 ????동지들???? 중의 하나가 그의 거룻배를 운하에 대어 놓고 수많은 다른 배들을 가로막을 생각을 하게 된다면, 누가 그에게 이성을 되찾도록 강요할 것인가?????하고 말한다.
분명히 말해서 이 가정은 좀 환상적이다. 다음과 같이 말을 더하는 자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만일 어떤 콤뮨이나 콤뮨들의 집단이 그들의 거룻배를 다른 배들보다 먼저 지나가게 하려고 할 때, 그들은 아마도 돌을 나르기 위해서 운하를 가로막음으로 해서 다른 콤뮨에서는 필요로 하는 밀의 수송선은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때 정부가 아니라면 누가 그 수송을 규제할 것인가?????하고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생활은 역시 여기서도 다른 데와 마찬가지로 정부 없이도 충분히 잘 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자유로운 협약, 자유로운 조직은 저 해롭고도 값비싼 기구를 대신해서 더욱 잘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운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운하들은 공공도로이다. 또한 우리는 그 운하에서 얼마나 많은 수송이 이뤄지는가를 안다. 우리의 고속도로나 철도에 의해 운반되는 물자가 네덜란드에서는 운하에 의해 수송된다. 거기에서 다른 배보다 먼저 자기의 배를 통과시키기 위해서 싸움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도 교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정부가 개입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래 전에 길드 즉 뱃사람들의 동업조합들을 만듦으로 해서 더욱 실제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했다. 이 길드는 항행의 필요성 바로 그것 때문에 생겨난 자유로운 조합이다. 석박들의 운행은 항행 등록부의 기명(記名)순서에 의해서 조정되었다. 모든 것이 명부의 차례대로 기다려야만 했다. 아무도 다른 배를 앞질러 갈 수가 없었고 그것을 위배하면 길드에서 제명되었다. 아무도 일정한 일수 이상 부두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만일 배 주인이 그 기간 동안에 운반할 화물을 찾지 못하면 그에게는 그만큼 더욱 불리했다. 그는 다음 차례의 배를 위해서 자리를 비켜 주기 위해 빈 배로 출항해야만 했다. 이리하여 운송업자 간의 경쟁 ― 사적 소유의 결과 ― 은 여전히 있었지만 혼란은 피할 수 있었다. 경쟁이 폐지된다면 협약은 모두에게 더욱더 진실하고 공정한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선주는 동업조합에 가입할 수도 있고 가입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본인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은 그것에 가입하는 쪽을 택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동업조합은 매우 큰 이익을 주었기 때문에 그것은 라인강, 베제트강, 오데르강에서 그리고 베를린까지도 보급되었다. 선원들은 위대한 비스마르크가 네덜란드를 독일에 합병시켜서 국유운하운항총국 장관(Ober Haupt General Staats Kanal Navigations Rath)이란 긴 관명의 길이에 상응하도록 그 소매에 여러 개의 금테를 두른 관리를 임명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것보다도 그들은 국제적으로 서로 이해했다. 뿐만 아니다.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러시아까지도 내왕하는 범선의 선주들도 역시 발틱해의 항행을 규제하고 선박의 발착을 조정하기 위해서 동업조합에 가입했다. 이들 협회는 자유롭게 성립하고 자발적인 가입자를 모집하고 정부와는 아무런 관계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역시 대자본이 소자본을 압박하는 것이 틀림없이 가능하다. 동업조합도 독점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특히 간섭할 것이 틀림없는 국가의 값비싼 보호를 받는 경우에 그러하다. 이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이들 동업조합 연합은 오직 개인적 이해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의 조합을 대표한다는 것, 그리고 만일 각 선주가 ― 생산, 소비 및 교환의 사회화에 의해서 ― 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수많은 다른 조합들에도 동시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사태는 양상을 달리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선주의 단체는 해상에서는 강하지만 육상에서는 약하다고 느낄 것이며, 그래서 그들은 철도, 공장 및 기타 단체들과 협정하기 위해서 자신의 주장을 줄일 것이다.
어쨌든 미래의 일은 그만두고, 거기에 정부 없이도 잘할 수 있었던 자발적인 조합이 있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대소 선박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19세기에 발생한 가장 훌륭한 조직들 중의 하나이며 우리가 마땅히 자랑할 수 있는 조직 ― 영국 구명정협회에 대해 언급하자.
해마다 천 척 이상의 선박이 영국의 해안에서 난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 바다에서 튼튼한 배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험이 있는 곳은 해안 부근이다. 선미(船尾)를 뒤흔드는 거친 바다, 돛과 돛대를 앗아가는 광풍, 배를 걷잡을 수 없게 만드는 역물결, 배를 좌초케 하는 암초와 모래언덕이 그것이다.
옛날 해안의 주민이 불을 피워서 배를 암초에 유인하고 그 화물을 약탈하곤 했던 때에도 그들은 승무원의 구조에는 언제나 최선을 다했다. 배가 난파한 것을 보면 그들은 보트를 타고 가서 조난한 선원들을 구조했고 그들 자신도 파도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해변의 마을에는 조난한 선원들을 도우려고 남자들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발휘한 영웅적 행위에 대한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하기야 국가나 과학자들은 재난의 수를 줄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일은 했다. 등대, 신호, 해도, 기상경보는 확실히 재난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여전히 해마다 구조를 요하는 일천 척의 배와 수천 명의 인명이 있다.
이래서 몇 사람의 자원자가 이 일에 나섰다. 자신들도 우수한 선원이며 항해자인 그들은 부서지거나 뒤집히지도 않고 폭풍우 속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구명정을 고안한 후에 그들의 사업에 공중의 관심을 끌게 하여 구명정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금을 모으고 그것이 필요할 해안에 비치하기 위해 활동했다.
이 사람들은 쟈코방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정부에 의뢰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네의 사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협력과 선원의 훈련 및 토지의 지식, 특히 선원들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최초의 신호를 보고 암야에 노도 속에 보우트를 타고 들어가 어둠과 성난 파도를 무릅쓰고 조난한 배까지 가는 동안 5시간, 6시간, 10시간이나 파랑과 싸울 수 있는 사람들 ―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걸 각오가 된 사람들 ― 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연대감, 무엇으로써도 살 수 없는 희생의 정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자유로운 협의와 개인의 자의에서 생겨난 완전히 자발적인 운동이었다. 해안을 따라서 수많은 지역적 단체들이 생겨났다. 발기자들은 주인인 체하지 않는 공통의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어촌에 이해를 구했다. 어떤 부자가 해변의 마을에 구명정 본부를 세우도록 1,000파운드를 제시해 와서 그 제안이 수락되어도 장소의 선택을 그 지방의 어부들과 선원들에게 맡겼다.
새로운 구명정 설계도도 해군본부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협회의 보고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구명정의 승무원은 그들이 타는 배에 충분한 신뢰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위원회는 특히 구명정을 승무원들 자신이 바라는 형과 장비로 하도록 해야 한다.???? 그 결과로 매년 새로운 개량이 이뤄진다.
모든 일은 전적으로 여러 위원회와 지방 단체를 결성하는 자원자들에 의해서, 상호부조와 협약에 의해서 운영된다! 오 아나키스트여! 뿐만 아니라 그들은 납세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요청하지 않는데도 지난 한 해 동안 자발적인 기부금이 4만 파운드나 들어왔다.
그 성과는 다음과 같다. 협회는 1891년에 293척의 구명정을 소유했다. 같은 해에 601명의 조난한 선원들과 33척의 선박을 구했다. 설립 이해 32, 671의 인명을 구했다.
1886년에 3척의 구명정과 승무원들이 함께 침몰하자 수백 명의 새로운 자원자들이 몰려와 스스로 지역단체를 조직하고, 그 감동적인 결과로 20척의 구명정을 건조하게 되었다. 아울러 협회는 매년 어부들과 선원들에게 성능 좋은 기압계를 소매가의 3분의 1만 받고 보내고 있다. 협회는 또한 기상학의 지식을 보급시키고 학자들이 예보하는 기후의 급변을 시시각각 관계자에게 알려 주고 있다.
반복해서 말하거니와 이들 수백 개의 위원회와 지방단체들은 관료적으로 조직되지 않았으며, 전적으로 자원한 구명정 승무원들 및 그 일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중앙위원회는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고 통신연락 센터의 역할만 할 따름이었다.
교육 또는 지방세에 관한 문제에 대해 투표가 어떤 지방에서 시행될 때도 국립 구명정협회 소속 위원회들은 그 자격으로서는 토의에 참가하지 않는다. 그것은 결코 의회의 의원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겸손의 미덕이다. 그러나 다른 편으로 이 용감한 사람들은, 한 번도 폭풍우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인명구조에 관해서 그들을 대신해서 입법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조난의 첫 신호를 보고 자기네 보우트를 타고 달려가 협력하고 돌진한다. 거기에는 수놓은 제복이 아니라 진실한 호의가 있다.
이것과 같은 종류의 또 하나의 결사 즉 적십자사를 들기로 하자. 그 이름은 문제가 되지 않으나 그것을 상세히 알아보자.
50년 전에 누가 이렇게 말했다고 상상하자. ????국가는 하루 2만 명을 학살하고 5만 명 이상을 부상시킬 수는 있지만 그 희생자들을 구조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전쟁이 존재하는 한 사적 발의(私的發意)가 개입해야 하며,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이 인도적인 사업을 위해 국제적으로 단결해야 한다!????고 말이다. 감히 이와 같은 말을 한 사람은 어떤 조롱인들 당하지 않았겠는가! 맨 먼저 그는 공상가라고 불리어졌을 것이다. 그래도 입을 다물지 않으면 그는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어림없는 소리 마시오! 당신들이 말하는 자원자들은 가장 필요한 바로 그곳에는 있지 않을 것이며, 당신들이 말하는 무료 병원은 안전한 장소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며 이에 반해 야전병원에서는 절대 필요한 것들이 부족할 것이오. 국가간의 대항은 불쌍한 병사들이 구조도 받지 못하고 죽게끔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수가 많을수록 그 말은 낙담시키는 것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적십자사는 각국 어디에나 수많은 지역에서 자유롭게 조직되었다.
1870―1871년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자원자들은 사업에 착수하였다. 남녀 가리지 않고 봉사를 제공했다. 수많은 병원과 야전병원이 조직되었다. 부상자들을 위한 구급차, 식량이나 아마포 및 의약품을 나르는 기차들이 출발했다. 영국의 위원회는 음식, 의류, 기구, 곡물의 씨앗, 경작용 우마(牛馬), 기사가 딸린 증기가래 등 일체를 갖춘 수송대를 보내어 전쟁으로 황폐한 지방의 경작을 도왔다. 구스타브 모아뉴(Gustave Moynier)의 저술 ????적십자????(La Croix Rouge)를 읽어 보라. 그러면 당신은 이뤄진 일이 훌륭함에 정말로 감동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용기, 양심 및 지성을 한결같이 부인하고 그들 자신만이 막대를 가지고 세계를 지도할 수 있다고 믿는 예언자들에 관해서 보면 그들의 예언은 어느 하나도 실현되지 않았다. 적십자 자원자들의 헌신은 아무리 칭찬해도 다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오직 가장 위험한 직책들을 맡으려고 했다. 그리고 나폴레옹 3세 치하의 국가의 유급 의사들은 프러시아 군이 접근했을 때 사령부와 함께 도망갔는데 반해서, 적십자의 자원자들은 포화 아래서 그 일을 계속하여 비스마르크 군이나 나폴레옹 군 장교들이 야비한 짓들을 참고, 모든 국적의 부상자들을 아낌없이 간호했다. 네덜란드 사람, 이탈리아 사람, 스웨덴 사람, 벨지움 사람, 일본인과 중국인까지도 훌륭하게 잘 협력했다. 그들은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서 병원과 야전병원을 분할했다. 그들은 특히 병원의 위생에 대해서 서로 경쟁을 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프랑스인이 야전병원에서 네덜란드 혹은 독일의 자원 간호부들로부터 받은 친절한 간호에 대해서 깊은 감사의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지 않는가! 강권주의자에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들의 이상은 국가의 봉급쟁이가 되는 것이며 군의관인 것이다. 간호원들이 관리가 아니라면 위생적인 시설을 갖춘 병원을 가진 적십자에 아무런 관심도 없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어제 막 탄생한 조직이 이제는 수십만의 회원을 가지고 있으며, 야전병원이며 병원이며 열차를 가지고, 부상자의 새로운 치료법을 발전시킨 조직이 되었는데 그것도 소수의 헌신적인 사람들의 자발적 창의 덕분인 것이다.
국가도 이 조직체와 관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국가는 그것을 빼앗기 위해서 손을 내밀었다. 이 사회에는 종복들이 순수한 혈통의 왕자라고 부르는 자들이 총재로 되어 있다. 황제나 여왕도 그 국가의 위원회에 아낌없이 후원을 한다. 그러나 그 조직의 성공은 이런 후원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각국의 수많은 지역 위원회들, 개개인의 활동, 전쟁의 희생자들을 도우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의 헌신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 헌신은 만일 국가가 참견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어쨌든 1871년의 전상자에게 영국인과 일본인, 스웨덴인과 중국인들이 급히 구호물자를 보낸 것은 국제위원회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침략받은 나라에 병원이 세워지고 구급차들이 전투장으로 달려간 것도 국제위원회의 명령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각국에서 온 자원자들의 발의에 의해서 이뤄졌다. 그들은 쟈코방주의자들이 예상한 것과 같이 현장에서 한 번도 싸움질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국적의 구별 없이 진심으로 일에 몰두했다.
이렇게도 큰 노력이, 이렇게도 사악한 이유를 위해서 제공되는 것을 우리는 억울하게 생각하고 시인의 아들처럼 이렇게 물어 볼 수가 있겠다. ????나중에 치료해 주어야 한다면 왜 그들을 다치게 하는가?????하고 말이다. 우리는 자본의 힘이나 부르주아의 권력을 파괴하려고 함으로써 전쟁이라는 대량학살을 없애기 위해 일하고 있으며, 적십자의 독지가들이 우리와 함께 전쟁의 절멸을 달성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것을 보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이 거대한 조직을 자유로운 협약과 자유로운 부조에 의해서 생산된 성과들의 또 하나의 예로서 언급해야만 했다.
만인 인간 학살의 기술에서 가져온 예들을 더 들려고 한다면 끝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는 독일 군대가 힘입고 있는 수많은 협회들의 예를 드는 데 그치겠다. 독일 군대의 힘은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있듯이 훈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협회는 독일에서 자꾸만 늘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군사지식의 보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독일 재향군인회(Kriegerbund)의 최근의 대회들 중의 하나에는 151, 712명의 회원으로 구성되고 서로 연합한 2,452개의 분회의 대표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그 이외에도 사격회, 무술회, 전략경기회, 지형연구회 등이 있으며 독일 군대의 기술적 지식이 완성되는 것은 그러한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군대라고 하는 학교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군인과 민간인, 지리학자와 체조교사, 운동가와 기술자를 망라하는 모든 종류의 협회들의 방대한 조직망을 이루고 있다. 이들 협회는 자발적으로 발생하고, 조직되고, 연합하고, 토론하고, 전국을 탐사한다. 독일군의 진정한 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이들 자발적이고 자유로운 협회들인 것이다.
그 목적은 가증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제국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사는 국가 ― 그 ????거대한???? 사명, 군사조직에도 불구하고 ― 가 여러 단체의 자유로운 협의와 개개인 자유 발의에 일임하면 할수록 국가의 발전이 더욱더 확실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던 점이다.
전쟁에 관한 사항에 있어서까지도 오늘날 사람들이 호소하는 것은 자유로운 협의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장을 확증하기 위해서는 산길(山道)을 상세히 조하고 있는 스위스의 지형학자 자원단체, 프랑스의 비행가 단체, 영국의 30만의 지원병, 영국의 전국 포병회 및 현재 조직중에 있는 영국의 해안방어협회, 상선대, 자전거 단체 그리고 개인 자동차 및 증기정(蒸氣艇)의 새로운 조직이 국가의 영역을 침략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인용한 사실의 모두에 의해서 국가가 존재하지 않을 장래에는 자유협의가 우리에게 남겨 두게 될 것을 우리는 대강 예견할 수가 있다.
12. 반대론
Ⅰ
이제 우리는 공산주의에 대해 제기되는 중요한 반대론을 검토하자. 그것들 가운데 대부분은 단순한 오해에 기인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부는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강권적 공산주의에 대한 반대론에는 반박할 필요가 없다. 우리 자신이 그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문명된 국민들은 개인의 해방에 귀착해야 할 투쟁에 너무나도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시민생활의 세부에까지 밀고 들어오려는 정부를, 설사 그 정부가 공동사회의 선(善)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해도 용서할 수가 없다.
강권적 공산주의의 사회는 언젠가 수립되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속될 수가 없을 것이다. 전반적인 불만이 그것을 와해시키거나 혹은 자유의 원리에 따라 스스로 재조직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무정부 공산주의에 관해서이다. 그것은 개인의 전면적 자유를 인정하고, 어떤 권위도 용납치 않으며, 사람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기 위한 어떤 강제도 사용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서이다. 우리는 연구를 문제의 경제적 측면에 한정함으로써 오늘날 있는 그대로의 사람들 ― 선량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근면하지도 게으르지도 않은 ― 로 구성된 그런 사회가 성공적인 발전을 할 기회를 가질 것인가를 보기로 하자.
반대론은 잘 알려져 있다. ????만일 각인의 생활이 보장되고 있다면 그리고 임금을 얻을 필요 때문에 일하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는 그 자신이 하도록 강제되지 않는 일은 자기가 하지 않고 남에게 시킬 것이다????라고 한다. 먼저 이 반대론은 엄청난 경솔 때문에 제기된다는 것을 지적하자. 왜냐하면 이 반대론은 문제가 실제로는 한편으로는 임금노동에 의해서 과연 소기의 결과를 효과적으로 얻었는지 어떤지, 그리고 다른 편으로는 자발적인 노동이 오늘날 이미 임금노동보다도 더욱 생산적이 아닌가 어떤가를 아는 데 귀착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깊은 연구를 요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정밀과학에서는 훨씬 덜 중요하고 덜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연구를 한 후에 사실을 조심스럽게 수집하고 그 관계를 분석한 후에 비로소 주제에 관한 견해를 표명하는 데 반해서, 여기서는 어떤 사실 예컨대 미국에서의 공산주의 단체의 실패만 가지고 만족하여 숙고도 하지 않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들은 마치 반대측의 변호인 중에 자기와 대립하는 주장이나 의견의 대표자를 보지 않고 토론에서의 단순한 논적으로 보고 교묘하게 반론을 한 경우 다른 점에서는 상대가 정당하다는 것 따위는 개의치도 않는 변호인과 같은 짓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경제학 전체의 기본적 기초에 관한 연구 ― 즉 인간 에너지의 최소한 소비로써 최대량의 유용 생산물을 사회에 공급하는 데 가장 유효한 제조건의 연구 ― 가 진전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다만 진부한 것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러한 경솔함을 한층 더 명백하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학 가운데서도 경제학 건설자들의 공리, 즉 기아의 위협이 사람을 생산 노동에로 나아가게 하는 최상의 자극이라고 하는 공리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약간의 저술가를 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생산에 있어서 지금까지 너무나도 무시되고 있던 어떤 집합적 요소가 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요소는 개인적 이익보다도 더욱 중요할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임금노동에서 오는 질의 열악(劣惡), 현대의 농업 및 공업 노동에 있어서의 인간 에너지의 가공할 낭비, 자기의 짐을 남의 어깨에 떠넘기는 쾌락주의자들의 부단한 증가, 더욱더 두르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생산의욕의 결여 ― 이런 것들 모두가 ????고전????파 경제학자들마저도 관심을 가지게끔 하기 시작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는 이익이나 임금의 유혹에만 이끌린다고 상정하고 추악하게 관념화한 상상적인 인간 존재를 기초로 해서 그 위에 이론을 세운 것은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고 자문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이설(異說)은 대학에까지도 침투하여 정통파 경제학자의 저서에서도 기탄없이 서술되고 있다.
그러니 이것은 수많은 사회주의적 개혁자들이 여전히 개인적 보수를 지지하고 임금제도라고 하는 종래의 성채를 지키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 잘 지키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공격자에게 성채의 돌이 하나하나씩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
임금제도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대중이란 강제 없이는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걱정이 우리의 생존중에 두 번 표명된 것을 듣지 않았는가? 그 한 번은 흑인노예 해방 전에 미국의 노예제도 주장자에 의해서이고 두 번째는 농노해방 전에 러시아의 귀족에 의해서이다. ????매질을 하지 않으면 흑인은 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노예제도 주장자는 말했고, ????주인의 감독 없이는 농노는 밭을 갈지 않을 것이다????라고 러시아의 귀족은 말했다. 이것은 1789년에 프랑스의 영주들이 말했던 것의 되풀이이며 중세의 되풀이이며 세계와 더불어 오래된 되풀이이며 우리는 인류에 있어서의 부정을 쓸어 내는 것을 문제로 할 때 언제나 이 말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현실은 그것이 명백한 거짓임을 보여 준다. 1792년에 해방된 농민은 그들의 선조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밭을 갈았다. 해방된 흑인은 그들의 아버지보다도 더 잘 일하고 있다. 러시아의 농민도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성금요일(부활절 직전의 금요일)까지도 축제하여 그들의 해방이 보다 완전한 것인데 상응한 열성을 가지고 또다시 일에 임했다. 토지가 자기의 것인 곳에서 농민은 필사적으로 일한다. 이 말은 금언(金言)이다. 노예제도 주장론자가 늘 하는 말은 노예 소유자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을는지도 모른다. 노예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가 하면 그들도 그 가치를 알고 있다. 그 동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임금노동자는 일을 적당히 하고 있다고 해도, 열심이고 생산적인 노동은 오직 자기의 노력에 따라서 자기의 안락이 증가하는 것을 경함한 사람에게서만 얻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경제학을 경험한 사람에게서만 얻어진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 것은 경제학자들 자신이 아니었다면 누구인가? 사적소유를 찬송하는 성가는 모두 바로 이 공리에 귀착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 주목해야 할 것인데 ― 경제학자들은 재산의 은혜를 축복하고 미경작지나 소택지 또는 돌이 많은 토지가 자작농민의 땀으로 얼마나 풍부한 수확으로 뒤덮이게 되는가를 우리에게 설득할 때, 그 논지가 사유재산을 지지하고 있는 것임을 조금도 증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의 성과가 빼앗기지 않기 위한 유일한 보장은 노동 용구를 소유하는 것이다 ― 이것은 진실이다 ― 라고 인정함으로써, 경제학자들은 다만 인간은 완전히 자유롭게 일할 때, 자기의 일에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 자기를 방해하는 감시자가 없을 때, 끝으로 자기의 일이 자기와 자기처럼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이익을 가져다 주지만, 누구라도 게으른 자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때만이 진실로 일을 잘하는 것임을 증명하는 데 불과하다. 그들의 논의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며 이것은 우리도 긍정하는 것이다.
노동 용구의 소유 형태에 관해서 보면, 그것은 그들의 논증에서는 다만 간접적으로 생산물의 이익이나 개량에서 생기는 이익을 아무도 경작자로부터 빼앗아가지 않기 위한 보증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은 다른 모든 소유 형태에 반대해서 사적소유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공동소유 하에서는 토지가, 사적소유 때보다 풍부한 수확을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해야만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입증되지 않고 있다. 확증되고 있는 것은 그 반대의 사실이다.
한 예로, 겨울에 모든 촌락민이 모두 공유의 산림에 벌목을 하러 가는 스위스의 농촌을 들어보자. 가장 열심히 일하는 것과 인간의 힘이 가장 크게 발휘될 수 있는 곳은 바로 이런 노동의 향연 가운데에서이다. 어떤 임금노동자도, 사적소유자의 어떠한 노력도 이것에 필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주민 전체가 촌유(村有) 또는 마을이 임차하고 있는 목초지에서 풀베기를 할 때의 러시아의 농촌을 예로 들자, 여기서도 공동으로 일할 때 인간이 얼마나 생산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의 낫이 가장 넓은 원형을 베기 위해 경쟁하고, 여자들은 베어 둔 풀더미에 뒤질세라 있는 힘을 다하여 남자들을 뒤따라 베어나간다. 그것은 노동의 향연이며 그때 100사람이 각각 일해서는 수 일이 걸려서도 끝내지 못할 일을 수 시간 내에 끝낸다. 이것에 비하면 고립된 소유자의 일 따위는 얼마나 비참한 대조를 이루는가!
끝으로 미국의 개척자나 스위스, 독일, 러시아의 마을 및 프랑스의 몇몇 지방에서도 많은 예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 석공, 목수, 뱃사람, 어부 등이 만들고 있는 조(아리테리 art?ls)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그 제품과 보수까지도 하청업자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나누어 가지게끔 일의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또한 유목민들의 공동 수렵이나 성공을 하고 있는 공동사업을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임금노동자의 노동이나 고립된 사유주의 노동과 비교해서 공동 작업의 이론의 여지없이 우월함을 도처에서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복지 ― 즉 신체적, 예술적 및 도덕적 욕구의 만족과 그 보장은 언제나 노동에 대한 가장 강력한 자극제이었다. 그리고 임금노동자가 단순한 필수품을 힘겹게 생산하는데 반해서, 자유로운 노동자는 노력에 비례해서 자신과 남들을 위해서 안락과 사치가 증가되는 것을 보고 더욱더 많은 정력과 지능을 발휘하여 제일급의 생산품을 더욱더 풍부하게 생산한다. 한 쪽은 빈곤에 묶여 있음을 느끼며, 다른 쪽은 여가와 향락을 장래에 바랄 수가 있다. 여기에 모든 비밀이 있다. 그러므로 만인의 복지와 만인이 생명의 모든 발현을 즐길 수 있는 가능성을 목표로 하는 사회는 자발적 노동을 가져오며 이것은 현대까지 노예제, 농노제 또는 임금제의 방망이 아래서 생산한 노동보다도 무한히 우월하고 훨씬 더 많이 생산 할 것이다.
Ⅱ
오늘날 생존에 불가결한 노동을 남에게 짐지울 수 있는 자는 누구나 다 그렇게 하고 있으며 언제나 그렇게 하는 것이 인정되고 있다.
그런데 생존에 불가결한 노동이란 본질상 육체노동이다. 우리는 예술가일 수도 있고 과학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육체노동에 의해서 얻어진 것 ― 빵, 옷, 길, 배, 등불, 열 등등 ―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향락이 아무로 고도로 예술적이며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정묘하다고 해도 그들 모두가 육체노동에 의존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피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노동 ― 생활의 기초 ― 인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그것이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잘 이해한다.
왜냐하면 현재 육체노동을 한다는 것은 실제로 하루에 10시간 내지 12시간 동안 비위생적인 공장에 감금되어 20년 내지 30년 또는 평생 동안 꼭 같은 일을 하는데 묶여 있도록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임금에 몸을 팔고, 내일의 불안, 실업, 흔히 궁핍과 당신 자신과 자녀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즐겁게 하고 그리고 교육시키기 위해 40년을 일한 후에 병원에서 죽게끔 자신을 맹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전생애가 타인의 눈에 열등자의 낙인으로 보이고 자신도 그것을 의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신사 제씨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육체 노동자는 언제나 두뇌 노동자보다도 열등하다고 생각되고 있으며, 공장에서 10시간이나 일한 사람은 과학이나 예술의 고상한 즐거움을 맛보거나 감상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 없을뿐더러 자력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특권자들의 식탁에서 떨어진 빵의 부스러기로써 만족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런 상태 하에서는 육체노동은 운명의 저주라고 생각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의 꿈, 즉 그들이 이 열악한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혹은 그 자녀가 그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여 자기들도 또한 타인의 노동으로 생활하는 ????독립된???? 지위를 구축한다는 꿈을 가진다는 것도 이해할 수가 있다.
육체 노동자의 계급과 두뇌 노동자의 계급 ― 검은 손과 흰 손 ― 이 존재하는 한 사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빈곤과 불안 가운데서 살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노동자에게 이 지루한 노동에 대해서 무슨 흥미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일 아침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비참한 일에 또다시 착수하는 것을 볼 때 그들의 인내심과 일에 대한 정열에 놀라며, 또한 일정한 충격에 기계처럼 맹목적으로 따르며 내일에 대한 희망도 없이 언젠가는 그들이나 그 자손이 오늘날 소수의 특권자들을 위해서 놓여져 있는 무한정한 자연의 모든 보물, 지식과 과학적 및 예술적 창조의 모든 향수로 가득찬 이 인류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의 빛을 예견하는 일조차도 없이, 이 비참한 생활을 그들에게 계속시키는 습관이라고 하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가 임금제도의 폐지와 사회혁명을 바라는 것은 바로 이 두뇌노동과 근육노동과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그때 노동은 더 이상 운명의 저주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 ― 사람의 모든 능력의 자유로운 사용 ― 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임금제도라는 채찍질 아래서 얻어진다고 말해지는 이 고급한 노동에 관한 전설을 진지하게 분석할 때가 될 것이다.
현대 산업의 특징을 이루는 인간 에너지의 막대한 낭비를 알기 위해서는 여기저기에서 보는 모범적 공장이나 작업장이 아니라 보통 공장을 방문하면 충분하다. 다소 합리적으로 조직된 공장의 하나에 대해서 고용주에게 하루에 몇 파운드 더 많이 벌게 해주는 것 이외에 실질적인 동기도 없이 인간의 노동을 낭비하는 공장은 100개 내지 그 이상 존재한다.
여기서는 20세에서 25세의 젊은이들이 하루 종일 레이스 직기에 붙어 가슴을 굽히고 머리와 몸을 열병환자처럼 떨면서 목면사의 양 끝을 마술사같이 빠르게 잡아 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떨고 비틀거리는 신체가 어떤 자손을 이 세상에 남길 것인가? 그러나 고용주는 ????그들은 공장에서 아주 조금밖에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매일 6펜스의 순이익을 나에게 줄 뿐입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런던의 큰 공장에서는 가장 간단한 기계 시설로 성냥을 작업대에 운반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냥을 담은 그릇을 머리에 이고 일터에서 일터로 운반하기 때문에 17세에 대머리가 된 여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우직한 여자들의 노동이 싸게 먹힌다! 그런데 왜 기계를 쓰지? 이 여자들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곧 대치될 것이다. 거리에는 얼마든지 있다!
얼어붙을 듯한 추운 밤에 신문 뭉치를 안은 맨발의 아이가 부자의 저택 계단에서 잠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의 노동은 아주 싸기 때문에 사람들은 밤마다 고용하여 1프랑 어치의 신문을 팔게 하여, 불쌍한 아이는 거기에서 2내지 3 수를 받는다. 또한 대도시에는 억세고 큰 남자가 몇 개월이나 실업으로 할 일 없이 다니고 있는 데도 그의 딸은 직물공장의 과열한 증기 속에서 창백해지고 있거나, 또 그의 아들은 구두약을 손으로 병에 넣거나, 또는 적절한 기능을 배워야 하는 세월을 야채장수 광주리를 운반하는 데 보내고, 18~20세가 되면 진짜 실업자로 전락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스크바까지, 나폴리에서 스톡홀름에 이르기까지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인력(人力)의 낭비야말로 현대 산업의 커다란 특징이며…… 그것이 한층 더 심한 상업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임금제도 아래에서의 인력의 소모에 관한 과학에 붙혀지는 이 경제학이란 명칭에는 얼마나 슬픈 풍자가 들어 있는 것인가?
그뿐이 아니다. 조직이 잘된 공장의 감독에게 말을 건네면 그는 솔직히 열심히 일하는 숙련된, 힘있고 정력적인 노동자를 찾기가 어렵다고 설명하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월요일마다 구직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삼십 명 중에서 이런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일꾼을 줄이고서라도 그를 고용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으며 설사 다음날 더 나이가 많은 무기력한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해도 그를 고용합니다.???? 이렇게 해고통지를 받은 자, 또 다음날 받게 될 사람들은 모두 자본의 이 무수한 예비군 ― 실업 노동자 ―을 증강하게 되고, 일이 많아져서 바쁠 때 또는 파업자의 반항을 꺾기 위해서만 기계나 일터로 호출될 것이다. 혹은 도 일류 공장에서 추방된 사람들, 이 보통의 노동자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도 역시 연로하거나 무능한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이 가공할 예비군에 편입되어 이류 공장 ― 구매자, 특히 외국 소비자를 속이고 함정에 빠뜨려서 겨우 수지를 맞추고 경영을 해나가는 공장 ―을 끊임없이 돌아다닐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자신에게 말을 건네도 전력을 다하지 말라는 것이 공장의 규칙임을 알 것이다. 영국의 공장에 들어가서 동료들로부터 받는 이 충고에 따르지 않으면 화를 입는다!
왜냐하면 만일 기분이 좋을 때 고용주의 절실한 부탁에 양보하여 긴급한 주문에 응하기 위해 노동을 강화하는 데 동의한다면, 이 심한 노동이 장차 임금표의 기준으로서 강요되어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공장에서 그들은 전력을 다해서 생산하려고 하지 않는다. 어떤 산업에서는 고가격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산을 제한하고 때로는 ????잘해봐라????하는 암호가 통용된다. ????임금이 나쁘면 일도 나쁘다????라는 의미이다.
임금노동은 노예노동이다. 임금노동은 생산할 수 있는 만큼의 것을 생산할 수가 없고 또 생산해서도 안 된다. 임금제도를 가지고 생산적인 노동에 대한 최상의 자극이라고 하는 전설에 반기를 들 때이다. 오늘날 산업이 조부의 시대에 비해서 더 생산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 세기 말에 있어서의 물리학과 화학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지, 임금제도를 취하는 자본주의 조직 때문이 아니며 이 조직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된 것이다.
Ⅲ
문제를 진지하게 연구한 사람들은 공산주의의 장점을 어느 하나도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이 완전하게 자유로운, 즉 무정부주의적이라는 조건하에서이지만, 그들은 ????노동권????이란 이름으로 위장을 한다고 해도 국가가 관리하는 노동조합에서 금전으로 지불되는 노동은 임금제도의 특질을 가지며 또한 단점들도 보존할 것임을 알고 있다. 사회가 생산용구를 장악할 때에도 체제 전체가 곧 임금제도의 폐해 때문에 고통을 당할 것이 확실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모든 어린이에 대한 종합 교육, 문명사회에 있어서의 근면한 습관, 직업의 선택 및 변경의 자유, 그리고 만인의 복지를 위해서 평등한 사람들이 행하는 노동의 매력 등의 덕택으로 공산주의 사회는 토지의 생산성을 곧 2배로도 10배로도 할 수 있고 산업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생산자가 부족하지 않을 것도 인정하고 있다.
이상은 우리의 반대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위험은 노동을 쾌적하게 하는 매우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또 규칙적 습관을 가지지 않는 소수의 부랑자로부터 올 것이다. 지금은 기아의 예상이, 아무리 형편없는 부랑자들도 좋든 싫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게끔 하고 있다. 지각하는 자는 즉시 해고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마리의 검은 양이 전체를 더럽히기에 충분하며 서너 명의 무절제하거나 반항적인 노동자가 있으면 다른 노동자들을 타락시키고, 공장에 무질서와 반항의 정신을 가지고 들어와서 일도 못하게 되고, 이리하여 결국은 그런 선동자들을 제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는 강제의 제도에 복귀하는 것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감정을 상하지 않고 이러한 강제가 실행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는 성취한 노동에 대응하는 보수가 아니겠는가? 그 이외의 수단은 모두 자유로운 인간에게 반감을 주게 될 강권의 계속적인 간섭을 의미할 것이다????라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이것의 반대론의 전부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그것은 국가, 형법, 판사 및 간수를 정당화하려는 따위의 논의에 속하는 것이다.
????사회 관습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 아무리 소수라도 ― 있기 때문에 아무리 비용이 들어가도 국가를 유지하고 또 이 제도가 모든 종류의 새로운 악의 원천이 되겠지만 권력, 판사, 법정 및 감옥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권주의자들은 말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권력 일반에 관해서 여러 번 말해 온 것으로 대답할 수 있을 뿐이다. ????가능한 악을 피하기 위해서 당신들은 그 자체보다 더욱 커다란 악이며 고치려고 원하는 것과 동일한 악폐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수단을 채용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금제도 ― 노동력을 팔지 않고는 생활할 수 없다 ― 야말로 당신들이 그 해악을 인정하기 시작한 현재의 자본주의 제도를 만들어 낸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논의는 결국 현존 제도의 악을 정당화하기 위한 괴변일 따름이다. 임금제도는 공산주의의 단점을 제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기원은 국가와 사유제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전혀 다른 데 있다. 임금제도는 폭력에 의해 강요된 노예제와 농노제에서 생겨난 보다 더 현대화된 변형일 뿐이다. 이리하여 임금제를 편드는 이 논의는 사유재산과 국가를 변호하려고 하는 논의 이상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반대론들을 검토하고 혹시 그 속에 어떤 진리가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한다.
맨 먼저 자유로운 노동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가 정말로 나태한 자들에 의해서 위협당하고 있다고 해도 그 사회는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권적 조직 없이, 그리고 임금제에 의지하지 않고도 그 사회를 보존할 수 있을 검임이 분명하지 않는가?
일단의 자원자들이 어떤 사업을 위해 단결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으나 그 중 단 한 사람이 빈번히 자리를 비운다고 하자. 그들은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단체를 해산하든가, 총재를 임명하여 벌금을 부과하거나, 벌칙을 만들든가 하겠는가? 분명히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그들의 사업을 위태롭게 하는 그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친구여, 우리는 자네와 함께 일을 하고자 한다. 그러나 자네는 자네의 일자리를 자주 비우고 자네의 일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우리는 갈라서야만 하겠네. 다른 데로 가서 자네의 태만한 태도를 관대히 봐 줄 친구들을 찾아보게나????라고.
이 방법은 매우 자연스럽기 때문에 오늘날 도처에 실행되고 있으며 모든 산업에서 벌금, 감봉, 감시 등등 모든 가능한 제도들과 경쟁하면서 실시되고 있다. 노동자는 지정된 시간에 공장에 들어가면 된다. 그러나 일을 서툴게 하거나, 태만하거나 다른 결함에 의해서 동료들을 방해하거나, 다투기를 좋아하거나 한다면 끝장이다. 그는 공장을 떠나야만 한다.
강권주의자들의 잘못된 생각에 따르면 공장 안에서 작업의 규칙성과 품질을 유지하는 사람은 전지저능한 고용주와 그의 감독들이다.
현실에 있어서는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 복잡한 기업에 있어서는 그 노동조건에 주의하는 것은 공장 그 자체 즉 노동자 전원이다. 그래서 영국의 사영 산업의 가장 좋은 공장에는 보다 소수의 감독 ― 프랑스의 공장보다는 훨씬 적은 감독이 있을 뿐이며 그리고 영국의 국영 공장보다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소수이다.
사회의 어떤 도덕적 수준도 같은 방법으로 유지된다. 강권주의자들은 그것이 지방 자치단체의 전원 감시원이나 판사나 시의 경찰관들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그것은 그런 사람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다. ????법률이 많으면 범죄자도 많다!????는 말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말이다.
일이 이 방식으로 되어가는 것은 공장에서만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곳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으며 그 규모 또한 우리의 상상이 미치지 못할 정도이다. 다른 회사와 연합하여 영업하고 있는 철도 회사가 그 계약을 이행하지 못할 때나 그 회사의 기차가 연착을 하여 화물이 역에 방치되었을 때는 다른 회사는 그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위협하며, 보통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상업에서는 오직 소송을 두려워해서 그 계약을 충실히 지킨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고 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친다. 이런 일은 전혀 없다. 계약을 어긴 장사꾼 10명 중 9명은 판사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런던과 같이 거래가 매우 활발한 곳에서는 채권자로 하여금 소송을 제기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절대 다수의 상인들로 하여금 동료 가운데 하나를 법정에 가도록 강요한 사람과는 영구히 어떤 거래도 거절하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오늘날 공장 노동자들, 상인들, 그리고 철도회사들 사이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 왜 자발적인 노동에 입각한 사회에서는 행해질 수 없겠는가?
예컨대 조합원과 다음과 같은 계약을 이행할 것을 약정한 조합이 있다고 하자.
????우리는 당신이 20세에서 45세~50세가 되는 동안 하루에 4시간~5시간을 생활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노동에 바친다는 조건으로 당신에게 주택, 창고, 도로, 수송 수단, 학교, 박물관 등을 사용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 당신이 생활필수품의 생산에 종사하는 한 가입하고자 하는 생산단체를 스스로 선택하든가 또는 어떤 새로운 단체를 조직해도 좋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대해서는 오락, 예술, 또는 학문 등 당신의 취향에 따라서 누구하고라도 함께 단체를 만들 수 있다.????
????식량, 의복, 주택을 만드는 단체, 또는 공중위생, 운송 등의 일자리에 고용되어서 일년에 1,200시간 내지 1,500시간 일할 것 ― 이것이 우리가 당신에게 요구하는 전부이며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당신에게 이 집단들이 생산하고 있거나 생산하게 될 모든 것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보장한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든 만약 우리 연합체의 구성단체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당신이 유용한 것을 전혀 생산할 수가 없다면, 또는 만일 당신이 그것을 하기를 거절한다면 그때는 고립된 사람처럼 또는 병든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넉넉해서 당신에게 생활 필수품을 줄 수 있다면 당신에게 그것들을 기꺼이 줄 것이다. 당신은 인간이며 따라서 살 권리가 있다. 그러나 당신은 특별한 조건 하에서 살기를 원하고 대열에서 떠나기를 원했기 때문에 다른 시민들과의 일상 관계에 있어서 반드시 불편을 느끼게 될 것이다.
친구들이 당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모든 필요한 노동을 당신 대신 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도덕적 의무로부터 당신을 해방시켜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부르주아 사회의 유령이라고 간주될 것이다.????
????끝으로 만일 그것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 넓은 세상의 다른 곳에 가서 다른 조건들을 찾아보거나 지지자들을 찾아서 그들과 새로운 원리에 따른 사회를 조직하라. 우리는 우리의 원리를 더 좋아한다.????
이것이 공산주의 사회에서 게으름뱅이들의 수가 너무 많아졌을 경우 그것을 피하는 방법이다.
Ⅳ
그러나 정말로 개인의 완전한 자유에 기초하는 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매우 의심한다.
사실, 자본의 사유는 나태를 부채질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자가 아닌 한 정말로 게으른 사람은 드물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흔히들 부르주아는 게으름뱅이라고 말한다. 확실히 게으름뱅이는 많다. 그러나 그들 역시 예외적이다. 반대로 모든 개인 기업에서 매우 열심히 일하는 한 사람 또는 수인의 부르주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의 부르주아는 특권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자신에게 힘이 덜 드는 일을 배당하고 또 그들은 너무 피로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공기, 음식 등등의 위생적 조건 하에서 일한다. 그러나 이 조건이야말로 우리가 모든 노동자들에게 예외 없이 주어지기를 주장하는 그런 환경이다.
또 하나 말해둘 필요가 있는 것은 그 특권적 지위에 힘입어, 부자들은 흔히 사회에 전적으로 소용이 없는 심지어 해로운 일을 한다는 것이다. 장관, 국장, 공장주, 상인, 은행가들 등등도 매일 몇 시간씩 지루한 일에 종사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이 의무적인 일보다는 여가 시간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이 일은 십 중 구까지는 유해한 것이라고 해도 그것 때문에 그들의 피로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부르주아가 토지 귀족을 타도하고 대중을 계속 지배하는 것은 그들이 (알고 또는 모르고) 해를 끼치고, 그들의 특권적 지위를 방어하는 데 있어서 최대의 정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들이 게으름뱅이들이었다면 그들은 오래 이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며 귀족계급처럼 멸망해 버렸을 것이다. 하루에 겨우 4시간 또는 5시간의 유용하고 즐겁고 그리고 건강에 좋은 노동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들 부르주아는 맡은 일을 완전하게 수행할 것이며, 오늘처럼 열악한 노동 조건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개혁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 만일 헉슬리(Huxley) 같은 사람이 런던의 재봉 공장에서 5시간만 보낸다면 틀림없이 그는 그 공장을 자기의 생리학 연구실만큼 위생적인 것으로 만드는 수단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의 태만에 관해서 말한다면 이런 무의미한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속류의 경제학자와 박애주의자뿐이다. 이것을 현명한 산업가에게 이야기해 보자.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만약 노동자들이 게으름 피울 것만을 궁리한다면 모든 공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까닭은 아무리 엄중한 조치도 어떤 감시 제도도 소용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1887년의 겨울, 몇몇 선동자들이 ????잘 해봐라????이론 ― ????나쁜 보수에는 나쁜 일로. 편하게 하라. 과로하지 말라. 실수를 많이 하라.???? ―을 설교하기 시작했을 때 영국의 고용주들 사이에 야기되었던 공포를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노동자를 부도덕하게 만들고, 산업을 파멸시키려고 한다!????고 한때 노동자의 부도덕성과 제품의 저질을 매도한 바로 그 사람들이 외쳤다. 그러나 만일 그 노동자가 경제학자들이 묘사하는 자 ― 즉 언제나 해고로서 겁을 주어야만 하는 게으름뱅이 ― 라고 한다면 이 ????부도덕화????란 말은 무엇을 의미할 것인가?
그러니까 있을 수 잇는 게으름뱅이들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은 극소수의 문제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 소수자를 위해 입법하기 전에 그 태만의 원인을 아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는가? 지혜로운 눈으로 관찰하는 사람은 누구나, 학교에서 게으르다고 소문난 아이는 흔히 잘못된 교수법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임을 잘 안다. 또한 그것은 가난과 비위생적인 교육으로 인한 뇌빈혈에서 오는 경우도 매우 많다. 희랍어나 라틴어로는 게으른 소년도 과학을 배우고, 특히 손 작업을 가미해서 배울 때는 놀랍게 공부를 잘할 것이다. 수학에는 바보인 소녀도 만일 그녀가 이해할 수 없었던 수학의 원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면 그녀는 학급에서 수학을 제일 잘하는 학생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공장에서는 게으른 노동자도 이른 새벽에 자기 밭에 나가서는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경작하고, 전 자연이 휴식으로 들어가는 저녁때에도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먼지란 제자리를 얻지 못한 물질이라고 누가 말했다. 같은 정의가 게으르다고 불리는 사람들의 10분의 9에 적용된다. 그들은 기질이나 능력이 맞지 않는 방향으로 길을 잘못 든 사람들이다. 위인들의 전기를 읽고 우리는 그들 가운데 수많은 ????게으름뱅이들????이 있는 것에 감명을 받는다. 그들은 바른 길을 찾아낼 때까지는 게으름뱅이이었다. 그 후에 그들은 매우 근면해졌다. 다아윈(Darwin), 스테펜슨(Stephenson) 및 많은 다른 사람들이 이 범주의 게으름뱅이에 속했다.
흔히 게으름뱅이는 핀의 18번째 부분을 만드는 데 또는 시계의 100번째 부분을 만드는 데 자기의 평생을 소비하는 것을 싫어하고, 한편 그는 남아나는 왕성한 원기를 다른 곳에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또한 번번이 그는 고용주가 많은 쾌락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한평생 작업대에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고용주보다 자기가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자기의 유일한 결점은 대저택에 태어나지 않고 움막집에서 태어났다는 것임을 아는 반항자이다.
끝으로 많은 ????게으름뱅이????들은 자기들에게 맞는 직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의 손으로 만든 불완전한 것을 보고 더욱 잘 만들려고 헛되게 노력하지만 이미 익힌 나쁜 작업 습관 때문에 결코 성공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나서부터는 그 직업을 싫어하기 시작하고 그리고 다른 어떤 직업도 모르기 때문에 노동 일반을 싫어하게 된다. 성공하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들과 예술가들은 이런 경우이다.
반대로, 젊었을 때부터 피아노, 대패, 끌, 붓 또는 줄을 잘 다루는 법을 배웠고, 자기가 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피아노, 끌 또는 줄을 단념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기의 일에서 즐거움을 찾아내고 그 일을 너무 지나치게 하지 않는다면 그를 지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게으름이란 단 하나의 명칭 속에서, 서로 다른 원인들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결과들이 모여져 있는데, 그 하나 하나가 사회에 대한 악의 원천이 아니라 선의 원천일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도 범죄와 인력에 관한 모든 문제들과 같이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사실들이 모여져 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분석하는 노력은 하지 않고 게으름이나 범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은 그 처벌 자체가 ????게으름???? 또는 ????범죄????에 대한 포상을 내포하지는 않았는가 어떤가는 물어 보지도 않고 이들 잘못을 처벌하려고만 서둔다.
그래서 자유사회에서는 게으름뱅이의 수가 많아지는 것을 보아도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서 처벌을 하기 전에 게으름의 원인을 찾을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그것이 단순한 빈혈의 경우라면 어린이의 두뇌를 학문으로 채우기 전에, 그의 신체에 영양을 주어서 혈액을 만들게 하고 그를 단련시키고 그리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그를 시골 또는 해변으로 데리고 간다. 거기서 책이 아니라 야외에서 가르친다. 함께 부근의 탑까지의 거리 또는 나무의 높이를 측정함으로써 기하학을 가르치고, 꽃을 꺾고 바다에서 낚시질을 하면서 자연과학을 배우고 고기잡이에 타고 갈 보트를 건조하면서 물리학을 배운다. 그러나 절대로 그의 머리를 고전문이나 페어로써 채우지 말라. 그를 게으름뱅이로 만들지 말기를! ……
질서나 규칙적 습관을 익히지 못한 아이가 있다고 하자, 아이들에게는 처음에 저희들끼리 질서를 가르쳐 주도록 하라. 그리고 그 후에는 연구소나 공장, 많은 연장들이 있는 좁은 장소에서 하는 일이 그에게 방법을 가르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이 학교에서 무질서한 사람들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학교의 질서란 단지 걸상의 정돈에 불과하며 학교 ― 그 수업법 안에 혼란의 참 모습이 있다 ― 는 결코 아무에게도 일에 있어서의 조화, 일관성 및 작업 방법에 대한 사랑을 고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800만의 서로 상이한 능력을 나타내는 800만의 학생들에 대해서 한 사람의 장관이 결정한 교수법에 의해서는, 오직 평균적인 범용자가 생각하는 범용자에 적합한 방식을 강제할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가? 당신들의 감옥이 범죄의 학교인 것처럼 당신들의 학교는 나태의 대학이 되어 있다. 학교를 자유롭게 하고 대학의 학년제를 폐지하고 교수가 ― 되기를 자원하는 자에게 이렇게 호소하라 ― 나태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증가하는 데 도움을 줄 법률을 만들지 말고 위에서 말한 방법을 가지고 시작하라.
어떤 미소한 부분을 만드는 일에 종사할 수 없는 노동자, 작은 착공기 옆에서 숨이 막히는 듯하여 드디어 그 일을 싫어하게 된 노동자에게는 토지를 경작하거나 삼림에서 벌목을 하거나 폭풍우를 무릅쓰고 바다를 항해하거나 기관차를 운전하거나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그에게 일평생 작은 기계에 붙어 있게 하거나 나사못의 머리를 파게 하거나 바늘의 구멍을 뚫도록 강제함으로써 그를 게으름뱅이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직 나태의 원인을 없애자. 그리고 정말로 노동을 싫어하는 자, 특히 자발적인 노동을 싫어하는 자란 거의 없다는 것, 그들을 위한 법률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을 믿자.
13. 집산주의적 임금제도
Ⅰ
우리가 보기에 집산주의자들은 사회개조 계획에 있어서 이중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폐지를 말하면서도 이 체제의 토대인 두 가지 제도 ― 대의정부 및 임금제도 ― 를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소위 대의정부에 관해서는 이미 여러 번 말했다. 프랑스, 영국, 독일 및 미국의 역사가 준 모든 교훈에도 불구하고 현명한 사람들 ― 집산주의 당파에도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 은 여전히 국회나 시의회의 지지자라는 것을 우리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의회제도가 해체되고 있다는 것을 모든 면에서 목격하고 그 원리들 자체 ― 그 적용뿐만 아니라 ― 에 대한 비판이 모든 방면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어째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이미 사멸의 운명에 있는 이 제도를 옹호하는 것일까? 의회제도는 부르주아가 왕권에 반항하여 자기의 지위를 확보하고 동시에 노동자에 대한 지배를 신성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생각해 낸 것이며 두드러지게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형태이다. 이 제도의 주역들마저도 의 회 또는 지방 의회가 일국이나 한 도시를 대표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한 일이 결코 없었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부르주아는 의회제도를 통해서, 민중에게 자유를 주지 않고 왕권을 저지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러나 점차로 민중이 그들의 진정한 이해를 의식하고, 이해의 종류가 많아짐에 따라 그 제도는 더 이상 운용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의 민주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고식적 수단들을 헛되이 상상한다. 군민투표를 시행(試行)해 보았는데 실패임이 드러났다. 비례대표제가 논의되고, 소수대표제 및 그 밖의 여러 가지 다른 의회 유토피아가 논의된다. 한마디로 그들은 찾아낼 수 없는 것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과 대의제도에 대한 신뢰가 소멸해 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있다.
임금제도에 대해서도 사정은 같다. 왜냐하면 일단 사유재산의 폐지가 선포되고 모든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가 도입되면 임금제가 어떤 형태로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불구하고 집산주의자들은 노동권- 국가에 대해서 행한 노동에 대한 보수의 한 형태 ― 이란 것을 내걸고 이것을 하고 있는 것이다 로버트 오웬 (Robert Owen) 의 시대이래 초기의 영국 사회주의자들이 왜 노동권을 채용하게 되었는가를 이해하기는 용이하다. 그들은 단순 히 자본과 노동을 합치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혁명적 수단에 의해 자본가의 재산에 손을 대는 것을 반대했다.
프루동 (Proudhon) 이 그 후에 왜 같은 사상을 채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상호주의 제도에서 그는 사유재산을 존속시키면서 자본의 해악을 줄이려고 하였다. 그는 개인적 소유를 마음의 밑바닥부터 싫어하면서도 국가에 대해서 개인을 보호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소 부르주아적인 경제학자들이 노동권을 용인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자가 노동권으로 지불받든 또는 공화국이나 제국의 각인을 찍은 화폐로 지불받든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다만 주택, 토지, 공장, 생산에 필요한 자본의 개인적 소유를 임박한 파괴로부터 구할 것을 염려한다, 그리고 이 소유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노동권이 그 목적 에 매우 적합할 것이다.
노동권이 보석이나 마차와 교환할 수 있다면 집의 소유주는 집세로서 그것을 기꺼이 받을 것이다. 그리고 주택. 토지 및 공장이 개개의 소유주들에 속한다면 사람들은 그 소유자의 밭이나 공장에서 일하고 그들의 가옥에서 사는 데 대해서 어떻게 해서든 소유주들에게 보상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노동자는 모든 종류의 상품에 대해서 금화나 지폐 또는 교환 가능한 노동권으로 주인에게 지불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집이나 토지, 공장이 더 이상 사유 재산이 아니고 콤뮨 또는 국민에게 속한다는 것이 인정될 때 어떻게 해서 이 새로운 형태의 임금제도 ― 노동권 ― 를 옹호할 수가 있겠는가?
Ⅱ
여기에서 프랑스, 독일, 영국 및 이탈리아의 집산주의자들이 주창하고 있는 노동보수 제도를 좀 더 상세히 음미해 보자. 스페인의 아나키스트는 지금도 스스로 집산주의자라고 칭하고 있는데, 그들은 집산주의라는 말로써 전생산수단의 공유와 ????각 집단이 공산주의 원리 또는 기타 방식에 의하여 자기가 요구하는 대로 생산물을 분배하는 자유????를 의미하고 있다. 이 제도는 결국 이렇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전원, 공장. 학교. 병원 등에서 일한다. 노동시간은 토지, 공장, 도로 등을 소유하는 국가에 의 해서 결정된다. 매일의 노동에 대해서 노동권이 주어지며 거기에는 8시 간 노동이란 문자가 기재되어 있다. 노동자는 이 노동권으로 국영 또는 각종 단체의 점포에서 모든 종류의 상품을 구입할 수가 있다. 노동권은 이것을 분할할 수가 있고 이렇게 하여 한 시간 노동분의 고기나 십 분간 의 성냥, 또는 반 시간분의 담배 등을 살 수 있다. 집산주의 혁명 후에는 ????2 펜스짜리 비누????라고 하지 않고 ????5분짜리 비누????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집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및 마르크스)에 의해서 정해진 숙련노동과 단순노동과의 구별에 따라서 숙련노동 또는 전문적 노동은 단순노동보다도 어느 정도 더 많이 지불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리하여 의사의 한 시간 노동은 간호부의 두세 시간의 노동 혹은 토목 노동자의 3, 5시간의 노동에 상당한다고 간주되어야만 할 것이다. ????숙련노동이나 전문적 노동은 단순노동의 몇 배에 해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노동은 다소 장기간의 수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라고 집산주의자 그랜룬드(Gr?nlund)는 말한다.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게스테(Guesde)와 같은 다른 집산주의자들은 이런 구별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임금의 평등????을 선언한다. 의사도 교사도 교수도 인부와 같은 비율로 (노동권으로) 보수가 주어질 것이다. 병원에서 환자를 8시간 돌보는 것은 토목 일 또는 광산이나 공장에서 보내는 8시간과 같은 가치를 가질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더욱 양보를 한다. 그들은 불쾌하거나 비위생적인 노동 ― 하수도 작업과 같은 일은 유쾌한 노동보다도 높은 비율로 임금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수 작업원의 한 시간 노동은 교수의 두 시간 노동에 해당할 것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어떤 집산주의자들은 단체에 의한 일시지불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아울러 말해 둔다. 그래서 단체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여기에 100톤의 강철이 있다. 100명의 노동자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필요했으며, 그들이 10일간 일해야 했다. 그들의 노동은 하루 8시간이므로 100톤의 강철을 생산하는데 8, 000시간의 노동 ― 톤당 8시간 ― 이 소요되었다.???? 이것에 대해서 국가는 그들에게 l시간 짜리로 8, 000매의 노동권을 지불할 것이며 이 8, 000매의 노동권은 공장의 모든 구성원들 사이에서 그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분배될 것이다.
다른 편에서, 100명의 광부들이 8, 000톤의 석탄을 파내는 데 20일이 걸렸다면 석탄은 톤당 2시간의 가치가 될 것이며 그래서 광부조합이 받는 l시간 짜리의 노동권 16, 000장은 그들 자신의 평가에 따라 나눠질 것이다.
만일 광부들이 항의해서 l톤의 강철이 8시간이 아니라 6시간의 작업 값어치만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하든가, 교수가 간호원보다 4배나 많은 일당을 원한다면, 그때는 국가가 개입하여 그들의 쟁의를 조정할 것이다.
요컨대 집산주의자들이 사회혁명을 통해 이루려고 하는 조직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그들의 원리는 생산도구의 공유와 노동의 생산성을 감안해서 생산에 소비된 시간에 따라 각자에게 보수를 주는 것이다. 정치제도에 대해서는 어떤가 하면 그것은 선거인의 지령과 국민 투표 ― 국민에 의한 가부(可否) 투표 ― 에 의해서 수정된 의회제도일 것이다.
이 제도는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것같이 생각된다고 말해 두겠다. 집산주의자들은 혁명적 원리 ― 사유재산의 폐지 ― 를 처음엔 선언하지만 그렇게 한 다음에 곧 사유재산에서 생기는 생산과 소비의 조직을 유지함으로써 이 원리를 부인한다.
그들은 혁명적인 원리를 선언하면서 이 원리가 필연적으로 가져올 결과를 무시한다. 그들은 노동 용구 ― 토지, 공장, 도로, 자본 ― 의 개인적 소유를 폐지한다는 것 바로 그 사실이, 사회를 완전히 새로운 길로 떠나게 해야 하며, 그 목적뿐만 아니라 그 수단에 있어서도 다같이 현재 의 생산 조직을 완전히 전복해야 하며, 토지, 기계 및 모든 생산용구가 공유재산으로 생각하자마자 개개인들 사이의 일상적 관계도 변경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있다.
????사유재산을 반대한다????고 그들은 말하나 그 후 즉시 일상 나타나는 형태의 사유재산을 유지하려고 한다. 당신들은 생산에 관한 한 콤뮨을 이룬다. 공장, 철도, 항만, 전원, 도구, 기계, 또는 지금까지 발명되어진 모든 것, 광산 등이 모두 당신들의 것이다. 공동의 소유에 대한 각자의 몫에 관해서는 조금도 차별되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부터는 새로운 기계의 제작이나 새로운 광산의 채굴에서 분담하는 역할에 대해서 당신들은 상세히 논의할 것이다. 당신들은 새로운 생산의 어느 부분이 각인에게 속하는가를 주의 깊게 저울질할 것이다. 몇 분간의 노동까지도 계산하고 이웃들의 일 분이 당신의 일 분보다도 더 많은 구매력을 가지지 않도록 신경을 쓸 것이다.????
????그리고 어떤 공장에서는 한 노동자가 6대의 동력 기계를 한꺼번에 돌볼 수 있으나 다른 데서는 두 대밖에는 돌볼 수 없기 때문에 시간으로는 아무것도 측정할 수 없고 소비한 근육의 힘이나, 두뇌의 에너지 그리고 신경의 에너지를 저울질 할 것이다. 각자가 미래의 생산에 공헌하게 될 역할을 평가하기 위해서 수습의 연수를 정확하게 계산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 사람이 과거 생산에 기여한 역할은 참작하지 않는다고 선언 한 후에 이런 것을 모두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사회가 두 개의 절대적으로 반대되는 원리들, 서로 계속적으로 모순되는 두 원리를 기초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런 조직을 가지게 될 나라 또는 콤뮨은 생산용구의 사유에로 되돌아가거나 아니면 그 자체를 공산주의 사회로 전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Ⅲ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어떤 집산주의 저술가들은 숙련 또는 전문적 노동과 단순노동과를 구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은 기사, 건축가 또는 의사의 한 시간 노동은 대장장이, 석공 또는 간호원의 두 시간 내지 세 시간의 노동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다소 장기간의 수업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직업과 단순한 일용 노동자들의 노동과의 사이에도 같은 차별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구별을 한다는 것은 현사회의 모든 불평등을 유지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들과 그들을 지배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미리 구획선을 긋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회를 두 개의 전혀 다른 계급 ― 손에 굳은살이 박힌 하층자와 위에 자리 잡은 귀족 계급 ― 으로 분할하여 그 한 쪽이 다른 쪽을 위해 봉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여가의 덕으로 하층민을 양육하는 사람들 ― 지배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자 ― 과 그들을 먹여 주고 입혀 주기 위해 육체로써 일하는 사람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그것은 현사회의 두드러진 괴상한 특징들 중의 하나를 소생시켜 그것을 사회혁명에 의해서 인가하는 것이다. 그것은 붕괴하고 있는 구사회에서 이미 폐기처분을 언도받은 악폐를 원리로서 설정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회답을 우리는 안다. 그들은 ????과학적 사회주의????를 말할 것이다. 그들은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 마르크스까지도 ― 을 원용해서 기사의 ????노동력????은 인부의 ????노동력????보다 더 많이 사회에서 비용을 들이고 있으므로 임금의 등급에는 그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사실 경제학자들은 기사가 인부보다도 20배나 더 많은 봉급을 받는다면 그것은 기사를 양성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인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임을 우리에게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마르크스도 꼭 같은 구별이 육체노동의 분야들 사이에 마찬가지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는 리카르도의 가치론을 받아들여 생산물은 그 생산을 위해서 사회적으로 필요로한 노동의 양에 비례해서 교환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에 관해서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를 안다. 기술자, 학자 또는 의사가 노동자보다도 십 배 또는 백 배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직조공이 농업 노동자보다도 세 배 더 많이 받고 성냥 공장의 소녀보다 는 열 배 더 많이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그들의 ????생산비???? 때문이 아니라 교육의 독점 또는 산업의 독점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기술자, 학자 및 의사는 마치 부르주아 고용주들이 공장을 이용하듯, 또는 귀족들이 그들의 귀족 칭호를 이용하곤 했던 것과 같이, 다만 그들의 자본 ― 그들의 졸업증서 ― 을 이용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기사에게 노동자보다 20배나 더 많이 지불하는 고용주를 생각해 보더라도 그것은 단순한 개인적 이익 때문이다. 만일 그 기사가 매년 생산비를 4, 000파운드 절약할 수 있다면 고용주는 그에게 800파운드를 지불할 것이다. 그리고 고용주는 노동자들을 교활하게 혹사함으로써 노동력을 400파운드나 절약하는 직공장에게는 기꺼이 일년에 80파운드 또는 120파운드를 줄 것이다. 그는 400파운드를 벌어들일 것이 기대될 때는 여분으로 40파운드를 내어 놓을 것이며, 이것이 자본주의 제도의 본질이다. 상이한 노동 직업들 간에서도 마찬가지의 차별이 행해진다.
그러므로 숙련노동의 비용을 올리는 ????생산비????에 대해서 말하거나 대학에서 그의 청춘을 유쾌하게 보낸 학생은, 11세 때부터 광산에 들어가 창백하게 자라난 광부의 아들보다 열 배나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든가, 또는 직조공은 농업노동자보다도 세 배 내지 네 배 더 많은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든가 하는 따위의 말을 하지 말기 바란다. 직조공에게 일을 가르치는 데 드는 비용도 농부에게 일을 가르치는 비용보다도 네 배나 더 많지는 않다. 그 직조공은 다만 직물업이 유럽에 있기 때문에 아직도 공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들로부터 얻는 이익에 참여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그리고 토지의 경작보다도 우선적으로 공업에 대해서 모든 국가들이 제공하는 특권의 결과로 얻은 이익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아무도 생산자의 생산비를 계산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급 놈팽이가 노동자보다도 사회에 대하여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게 한다고 해도 모든 것 ― 가난한 사람들의 유아 사망률, 빈혈증의 참해와 요절 ― 을 감안할 때 건강한 날품팔이 노동자가 숙련된 직공보다도 더 많은 비용을 사회에 투자하지는 않았겠는가 하는 것을 알아볼 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예컨대 파리의 여직공에게 지불되는 l쉴링 3펜스의 임금, 레이스 만들기에 눈이 멀면서 자라는 오베르뉴 (Auvergne) 지방의 농부 딸에게 지불되는 3펜스, 또는 농부에게 지불되는 8펜스가 그들의 ????생산비????를 나타낸 다고 우리를 믿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보다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 놀라운 조직 때문이며 만약 이런 엉터리 임금을 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굶어 죽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에게 있어서 임금의 등급은 세금, 정부의 보호, 자본가의 독점 ― 요컨대 국가와 자본 ― 의 매우 복잡한 산물이다. 그러므로 임금의 등급에 관한 모든 이론들이 결국 현존하는 각가지 불법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후에 발명되었으며, 고려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또한 집산주의적 임금 등급이 하나의 진보일 것이라고 말할는지도 모른다. ????어떤 노동자가 보통 노동자보다 두 배 내지 세 배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것은 노동자가 일년 걸려서도 벌 수 없는 대금을 장관이 하루에 착복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것은 언제나 평등에로의 일보 전진일 것이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에게 이것은 진보의 반대이다. 새 사회에서 단순노동과 전문적 노동을 구별하는 것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결국 우리가 오늘날 따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잔인한 사실을 혁명에 의해서 인가하고 원리로서 확립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것은 1789년 8월 4일에 봉건적 제 권리의 폐지를 선언한 프랑스 국민의회의 신사들이 8월 8일에는 귀족들에 대한 상을 위해 농민들에게 과세하고 이 부과금을 혁명의 보호 하에 둠으로써 바로 그 봉건적 권리를 인가한 전례를 모방하는 것을 의미할 것인가. 그것은 또한 러시아 정부가 농노해방 때 그 전 에는 농노에게 소속되는 것으로 생각되었던 토지를 그때부터는 귀족에 속한다고 선언했던 일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또는 더 잘 알려진 예를 든다면 1871년의 콤뮨은 성벽에서 싸우는 병사들이 단지 l쉴링 3펜스밖에 받지 못했는데 반해서 콤뮨 의회의 의원들에게는 하루 l2쉴링 6펜스를 지급할 것을 결정했을 때, 이 결의는 고도의 민주적 평등의 행위라고 갈채를 받았었다. 콤뮨은 관리와 병사,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의 종전의 불평등을 인가했을 뿐이었다. 기회주의 의회에서 이런 결정이 나왔다면 칭찬할 만한 것으로 보였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콤뮨은 이리하여 혁명원리를 배반하고, 그 때문에 그것에 죽음을 선고했던 것이다. 현재의 사회제도 하에서는 어떤 장관이 연봉 4, 000파운드를 받는데 반하여 노동자는 40파운드나 그 이하로 만족해야만 한다는 것을 볼 때, 직공장은 직공보다도 두 배 내지 세 배를 더 많이 받고, 그리고 노동자 들 중에서도 하루 8실링을 받는 자로부터 3페니까지 받는 농부(農婦)에 이르기까지 등급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장관의 높은 봉급을 비난하는 동시에 직공의 8실링과 가난한 여자의 3페니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반대한다.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출생의 특권과 마찬가지로 교육의 특권을 없애라!????고, 우리가 아나키스트인 것은 바로 이런 특권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 특권들은 이 권위주의적 사회에서 이미 우리에게 반감을 안겨 주고 있다. 평등의 선언으로써 시작되는 사회에서 그것들을 용서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어떤 집산주의자들은 혁명의 숨결에 고취된 사회에서는 임금의 등급을 유지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임금의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어려움에 당면한다. 그들이 말하는 임금의 평등은 다른 집산주의자들의 임금 등급과 마찬가지로 실현 불가능한 유토피아가 되고 있다.
모든 사회적 부를 장악하고 사람들 ― 그 부의 조성에 미리 어느 정도 공헌했는가에 관계없이 ― 이 부에 대한 권리를 당당하게 선언한 사회는 화폐든 노동권이든 어느 것이든, 어떠한 임금제도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Ⅳ
집산주의자들은 ????각인에게 그 노동에 따라서????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해서 사회에 대해서 한 봉사의 정도에 따라서라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 혁명이 모든 생산수단을 공동소유로 만들자마자 실행되어져야 할 것으로서 이 원리를 권한다. 그러나 만일 사회혁명이 이런 원리를 선포한다면 그것은 인류의 발전을 저지할 것이다. 그것은 지난 수 세기가 우리에게 안겨준 사회문제를 미해결로 남겨 두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물론 일을 더 많이 할수록 보수는 더욱더 적어지는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이 원리는 일견해서 정의에 대한 갈망인 것같이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 그것은 과거의 불법의 영속화일 뿐이다. 임금제 또는 이 원리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귀착되는 것은 심한 불평등이며 현 사회의 모든 혐오스런 사물들이다. 왜냐하면 행해진 노동이 화폐 또는 어떤 다른 형태의 임금으로 평가되기 시작한 때부터, 사람은 그의 노동에 대해서 알맞게 지불될 수 있는 임금만을 받을 뿐일 것이라고 말해졌을 때부터 국가가 원조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 역사는 미리 쓰여진 것과 다름이 없었고 자본주의 사회는 이 원리 안에 맹아로서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서 같은 발전을 한 번 더 더듬을 것인가? 우리의 이론가들은 그것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혁명은 공산주의적이어야 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혁명은 유혈 속에 빠질 것이며 또 다시 시작되어져야만 할 것이다.
사회에 대해서 한 서비스는 ― 그들이 공장에서 일하든 농지에서 일하든 또는 정신적인 서비스이든- 돈으로 가치가 매겨질 수가 없다. 생산에 관해서는 가치 (지금까지는 잘못으로 교환가치라고 말해졌던 것) 또는 사용가치에 관해서 정확한 척도가 있을 수 없다. 두 사람이 다 같이 사회를 위하여 같은 정도로 마음에 드는 서로 다른 일을 몇 년 동안 하루에 5시간 일해 온 것을 보면 우리는 대체로 그들의 노동은 거의 동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일을 나누어서 한 사람의 작업량이 다른 사람이 같은 사간, 일한 생산물과 똑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가 없다.
평생 동안 하루 l0시간씩 여가를 할애한 사람은 하루 5시간의 여가만을 할애한 사람 또는 전혀 할애하지 않았던 사람보다 사회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이 봉사했다고 개략적으로 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가 두 시 간 동안 걸려서 만든 것을 가지고, 이 생산물이 다른 어떤 사람의 한 시간의 노동의 생산물보다 두 배나 더 많은 가치를 가지며, 그래서 두 사람에게 비례해서 보수를 줄 수는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공업, 농업 및 생활 전체의 복잡한 사정을 무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모든 개인적 일이 어느 정도까지 사회 전체의 과거 및 현재의 노동의 결과를 무시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강철의 시대에 살고 있는데 도 불구하고 석기 시대에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현대식 탄광에 들어가 보면 당신은 쇠 광주리를 올리고 내리는 거대한 기계를 조작하는 사람을 볼 것이다. 그는 기계의 진행을 멈추기도 하고 또는 그 움직이게도 하는 지렛대를 잡고 있다. 그가 지렛대를 내리면 그 쇠 광주리는 순식간에 그 진행을 거꾸로 한다. 그는 어지러울 정도로 신속하게 광주리를 들어올리기도 하고 바닥으로 내려 보내기도 한다. 모든 주의력을 집중해서 그는 쇠 광주리의 진행의 각 순간마다 굴대에 나타나는 지점을 표시하는 작은 계기의 눈금을 응시한다. 그리고 그 눈금이 어 떤 수준에 도달하자마자 그는 갑자기 그 쇠 광주리의 과정을 필요한 지점보다 1야드 높지도 낮지도 않은 데서 멈추게 한다. 그리고 광부들이 석탄 차에서 석탄을 퍼내고 그 대신 빈 차를 밀어내자마자 그는 지렛대를 역동시켜 또다시 그 쇠 광주리를 일정한 장소로 되돌려 보낸다.
그는 매일 8시간 내지 10시간 계속해서 이와 같은 놀라운 주의를 해야만 한다. 만일 그의 두뇌가 잠시 동안만이라도 해이해진다면 쇠 광주리는 어김없이 기어에 부딪히고, 바퀴들을 부수고, 로프를 끊고, 사람들을 압사케 하고, 그래서 광산의 모든 일을 정지시킬 것이다. 만일 그가 지렛대를 조작할 때마다 3초를 낭비한다면 ― 현대의 완비된 광산에서는 ― 그 채탄량이 하루 20톤 내지 50톤이 감소할 것이다.
광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랑은 그 사람일까? 또는 밑에서 그에게 쇠 광주리를 올리도록 신호를 하는 소년일까? 수갱(竪坑)의 밑바닥에서 순간마다 자기의 생명을 걸고 일하다가 언젠가는 가스 폭발로 목숨을 잃을는지도 모르는 광부인가? 아니면 석탄의 층을 잘못 보고 간단한 계산착오로 인해 광부들로 하여금 돌맹이를 파내도록 만드는 기사인가? 또는 자본을 광산에다 투자하고 전문가의 충고와는 반대로 거기 서 양질의 석탄이 발견될 것이라고 주장했던 광산 소유주인가?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체력, 정력, 지식, 총명 및 수련에 따라 석탄의 생산에 공헌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만인이 살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생활필수품이 모두에게 확보되었을 때는 그들의 변덕스런 소망까지도 충족시킬 권리를 가진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그들 개개인의 한 일을 평가할 수가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그들이 파낸 석탄은 전적으로 그들의 노동인가? 그것은 또한 그 광산까지 통하는 철도와 모든 역에서부터 뻗어나가는 길을 건설 한 사람들의 노동이 기도 한 것 아닌가 ? 그것은 또한 밭을 갈고 씨를 심은 사람들, 철광을 채굴한 사람들, 숲에서 나무를 자른 사람들, 광업 전체를 서서히 발전시킨 사람들, 석탄을 때는 기계를 만든 사람들 등이 한 일이 아닌가?
이런 사람들 개개의 일들 사이에는 어떤 차별도 할 수가 없다. 결과에 의해서 일을 측정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전체의 일을 나누는 것, 그리고 그 일을 소요된 노독시간의 수로써 측정한다는 것도 모순이다. 단 한 가지가 남아 있다. 그것은 욕구를 작업의 위에다 놓고, 어떻게든 생산에 관여한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보다도 먼저 살 권리를 인정하고 난 후에 복지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활동의 모든 다른 분야 ― 생활의 발현 (發顯) 전체 ― 를 들어보자. 우리들 중의 누가 자신의 일에 대해서 보다 높은 보수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가능한 사람은 질병을 찾아낸 의사인가, 아니면 위생적인 간호에 의해서 회복을 촉진시켜 준 간호부인가? 처음으로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인가, 아니면 증기를 피스톤 아래로 들어가도 록 밸브를 열어 주는 줄을 잡아당기는 것이 어느 날 싫증이 나서 그 줄을 기관의 지렛대에 잡아맴으로써 현대의 모든 기계의 본질적인 장치 ― 즉 자동 밸브 ― 를 발명한 것을 자기가 했다고는 생각조차 않했던 그 소년인가?
그것은 기관차의 발명가일 것인가, 아니면 돌은 탄력성이 없으므로 기차가 탈선하는 원인이 되는 까닭에 종전에는 철로 밑에 깔았던 돌 대신에 나무 침목으로 대체할 것을 사사한 뉴캐슬의 한 노동자일까? 그것은 기관차의 기관사일까? 기차를 세우기도 하고 통과하게도 하는 신호수일까? 기차를 한 노선에서 다른 노선으로 바뀌게 하는 전철수 일까? 또 우리는 누구에게 대서양 횡단 케이블을 힘입고 있는가? 그것은 과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는데도 불구하고 케이블로써 통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완고하게 주장한 전기 기사일까? 굵은 케이블을 포기하고 지팡이처럼 가느다란 것으로 대체하라고 충고한 박학한 자연지리학자 모오리 (Maury) 덕택일 것인가? 아니면 갑판에서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케이블을 야드마다 꼼꼼하게 검사하여, 기선회사의 주주들이 어리석게도 케이블을 못 쓰게 하기 위해 그 절연 피복 (被覆) 에 못질한 못을 빼낸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독지가들의 덕택일 것인가?
그리고 한층 넓은 영역, 그 여러 가지의 즐거움이나 고뇌나 불의의 사고를 수반하는 인생의 참된 영역에 있어서도 우리의 누구도 그것에 상응하는 금전 따위를 말한다면 우리는 분개하게 될 정도로 많은 봉사를 한 어떤 사람들을 상기할 수 없겠는가? 그 봉사는 적시에 말해진 한마디의 말밖에 아니었을는지도 모르고, 또는 몇 달이나 몇 년의 헌신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 ????계산할 수 없는 서비스????를 ????노동권????으로 평가하려고 하는가?
????각인의 일!???? ― 그러나 인간 사회는 각자가 금전, ????노동권???? 또는 시민적 보수로써 지불되는 것에 비해 무한히 더 많은 것을 기여하지 않았다면 2세대 이상 존속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어머니가 생명을 줄이면서 자녀들의 생명을 돌보지 않았다면, 만일 사람들이 아무런 보상을 요구하지 않고 계속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다면, 만일 사람들이 보수를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가장 많이 주지 않았다면 그것은 인류의 멸망이 될 것이다.
부르주아 사회가 쇠퇴하고 있으며, 우리가 지금 막다른 골목에 빠져있고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횃불과 손도끼를 가지고 과거의 제도들을 공격하지 않고서는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계산을 너무 따지고 오직 받는 만큼만 주게끔 우리 자신들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를 차변과 대변에 입각한 상업적 회사로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산주의자들도 이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만일 ????각자가 자기의 노동에 따라서????의 원리를 실행한다면 사회는 존속할 수 없을 것임을 막연하게 이해한다. 그들도 욕구 ― 변덕까지는 아니더라도 ― 개인의 욕구가 언제나 그의 일과 상응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그래서 드 페프(De Paepe)도 우리에게 말한다. ????이 원리 ― 현저하게 개인주의적인 ― 는 어린이와 청년의 교육 (생계와 숙소를 포함해서) 에 대한 사회의 간섭이나 허약자와 병자, 퇴직자와 노년의 노동자 등을 도와주는 사회적 조직에 의해서 완화될 것이다????라고.
그들도, 세 자녀의 아버지인 40세의 남자는 20세의 청년과는 다른 욕구를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도 아기에게 젖을 먹이며 그 침대 옆에서 뜬 눈으로 새우는 부인은 편안하게 잠을 잔 남자만큼 많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들도 아마 사회를 위해서 과로한 나머지 지쳐 있는 남녀는 국가의 관리라고 하는 특권적 위치에 있으면서 시간을 유유하게 보내며 ????노동권????을 주머니에 가득 넣고 있는 사람들만큼 일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서둘러 자기들의 원칙을 완화하여 이렇게 말한다. ― ????그렇고 말고요. 사회가 어린이를 양육합니다! 노인과 병자를 부조합니다! 그렇고 말고요. 욕구야 말로 사회가 일의 원칙을 완화하기 위해서 사용할 비용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자선 ― 자선, 언제나 기독교적 자선이, 이번에는 국가에 의해서 조직된 자선. 그들은 기아 수용소를 개선하고 노인과 병자의 보험을 실시한다. ― 이로써 원리가 완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뒤에 치료하기 위해 먼지 상처를 낸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이와 같이 하여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각인에게 그 욕구에 따라서????라는 정식을 기분 좋게 비웃고 난 후에 이들 위대한 경제학자들은 이제야 중요한 것 ― 생산자의 욕구 ― 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다. 그리고 급히 그 욕구를 인정한다. 다만 그 욕구를 평가하고 그 일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어떤가를 확인하는 것은 오직 국가만이 할 일이다.
국가는 자선을 베풀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영국의 빈민구조법과 구빈원까지는 일보의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겨우 일보의 거리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반항하는 사회의 이 계모 (국가)는 그 개인주의적 원칙을 완화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계모는 또한 공산주의의 방향으로, 그것도 같은 자선의 형태 하에서 여러 가지로 양보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국가는 또한 가게의 약탈을 예방하기 위하여 반 페니 짜리 식사를 나누어 주기도 하고, 전염병의 만연을 막기 위해 병원 ― 흔히 매우 빈약한 것들이나 때로는 훌륭한 것들- 을 세우기도 한다. 국가는 또한 노동 시간만큼의 임금을 준 후에 국가가 파멸시킨 사람들의 자녀들을 수용한다. 국가는 그들의 욕구를 고려한다 ― 자선에 의해서.
가난이야말로 ― 다른 데서도 말했지만 ― 부의 제일 원인이다. 처음으로 자본을 만든 것이 가난이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이 듣는 ????잉여 가치????를 축적하기 전에 사랑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자기의 노동력을 파는 데 동의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빈곤이야말로 자본가들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의 수가 중세에 매우 급속히 늘어났다면 그것은 국가의 건설에 뒤따른 침략과 전쟁과 그리고 동양의 착취에 의한 부의 증가가 그 원인이다. 이 두 원인들이 농촌공동체와 도시공동체를 결합시킨 유대를 단절하고 그들 공동체로 하여금 종전에 실행되었던 단결 대신에 착취자들에게는 매우 귀중한 임금의 원리를 선언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혁명 ― 굶주리고 억압되고 피해받는 사람들에게 매우 귀중한 이름 ― 이란 이름으로 감히 부른 것에서 솟아나오는 것이 이 원리일 것인가?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낡은 제도가 프롤레타리아의 도끼 아래 넘어지게 될 그 날에는 ????빵이다, 집이다, 만인의 안락이다!????란 외침이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소리가 청취될 것이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맛볼 수 없었던 생활, 행복, 자유에 대한 갈망을 채우는 일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이 행복을 맛보고 나서 우리는 일에, 부르주아 체제의 마지막 흔적, 즉 회계장부에서 끄집어낸 도덕, ????차변과 대변????의 철학, 그 ????내 것과 네 것????이란 제도를 없애버리는 일에 착수할 것이다.???? 프루동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파괴하면서 건설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산주의와 아나키즘의 이름으로 건설할 것이다.
14. 소비와 생산
Ⅰ
우리는 국가에서 시작하여 개인으로 내려가는 대신에 자유로운 개인에서부터 자유로운 사회에 도달하려고 하기 때문에, 모든 강권주의적 유파들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입장에서 사회와 그 정치조직을 고찰해 왔으나 경제 문제들에도 같은 방법을 따른다. 우리는 생산, 교환, 조세, 정부 등을 토론하기에 앞서 개인들의 여러 가지 욕구와 그것을 만족시키는 수단을 연구한다.
얼핏 보아서 그 차이는 매우 사소한 것으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지에 있어서는 어용 경제학의 모든 개념을 뒤집는 것이다. 어떤 경제학자들의 저술이라도 펴보라. 그것은 생산, 즉 오늘날 부의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수단들의 분석, 분업, 공장, 기계설비, 자본의 축적에서부터 설득하기 시작한다. 아담 스미스부터 마르크스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이런 방법에 의존해 왔다. 그들 저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만 소비 즉, 우리의 현 사회에서 개인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들에 관해 다루었다. 그리고 거기에서조차도 그들은 부가 어떻게 해서, 그 취득을 위해서 서로 다투는 사람들 간에 분배되는가를 설명하는 데 국한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것이 논리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욕구를 만족시키기 전에 그것을 만족시키는 수단을 만들어야 하며 소비하기 위해서는 생산해야만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욕구를 느낄 것이 아닌가? 인간은 최초에 수렵하기도 하고, 가축을 기르기도 하고, 토지를 경작하기도 하고, 기구를 만들기도 하고, 그 오랜 후에 기계를 발명하기도 한 것은 필요성이 아니었던가? 생산을 좌우하는 것은 욕구의 연구가 아닌가? 따라서 먼저 욕구의 연구부터 시작하고, 그 다음에 이들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생산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고 또 조직되어야 하는가를 논하는 것이 논리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입장에서 고찰하자마자 이론 경제학은 그 양상을 완전히 일변한다. 그것은 사실들의 단순한 기술이 아니고 생리학과 같은 하나의 과학이 되며, 그래서 우리는 이 과학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의 여러 가지 욕구와 인간 에너지의 가능한 최소 소비로써 그들 욕구를 만족시키는 수단에 관한 연구라고, 그것의 참된 이름은사회의 생리학일 것이다. 그것은 식물이나 동물의 생리학이란 병행 과학을 만드는데, 식물이나 동물의 욕구 및 그것을 충족시키는 가장 유효한 수단을 연구하는 식물 또는 동물의 생리학과 나란히 하나의 과학인 일련의 사회과학들 중에서, 유기체의 생리학이 일련의 생물학적 과학 중에서 점해졌던 것과 같은 지위를 점하게 된다.
결합해서 사회를 형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가 위생적인 집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 야만인들의 움막집은 더 이상 그들을 만족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다소 더 편하고 견고한 집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주어진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가지고 모든 사람들이 각 자의 집을 가질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 가를 아는 것이라고 우리는 말할 것이다.
우리가 곧 알 수 있는 것은 유럽의 모든 가족이 영국이나 벨기에 또는 풀맨(Pullman)시에 세워져 있는 것과 같은 안락한 집 또는 아파트를 가질 수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통풍이 잘되고 시설이 갖추어져 있고 전등이 들어오는 아담한 집을 짓기에는 적당한 일수(日數)의 노동으로써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에서 10분의 9에 달하는 가족들은 위생적인 집을 가져 본 일이 없었다. 그 이유는 일반 서민은 거의 언제나 지배자들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일을 해야만 했고, 그래서 그들이 꿈에 그리던 집을 건축하거나 건축해 받는 데 필요한 시간 또는 돈을 가져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조건이 바뀌지 않는 한 집을 가질 수가 없으며 움막에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의 방식은 경제학자들의 방식과는 정반대임을 알 수 있을 것이 다. 그들은 생산의 법칙 이 란 것을 항구화하고, 매 년 건립되는 가옥의 수를 계산하고, 신축하는 가옥의 수는 모든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하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10분의 9는 움집에서 살아야만 한 다는 것을 통계에 의하여 증명하고 있다.
그럼 식량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경제학자들은 분업의 이점을 헤아린 후에, 어떤 사람들은 농업에서 일하고 다른 사람들은 제조업에서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농민은 이러이러한 것을 생산하고, 공장은 이러이러한 것을 생산하고, 교환은 이렇게 행해진다고 하면서 판매, 이익, 순익 또는 잉여가치, 임금, 세금, 은행 등등을 분석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그들의 설득을 들은 후에 우리는 이제는 조금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그들에게 ????각 가족이 연간 10명, 20명 혹은 100명까지도 먹일 수 있는 충분한 밀을 생산할 수 있는데도 어째서 수백 명이 빵을 못 얻고 있는가?????하고 묻는다면 그들은 같은 찬송가 ― 분업, 임금. 잉여가치, 자본 등 ― 를 되풀이해서 부르면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생산이 부족하다는 동일한 결론으로 대답한다. 그 결론이 설사 진실이라고 해도 우리의 다음 질문에는 아무런 대답이 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그의 노동에 의해서 그가 필요로 하는 빵을 생산할 수 있는가? 만일 생산할 수 없다면 무엇이 그것을 못 하게 가로막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유럽에는 3억 5천만 명이 살고 있다. 그들은 그 수에 상응하는 빵, 육류, 포도주, 우유, 달걀 및 버터를 매년 필요로 한다. 또 그들은 그만큼의 집이나 의복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그들 욕구의 최소한도이다. 그들 은 이런 것을 모두 생산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일 그런 것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해도 사치품, 예술, 학문 및 오락을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충분한 여가가 있을 것인가? 한마디로 절대적 필수품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서 주어질 여가가 있겠는가? 만일 그 대답이 긍정적이라면, 그들이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결과를 성취하기에 필요한 것은 시간인가? 그렇다면 시간을 가지게 하라! 그러나 모든 생산의 목적 ― 만인의 욕구의 만족 ― 을 놓치지 않도록 하자.
만일 인간의 가장 긴급한 욕구가 지금 만족되지 않고 있다면,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나 여기에 다른 원인은 없는가? 특히 생산이 사람의 욕구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길을 앓고 그 조직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이 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실제로 모든 욕구를 정말로 만족시킬 수 있도록 생산을 재조직하는 방법을 보기로 하자.
이것이 사태에 대처하는 유일한 길일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학이 하나의 과학 ― 사회 생리학이라는 과학 ― 이 되게 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이 사회생리학은 문명국, 인도의 공동체 또는 미개인들이 행하는 생산을 다룰 때, 오늘날의 경제학자들이 설명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즉 동물학이나 식물학에서의 서술과 유사한, 단순한 서술적인 장으로 밖에는 거의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만일 이 장이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필요한 에너지의 절약이란 입장에서 서술된다면 그 장은 정밀성과 동시에 서술적인 가치를 얻을 것이다. 그것은 현 제도 하에서의 인간 에너지의 놀랄 만한 낭비를 분명히 보여 줄 것이며 이 제도가 존속하는 한 인류의 욕구는 결코 충족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할 것이다.
이리하여 관점이 완전히 바뀔 것임을 알 것이다. 아주 많은 천을 짜는 직기 뒤에서, 강철판의 구멍을 뚫는 기계 뒤에서, 그리고 배당금을 넣어 두는 금고 뒤에서 남들을 위해 준비한 잔치에서 대부분 제외되는 생산의 주인공들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가치, 교환 등의 법칙이란 지금 행해지고 있는 사실, 그러나 생산이 사회의 모든 욕구에 응할 수 있게끔 조직될 때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해질 수가 있게 되고, 실제로도 행해질 사실의 잘못된. 출발점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표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Ⅱ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 양상이 전혀 바뀌지 아니하는 경제학의 원리는 단 하나도 없다.
예컨대 매일 우리 귀에 잘 익은 과잉생산을 들어보자. 경제공황은 생산과잉의 결과라는 것 ― 어떤 시점에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면포, 모직 물, 시계가 생산되는 것 ― 을 증명하는 논의를 지지하지 않은 학술원 회원 또는 그 후보인 경제학자가 실지로 단 한 사람이라도 있겠는가? 사람들은 가능한 소비 이상을 생산하는 데 열중하고 혈안이 된 자본가들의 탐욕을 비난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문제를 깊이 연구하면 곧 이 모든 논의들이 잘못된 것임이 증명된다. 실제로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상품으로서 필요 이상으로 많이 생산되고 있는 것의 이름을 단 하나라도 들 수 있겠는가? 대량으로 수출하고 있는 나라에서 보내는 모든 상품들을 검사해 보면, 거의 모든 것들이 그것을 수출하는 나라의 주민들에게 불충분한 양밖에는 생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러시아의 농민이 유럽으로 보내고 있는 것은 과잉의 밀이 아니다. 유럽 ― 러시아에서의 소맥과 연맥의 최대 풍작에서 얻은 수확도 그 인구를 위해 필요한 정도만을 생산하고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보통 농민은 세 금이나 토지대를 내기 위하여 자기가 필요한 소맥이나 연맥까지도 팔아 버린다.
영국이 지구의 구석구석으로 보내는 석탄도 잉여분이 아니다. 왜냐하면 국내 소비를 위해서는 매년 일인당 4분의 3톤밖에 남아 있지 않고, 그래서 수백만의 영국인이 겨울에 난로 없이 지내며 약간의 야채를 삶을 수 있는 석탄밖에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불필요한 사치품은 제외하더라도) 최대의 수출국인 영국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상품으로서 생산이 아마도 필요 이상으로 풍부한 것은 오직 하나 면포뿐이다. 그런데도 영국 주민의 3분의 1 이상이 누더기를 입고 있는 것을 볼 때, 수출되는 면포는 국내의 필요한 소비량을 거의 계산에 넣지도 않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최초의 수출은 그랬는지 몰라도 일반적으로는 수출되고 있는 것은 잉여가 아니다. 맨발로 걸어다니는 구둣방의 우화는 옛날의 직인에게 그러했듯이 현재 여러 나라의 국민에 있어서도 그것은 진실이다. 즉 사람들은 필수품을 수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행해지는 것은 노동자들이 자본가와 은행가에게 토지대, 이익,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서 그들의 임금만으로는 자기가 생산한 것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 강해져 가고 있는 복지에의 욕구가 만족되어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최저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도 흔히 부족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과잉여생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경제학의 이론가들이 생각해 낸 말 에 불과하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 잘 확립된 경제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즉 ????사람은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이 생산한다????는 것이라고 모든 경제학자가 우리에게 말한다. 사람이 자기의 노동 생산물로써 생활한 후에는 언제나 잉여가 남는다, 경작자의 한 가족은 여러 가족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생산을 한다. 등등.
이렇게도 잘 반복되는 이 문구는 우리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만일 그것이 실지로 농부가 심는 과수는 30년, 40년, 100년이나 살아서 그의 후손들은 그 열매를 딸 것이다. 그가 몇 에이커의 처녀지를 개척했다면 다음 세대의 유산은 그만큼 늘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도로, 교량, 운하, 가옥, 가구는 다음 세대에 전해질 부가 그만큼 많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것이 아니다.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경작자가 자기가 소비하는 것 이상의 밀을 생산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는 세금으로써, 승려는 십일조로써, 지주는 토지대로써 언제나 경작자에게서 생산물의 대부분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옛날에는 그들이 생산한 것을 ― 불의의 사건이나 식림이나 도로 등에 드는 비용을 위해 남겨 두는 것 이외는 ― 소비했는데, 이제는 좁쌀이나 옥수수로 만든 밥을 먹고 포도주의 찌꺼기를 마실 수밖에 없게 되어 그 이외의 것은 모두 국가, 지주, 승려, 고리대금업자에게 빼앗긴 사람들의 전 계급이 만들어 냈다고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경작자는 자기가 생산하는 것보다 적게 소비하고 있다고????.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그 노동 생산물의 대부분을 팔아야만 하고 그 중의 작은 부분만을 가지고 만족해야만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욕구를 출발점으로 함으로써 가장 완전하고 가장 경제적인 방식으로 모든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조직으로서의 공산주의에 필연적으로 도달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생산 방법에서 출발하여 생산이 욕구의 만족에 상응하는가를 묻지 않고 오직 이득과 잉여가치를 노린다면 우리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또는 기껏 해야 집산주의 ― 양자는 현재의 임금제도의 두 개의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 ― 에로 도달할 것이다. 사실 우리가 개인과 사회의 욕구와, 사람이 여러 가지 발전 단계를 통해 이들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사용해온 수단을 고려한다면, 사람들은 그 노력을 현재 하고 있는 것처럼 우연에 맡기지 않고 노력을 연대화 할 필요성을 알게 된다. 소외되지 않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된 모든 부를 소수인이 점유하는 것은 일반적 이익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해 진다. 그리하여 사회의 욕구 4분의 3은 만족되지 않고 있으며 무익한 일에 대한 현재와 같은 인력의 낭비는 단지 범죄이라는 것이 확증된다. 뿐만 아니라 모든 생산물의 가장 유익한 사용은 그것들의 하나 하나에 대해서 첫째로 가장 절실한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환언하면 한 상품의 ????효용가치????는 흔히 긍정되어진 바와 같이 단순한 변덕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현실의 욕구에 가져다 주는 만족에 좌우된다는 것이 이해된다. 이리하여 공산주의 ― 즉 전체적으로 본 소비, 생산 및 교환의 종합적 견해와 이 견해에 상응하는 조직 ― 야말로 위에서 말한 사물에 대한 이 해의 논리적 귀결이며 우리의 의견으로는 진실로 과학적인 유일한 귀결이다.
만인의 욕구를 충족시킬 사회, 그리고 이 목표에 상응하도록 생산을 조직하게 될 사회는 또한 생산에 관한 몇 개의 선입견을 깨끗이 제거해야 할 것인 바,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경제학자들이 흔히 설교하는 이론 ― 분업 이론 ― 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15. 분업(分業)
경제학은 언제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사실들을 진술하고, 그것들을 지배 계급의 이익이 되도록 정당화하는 일만 해왔다. 그러므로 그것은 산업에서 나타난 분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분업이 자본가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밝혀내고 그것을 원리로서 확정시켰다.
마을 대장장이를 보라고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는 말했다. 대장장이가 못을 만드는 일에 익숙되어 있지 않으면, 힘든 노동에 비해 하루에 2~3백 개의 못밖에는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때 그 못은 질 나쁠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장장이가 못만을 만들어 왔다면 하루 2천 3백 개 나 되는 못을 쉽사리 공급할 것이다. 그래서 스미스는 서둘러 이런 결론을 내렸다. ????분업하라, 전문화하라, 더욱더 전문화하라. 못 대가리 또는 끌을 만드는 법밖에는 모르는 대장장이들을 기르자. 그러면 이 방법으로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할 것이며 부유하게 될 것이다????라고.
평생 동안 못 대가리를 만들도록 운명 지워진 대장장이는 자기 일에 대한 흥미를 잃을 것이라는 것, 그의 한정된 숙련으로 해서 전적으로 자기고용주의 처분대로 될 것이라는 것, 12개월 중 4개월 동안 실업 상태에 놓일 것이라는 것, 한 견습공에 의해서 쉽게 대체되는 때 그의 임금이 매우 낮게 떨어질 것이라는 것. 스미스는 ????분업 만세 ! 여기에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 참다운 금광맥이 있다!????라고 외쳤을 때 이상의 모든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의 외침에 합세했다.
그리고 후에 시스몬디(Sismondi)나 세이(J. B. Say)같은 사람들이 분업이란 전 국민을 부유하게 만들지 않고 오직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평생 동안 핀의 18분의 1의 품을 만들도록 운명 지워진 노동자는 더욱 바보가 되고 빈곤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에도 ― 어용 경제학자들은 무엇을 제안했던가? 그들은 아무런 제안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자가 단 한 가지의 힘들고 단조로운 기계적 일에 평생 동안 종사함으로써 지성과 발명 정신을 상실하게 될 것이며 그 반대로 일의 다양성이 국민의 생산성을 현저히 증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제기된 것은 바로 이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항구적인 또한 흔히 세습적인 분업을 설교하는 것이 경제학자만이라면 그들에게 마음대로 말하도록 방치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박사들이 가르치는 관념은 사람들의 마음에 침투하여 그들의 마음을 왜곡시키고 있으며 분업, 이윤, 이자, 신용 등은 이미 다 해결된 문제다 라고 반복해서 듣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모두(노동자 자신도 포함해서) 결국 경제학자와 동조하고 동일한 미신을 숭배하게끔 되어 있다.
이리하여 경제학의 오류를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많은 사회주의자들까지도 분업의 원리를 존중하고 있음을 본다. 혁명중의 사회조직에 관해서 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그들의 대답은 분업을 유지해야 하며 당신이 혁명 전에 핀의 끝을 만들었다면 혁명 후에도 그 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은 핀의 끝을 가는 일을 5시간만 한다. 그것도 좋겠지! 그러나 당신은 평생 동안 핀의 끝을 가는 일만 할 것이며 한편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평생 동안 수십억 개의 핀의 끝을 갈 수 있게 하는 기계를 만들거나 설계할 것이며 또 다른 사람들은 문학, 과학, 예술 등의 고급 일을 전문적으로 할 것이다. 당신은 핀의 끝을 갈기 위해 태어났고 파스퇴르(Pasteur)는 종두의 예방 접종을 발견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리고 혁명은 각자의 일을 그대로 하도록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여러 가지 나타남에 관해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에 이렇게도 유해하고 개인을 어리석게 만들며 많은 해악의 원천인 이 가공할 원리다.
우리는 분업의 견과를 충분히 잘 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는 두 개의 계급, 즉 한편에 매우 소량밖에 소비하지 않으며 힘든 육체적 노동을 할 뿐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없고, 두뇌가 활발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일이 서툰 생산자와 다른 편으로 아주 조금 생산을 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생각을 하는 특권을 가지며, 그런데도 팔로 일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전혀 모르기 때문에 올바르게 생각을 못하는 소비자의 두 계급으로 분명히 나누어진다. 토지의 노동자는 기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며 반면 기계를 사용하여 일하는 노동자는 농업에 관해서 전혀 모른다. 근대 공업의 이상은 자기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기계에 붙어서 일하는 소년공과 가 조금만 해이해지면 벌을 주는 감독이다. 공업화된 농업의 이상은 농업노동자를 없애고 3개월 정도 고용되어서 증기가래와 탈곡기를 운전하는 사람이다. 분업이란 공장에서 로프를 잡아매는 사람이나 어떤 산업의 감독, 광산의 한 곳에서 운반차를 미는 인부로서 일평생 레텔이 붙여지고 낙인찍히며 그래서 기계나 산업이나 광산의 전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결과로 근대 공업의 초기에 우리가 그렇게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기계를 창안한 노동애와 발명의 능력을 잃는 것이다.
사람들은, 개개인의 분업을 국가간에도 적용하려고 했다. 인류는 제각기 전문성을 띤 국민적 공장으로 나눠져야 한다고 말한다. 러시아는 소맥을 재배하고, 영국은 편의 방적을 하고, 벨기에는 천을 짜며, 스위스는 간호원이나 교사를 양성하는 운명에 놓여 있다고 가르친다. 각국에서도 전문화가 된다. 리용은 비판을 짜며, 오베르뉴(Auvergne)는 레이스를 만들고 파리는 장신구를 만든다. 이리하여 생산과 소비에는 다같이 무한의 분야가 제공되었고, 무한한 부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큰 희망은 기술의 지식이 세계에 보급됨에 따라 소멸되고 있다. 영국이 홀로 면포를 짜고 금속 공작을 대규모로 하고 파리만이 예술적인 장신구를 만드는 동안에는 만사가 잘되어 갔다. 분업을 설교해도 반박 당할 걱정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사상의 흐름에 이끌려서 문명국들은 모든 산업을 자기 나라에서 시도하게 되었으며, 옛날에는 다른 나라에서 얻어오던 것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식민지까지도 본국에서부터 해방되는 경향에 있다. 과학상의 발견은 생산방법을 보편화하고 지금부터는 자국에서 쉽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을 타국에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사가지고 올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산업에서의 이 혁명은 강하고 튼튼하게 확립된 것으로 믿어 왔던 분업의 이론에 정면으로 타격을 주지 않겠는가?
16. 공업의 분산(分散)
Ⅰ
나폴레옹 전쟁 후 영국은 전 세기 말에 프랑스에 일어났었던 주요 산업을 몰락시키는 데 거의 성공했었다. 영국은 또한 바다의 지배자가 되었으며 중대한 경쟁자도 없어졌다. 영국은 그 상황을 이용하여 산업의 독점을 구축하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영국만이 제조할 수 있는 상품을 자기가 정한 가격으로 이웃 나라에 강매함으로써 더욱더 많은 부를 쌓아 올렸다.
그러나 18세기의 부르주아 혁명이 프랑스에서 농노제를 폐지하고 프롤레타리아를 만들게 되자, 한동안 정체되었던 프랑스의 공업이 다시 발전하기 시작하여 19세기 후반부터는 공업 제품에 있어서 영국의 종속으로부터 탈피하게 되었다. 오늘날 프랑스 역시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프랑스는 6천만 파운드 이상의 공업 제품을 외국에 팔고 있는데, 그 3분의 2가 섬유다. 수출을 위해서 일하거나 무역으로 살아가는 프랑스인의 수는 3백만 명으로 추계된다.
이제 프랑스는 더 이상 영국의 종속국이 아니다. 프랑스도 어떤 무역 부문 예컨대 명주와 기성복의 독점에 열중하여 거기에서 막대한 이익을 올렸다. 그러나 프랑스도 영국이 면제품의 독점권을 잃은 것처럼 그 독점권을 영구적으로 앓는 시점에 와 있다.
공업은 동쪽으로 나아가서 독일에서 멈추어 섰다. 50년 전에 독일은 고도의 공업 분야에서 제조품의 대부분이 영국과 프랑스에 종속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가 않다. 지난 50년 동안, 특히 독불전쟁 이후 독일은 그 공업을 완전히 혁신했다. 새로운 공장들이 가장 좋은 기계로써 설비되었다. 맨체스터에서 나오는 면제품 또는 리용에서 나는 견직물 등의 공업 기술을 사용한 최신의 제작이 독일의 새로 지은 공장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리용과 맨체스터에서는 최신식 기계를 건조하는 데 2세대 내지 3세대의 노동자들이 필요했었지만, 독일은 완성된 상태의 것을 입수했다. 공업의 필요에 적응하는 기술학교는 공장에 많은 지적인 노동자들 ― 손과 두뇌 양쪽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실제적인 기술자들 ― 을 공급한다. 독일의 공업은 맨체스터나 리용이 50년간의 암중모색과 노력과 실험에 의해서 막 도달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결과 독일은 훌륭한 기술혁신을 통하여 프랑스 및 영국으로부터의 수입을 해마다 줄이고 있다. 독일은 이미 아시아 및 아프리카에서뿐만 아니라 런던과 파리에서도 프랑스 및 영국의 경쟁자가 되었다. 프랑스의 근시안자들은 프랑크푸르트조약에 반대한다고 고함칠는지도 모르며, 영국의 제조업자들은 독일의 경쟁력을 철도요금의 약간의 차이에 의해서 설명할는지도 모른다. 영국과 프랑스는 문제의 사소한 쪽에 망설이고 서서, 커다란 역사적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특권이었던 주요 공업이 동쪽으로 나아가서, 독일은 원기 왕성한 젊은 나라와 무역에 의해서 부국으로 만들려는 의욕이 넘치는 지적 부르주아를 발견했다.
독일이 프랑스와 영국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국산 면포나 기계 ― 사실상 모든 제품들 ― 를 만드는 동안 주요 공업은 러시아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러시아에서 제조업의 발전은 그것이 바로 어저께에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교훈적이다.
1861년 농노제 폐지 당시 러시아는 거의 아무런 공업도 없었다. 필요한 모든 기계류, 철로, 기관차, 좋은 옷감 등이 서구에서 왔다. 20년 에 러시아는 이미 85, 300개의 공장을 가졌으며, 거기에서 제조된 물품의 대가는 4배로 증가했다.
구식의 기계가 대체되었고, 따라서 현재 러시아에서 사용되는 강철, 철, 석탄, 모든 기관차, 객차, 철로, 기선의 대부분이 자국에서 생산된다. 농업국으로 머물게끔 운명 지워졌다던 경제학자들의 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공업국으로 급속히 발전하여 영국으로부터는 거의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으며, 독일로부터는 매우 적은 분량만을 주문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사실에 대해 관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제조된 면제품은 런던에서와 같은 값으로 팔린다. 자본은 국경을 인정하지 않으므로 독일과 영국 자본가들을 자기 나라의 기술자들과 감독을 대동하여 러시아와 폴란드에 공장을 건설하고 그 제품은 영국산 최고품과 우열을 다투고 있다. 내일 관세가 폐지된다고 해도 공장은 이익을 얻을 것이 분명하다. 최근에도 영국인 제조업자들은 서방으로부터 오는 천과 모직물의 수입에 또 다른 강타를 가했다. 그들은 남부 및 중부 러시아에, 브렛포드에서 가져온 가장 완전한 기계로 설비된 거대한 모직 공장을 세웠으며, 그래서 지금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 및 오스트리아에서 최고급의 천과 모직물만을 수입한다. 나머지는 국내 공업으로서 가내 공업과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주요 공업이 동쪽으로 이동할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남쪽 반도로도 뻗어 가고 있다. 1884년의 토리노 박람회는 이탈리아 공업의 진보상을 보여 주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부르주아 계급 사이의 상호 증오의 원인은 바로 공업에서의 경쟁 관계 때문인 것이다. 스페인 역시 공업국이 되어 가고 있다. 동쪽에서는 보헤미아가 완전한 기계를 설비하고 최신의 과학적 방법을 응용하여, 새로운 공업 중심지로 중요성을 띠기 시작했다. 우리는 또한 헝가리의 주요 공업의 급속한 진보를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오히려 브라질을 예로 들기로 하자, 경제학자들은 브라질에게 영구적으로 목화를 재배하여 그것을 원료 상태로 수출하여 유럽으로부터 면포를 수입하도록 선고하지 않았던가, 사실 40년 전의 브라질에는 단지 385개의 방추(紡錐)를 가진 9개의 보잘것없는 작은 공장밖에는 없었다. 오늘날 거기에는 l,500, 600개의 방추와 50, 000대의 베틀을 가지고 해마다 5억 야드의 직물을 시장에 내놓는 160개의 방직공장이 있다. 멕시코만 해도 현재 유럽에서 수입하지 않고 면포를 제조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말한다면 그들도 유럽의 후견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였고 주요 공업은 의기양양하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국민적 공업의 전문화에 반대하는 가장 명백한 반증을 제공한 나라는 인도였다.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와 같이 이 이론에 따르면 유럽의 대국들은 식민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식민지들은 원료 ― 면화, 원 모, 향료 등을 종주국에 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주국은 식민지에 대해서 완제품을 보낸다는 구실 하에 손상된 물건들, 낡은 기계의 고철 및 더 이상 쓸모가 없는 것을 처분한다. 자기 나라에서는 아무런 값어치도 없거나 극소의 가치를 지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 물건들이 엄청난 대가로 팔린다.
이것이 그 이론이고 ― 이런 것이 오랫동안 실행되었다. 인도가 파산 당하는 반면 런던과 맨체스터에서는 재산이 만들어졌다. 런던에 있는 인도 박물관에 가기만 하면 영국 상인들이 캘커타와 봄베이에서 수집한 전대미문의 부(富)를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다른 상인들과 자본가들은 매우 당연한 착상을 했는데, 그것은 영국에서 연간 2,000~2,400백만 파운드 상당의 면포를 수출하기보다는 인도 자체에서 제조함으로써 인도 주민들을 직접 착취하는 것이 더욱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계속해서 실패로 끝났다. 인도의 직조공들 ― 그 방면의 직인이 있지만 ― 은 공장 생활에 적응할 수가 없었고, 리버풀에서 보내온 기계는 불량품이었고, 기후도 고려해야 했으며, 새로운 조건들에 자신을 적응시켜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만족할 만큼 되었다. 결국 인도는 오늘날과 같이 종주국의 무서운 경쟁자가 될 수 있었다.
인도는 현재 약 23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5백만 개의 방추와 8만 대의 베틀을 가지는 200개 이상의 방직공장과 4만 개의 방추를 가지는 40개의 황마(黃麻) 공장을 소유한다. 이 나라는 중국, 네덜란드령 인도 및 아프리카로 연간 영국의 특산품이라고 불리는 백색 면포 약 8백만 파운드 상당액을 수출한다. 그리고 영국의 노동자들이 실업하여 곤궁에 빠져 있는데 반해 인도의 여자들은 하루 6펜스의 임금을 받고 극동으로 보내기 위해 기계로 면포를 짠다. 요컨대 지혜로운 제조업자들은 종전에는 영국에서 만들어진 수출용 면포를 직조한 ????일꾼????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모르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도가 l톤의 철도 영국으로부터 수입하지 않을 것임이 더욱더 명백해지고 있다. 인도에서 나는 석탄과 철광석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의 최초의 어려움이 극복되었다. 그리고 인도양의 연안에 영국의 그것과 경쟁하는 용광로들이 건설되었다.
식민지는 자기의 제품에 의해서 본국과 경쟁한다. 이것이 20세기 경제의 특징적 현상이다.
그런데 왜 인도는 제조업을 해서는 안 되는가? 그 방해물은 무엇이겠는가? 자본인가? 그러나 자본은 착취의 대상인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따라간다. 지식인가? 지식은 국경을 인정치 않는다. 노동자의 기술적 숙련도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인도의 노동자들은 현재 영국의 직물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18세 미만의 수많은 소년 소녀들보다도 열등한가?
Ⅱ
국민적 공업을 일별한 후에 특수한 산업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예로서 19세기전반에 프랑스의 특산품이었던 명주를 들자. 우리는 어찌하여 리용이 견직물 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는지 알고 있다. 원료 생사가 처음에는 남부 프랑스에서 수집되었는데, 그 후 그것을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코카서스 및 일본으로부터도 구해 들여와서 견직물을 제조했다. 1875년에 리용 지방에서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500만 킬로의 생사 중에 프랑스 생사는 40만킬로뿐이었다. 그러나 리용이 수입한 생사로써 제조한다면, 왜 스위스, 독일, 러시아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겠는가? 그 결과로 견직업이 취리히 부근의 마을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다. 바젤은 견직물 거래의 대중심지가 되었다. 코카서스 행정부는 조오지어 지방 사람들에게 완전한 양잠법을 가르치고 코카서스 농민들에게 생사를 직물로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마르세이유로부터 부인들을 그리고 리용에서 노동자들을 초빙했다. 오스트리아도 그 뒤를 따랐다. 독일은 리용의 노동자들의 도움을 얻어 큰 견직물 공장을 세웠다. 미국도 파터슨(Paterson)에 같은 일을 했다.
그래서 오늘날 견직물업은 더 이상 프랑스의 독특한 산업이 아니다. 견직물은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및 영국에서도 만들어진다. 지금 프랑스에서 사용되는 견직물 제품의 3분의 1은 수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코카서스 지방의 농민들은 리용의 비단 짜는 사람들에게 기아를 의미할 저임금을 받고 겨울에 비단 손수건을 짠다. 이탈리아와 독일은 견직물을 프랑스로 보낸다. 그래서 1870~1874년에 4억 6천만 프랑 상당의 견직물을 수출한 리용은 지금은 단지 그 액수의 반밖에는 수출을 못하고 있다. 곧 리용은 다만 고급품과 소수의 신제품만을 견본으로서 독일, 러시아 및 일본에 보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은 모든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벨기에는 더 이상 옷감의 독점국이 아니다. 옷감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 미국에서도 만들어진다. 스위스와 프랑스의 주라 지방은 시계제조의 독점지가 아니다. 시계는 도처에서 만들어진다. 스코틀랜드는 더 이상 러시아로 가는 설탕을 정제하지 않는다. 정제된 러시아 설탕이 영국으로 수입된다. 이탈리아는 석탄도 철광도 나지 않지만 자기 나라의 장갑함이나 기선의 기관을 만들고 있다. 화학 공업도 더 이상 영국의 독점이 아니다. 황산과 소다는 우랄 지방에서도 만들어진다. 빈터투어(Winterthur)에서 만들어진 증기기관은 도처에서 많은 명성을 얻어 왔었다. 그런데 현재는 석탄도 철도 없고 그것들을 수입하는 항구도 없는 ― 우수한 공업학교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 스위스는 영국보다도 더 좋고 보다 값싼 기계를 만든다. 이렇게 해서 교환의 이론은 끝난다.
모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공업에 있어서도 경향은 분산화이다. 각 국민이 농업과 가능한 많은 여러 가지의 공장을 결합시키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들이 소리높이 외쳤던 전문화는 몇몇 자본가들을 부자로 만드는 데는 좋았지만 더 이상 아무런 존재 이유가 없고 반대로 각국 각 지역에서 밀이나 야채를 재배하며 소비하는 대부분의 제품을 국내에서 제조하는 것이 유리한 것이다.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상호협동에 의한 생산의 충분한 발전과 진보에 최상의 보증이다. 이에 반하여 전문화는 진보의 정지이다.
농업은 공장들 부근에서만이 번창할 수가 있다. 그리고 한 공장이 나타나자마자 무수한 여러 가지 다른 공장들이 주변에 생겨날 것이 틀림없고 이것들은 상호 지지하고 자극하면서 전체적으로 발전한다.
Ⅲ
밀을 수출하고 밀가루를 수입하는 것, 양모를 수출하고 모직물을 수입하는 것, 철광을 수출하고 기계를 수입하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수송에 시간과 돈의 낭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발달된 공업이 없는 나라는 필연적으로 농업에서도 계속 낙후하게끔 되기 때문이며, 대 제철공장이 없는 나라는 모든 다른 산업에서도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끝으로 그 나라의 산업 및 기술적인 능력이 고용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날 생산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토지의 경작은 기계나, 대규모의 관개나, 철도나, 비료공장 없이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리고 이들 기계, 철도, 관개용 기관 등을 지역의 조건에 적응시키기 위해서는 가래가 유일한 농경기구였던 동안에는 나타날 수 없었던 발명심이나 기술적 숙련이 발달되어 있어야만 한다. 밭이 잘 경작되고 풍부한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공장이나 제작소 ― 그것도 많은 수의 ― 가 가까운 곳에서 조업하고 있어야만 한다. 일의 다양성과 공통의 목적을 향하여 통합되는 능력의 다양성 ― 여기에 진보의 진정한 힘이 있는 것이다.
그럼 사회혁명의 길에 나선 한 도시, 한 지방 ― 넓고 좁고가 중요하지 않다 ― 을 상상해 보자.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흔히 말한다. ????광산이나 공장을 수용해서 국유 또는 공유로 선언할 것이다. 각자는 평소의 노동으로 되돌아가고 이것으로 혁명은 달성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혁명은 이렇게 간단히 성취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내일이라도 파리나 리용 또는 다른 모든 도시에 혁명이 일어난다고 하자. 내일이라도 사람들이 파리나 어디에서나 공장, 가옥, 은행을 장악한다고 하자. 이 단순한 사실에 의해서 현재의 생산은 모두 일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국제무역은 정지하고 외국산 소맥이 들어오지 않게 될 것이다. 상품과 식료품의 유통은 마비될 것이다. 그리고 봉기한 도시나 지방은 자급자족을 위해서 생산을 완전히 재조직해야만 할 것이다. 이것에 실패하면 그것은 곧 죽음이다. 성공하면 그것은 그 나라의 경제생활 전체의 혁명이다.
수입 식료품의 양이 줄고 소비는 증가하며 수출을 위해서 일하던 백만의 파리인들은 실업을 하게 될 것이며, 오늘날 원근의 나라들로부터 수입되는 수많은 물품이 들어오지 않으며, 사치품 산업이 일시 중단될 것이다. 그 주민들은 혁명 후 6개월 동안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식량 창고가 바닥이 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식료를 토지에서 구할 것이 뻔하다. 파리나 그 근교에서 토지를 경작하고 농업생산과 공업생산을 결합하고, 가장 긴급한 것, 즉 빵을 생각하기 위하여 많은 자질구레한 사치품 직업을 포기할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시민들은 농업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현재 농민이 겨우 일 년 분의 식량을 얻기 위해 뼈와 살을 깎으며 일하는 방식이 아니고, 인간이 발명한 또는 발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계를 대규모로 응용해서 하는 집약농업, 시장성 야채 재배의 원리에 따라서 하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시골의 소처럼 경작하는 ― 이것에 대해서 파리의 보건상은 반대할 것이다 ― 것이 아니라, 경작의 방식을 보다 더 잘하여 그것도 장래가 아니라 즉시에, 혁명투쟁 한가운데서 적에게 패배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재조직 할 것이다.
농업은 백년 전 연맹제를 위해서, 연병장을 바친 사람들처럼 즐거움과 지식을 활용해서 일하는 지적인 사람들에 의해서 영농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농업 일은 지나치게 장시간에 걸치지 않고, 과학적으로 조직되어, 그래서 기계?기구가 개량되고 발명되며, 일하는 사람이 공동사회의 유용한 일원임을 자각할 때는 기쁨에 넘치는 노동이 될 것이다. 물론 그들은 소맥과 연맥을 재배할 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외국에서 주문해오곤 했던 많은 농작물도 생산할 것이다. 그리고 봉기한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외국이란 그 혁명운동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 모든 지역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1793년 및 1871년 혁명 동안 파리에 대해서는 그 도시 옆에 있는 지역까지도 외국이었다. 트르와(Troyes)의 곡물 투기업자들은 1793년과 1794년에 파리의 산큐로트(Sansculotte, 과격 공화주의자)들을 아사케 했는데 이것은 베르사이유의 음모가 프랑스 국토에 이끌어 온 독일 군대가 한 것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그 이상으로 악랄한 짓이었다. 봉기한 도시는 이들 ????외국인????없이 일을 해나가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프랑스는 대륙 봉쇄 이후 사탕수수가 결핍했을 때 사탕무 설탕을 발명했다. 파리는 초석(硝石)이 외국에서 들어오지 않게 되었을 때 그것을 지하실에서 찾아냈다. 우리는 과학의 초보의 한마디도 발음하지 못했던 선조들보다도 열등할 것인가?
즉 혁명을 현존 정치체제의 파괴 이상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지성의 각성이며 발명 정신을 열 배, 백 배로 하는 것이다. 새로운 과학 ― 라플라스(Laplace), 라마르크(Lamarck), 라보아제(Lavoisier)와 같은 사람들이 과학의 여명을 고하는 것이다. 제도 이상으로 정신에 있어서의 혁명이다.
그러나 지금도 변함없이 ????혁명이 성취????되면 마치 에핑(Epping)숲을 산보한 후에 자기 집에 돌아가는 것과 같이 사람들은 모두 자기의 일터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하는 경제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부르주아의 재산에 손을 댄다고 하는 그 사실만으로도 경제생활 전체를, 일터나 조선소나 공장에 걸쳐서 전면적으로 재조직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혁명은 이와 같이 이루어질 것이다. 사회혁명의 와중에서 파리가, 부르주아 질서의 지지자들에 의해서 전 세계로부터 1년 내지 2년간 고립된다고 하자. 대공장이 다행히도 아직 우둔하지 않은 이들 수백만의 지성인들 ― 발명심을 자극하는 이 소직업자의 도시 ― 은 세계를 비추는 태양의 힘과 불순한 것을 날리는 바람의 힘과 우리의 발로 딛고 서는 대지 안에 활동하는 힘 이외는 아무것도 세계에 대해서 구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의 두뇌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지구상의 한 지점에 있어서 상호 협력하는 여러 가지 직업과 혁명에 의해서 활기를 얻은 정신은 의식주를 공급하고 수백만의 지식인들의 모든 사치까지도 만족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야기책을 쓸 필요는 없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혁명의 대담한 숨결과 대중의 자발적인 약동에 의해서 풍부해지고 생기를 얻게끔 된다는 조건이 있다면 이미 알려져 있는 것, 이미 시험되어진 것, 실제적이라고 인정된 것을 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17. 농업
Ⅰ
경제학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산력을 증진시킬 수 있게끔 하는 동기는 가장 좁은 의미에 있어서의 개인적 이익이라는, 결정적으로 잘못된 원리로부터 모든 추론을 이끌어 낸다고 흔히 반박되었다.
그 비난은 정당하다. 왜냐하면 산업상의 대발견과 참다운 진보가 이루 어진 시대는 사람들이 만인의 행복을 생각하고 개인적 치부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과학의 위대한 탐구자나 위대한 발명가들은 무엇보다도 인류의 해방을 생각했다. 만일 와트(Watt), 스테펜슨(Stephenson), 쟈카르(Jacquaasd)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잠자지 않고 보낸 밤들이 노동자에 게 어 떠 한 참상을 가져다 주는가를 예견할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 설계도를 불태우고 모형을 파괴해 버렸을 것이다.
경제학의 또 하나의 원리도 전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그것은 어떤 산업 부문에서는 흔히 과잉생산이 존재한다고 해도 사회는 결코 만인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큼의 생산을 할 수 없고, 따라서 누구도 임금과의 교환으로 노동을 팔아야만 하는 일이 없을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암암리에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거의 대부분의 경제학자에게 공통되어 있는 생각이다. 경제학자들의 모든 이론, 그들이 가르치는 일체의 법칙이란 것의 근저에는 이 암묵의 승인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인들의 어떤 단체가 만인의 욕구와 그것을 만족시킬 수단이 무엇인가 자문할 때 그들은 이미 공업에 있어서나 농업에 있어서도 실제의 욕구를 만족시키도록 사용하는 것을 안다면 모든 욕구에 충분히 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이다.
이것이 공업에 대해서 사실이라는 것은 아무도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우리의 제조소, 공장, 광산의 생산물에 대해서는 이것에 아무런 의심도 할 수 없음을 알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있어서 석탄이나 광석을 채굴하고 강철을 얻고 그것을 가공하고, 의류를 제조하는 데 이미 채택하고 있는 방식을 연구하면 충분하다. 우리는 이미 생산을 4배로 늘리고 그런데도 노동을 절약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앞으로 나아가자. 농업도 공업과 같은 사정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우리가 확인하듯이 농민도 제조업자들과 마찬가지로 생산을 10배는 아니더라도 4배로 늘이는 수단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자본주의 조직 대신에 사회주의적 노동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실현 에 착수하기만 하면 곧 가능해질 것이다.
농업에 관해서 이야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쟁기 위에 웅크리고, 제대로 선별도 하지 않은 종자를 땅에 아무렇게나 뿌리고, 계절의 좋고 나쁨에 따라서 달라지는 수확을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농민을 상상하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얻는 보수는 조잡한 침대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빵, 맛이 변한 음료밖에는 구하지 못하는 농가를 라 브리에르(La Bruyere)의 말을 빌면 ????야만인????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비참한 상태를 강요당하고 있는 이런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기껏해야 세금이나 토지대를 경감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철저한 사회 개혁자들마저도 바로 서서,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하루 몇 시간의 노동에 의해서 자기 자신의 가족뿐만 아니라 적어도 100명 이상을 양육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는 농민을 감히 상상이나마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가장 열렬한 꿈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결국 농업 기술의 유년기에 불과한 미국의 대규모 재배 이상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의 농업은 훨씬 더 원대한 생각을 품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대규모의 구상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 가족에게 충분한 야채를 생산하기 위하여 한 에이커의 몇 분의 일을 요구할 뿐이다, 그리고 25마리의 뿔 있는 가축을 먹이기 위해서, 그는 이전에 한 마리를 먹이기 위해 필요했던 면적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이상적인 흙을 만드는 것이며, 계절과 기후를 무시하고 묘(苗) 주위의 공기와 흙을 모두 덥게 만드는 것이다. 요컨대 그는 이전에 50에이커에서도 잘 얻지 못했던 것을 l에이커에서 생산하려고 하며, 그것도 이전의 총 노동량을 크게 줄이면서 아무런 과로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농지의 경작에 있어서 각자가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면서 제공할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는 충분한 생산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농업의 현재 경향이다.
근대 농예화학의 창시자인 리비히(Liebeg)에 이끌린 학자들이 흔히 이론에만 열중하여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 가는 동안 무학의 농민들은 번영에로의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파리, 트로아(Troyes), 루앙(Rouen)의 시장용 야채 재배자, 스코틀랜드 및 영국의 원예가, 플란더르 및 롬바르드 지방의 농민, 저어지 섬, 게른지 섬, 그리고 시실리 섬의 농부들은 한 눈에 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광대한 지평선을 우리에게 열어 놓았다.
농민의 한 가족은 토지의 생산물로써 생활 ― 어떤 생활상인가는 잘 알려져 있다 ―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17~20에이커의 토지 소유를 필요로 했지만 지금은 집약재배에 의하여 재배하면 일가에 필요한 모든 것 ― 필수품 및 사치품 ― 을 수확하는 데 필요한 토지가 최소한 어느 정도인가 는 이제 말할 수도 없다. 그 한도는 날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0년 전에 이미 3천만의 인구가 영국에서 아무것도 수입하지 않고 그 국토 내에서 재배되는 것으로써 충분히 잘 살 수 있음이 주장되었다. 그러나 지금 프랑스, 독일 및 영국에서 최근에 이룩된 진보를 보고, 또한 우리 앞에 열린 새로운 지평선을 숙고할 때 우리는 이미 많은 토지에서 설사 그것이 박토라 할지라도 경작의 방식에 따라서 영국 국토에서 5천만 내지 6천만의 주민을 먹여 살리는 것은, 이 국토가 기를 수 있을 인구의 극히 낮은 비율 밖에는 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어쨌든(우리가 지금 보는 바와 같이) 만일 파리와 세느 및 세느 에 오와즈(Sein- et- Oise)의 두 현이 내일이라도 무정부 콤뮨으로 조직되어 거기서 모든 사람들이 팔로써 일한다면, 그리고 만일 전 세계가 거기에 단 한 부셀의 밀, 단 한 마리의 소, 단 한 광주리의 과일도 보내기를 거절하고 두 현의 지역만을 그곳 사람들에게 맡겨 둔다고 해도 ― 사람들은 자기들 스스로 필요한 밀이나 육류나 야채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인구에 충분한 양의 고급 야채까지도 생산할 수가 있을 것임은 절대적으로 증명된 것이라고 간주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것에 소비한 인간 노동의 총량은 현재 이 지역의 사람들을, 오브르뉴(Auvergne)나 러시아에서 수확되는 소맥이나 조방(粗放)재배로서, 여러 곳에서 조금씩 재배되는 야채나 남부 프랑스에서 생산되는 과일로써 먹이는 데 소비되는 노동량보다 훨씬 더 적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모든 교환을 폐지해야 한다든가 각 지방은 그 기후 때문에 다소 인공적인 재배에 의해서 밖에는 만들 수 없는 작물의 생산에도 힘써야 한다던가 하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주장되고 있는 것과 같은 교환의 이론은 이상하게 과장된 것이며 대부분은 무익하거나 오히려 유해하다는 점을 주의하고자 한다. 또한 우리는 남부 프랑스의 포도 재배자가 포도를 재배하고 러시아나 헝가리의 농민이 소맥을 만드는데 그들의 초원이나 밭이 아무리 비옥해도 소비하는 노동력을 일찍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들은 현재의 조방 재배 하에서는, 집약 재배라면 기후가 훨씬 더 온화하지 않고 땅도 비옥하지 않은 장소에서 같은 양의 생산물을 수확하는 데 필요한 것과 비교해서 한정도 없이 많은 노고를 바치고 있는 것이다.
Ⅱ
우리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는 많은 사신을 여기에 인용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상세한 자료에 관해서는 독자는 영어로 발표한 논문을 참조하도록 요청해야하겠다 (그 책은 『Fields, Factories, and Workshops<전원, 공장, 작업장>』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는 프랑스에서 출판된 약간의 좋은 저서를 읽도록 특히 간절히 권하고 싶다. 그 책 이름은 다음에 들기로 하겠다.
농업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대도시의 주민들에게 는 부근의 밭을 자기 발로 돌아다니면서 그 재배법을 연구해 볼 것을 권한다. 그리고 그 시장용 채소 재배자들을 관찰하고 질문할 필요가 컸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가 그들 앞에 열릴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20세기 의 유럽의 농업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 예견하고, 사람들이 대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얻어내는 비밀을 알 때 사회혁명이 어떤 힘을 가지고 무장되어질 것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우리의 주장이 결코 과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는 몇 개의 사실로써 충분할 것이다. 다만 일반적인 주의를 먼저 해두고자 한다.
유럽의 농업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인가를 우리는 잘 안다. 농민은 지주에게 수탈당하지 않는다면 국가에 의해서 수탈당한다. 국가가 그 수탈을 좀 너그럽게 하면 대금업자가 약속어음을 사용하여 농민을 노예화한다. 그리고 그를 금융회사에 예속하는 단순한 소작인으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지주, 국가 및 은행가는 소작료, 세금 및 이자에 의해서 농민을 약탈한다. 그 총액은 나라에 따라서 다르지만 총생산고의 4분의 1 이하로 내려가는 일은 결코 없으며 아주 흔히 그 반을 차지한다. 아주 최근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농민들은 국가에 총생산의 44퍼센트까지도 지불했다.
뿐만 아니라 지주와 국가의 몫이 더욱더 증대하고 있다. 농민이 놀랄 만한 돈을 투입하고 발명하고 또는 창의성을 발휘하여 더욱 많은 수확을 얻으면 이에 비례해서 지주, 국가 및 은행가에게 내야만 하는 공세는 증가한다. 에이커 당 수확을 배가시키면 소작료는 배가될 것이고 세금 또 한 두 배가 된다. 그리고 국가는 농산물의 가격이 상승하면 세금을 더욱 올리려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간단히 말해서 모든 곳에서 농민은 하루에 12~l6시간 일한다. 이들 셋 욕심쟁이들은 농민이 간신히 저축한 것을 빼앗아 간다. 그들은 도처에서 경작을 개량시킬 수 있는 여력까지도 도둑질해 간다. 이것이 농업이 정체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이유이다.
농업이 약간의 전진을 이룩한 것은 이들 세 흡혈귀들 사이의 싸움이 나, 지적인 노력이나, 과도한 노동에 의한 아주 예외 적인 상황 아래에서만 가능했다. 그밖에 농민 하나하나가 제조업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것이 있다. 모든 기계나 모든 가래나 모든 화학비료가 그 원가의 3배 또는 4배로 그에게 팔린다. 또한 토지 생산물의 달콤한 즙을 징수해 가는 중개업자를 잊지 말자.
이 때문에 농업은 발명과 진보의 금세기를 통해서 매우 한정된 지역에 서 때때로 또 급작이 개량되고 있을 따름이다.
다행하게도 잠시 동안 탐욕자들로부터 무시되었던 작은 오아시스가 항상 있어 왔다. 그리고 여기에서 집약농업이 인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 가를 배운다. 몇 개의 예를 들어 보기로 하자.
미국의 평원(에이커 당 오직 7~15부셀의 보잘것없는 밀을 거둘 뿐이며, 그것마저도 주기적인 한발 때문에 흔히 좌절된다)에서는 500명이 일 년에 8개월 동안만 일하여 5만 명의 연간 식량을 생산한다. 최근 3년간의 여러 가지 개량에 힘입어 한 사람의 연간 노동(300일)은 시카고에서 밀가루로 출하해서 250명의 연간 식량을 생산한다. 이러한 결과가 육체노동의 다대한 절약에 의해서 얻어진다. 즉 이 광대한 들판에서 경작, 수확, 타작은 거의 군대식으로 조직되어 불필요하게 갔다 왔다 하는 일이 없고 시간의 낭비도 없다. 모든 것이 열병식과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행해진다. 이것은 대규모 농업이다. 토지의 개량을 하지 않고 자연에서 생기는 그대로 토지에서 빼앗는 조방(粗放) 재배이다. 그 토지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거두고 난 후에는 그곳을 버리고 떠난다. 그들은 다른 곳에 처녀지를 찾아서 그것들을 차례로 다 소모해 버린다. 그러나 또한 ????집중적???? 재배도 행해지고 있다. 이것은 기계의 힘을 비는 것이며 앞으로 더욱더 보급 될 것이다. 이 재배법은 제한된 토지를 특별히 잘 경작하고, 비료를 주고, 개량하고, 작업을 집중시켜서 가능한 최대한의 수확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종류의 재배가해마다 보급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남부와 미국 서부의 비옥한 평원의 농부가 조방 재배에 의해서 에이커 당 평균 11~l5부셀의 수확으로 만족하는데 반해서 프랑스의 북부 지방에서는 보통 에이커 당 39~55부셀까지 그리고 때로는 60부셀까지도 거둔다. 이와 같이해서 4분의 1 에이커 이하의 토지에서 한 사람의 연간 소비량이 얻어진다.
재배를 집약화 할수록 더욱더 일정량을 얻기 위해 소비되는 노력은 적게 된다. 준비 작업은 인간을 대신하여 기계가 하며 간척, 돌의 제거와 같은 토지 개량을 실행하여 장차 수확을 배가시킬 수가 있다. 때로는 깊이 갈아서 하는 것만으로도 보통의 토지에서 비료도 주지 않고 해마다 굉장한 수확을 거둘 수가 있다. 이것은40년이래 런던의 근교 허토포드샤(Hertfordshire)의 로담슈테드(Rothamstead)에서 계속해서 행해진 것이다.
농업의 꿈 이야기는 더 이상 않기로 하자. 에이커 당 44부셀의 수확으로 만족하자. 이것에는 특별히 좋은 토지는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다만 합리적인 경작이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보자. 세느(Seine)와 세느 에 오와즈(Seine- et- Oise)의 주민 360만 명은 연간 식량으로서 2천 2백만부셀보다 약간 적은 곡물, 주로 소맥을 소비한다. 따라서 이 가정에 의하면 이만한 수확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는 l,507,300에이커 중에서 494,200에이커를 경작해야 한다. 그들은 가래로써 경작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한다면 너무나도 많은 시간 (에이커 당 5시간 노동으로 96일)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이번에야말로 라고 마음먹고 토지를 개량할 것이다. 간척할 곳은 간척하고 평지로 만들 곳은 평지로 만들 것이다. 돌을 제거하기도 할 것이다 ― 설사 이 준비 작업에 하루 5시간 노동으로 500만일 즉 에이커 당 평균 10일이 걸린다고 해도 말이다.
다음에 그들은 증기굴착기로써 작업하고 이때는 에이커 당 l일과 5분의 3일이 걸리며 다른 하루와 5분의 3일을 이중(二重) 쟁기로써 일할 것이다. 종자는 되는 대로 선택하지 않고 증기에 의해서 선별되어질 것이며, 그것은 사방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고 조심스럽게 일렬로 심을 것이다. 좋은 조건 하에서 작업이 진행된다면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에이커 당 하루 5시간 일해서 l0일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3, 4년 동안 l천만 일을 들여서 잘 경작하면 그 결과로 그 이후는 2시간의 반만 일해도 에이커 당 44~55부셀의 수확이 얻어질 것이다.
이리하여 360만 명의 인구에게 빵을 공급하는 데 l천 5백만 일을 소비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노동은 모두가 강철같은 근육을 가시지 않고서도, 이전에 땅에서 일을 해본 경험 없이도 할 수가 있는 그런 작업일 것이다. 작업의 시작과 그 전반적 분배는 토지를 잘 아는 사람들이 할 것이다. 노동 그 자체는 몸이 약한 파리의 남자나 파리의 여자라도 몇 시간의 견습을 한 후에는 기계를 돌볼 수도 있고 각자에게 배당된 농작업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혼돈한 현대에는 파리와 같은 도시처럼 상류 계급의 일 않하는 사람들을 계산에 넣지 않고도 여러 가지 직업의 실업자가 언제나 약 십만 명이나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현대의 조직에서 실업 중에 있는 힘만으로 써도 합리적으로 경작을 한다면, 두 현의 3백만 내지 4백만 주민에게 필요한 빵을 공급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이것은 환상적인 꿈이 아니다. 또한 더욱 놀랄 만한 결과를 가져오는 집약재배에 관해서 말한 것도 아니다. 우리는 그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던 것이지만 할레트씨(Mr. Hallett)가 3년 동안 연 구해서 얻은 밀은 이식한 단 한 개의 씨앗에서 5천 개 내지 6천 개의 그 리고 때로는 1만 개의 밀알을 생산하여 그것은 120평방 야드의 토지에서 5인 가족 분의 밀을 수확하게끔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프랑스, 영국, 벨기에 등지에서 많은 농민이 이미 하고 있던 것 ― 대규모적 실시에 의해서 이미 얻은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한다면 내일이라도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것은 혁명 없이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토지와 자본의 소유자들이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또 그것에서 이익을 얻게 될 농민들은 필요한 전진을 이룩하기 위한 지식도, 돈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사회는 아직도 이 단계에 도달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파리의 사람들이 무정부주의 콤뮨을 선언한다면 그 단계에 필연적으로 도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치스런 장난감 (빈, 바르샤바 및 베를린에서도 그것을 만들고 있다)을 계속 만들고 그래서 빵 없이 생활한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농업 노동은 기계의 도움을 얻어서 곧 모든 직업 가운데서 가장 매력있고 즐거운 것으로 될 것이다.
????보석은 이제 그만! 인형의 옷도 이제 그만! 사람들은 밭일에 나가서 자기를 단련하고 거기서 자연의 생기와 감명과 교외의 어두침침한 공장에서 잊고 있었던 ????사는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라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중세에, 스위스를 그 영주와 국왕에서부터 해방시킨 것은 총이 아니라 알프스의 목장이었다. 현대의 농업은 봉기한 도시를 부르주아 계급의 합동한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Ⅲ
우리는 파리를 둘러싼 두 개 현의 주민 350만이 어떻게 해서 이 지역의 3분의 2를 경작하여 필요한 빵을 풍부하게 가질 수 있는가를 살펴보았다. 여기서 가축 이야기로 옮겨 보자.
많은 육류를 먹는 영국인은 일 년에 성인이 평균 220파운드를 소비하고 있다. 이것이 모두 쇠고기라고 하면 소 한 마리의 3분의 l 약간 미만이 된다. 5인(어린이를 포함해서)에게는 일 년에 한 마리면 충분하다는 비율이 된다. 350만의 주민에게는 연간 70만 두를 소비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방목 방식으로는 66만 두의 소를 기르기 위해서는 적어도 500만 에이커의 토지가 필요하다. 이것은 소 한 마리 당 9에이커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샘솟는 물에 의해서 적당히 급수된 목장(최근에 프랑스의 서남부에서 수천 에이커에 걸쳐하고 있는 것과 같이)이라면 125만 에이커면 충분하다. 그러나 만일 집약재배를 실시하여 사료용으로 화염채 뿌리를 재배한다면 그 면적의 4분의 l 즉 약 31만 에이커를 필요로 할 뿐이다. 그리고 아랍인들처럼 옥수수를 사용하고 엔실레이지(사료가 푸를 때 압착한 것)법을 실천한다면 217,500에이커의 면적에서 사료를 얻을 수가 있다.
밀라노 근방에서는 하수를 이용해서 목장을 관개하여 22,000에이커의 토지에서 에이커 당 2~3마리의 소를 위한 사료를 얻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조건이 좋은 들에서는 10에이커에 177톤의 건초까지도 수확되었으며 이는 젖소 36마리의 연간 사료인 것이다, 목장 제도 하에서는 가축 한 마리 당 거의 9에이커가 필요한데 새로운 제도 하에서는 2.5에이커에서 9마리의 소를 사육할 수 있다. 이것이 근대 농업의 양극단이다. 간지(Guemsey)섬에서는 이용 토지 총 9,884에이커 중에서 거의 반(4,659에이커)이 곡물과 야채로 덮여 있고, 5,189에이커만이 목초지로 남아있다. 이들 5,189에이커에서 l,480마리의 말과, 7,260마리의 소, 900마리의 면양 및 4,200마리의 돼지가 사육된다. 이것은 면양과 돼지를 계산하지 않고서도 2에이커 당 3마리 이상의 가축을 기르는 셈이 된다. 토지가 해초와 화학비료에 의해 비옥화 된다는 것은 부언할 필요가 없다. 파리와 그 주변의 350만 주민으로 되돌아와서 볼 때, 소를 먹이기에 필요한 땅은 5백만 에이커에서부터 197,000에이커로 감소된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최저의 숫자를 고집하지 말고 보통의 집약재배의 숫자를 취하기로 하자. 소의 일부를 대신해야 하는 가축을 위해 필요한 땅을 대폭으로 추가하여 395,000에이커를 가축을 먹이는 데 할당하자 ― 좋다면 땅이 사람들에게 빵을 공급한 후에 남는 1,013, 000에이커에서 494,000에이커를 할애해도 좋다.
더욱더 관대하게 이 땅을 생산적으로 만들기 위해 500만 일을 투입한다고 하자.
그러므로 일 년간 2천만 일을 일하고, 그 중의 반은 항구적인 개량사업을 위해서 사용한 연후에도 우리는 가끔 돼지, 토끼 등에 의한 여분의 육류와 고등 야채와 과일의 공급을 받는 사람들의 소비는, 동물성 식품으로 부족한 야채의 공급을 보충하는 영국인보다 훨씬 적다는 것 등을 계산에 넣지 않더라도, 우리는 빵과 육류를 보장받을 것이다. 그런데 5시간씩 2천만 일의 노동은 주민 한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아주 조금이다. 350만의 인구는 적어도 노동이 가능한 성년 남자 120만 과 같은 수의 여자가 있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빵과 고기를 확보하는 데는 남자만 연간 17일의 노동을 필요로 할 뿐인 것이다. 우유를 얻기 위한 300만 일의 노동을 추가한다고 하자. 더욱 추가해도 좋다! 그래도 전체 적으로 3종의 주요 생산물 즉 빵과 고기와 우유를 얻기 위해서 5시간씩 25일간의 노동 ― 밭에서 하는 즐거운 일 ― 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빵과 고기와 우유는 주택과 더불어 인류의 10분의 9의 사람들의 나날의 주된 걱정거리인 것이다.
그러나 ― 되풀이해서 반복하면 ― 우리는 환상적인 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이미 널리 실행되어 온 것, 대규모적인 실험에 의해서 실증된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소유권에 관한 법률과 일반적 무지(無知)가 반대하지 않게 되면 농업은 내일이라도 재조직될 수가 있을 것이다.
사람이 먹는 것과 그것을 생산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공공의 이익임을 파리인들이 이해할 때, 이 문제가 의회나 사회에서의 토의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이해할 때, 이때야말로 사회 혁명은 실현이 될 것이다. 그때 파리의 사람들은 불충분한 나쁜 식량을 사기 위해서 생애의 3분의 l을 바친 후에, 성벽 밑에서 혹은 요새 안에서(그것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몇 시간의 건강하고 흥미있는 노동에 의해서 스스로 식량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이제 과일과 야채로 옮기자. 파리의 교외로 나가서 대학구(大學區)서 수마일 떨어져 있는 곳에 경제학자들이 무시하는 여러 가지 경이를 만들어 내고 있는 야채 재배장을 찾아가 보자. 그리고 야채 재배에 관한 책의 저자인 퐁스(Mr. Ponte) 씨를 방문했다고 하자. 그는 자연이 가져다주는 것을 비밀로 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퐁스씨와 그가 고용하고 있는 사람들은 흑인처럼 일하고 있다. 그들은 3에이커보다 약간 작은(2.7에이커) 토지에서 재배하는 데 8명이 종사하고 있다. 하루에 l2시간에서 15시간, 즉 필요한 것보다도 3배나 일하고 있다. 24명이 일해도 부족할 것인데 말이다. 이에 대해서 퐁스씨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2.7에이커의 토지에서 연간 l00파운드라는 소작료와 세금을 내고 병영에서 사오는 비료대 100파운드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하기 때문에 착취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착취당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착취하는 것이다????라고 그는 대답할 것이다. 그 시설에도 l, 200파운드가 소요되었는데 그 반 이상은 틀림없이 게으름뱅이 산업 귀족에게 바치는 공물이다. 요컨대 그의 시설은 기껏해야 3,000 일 이상의 노동일일 것이며 어쩌면 그것보다 훨씬 적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수확을 보자. 당근이 l0톤, 마늘, 무, 소야채류 10톤, 양배추 6천 포기, 꽃양배추 3천 포기, 토마토 5천 광주리, 고급 과일 5천 다스, 샐러드용 야채 15만 4천 개 등 요컨대 2.7에이커 ― 세로 120야드 가로 109야드 ― 의 토지에서 총량123톤의 야채와 과일을 수확하였는데 이것은 에이커 당 44톤 이상이 된다.
그런데 인간이 일 년간 먹는 야채와 과일은 660파운드 이상이 안 된다. 그래서 2.5에이커의 토지를 가진 야채 재배가는 연간350명의 성인들 식탁에 공급할 충분한 야채와 과일을 생산한다. 이리하여 2.7에이커를 경작하는데 일 년 내내 고용된 24명은 하루에 5시간 일하는 것으로 350명의 성인들 즉 적어도 500명의 사람들에게 공급할 충분한 야채와 과일을 생산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퐁스씨와 같이 재배함으로써 ― 그런데 그의 결과를 능가하는 결과가 이미 나타났다 ― 500명분의 야채와 과일을 생산하는데 350명의 성인이 연간 100시간보다 약간 더 많은 시간 (103시간)을 일해야 한다.
이런 생산은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주의하자. 파리의 성벽 안 2,220에이커의 지역에서 5,000명의 야채 재배자들이 그만한 생산을 하고 있다. 단지 이들 채소 재배자들은 오늘날 에이커 당 32파운드의 평균소작료를 지불하기 위해서 소처럼 일해야 할 상태에 있다.
그러나 누구나가 다 입증할 수 있는 이 사실은 17,300에이커(우리에게 남아 있는 519,000에이커 중에서)에서 우리의 두 현에 사는 350만의 주민들에게 필요한 모든 야채와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분량의 과일을 공급해 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가?
이만한 과일과 야채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량을 보면 채소 재배자들의 노동 수준으로 측정한다면 5시간씩 일하는 5천만 일의 노동(성인 남자 일인당50일)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이 노동량은 저지(Jersey) 섬이나 간지 섬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더욱 줄일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만 파리의 채소 재배자들은 대부분 턱없이 비싼 임차료를 지불하는데 도움이 되는, 계절을 앞서는 고가(高價)의 과일을 특별히 생산하기 위해서 심하게 일하지 않을 수 없으며 또한 그 재배 방법 자체도 보통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설비에 많은 비용을 들일만 한 자력이 없고 유리, 목재, 철 및 석탄을 구입하기 위해 과중하게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에 퇴비에 인공열(人工熱)을 구하고 있지만 이것은 석탄과 온실을 이 용하면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Ⅳ
말하자면 야채 재배가는 그 놀라운 수확을 얻기 위해 자신을 기계와 같은 상태로 빠뜨리고 생활의 모든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이 각고정려(刻苦精勵)한 사람들은 토양을 만드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점에서는 인류에게 큰 공헌을 했다. 그들은 구식의 퇴비 온상에서 흙 만들기를 하여 묘목이나 조생(早生)과일에 필요한 열을 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들은 흙을 아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일부는 팔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채원이 해마다 l 인치씩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흙 만들기는 아주 훌륭했기 때문에 바랄(Barral)은 그의 『농예백과전서』 중의 야채재배란 논문에서 이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최근의 계약에서는 자기가 경작한 농지에서 떠날 때에는 흙을 가지고 간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가구와 유리 프레임과 함께 짐차에 실려 가는 옥토(沃土) ― 여기에 땅값을 가지고 토지의자연적 이 점을 균등화하는 수단이라고 말한 리카르도와 같은 학자의 박식한 논설에 대한 실제 재배가의 해답이 있다. ????토지에는 인간의 값어치만한 값어치가 있다???? ― 이것이 원예가의 모토이다.
그러나 파리나 루앙의 야채 재배가들은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하여 간지 섬이나 잉글랜드의 동료들보다도 3배나 더 몸을 피로시키고 있다. 여기 에서는 농업에 공업을 응용하여 온실에 의해서 흙뿐만 아니라 기후까지도 인공적으로 만들고 있다.
50년 전에는 온실은 부자의 사치품이었다. 그것은 이국적인 혹은 오락 용 식물을 재배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통의 것이 되었다. 간지 섬에서는 모든 농원과 모든 채소원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작은 온 실은 헤아릴 필요조차 없고 저지 섬이나 간지 섬에서는 수백 에이커가 전부 유리로 덮여 있다.
그것은 화강암의 벽으로 된 온실에서 움막식 온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들은 자본가들과 중간상인들에게 지불되는 모든 공물에도 불구하고 평방 야드 당 3실링 6센트 이상은 들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매년 적어도 3, 4개월간 보온된다. 그러나 전혀 난방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도 훌륭한 결과를 가져다준다. 물론 포도나 열대 식물의 재배는 안 되지만 감자, 당근, 완두, 토마토 등의 재배는 잘된다. 이와 같이 해서 기후로부터 해방되며 또한 온상에서의 중노동을 피하며, 비료는 거의 사지 않고 노동도 일부 삭감하고 있다. 에이커 당 3명이 각각 일주일에 60시간 이하로 일하여 좁은 장소에서 종전에 몇 에이커씩의 토지에서 생산했던 양을 생산한다.
최근에 이뤄진 이 재배의 결과로 만일 한 도시의 성인 반만이 최고급 과일과 조생(早生) 야채의 재배를 위해서 연간 50일의 반나절 노동에 종사한다면 모두가 일 년 내내 고급 과일과 야채를 무제한으로 공급받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온실은 오늘날 유리 속에 있는 부엌 채원이 되어 가는 경향에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할 때 판자와 유리로 된 가장 단순한 비난방 움막이 놀랄만한 수확을 준다. 예컨대 4월말에 첫 수확으로서 에이커 당 500부셀의 감자를 수확하고 그 후 에 제2차 및 3차 수확이 유리 밑에서 열대와 같은 온도에서 얻어진다. 나는 이미 『전원, 공장, 작업장』에서 이 방면에서의 가장 충격적인 사실들을 서술했다. 여기서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지(Jersey)에서 훈련된 정원사 한 사람만 있는 온실에서 34명이 l3에이커를 재배하였는데 거기서 그들은 이 특수 재배를 위해서 l,000톤 이하의 석탄을 사용하여 143톤의 과일과 때 이른 야채를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구에른시와 저지에서 대규모로 행해지고 있으며, 아주 많은 기선들이 구에른시와 런던 사이를, 온실의 수확물을 수송 할 목적으로 끊임없이 왕래한다.
오늘날 500부셀의 감자와 동등한 수확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매년 4에이커의 토지를 갈고, 심고, 재배하고, 잡초를 뽑고 해야 한다. 이에 반해서 유리를 사용하면 처음에는 온실을 짓기 위하여 평방 야드 당 반일의 노동을 투입해야 한다고 가정해도, 우리는 그 후 적어도 이전에 필요했던 연간 노동의 반, 그리고 아마 4분의 3을 절약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며 누구나가 확인할 수 있는 결과이다. 그리고 이 사실들은 사람이 토지를 지혜롭게 다룬다면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인가를 가르쳐 주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Ⅴ
위에서 말한 모든 것은 이미 인정되고 또한 일부는 실시되어진 선례에 입각해서 논의해 왔다. 집약재배, 관개된 목장, 온상 야채재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리 안에서의 채원은 모두가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런 재배 방법이 보급되고 일반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그것들이 보다 적은 노동으로 보다 많은 확실성을 가지고 더 많은 생산물을 얻도록 하기 때문이다.
사실 간지 섬의 가장 간단한 유리 움막식 온실을 연구한 후에 우리는 결국 4월에 온실 안에서 감자를 수확하기 위해 소요되는 2~3개월 노동이 후에 야외에서는 훨씬 더 넓은 토지를 4배나 더 넓게 파야하고, 그것에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고 하면서 재배하는 데 소요되는 노동보다 훨씬 적게 든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것은 기구나 기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기구를 사기 위해서 최초 경비가 들어가야 하지만 좋은 도구나 기계를 사용함으로써 노동이 절약되는 것이다.
온실 안에서 보통 야채의 재배에 관한 완전한 자료는 아직도 없다. 이 재배는 최근에 시작되었으며 좁은 토지에서 실행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포도의 조기재배에 관한 50년간의 수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유용한 것이다.
갱구에서 석탄이 톤당 3실링밖에 않하는 스코틀랜드의 접경지대인 잉글랜드 북쪽에서는 오래 전부터 포도의 온실재배를 해왔다. 30년 전에, l월에 익는 이 포도는 재배자에 의해서 파운드 당 20실링에 팔렸고, 나폴레옹 3세의 식탁에 놓이기 까지는 파운드당 40실링에 공급된다. 오늘날은 동일 재배자가 그것을 파운드 당 2실링 6펜스만 받고 판다. 그는 원예학회 회지에 발표한 최근의 논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값의 하락은 경쟁자들이 l월에 런던과 파리에 수많은 양의 포도를 보내기 때문에 야기된다.
석탄의 염가와 합리적인 재배에 힘입어 포도는 북쪽에서 겨울에 성장하여 보통의 과일과는 반대로 남쪽으로 온다.
5월에 영국 및 간지 섬의 포도는 원예가에 의해서 파운드 당 l실링 8펜스에 팔리며 이 가격은 30년 전의 40실링과 같이 경쟁이 약한 곳에서만 유지되는 것이다.
3월에 벨기에 포도는 6펜스에서 8펜스까지 팔린다. 그러나 10월에는 ― 온실에서, 그리고 런던의 부근에서 약간의 인공열로써 ― 어마어마한 양으로 재배된 포도가 스위스와 라인 지방의 포도원에서 파운드로 사는 것과 같은 값으로 즉 반 펜스짜리 몇 개로 팔린다. 그런데도 그 가격은 3분의 2가 더 비싼데 그 이유는 토지의 임차료가 너무 비싸고 시설비와 난방비 때문에 재배인이 제조업자와 중개업자에게 엄청난 공물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런던과 같은 고위도의 안개 깊은 곳에서도 가을에 맛 좋은 포도를 거의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예컨대 런던의 교외에서 우리의 작은 움막에 기댄 길이 9피트 10인치, 폭 6피트 반 크기의 유리와 벽토로 만든 초라한 시설에서, l0월에는 약 50파운드의 향기 좋은 포도를 9년간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고 있다. 그 수확은 6년생 함부르크종 포도나무에서 얻어진다. 그리고 그 움막은 너무나도 초라해서 비가 새어 들어왔고 밤이면 온도는 언제나 바깥의 기온과 같았다. 그것은 분명히 덥혀지지도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을 덥힌다는 것은 길거리를 덥히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손질은 매년 반시간 동안 포도의 전지를 하는 것, 그리고 손수레 한 대분의 거름을 그 움막 밖의 붉은 점토에 심은 포도 줄기 위로 던져 주는 것이었다.
다른 편에서 라인 또는 레만호 주변의 포도밭에서 하고 있는 그 많은 손질, 언덕의 경사면에 겹겹이 돌을 쌓아 만들어진 단구(段丘), 200~300피트 높이까지 거름과 때로는 흙을 나르는 일을 생각한다면, 결국 포도를 재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비용은 스위스 또는 라인 강변의 재배지가 런던교외의 온실 재배지보다 훨씬 많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은 역설적인 것처럼 보일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포도는 남부 유럽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며 재배자의 노동 따위는 있으나마나라고 일반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배자들과 원예가들은 우리의 주장을 부정하기는커녕 동의한다. ????영국에서 가장 유리한 재배는 포도 재배이다????라고 영국의 원예잡지 편집자인 실지 재배자는 『19세기』(Nineteenth Century)라는 잡지에 썼다. 누구나가 다 아는 바와 같이 가격이 이것을 분명히 말해 준다.
이들 사실을 공산주의의 말로 옮긴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확언할 수가 있다. 즉 여가에서 일 년에 20시간을 할애해서, 어떤 유럽의 기후 하에서도 간단하게 유리로써 가린 시설 속에 2~3포기의 포도나무를 심고 약간의 손질 ― 실은 매우 유쾌한 일이다 ― 을 해주는 남녀는 그 가족과 친구들이 먹기에 충분한 포도를 수확할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포도나무에 적용될 뿐만 아니라 모든 과일나무에 적용된다.
이런 집약재배 방식을 대규모로 실시하는 콤뮨은 일 년에 일인당 약 l0시간 이상을 들이지 않고서도 토착 또는 외래의 모든 생산 가능한 야채 및 과일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은 내일이라도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그 실험을 하기 위하여 100에이커의 보통 정도의 옥토(Worthing에서 우리가 소유했던 것과 같은 정도의)에 종자와 묘목을 재배하기 위한 온실을 소유하는 수많은 원예장이 있다고 가정하자. 또한 50에이커를 더 온실로써 덮고 그 관리를 경험이 풍부한 재배자들에게 맡긴다고 가정하자. 온실 내에서 에이커 당 3인분의 작업을 요하는 ― 연간 8,600시간 이하의 노동을 의미한다 ― 간지 섬 평균치에 입각할 때 150에이커를 관리하는데는 악 300만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50명의 유능한 원예가가 이 일에 대해서 하루 5시간을 일하고 나면 나머지는 직업적인 재배자가 아니고서도 곧 삽을 쓰는 방법과 식물을 다루는 방법을 배우게 될 사람들에 의해서 간단히 행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동은 적어도- 4만 명 내지 5만 명을 위한 과일과 야채 전부와 가능한 사치품을 생산할 것이다. 이 숫자 가운데는 채원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l3,500명의 성인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각자는 일 년에 100시간을 일하게 될 것이다. 이 노동 시간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아마도 전설의 세미라미스(Semiramis)여왕의 정원보다 아름다운 정원에서, 친구들과 자녀들과 함께 보내는 오락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먹을 수 없는 과일을 싫증날만큼 먹고 그리고 주부가 자본가들과 지주들을 치부하도록 만드는 반 페니마다 셈을 하면서 신중히 할당해서 소비해야하는 야채를 풍부히 먹을 수 있기 위해서 부담해야할 노동의 대차대조표이다.
아, 인류가 할 수 있는 것을 의식하고 그 의식이 인간에게 다만 의욕 하는 힘을 준다면!
인류가 정신의 비겁이야말로 지금까지의 모든 혁명을 실패하도록 한 암초라는 것을 알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VI
가까운 장래의 사회혁명 앞에 열리는 새로운 지평을 쉽사리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혁명을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먹을 것이 없는 어린이들을 보고 있는 정직한 노동자는 얼굴빛이 어두워지면서 이렇게 되풀이해서 묻는다. ????빵이 어떻게 되겠지요? 만일 모두가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면 모자라지 않겠는지요? 만일 무지하고 반동에게 선동된 농촌이 1793년 프랑스에서 매점동맹이 한 것과 같이 우리의 도시를 굶주리게 만든다면 ―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농촌이 하고 싶은 대로 최악의 짓을 하도록 하라! 대도시는 농촌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의 작은 작업장이나 공장에서 숨이 막히면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는 그들의 자유를 되찾는 날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그들은 혁명 후에도 전과 같은 공장에 처박혀 있을 것인가? 그들은 곡물의 비축이 없어지고 육류가 결핍되고 야채가 없어지고 그 대용품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수출용의 사치한 완구를 만들고만 있겠는가? 분명히 아니다! 그들은 도시를 떠나서 농촌으로 갈 것이다! 우리 가운데 아무리 몸이 약한 자라도 기계의 힘을 빌어 그들은 관념에 혁명을 가져온 것과 같이 과거의 노예적 경작에도 혁명을 가져올 것이다. 거기에는 수백 에이커의 토지가 유리로 덮일 것이며 섬세한 손가락의 남녀가 묘목을 손질하고 있을 것이다. 수백 에이커의 다른 토지는 증기 가래의 힘으로 파고 일구어질 것이며, 비료에 의해서 토질이 개량되고 바위를 분쇄해서 만든 인조의 흙으로 비옥하게 될 것이다. 즐거운 표정 의 임시 일꾼들은 농업을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러나 특히 긴 잠에서 깨어나서 밝은 광명 ― 만인의 행복에 의해서 개발되고 인도된 민중의 위대하고도 실천적인 정신에 의해서 그 노동과 경험에 인도되어 들판을 수확으로써 뒤덮을 것이다.
그리고 2~3개월이 지나면 조생종의 수확물이 가장 절실한 결핍을 치유할 것이며 민중에게 식량을 보급할 것이다. 민중은 많은 세기 동안 고 대해 온 후에 드디어 그들의 기아를 면하고 포식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반란을 일으키고, 자기의 욕구를 안 민중의 타고난 재질은 새로운 재배법을 실험하는 일을 할 것이다. 사람들은 빛 ― 야쿠츠크(Yakutsk)의 위도 아래서도 45일 만에 보리를 익도록 만드는 그 미지의 작인(作因)에 관해서 실험할 것이다. 집중한 빛이나 인공의 광선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데 있어서 열과 필적할 것이다. 미래의 무쇼(Mouchot)는 태양 광선을 이용하여 석탄탐사를 위해 땅 속 깊이 찾아 들어갈 필요가 없게 하는 기계를 발명할 것이다. 또 사람들은 미생물을 배양하여 토지를 관개하는 실험을 할 것이다. 이것은 어제 막 착상된 합리적인 아이디어이며, 세근(細根)을 기르고 혹은 토양의 성분을 분해하고 동화시키기 위해 식물에게 필요한 미생물을 흙에 줄 수 있게끔 할 것이다.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실험을 할 것이다. 그러나 환상적 이야기의 영역으로 들어설 듯하므로 여기서 멈추고 이미 획득된 사실에 한정하기로 하자. 이미 광범하게 응용이 되어서 판매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실용적인 재배방법을 가지고도 우리는 쾌적한 노동에 대한 보답으로 안락과 사치를 얻을 수가 있다. 가까운 장래에, 최근의 과학적 발견들이 예견할 수 있게 해주는 미래의 정복 가운데서 어느 것이 실제적인가를 가르쳐 줄 것이다. 우리는 현재에 있어서는 인간의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는 수단과의 연구 안에 있는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데 그치자. 혁명에서 결여될는지도 모르는 유일한 것은 발의(發意)의 대담성이다.
학교 제도에 의해서 우둔하게 만들어지고 성년이 되어서부터 죽을 때까지 과거에 예속되는 데 익숙되어 우리는 감히 무엇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새로운 생각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자기의 의견을 결정하기 전에 이 문제에 관해서 옛날의 대가들이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알려고 몇 백년 전의 낡은 책을 뒤적인다.
만일 혁명 때 사고와 발의의 대담성이 결여되어 있지 않다면 혁명은, 식량이 부족하게끔 하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위대한 기간 중에 사람들의 가슴 속에 언제까지나 각 인되어져 있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위대한 날은 프랑스 각지에서 파리로 달려온 연맹원들이 축제 준비를 위하여 샹 드 마르스(Champ de Mars)의 지면을 평탄하게 만든 날이었다.
이날 프랑스는 하나였다. 새로운 정신으로 활기를 얻은 프랑스는 토지의 공동작업 가운데서 전도에 열리는 미래를 예견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공동 작업에 의해서만이 더 나아가서 해방된 사회들은 그 통일을 재발견하고, 그들 사회를 분열시킨 증오와 억압을 소멸시킬 것이다.
금후에는 인간의 정력과 창조력을 백 배로도 만드는 이 연대라는 거대한 힘을 이해함으로써 ― 새로운 사회는 젊은 활력을 가지고 미래의 정복에로 전진할 것이다.
사회는 미지의 구매자를 위해 생산하는 일을 그만두고, 그 내부에 존재하는 욕구와 취미를 만족시켜야 하는가를 조사하고, 그 성원 하나하나에게 생활과 안락을 충분히 보장하고 동시에 자유롭게 선택하고 자유롭게 성취하는 노동이 주는 도덕적 만족과 타인의 생활을 침해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즐거움을 보증할 것이다.
새로운 대담성에 고무되고 연대감에 충만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지식과 예술적 창조의 고급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이와 같이 고취된 사회는 내부의 불화분생도 외부의 적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 사회는 과거의 연합세력에 대항하여 새로운 질서에의 사랑과 각인 및 만인의 대담한 발의와 그 재질을 자각함으로써 얻은 어마어마한 힘을 나타낼 것이다.
이런 불가항력 앞에서는 ????음모를 꾸미는 국왕들????도 속수무책일 것이다. 그들은 다만 그 힘에 굴복하고 사회혁명에 의해서 열린 새로운 지평선을 향하여 나아가는 인류라는 전차에 끌려가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