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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창덕 이메일 kkccdd@hanmail.net
작성일 2015-11-05 조회수 1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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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스트 시인 秋山淸와 植村諦

아나키스트 시인 秋山淸와 植村諦

 

아키야마 키요시에 대해서는 시인으로 보다는 아나키즘 문학평론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쓰여진 아나키즘 문학론은 1975년 홍의에 의한 석사논문 「아나키즘 문학론」이 있는데, 그 안에는 오사와 마사미치(大?正道)와 함께 아키야마 키요시는 아나키즘 문학이론가로 인용되고있다. 이어서 2012년 박진희가 쓴 『유치환 문학과 아나키즘(柳致環 文學と アナキズム)』에서도 아나키즘 문학이론가로 소개되고 있을 정도였다. 필자 역시 「아나키스트 시인 우에무라 타이」를 공부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 아키야마 키요시의 아나키즘 문학론을 참고했을 정도였다.

솔직히 말씀 드리자면 아키야마의 시는 지금까지 1-2편 정도 읽은 기억밖에 없는 무지의 상태로 이번 기회를 통해 처음으로 모두 읽어 보았을 정도다. 따라서 아키야마에 대해 門外漢이라 할 수 있는 제가 전문가들 앞에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득이 필자는 이전에 잠깐 우에무라 타이의 시를 접했을 때 느낀 내용을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아키야마의 시와 비교해 잠깐 언급해보고 싶다.

이 두 사람의 아나키스트 시인 중, 우선 우에무라 타이는 1903년생이며, 아키야마가 1904년생으로 그들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일제의 폭력적인 압박을 함께 체험하고 그리고 이겨냈던 것이다. 더구나 아나키즘이라는 사상을 생애의 신조로 활동하고 또한 이를 바탕으로 시를 썼으며, 시집『탄도』와 『시문학』등에서 동인으로 활동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 두 시인이 일본의 아나키즘사에 중요한 것은 이들이 젊은 시절 아나키즘을 받아들인 이래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결코 아나키즘을 포기하지 않고 생애 일관 했다는 점일 것이다. 전쟁 전에는 전환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를 비롯한 수많은 아나키즘 계열의 시인들이 마르크시즘 또는 자본주의 문학으로 이탈했고, 심지어 전후에는 평생동지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오카모토 쥰(岡本潤)마저 마르크시즘으로 이탈하는 과정을 이 두 시인은 눈물을 머금고 지켜보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흑기를 지킨 의지가 강한 사나이들이었다.

이들의 특이한 관계는 아키야마가 『근대의 표박(近代の漂迫)』에서 우에무라에 대한 유일한 평론을 남겼으며, 우에무라가 1959년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어떤 고독(ある孤?)」이라는 세 편의 시로 그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또한 우에무라가 남긴 시와 소논문 등을 모아 『진혼가(鎭魂歌)』라는 타이들의 책으로 편집 출간하기도 했을 정도로 각별한 동지이자 친구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사람의 시인은 전혀 다른 성격의 시를 발표했다. 즉, 아키야마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제도와 사상 인습 심지어 아나키즘마저 부정하며 “강한 자아”와 함께 “자신의 시”를 쓰고자 했던 것에 비해, 우에무라는 아키야마가 극히 경계했던 선전, 선동, 나아가 아나키즘을 위한 아나키스트 시인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당한 권력에 대한 모든 울분과 분노를 자기의 내면에서 고민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아키야마에 비해, 아나키즘을 앞세워 공동체사회를 중시하고 민중을 계몽, 선전, 선동하며 그들을 투쟁으로 이끌고자 했던 우에무라의 시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이유로 인해 우에무라의 시에는 당연히 아키야마가 경계했던 히로이즘이 내재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에무라의 시에는 민중, 군중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하며 이들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나타나며 어떤 경우에는 이들에 대한 절망감, 심지어는 경멸의 눈빛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이에 반해 아키야마의 시에는 민중, 군중은 거의 보이지 않고 혼자 슬퍼하고 분노하며 자신을 책하는 시인이 등장할 뿐이다.

이처럼 수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시에서는 큰 차이점이 나타나는 것은 여러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수많은 요인 중에 하나가 바로 그들의 생애를 통해 고민했던 아나키즘에 대한 상위에서 오는 결과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그러면, 여기서 잠시 아나키즘에 대해 언급해 보기로 한다. 아나키즘은 극도로 타락한 자본주의에 대한 강한 반발에서 탄생해 모든 정치적인 조직·권력 따위를 부정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나, 그 실행단계에서는 지역과 시기 인물등에 따라 조금씩 다른 성격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일본의 아나키즘은 대략 다음 세 시기로 구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번째는 메이지 시대의 아나키즘으로 1906년 고토쿠 슈스이에 의해 처음 받아들여진 이래 노동자 농민들과 함께 국가권력에 정면으로 저항하고자 했던 시기로 결국 11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간 시기였다. 하지만 이 시기는 아나키즘이 모든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대표하고 있기에 사회주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으로 아나키즘의 시대라 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두 번째는 1911년의 대역사건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오스기 사카에 의해 시작된 다이쇼 시대의 아나키즘으로 이 시기의 특징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국가권력과에 대한 정면에서의 저항과 투쟁을 피하는 대신 “자아의 발견”, “자각”을 통한 “사회의 변혁”에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곧 고드윈이나 막스 스티르너로 대표되는 개인적 아나키즘의 시기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제도와 인습, 사상, 나아가 아나키즘조차도 부정하고자 했던 시기로 아키야마는 이 시기에 시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당연히 이런 시대상황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키야마의 시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역시 “약한 저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제에 의해 7년간 옥중생활을 강요당했던 우에무라의 시에서 보이는 직정적(直情的)이며 격정적인 분노와 저항의 정신은 그의 시에는 직접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식민지 조선의 해방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1944년 1월 옥중에서 목숨을 빼앗긴 한국의 아나키스트 시인 이육사(이육사)의 시에서 볼 수 있는 처절한 저항정신 역시, 아키야마의 체내에 내재된 채 좀처럼 바깥으로는 드러나지 않는다.

물론 이점에 관해서 신도 켄(新藤謙)은 “교묘한 생활방식(生き方の巧妙さ)에서 나타나는 약한 표현력(表現の弱さ)으로 이런 현상이야말로 직설적이며 완고한 말투와 분노(生硬な口吻や怒?)를 뛰어넘는 자질을 아키야마가 갖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또한 이를 위해 그는 부단히 노력과 연구를 거듭해왔다.” 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키야마의 시가 뛰어난 문학성에 비해 투쟁과 저항정신이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그의 시에서 약한 저항정신으로 느껴지는 것이야 말로 다이쇼 시대 아나키즘의 특징으로 이 시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또한 이 시기는 아직 마르크시즘과의 본격적인 분화가 이루어지기 전으로 프롤레타리아 문학의 영역에서 아나키즘이 독자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않았으며, 아나키즘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당연히 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기 전으로 이 시기는 아나키스트 시인의 시대라 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세 번째는 昭和시대의 아나키즘을 생각할 수 있다. 이 시기의 특징은 오스기 사카에 부부의 학살 이후 1926년 볼세비키와의 본격적인 분화를 통해 비로소 마르크시즘과는 다른 아나키즘 활동, 그리고 그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군국주의로 치닫는 과정 속에서 점증하는 국가권력과 그리고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였던 마르크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아나키즘은 노골적인 선전과 선동, 심지어 테러에 뛰어들었으며 집단행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항하고자 했던 시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이 시기의 아나키즘은 다이쇼 시대의 “個”, “자아”라는 영역에서 벗어나 민중과 함께 하고자 했으며, 이들 민중을 선전, 선동해 투쟁과 저항으로 이끄는 것을 자신들의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시기로 이는 사회적 아나키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민중을 선도하는 과정에서 히로이즘은 필수사항이었을 것이다. 우에무라 타이는 바로 이 시기에 대표적인 시인이었다.

우에무라는 1929년에서 1930년까지 약 1년간 식민지 조선에서의 민중체험을 거치면서 아나키즘에 의한 사회혁명을 꿈꾸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의 시에서 ‘투쟁’과 ‘저항’의 정신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우에무라가 아나키스트 시인으로 활동하던 1930년에서 1935년 사이 일본사회의 분위기는 애국이란 이름으로 민중을 침략전쟁에 동원하려는 국가권력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였다. 하지만 민중들은 국가권력에 세뇌되어 부당한 국가권력에 침묵하고, 심지어는 침략전쟁을 미화하던 시기였다. 또한 자신들과 같이 노동자?농민의 해방을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권력을 획책하는 마르크시즘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이런 시대상황이야말로 아나키스트로서 참을 수 없는 현실이었으며, 우에무라의 ‘저항’과 ‘투쟁’은 이런 시대의 분위기를 향해 전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우에무라 타이의 시는 아키야마의 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과 같이 아나키즘에 대한 상위로 인해 두 시인의 시는 우열과는 상관없이 전혀 다른 성격으로 나타났으며 현재 우리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키야마의 전향과 저항

여담이긴 하지만, 이 집회에 참석하기 전에 한국의 정창석 교수가 쓴 『식민지적 전향』이란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다. 일본에서 말하는 전향이란 용어는 식민통치를 경험한 한국인에게는 親日派란 용어로 대체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전향에 관해 서적이 지금도 꾸준히 읽히고, 또한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는 것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그들 전향자, 즉 친일파들이 해방 이후에도 문학계를 비롯해 한국 사회의 요지 곳곳에서 아직도 한마디 반성조차 없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으로 이런 전향문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한국인의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전향자, 즉 친일파들은 당시의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전향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거나, 우리의 힘을 키워 점진적으로 독립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에서 전향했다는 등의 말로 자신들을 강변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이들의 변명은 너무 구차하게 들리는 것이다.

여하튼 당시에 이름이 알려진 대부분의 작가들이 압력에 굴복해 전향해 버린 상태에서 지금 현재 한국사회에서 저항작가 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약간의 저항의 흔적이 발견되기만 하면 저항 작가라는 타이들을 붙게 되는 것이 실정일 것이다.

한편 이런 권력에 압력과 협박에 대해 일본의 마키무라 코우나 고바아시 히데오, 또는 한국의 윤동주, 이육사 처럼 최후까지 저항하다 결국은 감옥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또는 대다수 작가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압력에 굴복해 자신과 민중을 배반하고 그들 권력의 앞잡이로 변신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극렬한 탄압을 피해 국외로 망명하거나, 아예 신분을 감추고 오지로 숨어드는 것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일본에도 잘 알려진 김사량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몸을 피했으며, 시인 유진오는 지리산으로 숨어들어가 아사직전에 조국의 해방을 맞이해 극적으로 살아남은 경우가 있다. 그러면 아키야마 키요시는 어떤 의미에서 저항작가로 불릴 수가 있는 것일까?

솔직히 말하자면 앞에서도 자주 언급한 대로 아키야마 키요시의 시는 약한 저항이 특징이다. 또한 당국의 탄압을 받을 정도의 극렬한 아나키즘 활동을 전개한 사실도 확인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제의 입장에서는 굳이 생명을 걸고 전향을 강요의 작가나 활동가로 인식하고 있지 않았다고 보는 것은 어떨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와 함께 아리요시 류메이가 아키야마 키요시를 가나이 미츠하루와 함께 대표적인 저항작가라고 한 것은 위의 한국에서의 예에서처럼 당시 저항작가라고 이름 붙일 만한 작가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아키야마와 같은 소극적인 저항도 높게 평가한 결과가 아닐까? 하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참고 서적

『秋山?詩集』 現代思潮社                  

『白い花』 コスモス社,

『秋山?の詩と思想』, 新藤謙著,土曜美術史  

『アナキスト詩集』 海燕書房

이 외 한국의 서적으로는

『植民地的抵抗』, 鄭昌石, 2015.10.

『柳致環 文學と アナキズム』,朴眞姬, 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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