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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염상정(處染常淨)의 생애 백세청풍하소서.
먼저 처염상정을 닮으신 수민 선생님의 구순과 저서 <아나키스트 이문창 문존>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일제의 폭압이 이 땅을 짓밟고 있을 때인 1920년대에 태어나서 격동과 격변의 민족사와 더불어 90평생을 강건하고 돈독하게 살아오신 선생님의 생애에 한없는 존경과 축복을 드립니다.
선생님께서는 해방 후 한국아나키즘의 정맥을 이어오면서 맑은 영혼, 따뜻한 심장, 냉철한 이성, 자유로운 행동으로 선열 아나키스트들의 정도를 당당하게 걸으셨습니다. 해방공간에서 한때 정인보선생 등과 미군정을 타도하는 한국혁명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하고, 6?25전란 중에는 반전,반공산 민중 지하운동을 펴셨습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 언론계에서 활동하였지만 선생님의 외길은 국민문화연구소를 통한 아나키즘의 연구와 발전을 위한 필생의 헌신이었습니다.
수많은 지식인들이 독재,부패 타락한 권력의 하수인이 되고 시세편승과 기회주의로 출세의 방편이 될 때에도 선생님께서는 한 치의 삿됨도 없었고, 흔들리지 않았고, 권부의 길을 탐하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늘 넉넉한 인간의 품성과 강직한 지식인의 품격을 지켜오셨습니다.
선생님은 해방 후 18세의 젊은 나이에 아나키스트가 된 이후 지난 70여년 동안 우리나라 아나키스트운동의 현장을 지켜오신 산 증인입니다.더불어 후학들을 지도하고 널리 신념을 전파하신 우리시대의 큰 스승입니다. 이번에 간행하신 저서는 선생님 개인의 ‘문존’이 아니라 한국 아나키즘 역사의 소중한 사료가 될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역사와 겨레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등치시키면서 개인을 위한 삶이 아닌 세상의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지금 인류는 과거 공룡의 멸종과 유사한 전 지구적 멸종을 향해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후변화?핵실험?유전자 조작?인공 바이러스 등이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피폐해진 지구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무궤도한 산업화로 망가져 가는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선생님께서 추구해오신 아나키즘의 길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다수의 지식인들은 지구와 후손들의 삶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본을 ‘유일신’으로 추앙하는 자본주의는 정경유착,특권,독점,천민성,도덕적 타락 등에 이어 ‘세습자본주의’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홉스봄의 지적이 아니라도 ‘극단의 시대’로 치닫고 있습니다. ‘혼용무도’한 대통령과 이를 떠받들면서 국정을 농단해온 부패 수구세력은 권력을 사유화하고, 사드를 불러들이고, 일본과 군사정보협정을 강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미증유의 내우외환을 겪고 있습니다. 여기에 인간과 자연을 모조리 상품화?전리품화하는 ‘악마의 얼굴’을 한 천민적 자본주의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한민족이 이 땅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영속하기 위해서는 선생님께서 평생을 두고 연구하고 추구해 오신 반봉건?반전제?반강권주의, 자치, 그리고 개인의 자율과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일찍이 크로포트킨에 의해 체계화된 아나키즘 이 외에 달리 길이 없을 것입니다. 칼을 녹여 보습을 만들고 재벌의 곳간을 열어 서민들의 활로를 담보해주는 사회가 되도록, 선생님 더욱 강건하시고 오래오래 후학들을 지도하여 주십시오. 다시 태어나도 아나키스트로 살겠다는, 그 신념과 결기는 후학들에게 큰 감동과 학습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세월을 거듭하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과 신념을 잃을 때 비로소 늙게 된다. 세월은 흐르면서 피부에 주름살을 남기지만 정열을 잃으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사무엘 울먼의 말에서 수민 선생님의 의연청정한 모습을 떠올립니다.
선생님, 하늘은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세월이 빗겨 간다고 들었습니다. 더욱 강건하시고 백세청풍하십시오. 만세청풍하십시오.
2016년 11월 24일
김삼웅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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