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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日附逆者를 處斷한 아니키스트들
-樹民 李 文 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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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달하(金達河) 암살사건 : 다물단(多勿團)
박용만(朴容萬) 실종사건 : 〃
이태공 연충렬(李太公 延忠烈) 사건(남화연맹)
옥관빈(玉觀彬) 처단사건 : 서간단(鋤奸團)
이용로(李容魯) 처단사건 : |
1. 김달하(金達河) 암살 사건
多勿團: 1923년 전후. 이규준(李圭駿: 이석영 장남)
이규학(李圭鶴), 이성춘(李性春) 등 몇 사람이 友堂, 丹齊, 柳子明 등과 협의해
조직.
- 단제가 기초한 선언문을 이규창 소년이 중간 전달 역할. - 비밀 지하조직?
- 이규준, 이기환(李箕煥), 이규숙(李圭淑:우당의 장녀, 정보전달) 등이 직접행동.
?김달하 행적(1867-1925)
평북태생, 서북학회(西北學會), 신민회(新民會) 가입: 애국계몽운동.
漢學실력 출중. 중학교사.
일제강점기: 총독부 회유로 북경 이주. 1917년 중국군벌 친일정권(단기서)의 참의로 등용되어 일본의 앞잡이. 수많은 독립운동가 및 망령청년들을 회유 전향시킴.
1922-23: 김달하 주선으로 이상재(李商在), 김활란(金活蘭: 이화전문), 김창숙(金昌淑: 파리 만리장서), 손승직(孫承稷: 유림)이 세계기독교청년대회 참가차 또는 중국유림대표 접촉차 북경 방문.
?사건전말: 1925년
박용만 실종사건 발생(그해 겨울 세들었던 집 구들창에서 시체로 발견)
김달하 암살사건(괴청년 2명의 내방. 단독 회담 후 시체로 발견)
2. 박용만 실종사건
?박용만(1881-1925)의 행적
미국 네브라스카에서 「한인소년병학교」설립. 하와이에서 「조선국민군다」조직
상해임시정부에서 「외무총장」「군무총장」역임. 항일무장독립투쟁론 주장.
?1921년 4월 북경에서 「군사통일회」: 우당, 단재 등과 무장투쟁론 전개.
「대조선 독립단」 - 「대륙농간공사」조직
장춘일본영사관 →국내입국(사이토 총독 접촉) - 연해 주를 거쳐 - 북경으로 귀환 - 중국북양군벌정권 (염석산)의무성 촉탁 피임.
?1925년 봄 - 실종 - 늦가을 세들었던 집 구들창에서 사체 발견.
이해명(李海鳴:원산출신 의열단원)암살설
3. 이태공 연충렬사건(1932년 12월)
?우당의 만주행과 순국(1932년 11월 초중순)
상해동지들의 우당 만주행을 밀고한 밀정 찾기.
?일본영사관의 정보를 알아내고자 -안공근(安恭根), 위혜림(韋惠林)을 통해 연충렬(엄항섭<嚴恒燮>의 처남), 이태공이 장본인 이라는 것을 알게 됨.
?이규호를 통해 그들을 남상(南翔)입달학원으로 유인. 백구파, 엄형순(嚴亨淳), 양여주(楊汝舟), 이달(李達) 등 동지들에 의해 자백을 받고 처단.
?악질밀정 이종홍(李鐘洪: 안공근의 처조카)을 양여주, 엄형순, 이달, 천리방 동지 등이 입달학원으로 유인, 비행을 자백받고 처단.
4.옥관빈(玉觀彬) 처단사건(1933.8.1)
?서간단(남화연맹)과 애국단(임정)의 협력관계.
-“임정은 돈이 있으나 인물이 없고, 남화연맹은 인물을 있으나 돈이 없었다”-(김구, 안공근과 정화암의 회동)
?옥관빈(1887-1933)은 누구인가?
? 한말 - 을사조약 - 상동교회 - 대한매일신문(1905년)
? 일제강점기 - 105인 사건의 6명(윤치호, 양기탁, 안태욱, 이승훈, 임치정, 옥관 빈)의 주모자로 4년 옥고(1911-1914)
? 독립운동기 - 임정의정원 의원, 독립신문 총무, -임정고수파.- 흥사단 가입(안 창호의 권유로)
? 사업활동기- 배달공사 설립 -삼덕양행(三德洋行:독일무역-불자약청<佛慈藥廳>)- 거상으로 성장.
? 독립운동에서 일탈- 마약 밀무역 권장(김구과 이승만에게) -독립운동 비방(쌀가 마니나 돈 몇 푼 던져주면.......) -밀정행동.
처단 전말(1933.8.1)
? 옥관빈이 불조계 옥성빈(玉成彬)의 집근처에서 이모(흥사단원)의 처와 간통하 고 나오는 것을 포착하고 엄형순, 양여주(서간단원) 동지가 보기좋게 척살.
? 8월9일자 서간단의 옥의 비행 6개조의 규탄성명서.
? 옥관빈의 형 옥성빈(불조계 공무국 형사)처단: 12월말
? 애국단과 서간단의 미묘한 관계
5.이용로(상해거류민회장)처단사건
행동주체: 서간단(남화연맹)
엄순봉(嚴舜奉:형순)동지, 이규호(李圭虎: 규창)동지
이용로의 행적
? 평안도 태생, 도미유학 -이후 상해로 건너와 무역상을 하며 교민사회 잠입.
? 일본영사관의 어용단체인 상해거류민회장으로 행세.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공동조계로 이주.
? 깡패들을 규합하여 친위조직을 만들어 독립운동 단체(남화연맹, 의열단, 흥사단, 임정)감시
? 정보수집, 일제관헌에 제보하는 주구 역할
처단 전말
?1935년 3월 25일 오전 7시 감시망을 뚫고 침실 접근
?이규호 동지는 망을 보고 엄형순 동지가 권총 2발 발사- 이용로 즉사.
그 부인(박성신:朴聖信)의 저격을 받고 엄순봉 동지가 중국의 경찰에 체포, 이규호 동지도 그 자리에서 함께 체포.
재판결과
국내로 이감되어 재판(1936.1-4)
?엄순봉 동지: 사형 , 이규호 동지 13년 언도
엄순봉 동지는 그 직후 사형이 집행되고 이규호 동지는 옥중투쟁을 벌이다 8?15해방으로 풀려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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