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자료
자료실 > 문서자료
이름 김창덕 이메일 guso9662@daum.net
작성일 2020-01-09 조회수 1246
파일첨부
제목
한국의 아나키즘 시문학

한국의 아나키즘 시문학

 

1.연구목적

한국의 아나키즘 운동은 분명한 정치사회 운동으로 그 맥을 세우고 있지만 가장 왕성한 활동은 문학 분야에서 이루어 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의 인도주의적 정신은 예술영역에서 그 특성을 가장 잘 발현시킬 수 있으며 그것도 시 분야에서 잘 표현된다고 하는 아나키스트의 말로도 증명된다.

일제감정기 문학에서의 아나키즘 운동자로는 신채호, 권구현, 김화산, 이향, 유서, 정래동 등이 있으며, 해방 후에는 박노석, 이경순, 홍원, 홍두표 등이 그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대부분은 시 분야에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아나키즘 문학이 문학사의 공백으로 남게 된 이유는

첫째는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본질적 측면과 그것이 원인이 되어 역사적 담론장에서 형성된 판세 때문이다. 즉 아나키즘 사상은 권위에 대한 저항과 조직에 대한 혐오를 그 본질로 삼고 있다. 따라서 아나키즘 운동은 권위적 대상에 저항하기 위해 역사 현실에서 자발적이고 실천적 행동을 보이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운동을 펼치지 못해 차츰 퇴색되면서도 당대적 현실 속에서는 부치하는 좌익세력이나 우익세력에게 비판적 세력으로 작용했다. 이 말은 운동에서 상대적 열세적이면서도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 이데올로기적 성향을 지님으로서 자본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에 의해 배제되었다는 의미이다. 문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어, 해방 전에는 마르크시즘 문학과 우익의 민족주의 문학을 비판하면서 민족적 계급문학을 펼치려다 마르크시즘으로부터는 허구적, 관념적, 타협적 문학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민족주의자들로부터는 기회주의적, 허무주의적이라 비판받음으로써 배제의 논리가 적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남북분단에 따른 사회주의 사상의 탄압적 현실 아래, 비록 반공의 기치를 내세워 보수 우익적 세력으로 편승하려 했지만 아나키즘 사상이 본질적으로 작고 있는 공동체적 이상 추구의 사상은 변질되고 내면화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그 결과 아나키즘 사상을 기치로 한 문학은 퇴색되기에 이르렀다. 역사 속에서 주체적인 장을 만들지 못한 아나키즘 사상과 문학의 역량에도 큰 원인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해 오는 저항 이데올로기를 봉쇄하는 좌우익의 권위적 담론들 때문이다.

 

2.연구사 검토

한국아나키즘 문학에 대한 연구는 배제의 논리에 의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나키즘 문인 중 상당수는 아나키즘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서정 위주의 작품을 쓰거나 비판적 리얼리즘 입장에서 현실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현실 문단 속에 편입되는 방편을 취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이론 쪽에는 권구현 김화산이 아나키즘론을 내세웠지만 당시 카프파로부터 허구적, 관념적, 소부르주아적 담론이라 비판받아 아나키즘 문학론의 퇴조로 이어졌다. 따라서 일제하에서는 아나키즘 문학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이는 해방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일제 치하의 아나키즘 문학연구에 대한 것은 김화산을 중심으로 카프와의 논쟁 부분이 간략하게 소개 되었다.

1973년에 김윤식이 쓴 韓國近代文藝批評史硏究에서 아나?볼 논쟁을 조금 상세히 다루었으나, 객관적으로 한국 아나키즘 문학을 조명한 것도 아니고, 단지 카프 문학을 논의하는 가운데 주변부 문학의 하나로 아나키즘 논쟁을 정리한 글이 대부분이다.

1975년 경희대 석사학위 논문으로 아나키즘 文藝論 硏究집필자인 홍의는 아나키스트 홍성환의 아들이다. 현대 문인 중 김수영의 시와 박경리의 市場戰場을 아나키즘 문예로 해석해 봄으로써 현대문학에서의 아나키즘 문예의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한국 아나키즘 사상이 배경에는 일본 아나키즘 문학운동이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국에서 활동한 문인들로부터 수용된 점도 있다.

1983년 박인기의1920년대 한국문학의 아나키즘 수용양상에서 아나키즘 수용배경과 아나키즘 수용양상을 분석하면서 한국문학에서의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의미를 부여하는 단초를 열었다.

1982년 김윤식의 1920년대 한국아나키즘 문학론 비판-金華山의 경우에서 한국에 근대사상을 도입한 마르크시스트, 아나키스트, 에스페란티스토들의 역할을 규명하는 자리에서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특성을 혁명을 위한 일체의 조직과 기구를 배제하고자 한 점에서, 그리고 폭력에 의한 노동자의 직접봉기란 점에서 바쿠닌의 견해는 마르크스주의에 대립될 뿐 아니라 그 한계점이기도 하였다. 김화산의 아나키즘 예술론을 평가하면서 다른 말로 하면 한국에서의 다다이즘이라든지 아나키즘이란 한갓 신기한 외해사조에 대한 호기심 이상일 수 없었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다다이즘의 예술적 사조는 아나키즘 사상의 영향 아래 발생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91년 조남현의 한국근대문학의 아나키즘 체험 연구는 아나키즘 사상에 대한 짤막한 개괄과 함께 한국에서의 아나키즘 수용 양태를 그 시초에서부터 살피면서 당대 아나키즘 사상이 현실에 대해 어떠한 기능을 하며 어떤 경로를 밟아 문학이론으로 수용되었는지를 밝히고 있다. 아나키즘과 볼세비키즘 논쟁을 요령있게 정리하면서 아나키즘예술론의 가치를 밝히고 있는 점, 김화산의 아나키즘을 논하면서 김화산이 다다이즘 시인에서 아나키즘 이론가로 재빨리 변신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있다. 아나키즘에서 다다의 요인, 즉 이론도 체계도 없고 고민과 전망도 없는 데다 무의미를 뜻하는 것을 쉽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대목은 아나키즘론에서 다다이즘의 상관성을 밝힌 부분으로서 가치가 있다. 또한 일제 치하 당시 아나키즘 사상에서 마르크시즘으로 전향해 간 이기영, 조명희, 임화 등의 초기 작품에 대한 분석도 빼어난 탐구라 할 수 있다.

개별적 아나키즘 작가에 대한 연구로는 우선 황석우에 대한 연구로 박인기의 황석우론조두섭의 황석우의 상징주의 시론과 아나키즘론의 연속성이 둘은 황석우의 관념적 아나키즘 운동의 성격을 잘 지적해 주고 있다.

권구현에 대한 연구로는 고현철의 권구현 시조 연구」「백인(白刃)詩學 권구현론은 권구현 문학의 특징과 시조형식이 어떻게 아나키즘 사상과 접맥되었는지를 밝혀 당대의 아나키즘 문학의 형상화 방식에 대한 해명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외에 박명용의 시대의 고뇌를 안고 요절한 鬼才 아나키스트 權九玄은 권구현 아나키즘 문학론을 역사적 실증 차원에서 보게끔 하고 있다.

 

김원형과 아나키즘 문학의 관계

첫째 그가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 있는 무산계급의 저항정신은 맑스주의적이기 보다는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아나키즘적 성격을 갖고 있는 점.

두 번째는 그가 영향을 받았다는 월트 휘트먼이 아나키즘 계보에서는 아나키즘 사상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

조두섭의권구현 시 연구,권구현의 아나키즘 문학론 연구는 본격적 차원에서 아나키즘 문학연구의 특징을 권구현 문학을 대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돋보이는 연구이다.

김덕근의 한국문학의 아나키즘 수용연구 -권구현, 김화산을 중심으로

신채호에 대한 연구는 일방적으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연구가 우세한데 송재소가 민중문학과 노예문학,민족과 민중에서 신채호의 민중문학을 논하는 자리에서 민족주의에서 아나키즘 사상으로의 전화를 잠시 언급한 정도에 그치고 있고, 임종찬의 丹齋文學思想 硏究에 와서야 신채호가 사회진화론적 입장에서 아나키즘 사상으로 전화해 간 과정의 필연성과 그에 따른 아나키즘 문학의 특징과 의의를 비로소 해명하고 조명 받게끔 하고 있다. 유치환의 경우 유치환을 아나키즘적 입장에서 해명하려는 정대호의 유치환 시 연구 - 아나키즘과 세계인식의 관련양상을 중심으로는 일제하에서 부터 해방 후까지 유치환의 세계 대응의식이 아나키즘 사상에 기초해 있음을 밝히고 그것이 20세기 한국 역사적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보여주었다.

해방 후 아나키즘 문인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전무라 할 수 있다. 조기현이 신동엽과 김수영의 시를 들어 혁명과 시, 그리고 아나키즘이라고 씀으로써 해방 후의 아나키즘 문학의 가능성을 밝혀주고 있으며, 신동엽 평전으로 쓰여진 김준오의 신동엽은 신동엽이 아나키즘에 이르기까지의 문학적 편력과 사상적 바탕을 정신사적이면서 형식미학적 측면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김경복의 아나키즘 입장에서 쓴 丹齋 申采浩 문학과 아나키즘론,권구현 시에 나타난 아나키즘론,김화산 문학의 아나키즘론에 대한 小考,한국 아나키즘시에 나타난 유토피아 사상,무정부 마을의 둥구나무, 신동엽등 한국 아나키즘 문학에 대한 개별적인 논문을 통해 아나키즘 문학의 의의와 성과를 짚어 보았다.

 

한국 아나키즘 문학론자들의 시 작품을 텍스트로하여 연구를 시작할 때의 접근방법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20세기 한국 아나키즘 문학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적 양상을 기준으로 하여 통시적 변화를 살펴본다. 아나키즘 사상의 한국적 상황에 수용된 의미의 양상에 따라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는 측면과 아나키즘 본래의 달성을 추구한 내용을 구분하여 통시적으로 살펴본다.

두 번째는 한국 아나키즘 사상의 문학적 형상화의 문제를 알기 위해 형식미학적 입장에서 그 사상과 형식의 관련성을 살펴보아야 한다.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혁명성과 부정성의 표출로서 아방가르드적 방식의 채택도 두드러져 보인다.

 

아나키즘 사상과 예술론

1.아나키즘 사상과 그 특성

아나키(anarchy)란 말은 그리이스어 ananchos에서 유래한다. 부정사 an 에다 지배를 뜻하는 archos 가 결합된 말로서 지배가가 없다는 기본저긴 뜻이다. 일반적으로 통치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아나키즘은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면서 자유과 평등을 지향하는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시자괴었다. 현실속의 아나키즘은 영국인 고드윈의정치적 정의(E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1793)출판부터이다. 이후 프르동, 푸리에, 수티르너, 바쿠닌, 크로포트킨, 톨스토이등의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19세기 자본주의의 발달과 대응하면서 지배계층에 억압받는 피억압계급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사상으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동양권에서는 20세기 초 일본의 지식인이었던 게무야마 센타로(煙山?太?)近代無政府主義란 책에서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이래 무정부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용어보다는 자유주의, 내지는 자발적 공동체주의(自發的 共同體主義)라 번역해야 마땅하다.

아나키즘 사상을 주창자와 논자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져 몇 마디 말로 규정 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다.

아나키즘 연구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죠지 우드코크는 개인적 아나키즘, 상호주의, 집산주의, 무정부 공산주의, 아나르코-생디칼리즘, 평화주의-아나키즘등으로 구분하고, 노박은 아나코 개인주의, 아나코 꼬믠주의, 종교적 아나키즘으로 분류하고, 밀러도 철학적 아나키즘, 개인적 아나키즘, 꼬믠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분류, 그린은 에고이스트적 아나키즘, 휴머니테리언적 아나키즘 이런 분류의 다양함은 논자에 따라 아나키즘 사상을 저마다 다르게 본다는 의미이며, 이는 결국 아나키즘 사상이 하나의 체계로 나누기 힘든 것으로 그것은 아나키즘 사상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해방의 사상이 만큼 교조적인 권위체계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흔하게 나누는 것으로는 개인주의적 아나키즘과 공산주의적 아나키즘의 두 가지로 대별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1-1 ‘반항감정과 국가부정

아나키즘 사상의 제일의적 성격은 반항감정이다. 그 속성의 본질은 역시 지배에 대한 거부로서의 반항감정이다.

거부의 대표적인 아나키스트는 막스 슈티르너로 唯一者와 그 所有를 통해 일체의 당위와 가치를 부정하고 오직 자기 자신의 이해에 의해서만 행동하는 에고이스트적인 개인주의를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대상을 신성불가침한 진리라고 보는 대신에 도리어 전통사상의 테두리를 넘어서 경건성을 헌 신짝처럼 벗어버리고 자유분방한 비판에 탐닉한다.”

자유를 추구하는 가운데 가장 억압적 대상으로 국가라는 제도를 들지 않을 수 없는데 이러한 국가의 해체 후에야 온건한 에고이스트들의 자치사회가 생성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고드윈은 그의정치적 정의란 책에서 정부는 변화의 영원한 적이다. 정부의 특정한 제로를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그것이 바로 사회에 존재하는 원동력을 붙잡고 그 활동을 마비시키는 장본인 이라는 사시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악습을 영원토록 조장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푸르동 역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국가라는 권위적 체계를 없애야만 된다고 본다.

아나키스트가 부정하는 것은 권력과 폭력의 독점적 형식만이다. 국가가 바로 거부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합법적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폭력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 독점은 분명 자주와 평등의 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독점적 형식의 그 어느 것도 저항하는 것이다. 우상파괴를 강조하고 중앙집권에 대해 혐오를 보이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때문에 독점적이고 중앙집권적인 권위에 저항하는 이러한 성향은 같은 사회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국가의 존속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도 나타난다. 즉 아나키스트들이 보기엔 노동자 해방을 부르짖는 공산주의자들이 집단에 종속한다는 원리에서 출발하여 정부중심적, 독재걱, 권위주의적, 교조주의적 체계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권위에 대한 저항의 극단은 운동선 상에서 폭력을 띠게 마련이다. 아나키즘 사상이 자주 테러리즘과 혼동되거나 결부되는 것은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이런 저항의 강렬성 때문이다. 그러나 아나키즘에 사용되는 폭력은 사실 정당 방위적 폭력의 의미가 깊다.아나키스트들이 자신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지배자에 대한 폭력만은 인정하는 편이다. 이런 권위에 대한 저항과 폭력은 곧잘 니힐리즘과 아나키즘을 결부하게끔 한다. 니힐리즘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관념적 무의 세계로 침잠하거나 세상을 등지는 것이라면 아나키즘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니힐리즘이 당대의 제도와 인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찾기 위한 저항적 인식으로 나아갈 때 아나키즘과 니힐리즘이 곧잘 결합하는 것은 사실이다. 크로포트킨니힐리즘이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를 위한 전통의 인습을 부정하는 점에서 아나키즘적 사고방식에 접근하고 있지만 공동체적 이상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시각을 드러낸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니힐리즘이 아니다. 아나키즘이 권위에 저항하고 국가라는 체제를 거부하는 데에는 보다 더 깊은 역사적 배경이 있다. 국가로 결합된 자본주의 생산체제와 이 체제를 지탱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다. 아나키스트는 민중의 고통은 사회를 이분화하고 지배와 피지배를 확연히 구별시켜주던 자본주의체계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폐지는 모든 아나키스트들의 필연적 요청사항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 그것의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부의 표시는 예술상 혁명예술과 민중예술의 요청으로 나타났다. 이 예술의 실천자들은 분명 자본주의의 모순을 폭로하며 그것의 대안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는 운동적 이장에서 해냈던 것이다. 이러한 예술적 경향을 두고 볼 때 아나키즘 사상은 부르주아 미학을 비판하고 민중미학, 전위미학을 주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 개인의 자유의식과 직접민주주의

반항 감정과 국가 부정, 그리고 권위주의적 체제 부정을 근간으로 하는 아나키즘은 결국 사회적 개인으로서 인간의 자유문제를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나키즘은 그 사상의 발상을 개인의 절대적인 자유에서 시작한다. 슈티르너는 의지와 본능을 옹호하고 신화나 철학의 모든 구조를 통하여 인간의 사고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모든 것을 본질적인 자아에까지 절단해 내려가려고 한다. 그는 인간이라든지 인간성이라든지 하는 추상적으로 일반화한 개념의 현실성을 부정한다. 개인의 절대적 자유에 이르기 위해서는 사회적 전통적 고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된. 스티르너가 주장하는 우상파괴는 바로 이러한 개인의 자유의식을 실현하는 구체적 방법이다. 이런 고정관념 타파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자발성은 자본주의적 체제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억압성에 맞물려 생성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아나키즘은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인을 경시하는 인간소외, 전체주의적인 획일주의에 의한 인간소외, 그리고 산업사회의 임금노예에 의한 인간소외 등으로부터 개인을 구제할 것을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개인의 자유의식은 이런 점에서 생명존중이라는 이상이 들어있는 것이다.

개인의 자주와 자유를 추구하는 이런 행동원리에서 아나키즘의 대표적인 경구인 직접행동의 원리를 낳게 하였으며 이것은 곧 정치적 입장에서 대의제 민주주의를 부정하게 된다,

바쿠닌은 대의제도는 민중을 위한 보증이 되기는커녕 정반대로 민중을 통치하기 위한 일종의 귀족정치의 존속을 창출하고 보장하는 것라 한다. 개인의 자유추구는 각 개인이 저마다 자유를 누리되 그 자유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평등이 전제된 상태에서만 누려야 되는 것임을 뜻한다.

 

2. 아나키즘 예술론

비트켄슈타인은 모든 윤리학은 미학이라고 했다. 그 논리에 따르면 아나키즘 역시 뚜렷한 미학을 가직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나키즘은 하나의 정치적, 사회적 이상을 추구하고자 하는 윤리이기 때문이다. 크로포트킨은 그의 사상에서 처음에는 예술부정론을 전개하였다. 즉 그는 그가 활동하던 19세기의 예술을 볼 때 예술은 모두 지배자가 착취, 강압하는 도구로 사용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술이라 하면 지배자가 어용을 권하는 것이나 퇴폐자의 자기 위안의 도구로 인식했건 것이다. 이런 예술론에서 예술의 필요성과 올바른 예술론의 정립으로 나가게 된 것은 민중과의 연대와 혁명의 와중에 휩쓸려 가면서 아나키즘 사상에 대한 심화 때문이다. 아나키즘 사상이 추구하는 자유와 평등의식, 그리고 공동체적 삶의 지향은 예술이 갖고 있는 억압과 권위로 부터의 자유를 되찾고자 하는 의식이나 보다 인간적인 것을 탐구하는 정신과 일치하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나키즘 예술은 부르주아 관념을 타파하는 측면에서 혁명예술이면서 민중을 위한 민중예술임을 발견하게 된다. 마르크시즘이 하나의 마르크시즘 미학으로 정립되듯이 아나키즘 사상도 하나의 아나키즘 미학으로 정립될 수가 있는 것이다.

 

 

2-1 혁명예술론- 아방가르드 미학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미학적 지향점은 바로 자본주의체제의 거부와 함께 그것을 지탱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거부에 있는 만큼 예술적 특성은 부르주아 예술론의 파괴를 나타난다. 이것은 아나키즘 사상을 실천하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새로운 사회상의 예술론으로서 혁명예술론을 의미한다.

이런 혁명예술론은 두 가지 방법으로 전개되는데 그 하나는 부르주아 예술이 갖는 일체의 형식이나 관념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형태로 나아감이고 다른 하나는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담아냄으로써 민중적 생활을 담아내는 민중예술, 즉 프롤레타리아 예술로 나아감이다.

허버트 리드는 혁명적 예술은 혁명적이 아니면 안된다. 예술은 그대로 혁명인 것이며, 그것 자체에 충실을 기하는 것에 의하여 가장 좋게 혁명에 봉사하는 것으로 비쳐지는 것이다. 따라서 변화와 혁신의 계기를 많이 띠고 있는 예술일수록 가치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점에서 그가 이러한 혁명예술에 대한 예로 역사적 아방가르드 문학운동을 들고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하나인 다다이즘은 그 발생 기점을 두고 볼 때 아나키즘 사상의 영향이라 말할 정도로 아나키즘과 연관성이 깊다. 아방가르드가 가장 정치와 직결돼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혁명성을 드러내주는 것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그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러시아 혁명초기에는 혁명의 완성과 진행을 위해 마르크시즘과 아나키즘이 협동하여 같이 동참하였던 만큼 러시아 아방가르드 운동은 사회주의 사상이 갖는 혁명 정신의 표현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러시아 혁명과 함께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예술을 창조한다는 취지 아래 우선적으로 부르주아 예술을 파괴하는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 러시아 아방가르드 문학은 레닌의 당파성 강조와 스탈린의 당을 위한 문학의 교조화, 즉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으로의 도구적 공식과의 길을 걷는 소련체제에서 배제된다. 아방가르드 문학이 갖는 혁명성은 계급독재의 교조화를 부추기는 소련공산당의 노선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운동의 기본적인 경향은 부르주아 예술이 예술을 삶과 분리시켜 예술의 자율성을 간직하고 있다는 환상을 거부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전통적인 예술적 미학을 거부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그것의 형식으로서 제도권 문학에 대한 반발은 아방가르드 운도의 특성이 부정단절의 사상에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예술은 가존 담론 체계를 뒤흔들어 놓음으로써 새로운 담론 체계를 유도한다. 이러한 아방가르드 예술은 위기의 예술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방가르드 주의자들은 결코 새로움 그 자체나 새로움 일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실제로는 위기의 새로운 형식들, 측면들, 혹은 가능성 등을 발견하거나 발명하려 시도한다. 따라서 아나키즘 사상이 왜 아방가르드 예술로서 반미학을 내세우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차원에서 아나키즘 미학은 언어를 파기하고 상징을 파기하여 즉물적이고 원시적 태도로 나아가려고 한다.

 

 

2-2. 민중예술론 - 비판적 리얼리즘 미학

아나키즘 예술은 그 사상적 측면에서 민중을 지향하고 그 형식적 측면에서 부르주아 양식을 거부한다는 측면에서 리얼리즘 미학과 아방가르드 미학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그 점에서 혁명예술론은 바로 프롤레타리아라는 부르주아계급에 억눌려 있던 피지배계급을 지향한다는 측면에서 민중적 삶과 표현방식을 추구하는 민중예술로 이어진다. 크로포트킨은 부르주아 예술이 당시 민중 생활과 유리된 하나의 유희적 사치임을 비판하고 민중예술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시인이 토지경작자들 간에서 자기 자신도 한 사람의 경작자로서 일출을 맞이한다면, 배를 타고 선원과 함께 폭풍과 싸워 본다면, 노동과 휴식, 비애과 환희, 투쟁과 극복의 시를 알게 된다면, 얼마나 자연에 대한 미의 감정을 흡수하고, 얼마나 잘 인간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인가!

 

종교적이고 평화적인 입장에서 아나키즘을 달성하려 했던 톨스토이도 현대예술이란 건강한 예술인가란 책에서 아나키즘 예술론을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중세의 예술가들은 민중과 동일한 심적 근거, 즉 동일한 종교를 지키며 생활하였고, 민중이 체험한 심적 기분을 건축, 회화, 음악, , 연극 등에서 표현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의 시대에 접근하기 쉽고, 또 전체 민중에 공통된 최고관념에 기초를 둔 그들의 예술 활동은 현대에 있어서든 천한 예술이지만 역시 참된 민중 전체에 공통된 예술이었다. 민중의 생활감정과 삶의 양태를 표현하는 문제는 민중적 감수성의 문제와 민중적 표현의 문제로 대두된다. 이는 다시 민중의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의 모색으로, 19세기 사회주의 사상과 결부되어 발달하던 리얼리즘미학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아나키즘 논자들 역시 올바른 민중문학은 리얼리즘으로 가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리얼리즘은 낭만주의적 부르주아 예술에 대한 항의이자 민중의 감정과 생활상을 담기 위한 예술임을 알 수 있다. 아나키즘이 추구하는 리얼리즘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는 사적 유물론으로서의 리얼리즘 미학과 변별된다. 크로포트킨은 위대한 이념 없이 위대한 예술은 없다. 중세예술의 위대함은 도시의 이념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미래의 예술은 연합의 이념에 입각하여야 한다. 한 계급의 독재라기 보다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상태에서 여러 계층과 역할들이 상호부조로 연대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리얼리즘, 특히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를 기원한다는 측면에서 리얼리즘의 문학의 효용성을 같이 인정하는 마르크스주의 리얼리즘 예술과는 거리가 있다.

한편 민주예술을 주장하는 측면에서 크로포트킨은 톨스토이 옹호자로 자처하고 나서면서 만인에게 이해하기 쉬운 예술, 만인에게 이해되어져 그들의 모든 감정을 높이는 예술이 기대되어지는 예술이라고 말한다.

 

 

.한국 아나키즘 시와 민족의식의 형상화

 

아나키즘 사상이 식민지 조선에 수용되었을 때 민족현실의 타개에 더 초점이 맞춰진 것은 사실이다. 이는 아나키즘 사상이 유토피아 원리 위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주축으로 해서 미래사회 건설로 나아가려고 하고, 절대권력을 부정하고 완전한 자유를 주장하는 점, 또 그 방법론으로 폭력을 일단 긍정하는 직접행동화의 이론이라는 점 등으로 20년대 일본제국주의 지배하의 민족현실 부정의 방도로서 당시의 민족감정에 잘 부합되어 사회에 관한 사상 중 우선적으로 수용전개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아나키즘 사상을 수용한 지식인들에게 아나키즘은 눈앞의 적을 격파하고 민족의 자유, 나아가 개인의 자류를 되 찾을 수 있게 하는 현실성 있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그 점에서 민족이라는 단위에 얽매이지 않는 아나키즘 원리에 비추어 보아 한국 아나키즘의 전개 양상이 이상할 것이다. 실제 영국 요크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존 크럼은 동아시아 아나키즘을 연구하는 가운데 한국 아나키즘을 일본, 중국과 비교하면서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은 데다 다년간 진부한 정치에 쉽게 빠져들어 변질된 아나키즘 운동이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아나키즘 사상이 이런 민족주의로 쉽게 전향될 수 있는 까닭은 아나키즘 사상이 추구하는 분권화와 지방 자치제의 원리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존 크럼의 평가는 민족주의로 쉽게 나아가는 분권화와 지역자치의 아나키즘 특성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1.역사적 현실대응과 민족의식

부르주아 지배체제에 반대하는 반체제 사상으로 지난 수 십 년간 활동해온 민족해방과 프롤레타리아해방투쟁은 그 관계에서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는 민족투쟁은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의 한 형태로, 혹은 바로 그 형태로까지 간주될 수 있다. 두 번째로 민족투쟁은 계급투쟁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하나의 혁명운동은 각 경우마다 피억압자들을 조직하며, 일단 그 운동이 승리하면 축적과정의 범세계적인 사회적 구조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 올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민족투쟁과 계급투쟁은 역사적으로, 그 때문에 이론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서로 다른 것으로 간주된다.

아나키즘 사상의 한국적 의미만을 살펴보려 할 때, 수용의 측면에서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에 어떻게 반응했나를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아나키즘 사상을 습득한 당시의 지식인들로서 식민지 하에서 그리고 해방 후 조국 건설의 과정에서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노력과 시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할 때, 아나키즘 시문학의 자리와 문학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1-1. 궁핍한 현실인식과 자주권 박탈의식

한국 아나키즘 문학은 일차적으로 아나키즘 사상이 갖는 자유와 평등의식의 상실을 전경화한 내용으로, 일제 하 모순된 현실에 대한 객관적 파악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신채호의 시에서 부터 우선 확인할 수 있다.

:신채호의 새벽의 별

김형원의 우리마을

김형원의 시를 두고 1920년대 상황에서 대부분의 작품이 서정소곡 위주였고, 또한 탈현실적인 경향의 것이었음에 비해 현실주의에 입각해서 작품을 쓴 이단적 존재였다는 평은 바로 이와 같은 그의 시적 형상화의 남다름에 있다. 3?1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후 식민지 조선현실에 대해 당시 대다수 시인들은 좌절감으로써 침묵하거나 관념적 세계로 도피함으로써 감상적 낭만주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김형원 만은 이러한 관념적 세계로 후퇴하지 않고 당시 절망과 궁핍의 역사현실을 객관적 입장에서 그려냄으로 해서 여전히 역사적 전망에 의거한 현실주의 문학을 달성해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 파악을 흔히 문학사에서 신경향파적 예술이라 부른다. 그는 주장하기를 문학과 실생활의 관계를 논하야 조선 신문학건설의 급무를 제창함이라 하고 있다.

김형원은 민중의 삶, 민중의 정서를 염두에 둔 민중예술론을 실천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 글의 말미에 조선의 톨스토이, 조선의 위고, 조선의 와일드, 조선의 괴테, 조선의 휘트먼 등을 간절히 바란다는 말을 두고 볼 때 세계적 민중예술론의 실천가를 이미 알고 있으며, 특히 그 중에서 톨스토이와 와일드, 위고, 휘트먼, 그리고 그가 한 번 언급하고 있는 입센 등이 민중예술론이 창시자이자 아나키스트임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다는 데에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의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大杉?)는 민중예술을 프랑스 민중예술론자인 로랑 롤랑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민중예술이란 평민노동자의 예술이다. 평민노동자가 창조하고자 하는 새로운 세계를 위한 새로운 예술이다. 평민노동자는 지금 낡은 사회와 그것의 모든 소산과 절연하고 새로운 출발점 아래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고 있다. 새로운 생명에는 복잡한 심리나 정치한 감정이나 난삽한 상징이 없다. 커다란 행동, 커다란 선으로 강하게 끌어당겨진 모습, 단순하고 힘찬 율동을 지닌 진솔한 감정 등으로 묘사되는 거친 가락, 이것이 생명의 참 모습이다. 동시에 또 이것이 민주예술 자체, 따라서 그 기교상의 근본적 원칙이어야 한다.

 

이 예술론은 프롤레타리아 신흥계급의 예술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언급된 것으로서 일본 프로문학의 선구적 방향성을 제시했다. 오스기 사카에가 강조하고 있는 커다란 행동, 커다란 선으로 강하게 끌어당겨진 모습, 단순하고 힘찬 율동을 지닌 진솔한 감정 등으로 묘사되는 거친 가락은 바로 정로풍과 권구현의 시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평민노동자의 입장에서 새로운 질서와 생명을 위 두 사람의 시들이 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나키즘 민중예술의 전형적 형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우리 시에서 보편적으로 형상화된 테마의 하나는 고향상실 의식이라 할 수 있다. 유치환의 봄 없는 나라여(벌서 서울에서는 눈이 온다는 신문기사이다)에서는 아나키즘사상에서 강조하는 인간해방, 그것의 전제가 되는 민족해방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그 점에서 유치환의 시 역시 역사현실의 억압적 상황에 대응한 표현이다.

신동엽의 錦江 13아나키즘 사상이 강조하는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서 자유추구의 직접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시에서 한층 격렬한 저항의식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먼저 이러한 자주권 박탈의식에 대한 저항의식은 아나키즘 사상이 추구하는 평등의식에 위배됨으로써 아나키스트에게 첨예하게 인식되어져 온다. 그 점에서 이러한 자주권 상실의식과 거기에 저항하는 시는 한국 아나키즘 시의 한 전형을 이룬다 말할 수 있다.

김형원,죽으러 가는 사람과 정로풍,獄衣가 운다그리고 이향의 獄舍禮讚은 모두 자유를 상실한 자의 분노와 비탄을 극단적으로 노래한다. 일제의 착취와 수탈에 고분고분 따르는 순응주의자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준다. 이는 바로 아나키즘의 저항적 인식의 발로이다. 정로풍 시의 적의와 증오의 표시는 아나키즘 사상의 제일의적 내용은 반항감정에 있다. 그 점에서 아나키즘 사상은 순종하지 않는 자와 무법자에 대한 공감과 流刑囚들이나 신의 버림을 받은 사람들의 입장에 대한 애정을 품게 한다.

아나키즘 입장에서 이러한 지배와 착취에 대한 거부의식이나 저항의식은 현실적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은 60-70년대에 작품 활동을 했던 박노석의바위의 念願이 좋은 예에 해당한다.

박노석의 아나키즘 사상을 습득하게 된 고백을 보면

 

나의 어린 시절은 내 고향 안의에 <아나키즘>이란 사상이 일본 유학생을 통해서 수입되었는데 형벌되는 청년들이 거의 그 사상에 공명하여 크게 운동을 일으켜서 단박에 신사조의 물결에 흽쓸려 들어갔다. 감수성이 빠른 나이이기도 했지만 봉건적인 것에 대하여 뭔가 반발하고 싶던 것이 많았던 때가 때이라 나에게 있어 이 사상은 여간한 마력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석으로 가까이 상종하던 연하자인 우리는 우리대로 소션이 듦에 따라 <죽림 6인클럽>을 갖게 되었는데 멤버는 하기락, 유병우, 이칠성, 노수열, 하충헌, 필자이다.

....<중략>....

 

일제하의 이 나라 젊은이의 고민을 혼자서 도맡은 양 실의 속의 세월이었다. 러시아의 크로포트킨과 일본의 大杉?전집을 탐독케 되면서부터 점차 자기의 인생에 대한 회의와 자아비판으로 새로운 진로를 모색케 되었던 것이다.

박노석.캄캄한 밤 횃불 하나의 정열로 돌이켜 본 나의 20

 

이를 통해 박노석이 아나키즘을 습득하게 된 배경은 전통적 질서에 대한 모순 인식, 그리고 거기에 자주권을 잃은 한민족의 비애와 분노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2.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대두와 계급적 민족의식

 

당시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은 이러한 자주권의 상실과 민족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당대 지식인들의 능동적 행위의 결과다.

 

나는 無産者이다!

아모것도 갓지못한

 

그러나 나는,

黃金, 土地, 住宅,

地位, 名譽, 安逸,

共産主義

社會主義

民主主義

! 나는 원치 않는다!

 

사랑도,家族,

社會,國家,

現在의 아모것도,

! 나는 詛呪한다!

그리고 오즉

未來合理生活

! 나는 要求한다.

 

...<중략>......

 

나는 無産者이다!

아모것도 갓지못한.

그러나 나는, 다만,

人間이란 財産만을

眞實意味人間.......

要求한다 絶叫한다!

그리고 다음에

人間權利

나의 손에 잇게하라고

나 스사로 나(사람)

認識하고 處分할만한.....

 

김형원,無産者絶叫

 

여기서 김형원이 공산주의도/ 사히주의도/민주주의도/! 나는 치안는다!//사랑도, 가족도,/사회도,국가도/현재의 아모것도,/! 나는 저주한다!”하고 말하는 것은 일체의 제도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인들의 연합체로 미래 삶을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때문에 그것은 아나키즘 사상적 견지에서 현재와 미래를 표현한 것이다. 그가 특히 데모크라시를 강조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그것이 설령 인간을 위한 제도라도 제도 자체에 구속되기 싫다는 아나키즘적 인식의 표현이다.

 

권구현의 님에게, 정로풍의거랑이,황석우의 五錢會費의 세편의 시는 분명히 역사 속에서 착취되는 피지배계급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역사변혁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인식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투쟁하는 피지배계급 자신이다. 아나키즘 사상이 역사적 현실위에 나타난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고 민중의 이상사회를 지향하는 사상이라 볼 때, 이 세 편의 시는 민중의 이러한 비참한 현실과 연가변혁의 주체를 인식하고 있는 전형적 아나키즘 시들이다.

황석우의 시는 민족적 차원에서 벗어나서 순수하게 노동자 계급의식을 보여준다. 황석우가 비록 일본에서 아나키즘 사상을 습득했다 하더라도 현실적 실천문제로 보지 않고 상징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문예사조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연유한다. 이는 황석우의 아나키즘시는 그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홍두표의 屠殺場과 이경순의 薔薇 먹은 死刑囚는 저항하지 못하는 민중을 힘 있는 자가 압박하고 착취함을 라는 대상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는 다분히 관념적으로 후퇴한다. 해방 후 당시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정립이 안 되고 있는 상황에다 동족상잔이라는 최대 위기를 맞아 의 개념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어떠한 억압도 거부한다는 아나키즘 정신의 발동으로 말미암아 당시 사회적 모순이라 할 수 있는 힘없는 자의 아픔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오면서 민족분단이 고착화 되고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분명해지면서 역사적 변혁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시가 나오게 된다. 신동엽의 시 (현대문학?19663월호)는 민족모순과 계급모순을 같은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정로풍의 시와 해방 후의 신동엽의 시는 계급적 민족의식을 잘 드러낸 시이다.

정로풍의 痛哭聲과 신동엽의 錦江6실제 정로풍은 일제 치하 당시朝鮮文學建設理論的 基礎라는 글을 통해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보여야 할 민족문학은 계급적 민족의식의 문학일 수 밖에 없다고 공언했다.

아나키스트 이향은 논쟁에 역립하야- 민족문학과 형식문제 小考라는 글에서 모든 작가는 그 계급적 입장과 사상적 견지에서 대상이 具有한 의미, 민족성과 계급성 그 양자를 절묘히 조화함에 위대한 작품이 나오리라고 믿을 뿐만 아니라 그 사명으로 녁인다

이런 내용은 계급운동의 세계화를 강조함으로써 민족적 특수성을 무시하고 있는 프로문학파들이나 피압박민족으로서의 조선민족의 계급적 위치를 몰각하고 있는 국민문학파 양쪽 모두에 대한 비판이다. 당대 카프족의 마르크시스트들이 계급모순 해방에만 치중했던 한계에 비해 민족현실에 대한 탄력적 대응을 했음을 알게 해주는 요소라 할 수 있다.

 

1-3 봄의 형상화로서 광복의식과 혁명의식

 

일제 하에서는 무력에 의한 탄압이 극심했기 때문에 민중봉기로 그런 사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해도 그 시도는 번번히 좌절될 가능성이 많고 그러한 시적 형상화도 검열에 삭제 당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서 민족독립이라는 민족모순의 해결 자체가 우선적으로 아나키즘 시인들에게 상징적으로 노래되었고 그 다음 단계에 실질적인 혁명의식을 노래하는 것으로 나아갔다 보여진다.

이전글 한국과 일본의 아나키즘 운동사 연표(김창덕)
다음글 국립대전 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