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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역사적 배경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
구리하라 야스시(栗原 康)
서언
최근 몇 년 사이 일본에서는 역사 수정주의자들의 언동이 기세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발단의 하나로는 2017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도지사가 간토대지진에서 학살당한 조선인 희생자의 추모식에 아무런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던 일입니다.
매년 9월 1일에 열리는 이 추모식에는 도지사가 추모사를 보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고이케 도지사는 이것을 거부했습니다. 이유를 추궁하는 보도진에 대해 고이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막대한 재난과 그에 따른 여러 사정으로 돌아가신 모든 분들께 애도를 표한다”.
요컨대 다양한 지진 피해자가 있는 가운데 특정 피해자만을 특별히 취급할 수는 없다, 나는 모든 지진 피해자를 추모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학살도 지진 재해 피해나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천재였다. 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는 도쿄도가 공공연하게 학살 피해 등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때부터 같은 재해로 죽었는데도 「학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영향은 매우 큽니다. 예를 들어 2022년에는 도쿄도의 시설에서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이 거부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주최 단체가 항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도의 직원은 앞서 언급한 고이케 도지사를 예로 들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도지사가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학살을 「사실」이라고 발언하는 동영상을 사용하는 것에 우려가 있습니다.
도쿄도의 공식 견해로서 학살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거꾸로 저런 대학살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레이시즘 이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더 루머인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현재 관련 단체가 항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도쿄도는 아직 의견을 철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너무나 분통이 터집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끔찍한 의견이 빗발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 뿌리에는 일본의 패전 이전의 대학살에서 상통하고 있는 지배의 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는 먼저 그 점을 밝히고, 당시 가네코 후미코가 가지고 있었던 사상의 가능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사적 배경 1.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대학살이 벌어졌을까요. 많은 역사 연구가들은 그 원인으로 두 가지 역사적 배경을 꼽고 있습니다. 하나는 식민지 지배입니다. 1919년 한국병합 이후, 일본은 토지조사사업이란 이름으로 많은 조선의 토지를 빼앗았습니다. 이 시기 일본인 고리대금업자가 빚을 담보로 가난한 농민의 땅을 억지로 빼앗은 것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땅을 사들인 일본인 지주가 농지를 잃은 조선사람들을 고용해 노예처럼 혹사합니다. 거역하면 헌병대를 파견해 본보기로 즉시 처벌이 이루어집니다. 1919년 3·1운동 때는 군대를 출동시켜 사정없이 탄압을 가해 수천 명을 살해하고 수만 명을 체포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점은 극도의 폭력입니다. 토지 수탈에서 탄압까지 포함해 수많은 일본인이 조선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양심의 가책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언젠가 복수 당할 것이다. 실컷 폭력을 행사해 놓고도 언젠가 같은 일을 당할까 봐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거기에는 식민지 지배에 따른 차별의식도 겹쳐 있습니다.흔히 지배하는 쪽은 스스로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상대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합니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정치도 경제도 운영할 수 없는, 도저히 살아갈 수도 없는 열등한 인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챙겨주는 것이다, 라고. 이것이 바로 「조선인 멸시」입니다.
이 차별 의식이 당연해지면 이번에는 말을 듣지 않는 반항적인 조선인이 배은망덕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일부러 온갖 것을 챙겨주는데, 이 얼마나 부도덕한 녀석들인가…….
거기다 이러한 차별의식이 일본 노동자들 사이에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증오와 적대심을 싹트게 합니다.일자리도 땅도 잃게 되어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에 오게 됩니다. 저임금에 혹사를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 노동자들에게는 경쟁의식과 위기감을 싹트게 만듭니다. 우리들의 일자리를 빼앗겨 버렸다. 어째 저런 놈들 때문에 우리의 삶이 희생돼야 하지? 절대 그대로 둘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조선인 멸시」와 앞에서 언급한 「공포심」이 어우러져 일본에서는 「불령선인」이라는 말이 퍼져 나가게 됩니다. 게다가 그런 「비인간」들에 대해서는 어떤 짓을 해도 좋다고 하는 풍조를 만들어 갑니다.
관동대지진을 앞두고 이미 조선인 학살은 벌어졌습니다. 1922년 7월 시나노가외(信濃川) 조선인 학살 사건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일자리에 쫓긴 조선인 노동자들이 일본에 건너와 일용직 노동자로 건설사에 고용됩니다. 그러나 이른바 노동자 취급은 절대 받지 못합니다. 아니, 인간 취급도 받지 못합니다.
가혹한 노무자 합숙소에 거의 감금된 상태에서 노예처럼 혹사당했던 것입니다. 애당초 일용직으로 취급당하는 것 자체가 처참한데 거기에 「조선인 멸시」가 겹쳐지면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이 됩니다.
날마다 회사 사람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도망치려 하면 그것이 「비인간」적인 행위로 간주되어 학살당했던 것입니다. 박열과 그 동지들이 그 실상 조사에 임했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식민지 지배의 가해자인 일본인들이 스스로 가해를 긍정하기 위해 피해자인 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피해자로서의 우위성을 내세우기 있기 때문에, 그 보복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이런 마인드는 앞서 언급한 고이케 도지사를 포함해 현재 많은 역사 수정주의자들에게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배경 2.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이것이 학살의 역사적 배경 중의 하나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시베리아 출병입니다. 1918년 일본은 러시아 혁명의 혼란을 틈타 출병합니다. 군대를 보내 침략에 나섭니다.
이때 일본군은 최신 무기로 무장하고 갔지만, 전혀 예기치 못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고전합니다. 러시아의 민중들이 빨치산을 조직화해서 게릴라전을 전개한 것입니다. 그냥 농민이라고 생각하고 방심하다가는 사실은 무기를 들고 있다가 갑자기 덤벼듭니다. 적병과 구분이 안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했던 것인가요. 그 대답은 몰살입니다. 전투원이냐, 비전투원이냐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가 습격해 올지 모릅니다. 그런 공포에 위협받아 패닉에 빠진 일본군들. 낯선 사람들이 모두 적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이런 비상사태에 일본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수상한 자는 모두 적이다. 모두 죽여버려라! 고 하면서 마을 사람 모두를 살육해 갔던 것입니다. 일본군의 대게릴라전. 그것이 학살이었던 것입니다.
이 잔인한 경험을 했던 일본군들이 귀국 후 재향군인회에 소속됩니다. 그들은 지역 주민들에게 군사 교육을 실시해 갔습니다. 일상생활에 군사 논리를 들여왔습니다. 간토대지진 때 이 재향군인회를 중심으로 자경단이 조직되어 학살이 행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일상생활의 군사화와 함께 「통치」의 논리가 과도하게 작용했을 때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평소 지배적인 사회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애초부터 정부가 있으며, 행정이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당연하게 되어 버리면, 위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는 정부에 세금을 뜯김으로써 굶주리게 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홉스적 세계관에 리얼리티가 생겨나게 됩니다. 민중은 정부 없이 방치되게 되면 서로 죽이기 시작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 벌어지고 만다!
솔직히 이것만 들으면 너무 일면적인 인간관이라고 생각하는데, 왠지 정부가 없으면 불안할 거라는 말을 듣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게 됩니다. 아마도 타인에게 통치되지 않는 상태가 갑작스럽게 상상이 안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정부가 있는 세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정부가 없으면 위험하다. 명령에는 절대 복종! 이라고.
그리고 이런 세계관이 침투하면 할수록 비상사태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행정이 기능하지 않고 있습니다. 길거리도 엉망진창. 정부를 전제로 하는 사회질서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아! 서로 죽이기 시작합니다. 전쟁 상태가 됩니다. 낯선 것들이 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정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의 정부 대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한다. 이런 비상사태에 법도 인권도 있을 리가 없다. 질서를 어지럽힐 우려가 있는 것은 절대 권력으로 비틀어 덮쳐 누른다. 살인을 해도 된다! 라고.
그것을 자경단, 스스로 경찰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실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흔히 간토대지진의 대학살에 대해서는 민중이 무질서해진 것이 주된 원인으로 간주됩니다만,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통치의 과잉입니다. 국가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것을 내면화한 「국민」들이 새로운 국가의 본연의 모습을 구현해 나간다. 참된 질서를 찾아 무엇이든 있는 권력을 휘두른다. 거기에 군사 논리가 겹쳐 간다. 그것이 대량학살의 방아쇠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조해 두고 싶은 것은 요즘 「학살이 없었다」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지배적 발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학살은 학살이 아니라 오히려 무질서를 다스리는 경찰 행위였다. 일본인에 의한 일본인을 위한 통치였다. 그것을 자랑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이나 행동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었을까요. 후미코는 아나키스트이자 니힐리스트였습니다. 특히 체포 후 후미코는 피고인 심문에서 자신의 니힐리즘 사상에 대해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나의 사상 이것에 기초한 나의 운동은 생물 멸종 운동입니다.”
니힐리즘이란 「생물의 멸종 운동」이라는 강렬한 말입니다. 이어서 후미코는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지상에서 생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들 사이에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생존하기 위한 투쟁, 생존하기 위한 상살(相殺)의 사회적 사실을 보고, 저는 만약 지상에 절대 보편의 진리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생물계에서의 약육강식이야말로 우주의 법칙이며 진리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생의 투쟁과 우승열패의 진리를 받아들인 이상 저에게는 「아이디얼리스트」(이상주의자) 의 무리와 하나가 되어 무권력 무지배 사회를 건설한다고 하는 행복한 생각은 흉내도 내지 못합니다. 더구나 생물이 이 지상에서 그림자를 감추지 않는 한 이런 관계에 의한 권력은 끝나지 않으며, 권력자가 여러 말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권력을 옹호하고 약자를 학대하는 이상, 그런 식으로 저의 과거 생활력 모든 것이 권력으로부터 유린당해 온 이상, 저는 모든 권력을 부정하고 반역해 인류의 절멸을 결심하고 그 운동을 도모했던 것입니다.”
이 생물계는 약육강식, 우승열패의 법칙으로 되어 있다. 오직 약자로서 학대를 당해온 나에게 이런 세상은 아무래도 좋다. 모두 끝장이다. 모두 멸망시키겠다. 나는 모든 권력에 반역하고 강자에 의한 강자를 위한 세계를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무나 죽여도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리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강자 중의 강자, 권력자의 총수인 천황과 그 아들 히로히토(ヒロヒト)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절대 권력을 갖고 신으로 추앙받는 천황을 폭파함으로써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생물계의 법칙을 떨쳐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이 후미코의 거친 반역 정신을 접하면 항상 마음이 떨립니다. 저립니다. 그러나 당시 천황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무엇이 이 여성을 여기로까지 몰고 간 것일까요?
그중 하나는 어릴 때부터의 처지였습니다. 본인이 자서전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후미코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사랑을 받는 적이 없었습니다. 부모의 사정으로 무적자로 자라나, 아버지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결국 부모는 이혼.
그 후 극빈의 생활을 강요당합니다. 어머니는 애인이 생길 때마다 그 남자에게 의존하고 거기에 후미코는 그 남자로부터도 학대를 받습니다. 아버지 친척에게 끌려가서도 방해꾼 취급을 받습니다. 할머니가 있는 부강에서도 하녀 이하의 취급을 받아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조금이라도 거역을 하면 욕을 먹고, 얻어맞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마치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강요당했습니다.
이런 실제 체험을 통해 나는 권력에 짓밟혀 있는 약자 중의 약자라고 인식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렇게 심한 반 권력에는 있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또 하나, 후미코는 부강시절 자신의 친척들에게 학대당하던 조선의 아주머니에게 대접을 잘 받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착한 조선인들이 헌병대에 끌려가 매를 맞고 있는 광경을 보고 분개합니다. 3.1운동에 감격해 가슴이 뛰게 됩니다. 강자에게 학대를 당하는 자신과 조선인들이 겹쳐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조선인의 사상에서 일본에 대한 반역적 기분을 제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는 1919년에 조선의 독립 소요 광경을 목격하고, 나조차도 권력에 대한 반역 기분이 들어, 조선 분들이 하시는 독립운동을 생각할 때 남의 일 같지 않은 감격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가? 저는 후미코와 동시대의 아나키스트 오스기 사카에(大杉?)의 사상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스기는 이러한 체험을 「센티멘탈리즘」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스기는 1908년 적기(赤旗)를 흔든 것만으로 체포되어 2년 반 동안 감옥에 들어가 있었습니다만, 이때 이런 체험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감방 창문으로 잠자리가 들어왔다. 그걸 잡은 오스기. 심심풀이로 끈으로 묶고 놀려고 했지요.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잠자리 날개를 책으로 끼웠을 때의 일입니다. 온몸에 전기가 흘렀습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창문 옆까지 가서 잠자리를 놓아주었습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
“나는 다시 내 자리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내가 지금 무엇을 했는지 몰랐다. 그때의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한 느낌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지 못했다. 나는 그냥 갑자기 가라앉아서 멍하니 뭔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희미했던 것이 점점 또렷해지면서 어떤 여운이 남아있는 동안 「나는 잡혀있었다」라는 생각이 아주 순식간의 섬광처럼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다. 이 섬광이 나한테 어떤 전기를 가해 내 몸을 창문 아래로까지 움직여 저 잠자리를 놓아준 것이었다.”
무의식적으로 몸이 움직여 잠자리를 풀어주고, 그 후 멍했던 것이 서서히 또렷해진다. 「나는 잡혀있는 것이다」 붙잡혀 있는 나 자신이, 잡혀있는 잠자리와 일체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나 자신도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런 강력한 생각으로 상대에게 공명해 간다. 자타의 구별은 없어지고 만다. 상대를 너무 생각해, 자신 역시 사라져 버린다. 뭔가 하고 싶다.
“그 후 나는 항상 이 일이 생각날 때마다 나의 그때 센티멘탈리즘을 비웃는다. 그러나 또다시 뒤집어 생각한다. 나의 센티멘탈리즘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마음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이 진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힌 사람인 만큼, 내 몸속에서 정말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분명 이렇게 생각했을 겁니다.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이렇게 힘든 일인데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한심하긴! 이번에는 사로잡혀 있는 것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 나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사로잡혀 있는 모든 것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이번에야말로 내 목숨을 완전히 태우고라도 해보겠다고. 그게 센티멘탈리즘입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조선사람들에게 느꼈던 것도 이런 센티멘탈리즘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런 마음이 박열의 시 「개새끼」를 읽다가 그의 반역 정신을 접하게 되면서 단번에 폭발하고 만 것입니다.
학대하는 자와 학대당하는 자. 일본인과 조선인. 자타의 구별을 넘어, 모든 학대받는 자들을 위해서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 설사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타자와 서로 공명하고, 나를 버리고, 나의 의지 따위는 소멸해 버릴 정도로, 앞뒤 가리지 않고 나 자신을 산다. 역설적인 표현이 되어 버립니다만, 그것이 후미코에게 있어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신의 의지」를 산다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산다는 것은 단지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즉 행동은 ××××× 전부가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산다는 것이 아닌 행위가 있어야만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때, 그것이 좋다, 육체를 파멸로 이끌어 간다 하더라도. 그것은 삶의 부정이 아니다. 긍정이다?라고.”
장래를 생각해 그냥 생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썩어빠진 세상은 이제 끝장내 버리자. 멸종에 대한 갈망. 생사를 뛰어넘어 살아가는 것이다. 언제나 앞은 캄캄하다. 끝없는 허무를 살아간다. 지금 죽을 생각으로 산다. 다시 없는 지금을 산다. 그것이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의 니힐리즘입니다.
마무리
나는 이러한 후미코의 사상 속에 차별의식을 뿌리에서부터 해체하는 힘이 감춰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후미코가 하려 했던 것은, 지배하고 있는 쪽이 지배받는 쪽을 도와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발상에는 항상 보살펴 주고 있다는 의식이 동반되어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지배자인 일본인으로서의 자신을 파괴한다. 자기 자신을 죽여 버린다. 그리하여 자신을 무로 되돌려 지배당하고 있는 쪽과 일체화해 간다. 함께 살고, 함께 싸운다. 그것을 머릿속에서만이 아니라 동지인 박열과 함께, 불령사 동지들과 함께 실천해 나갔던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실천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와 연결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후미코 사상의 근저에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즉 손실이나 이득(그뿐만 아니라 생사조차도)을 뛰어넘어 산다고 하는 발상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아나키즘에서는 이 사상을 「상호부조」라고 부를 것입니다.
어쩌면 상호부조라고 하면 모두가 서로 돕는 이상 사회를 상정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표트르 크로포트킨은 『상호부조론』에서 상호부조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인류 공동의 의식, 설사 그것이 사소한 본능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어쨌든 이런 의식 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상호부조의 실행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세력의 무의식적 승인이다. 각자의 행복이 모든 행복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에 대한 무의식적 승인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력의 무의식적 승인」이라는 점일까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일본인을 위한 것도 아니다. 자기 이익이나 국익을 위해서가 아니다. 심지어 이상을 위해서도 아니다. 머리로 득실 계산을 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그냥 눈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도와준다. 눈앞에서 조선사람이 매를 맞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손을 내밀고 싶어진다. 함께 궐기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건 의식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득실을 따져서 할 일도 아니다. 막상 그때 도와준 상대가 돈이 많아 대가를 톡톡히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도와준다거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장래의 이상 사회를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장래를 가정하면, 설사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생겨 버립니다. 그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로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후미코는 그런 장래조차도 과감히 포기한다.
오히려 내 육체가 없어지더라도, 설령 내가 일어서는 것으로도 사회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손을 내밀고 마는 것입니다. 아마 아무 소용없을 거야. 하지만 알고 있지만 절대 그만둘 수가 없다.
이 사상의 핵심은 주위에 있는 인간을 친구냐 적이냐로 구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유용한지 아닌지, 혹은 유해한지 어떤지. 그런 사고를 뛰어넘어 가는 것이다. 친구냐 적이냐가 아니다.
어쩌면 언젠가 도와준 상대에게 따끔한 맛을 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손을 내밀고 맙니다. 단지 친구, 친구, 친구.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 힘을 「세력」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낯선 당신에게 두려움은 품지 않을 것입니다. 서로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권력을 세울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재해가 발생했을 때일수록 서로 도와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국가도 기업도 멈춰버렸다면 돈이 없어도 됩니다. 국가를 위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식량이든 의류든 의약품이든 누군가 어딘가에 가지고 있는 것을 가져와 필요에 따라 갖고 싶은 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면 될 뿐입니다.
자기들 일은 자기들끼리 한다, 할 수 있는 것이다. 후미코라면 이것을 「자주 자치」라 부를 것입니다. 나는 이러한 사상 속에 통치의 과잉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리합니다. 후미코의 「생물 멸종 운동」. 그것은 우승열패의 법칙을 진리로 하는 이런 생물계를 멸망시킨다는 것입니다. 인간계로 말하자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진리로 하는 이 세상을 멸망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멸망한 그 후에 더 나은 사회를 세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후미코가 강조했던 것은 다시 없는 「지금」을 사는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서 세계를 파멸한다. 미래 그 자체로부터 이탈해 간다. 지금 여기서 상호부조의 힘을 폭발시킨다. 지배 없는 공동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 마지막으로 일본의 공권력이 조선인 학살을 부인하기 시작한 오늘날에는, 점점 더 후미코가 말한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학살의 사실조차 인정하지 못한다면, 이런 세상은 필요 없다. 가네코 후미코의 지금을 산다. 아나르코 니힐리즘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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