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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창덕 이메일 guso9662@daum.net
작성일 2025-05-01 조회수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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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성인과 아나키즘-윤재석

4대 성인과 아나키즘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4대 성인은 석가(BC 560~BC 480) 공자(BC 551~BC 479), 소크라테스(BC 470~BC 399), 예수(BC 2~33)였다.

이들은 각기 특유의 철학으로 종교를 창시하거나(석가, 공자, 예수), 일가를 이뤄 철학의 맥을 이었다(소크라테스).

평소 궁금해 마지않았던 것은 이들과 아나키즘과의 관계였다. 과연 이들은 아나키스트였나? 아니면 적어도 아나키적 사고로 살았는가? 아니면 아나키즘과 반대되는 스탠스를 보였나? 하는 것이었다.

각종 서적과 학회 발표 논문 등을 종합하고, 또한 챗지피티(ChatGPT)를 활용하여 이에 대한 의문을 풀어가려 한다.

 

아나키즘과 가장 거리 먼 공자

 

우선 공자(孔子).

그는 한눈에 봐도 아나키스트는 아니었다. 아나키스트가 국가 권력과 각종 권위를 부정하고 자율성과 자발적 협력을 중시하는 사상인데 반해, 공자는 오히려 공공질서와 위계, 전통적 권위를 중시했다.

공자의 사상의 핵심은 예()와 인()이다. 예는 사회 질서와 계급에 따른 예절을 강조하며, 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덕적 관계를 강조한다. 그는 군주가 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 자체가 군주의 존재를 강하게 인정하는 것으로 결국 아나키즘과는 다른 종적(縱的)인 계급 사회를 용인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물론 그가 살았던 춘추시대가 봉건 질서의 붕괴 등으로 혼란한 시기였기에 그런 혼란을 재우고 도덕적 통치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통치자의 도덕성에 의지할 필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공자 스스로 권력에 굴종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그는 확실히 아나키즘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 역시 아나키즘과 거리

 

다음으로 소크라테스.

그도 아나키스트로 보기엔 적절치 않은 부분이 많은 인물이다. 우선 국가와 법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성향을 보였고, 법은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 플라톤의 저서 크리톤을 보자.

기원전 399년 새벽, 소트라테스의 절친인 크리톤이, 사형판결을 받은 후 갇혀 있는 그를 만나러 감옥에 찾아온다. 내일이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소크라테스를 탈옥시킬 요량에서다.

크리톤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소크라테스의 탈옥을 합리화한다.

자네가 죽는다면 나는 결코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그런 친구를 잃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내가 돈이 아까워 자네를 구하지 못했다고 여길 것이다.”

자네가 도착하는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자네를 반길 것이다.”

탈옥을 거부하는 것은 자녀들을 버리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끝까지 고난을 견뎌 내야 한다.”

나로서는 자네와 관련된 모든 일이, 우리 쪽이 용기가 없어서 벌어진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지나 않을까 해서 부끄러워하고 있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탈옥 여부를 고찰한 후, 조목조목 답변한다.

분별 있는 자들이 내리는 좋은 판단을 존중해야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내리는 좋지 않은 판단은 존중할 필요가 없네.”

다수의 의견이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다수의 판단에 의한 원칙은 바꿀 이유가 없다고 보네.”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을 가장 중시해야 하지.”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훌륭하게 사는 것’, ‘아름답게 사는 것’, ‘정의롭게 사는 것은 서로 동일하다는 원칙을 이끌어낸다. 크리튼은 하는 수 없이 이러한 원칙들에 동의하게 된다. 크리톤이 보기에는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부드러운 수용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부당한 법률 적용에 항거하거나 이에 불응해 탈옥함으로써 자신의 권익을 보호하기보다 무기력한(?) 자세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점은 아나키스트와 반대되는 행보에 해당한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를 아나키스트의 범주에 넣을 수는 없다.

 

아나키즘의 향기 풍기는 석가

 

그렇다면 석가(붓다·고타마 싯다르타)는 과연 아나키스트인가?

석가 역시 아나키스트로 단정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의 가르침에 일부 반권위적·탈권위적 성향이 있다.

우선 인도의 오랜 신분제도인 카스트 제도를 비판하고 모든 이가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브라만 중심의 지배체제를 정면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탈위계적이고 평등주의적 입장이 아나키즘과 맞닿는 부분이다.

또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 “스스로를 등불 삼고, 법을 등불 삼으라고 강조한 바, 이는 외부 권위에 의존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과 이성으로 진리를 추구하라는 뜻이다.

심지어 자신의 가르침 역시 초개처럼 무시하라고 제자들에게 설파했다. 석가는 자신의 가르침을 뗏목에 비유하고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넌 나그네가 해야 할 일은 뗏목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뗏목은 강을 건널 때만 쓰면 되지,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석가의 가르침 역시 본성이 뗏목과 같다는 점을 명확하게 이해하면, 나쁜 가르침은 말할 것도 없고 좋은 가르침도 다 버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마치 장자의 무위자연에 비견되는 아나키스트적 모습이다.

 

장자에 비견되는 무위자연 돋보여

 

반면에 그는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거부가 없었고, 당시 자신이 활동했던 마가다의 국왕 비마비사라와도 우호적으로 지내 기존 제도 자체를 부정하거나 전복하기보다 공존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정리하자면 석가는 권위적 제도에 비판적이고, 자율성과 평등을 강조했지만, 현실 정치 질서를 거부하거나 대체하려 하지는 않았다. 아나키즘과 거리가 있는 행보다.

하지만 후대에 불교 아나키즘이라는 장르가 생겨날 정도로 석가와 아나키즘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있다. 불교 아나키즘은 국가는 권력으로의, 자본주의는 물질로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한 제도이며, 이 두 가지가 압박과 고통을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 석가의 관점으로 보면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것은 상대를 괴롭히는 것밖에 안 되며, 그리고 결국은 지배하려고 한 자기 자신도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 따라서 지배-피지배의 고약한 틀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축재를 비롯한 부의 집착도, 자본주의자와 상대를 고통에 시달리게 하는 것과 같다. 근본적으로 불교는 자본주의와 대립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와 아나키즘의 연결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예수, 아나키즘에 가장 근접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예수는?

결론부터 말하면 4대 성인 중 아나키즘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 예수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 정치적 정의, 그리고 신학적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예수를 아나키스트로 볼 수 있는 이유와 없는 이유로 나누어 분석해 보자.

먼저 예수를 아나키스트로 볼 수 있는 이유 세 가지.

그는 우선 기존 질서는 물론, 종교(유대교) 권위에 대해 강한 비판 의식을 갖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유대교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을 겨냥해 서슬 퍼런 비판의 날을 세웠으며, 종려주일 성전에서 좌판을 둘러 엎고 장사치들을 내쫓은 사건(마태복음 2112, 마가복음 1115, 요한복음 213~16)은 제도화된 종교 권위에 대한 강한 거부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 세속 권력과 신적 권위를 완전히 분리하는 멋진 반격으로 세속 권위에 익숙한 속물들을 곤경에 빠트린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은 예수를 곤경에 빠트리기 위하여 흉계를 꾸미던 중(마태복음 2215), 갖은 미사여구를 사용하여 예수님을 부추긴 후에 예수님께 납세에 관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질문한다(16~17).

이 질문은 겉으로는 매우 단순하지만 답변이 쉽지 않은 함정 있는 질문이었다. 그들은 만일 예수가 세금을 바치지 않는 것이 옳다고 하면 예수를 로마에 대한 반역 선동죄로 몰아 고소하고,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면 매국노로 몰아 백성들이 예수를 배척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여기서 멋진 파격의 답변으로 이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1).”

결국 그들은 공격에 실패하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뺀다.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면서 기존의 위계질서보다 평등과 돌봄의 공동체를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아나키스트라 할 수 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그에 더해 유대인들이 그를 메시아로서 정치적 해방자, 즉 왕으로 삼고자 했지만 예수는 그것을 일관되게 거부함으로써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저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에서 그를 명백한 아나키스트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서적은 인도의 정신적 지도자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에게 감명을 주어 두 사람이 서로 교류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

 

성경 곳곳에 아나키스트적 면모 보여

 

그 외에도 그늘 아나키스트로 규정할 수 있는 예는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 비근한 예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훤칠한 백마를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나귀 새끼를 구해오라고 한 점(마가복음 112)이나,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일일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준 행보(요한복음 134~5)는 그가 4대 성인 중 아나키스트에 가장 근접한 인물임을 시사하는 사례들이다.

물론 예수를 아나키스트로 볼 수 없다는 반론도 없지 않다.

첫째, 아나키스트들이 흔히 쓰는 급진적 저항이 없고 언제나 비폭력, 용서, 화해를 강조했다는 것이다.

둘째, 아나키스트들이 권위를 일절 거부하는 것과 달리 그는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질서 안에서 살 것을 요구했다(로마서 131~2).

결론적으로 예수가 전통적 의미의 아나키스트는 아닐지라도 당시 사회 질서와 권위에 도전한 급진적 인물임이 분명하므로 총체적으로 영적 아나키스트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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