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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창덕 이메일 guso9662@daum.net
작성일 2025-07-17 조회수 88
파일첨부 한국 아나키즘 문학의 전개_조동범.hwpx
제목
아나키즘 학교 제6강 한국 아나키즘 문학의 전개-조동범-

한국 아나키즘 문학의 전개

 

 

 

조동범

 

 

 

한국 아나키즘 문학은 당파성보다 예술성을 강조하는 경향으로 전개되었다. 마르크시즘 문학 진영이 당파성을 강조한 데 반해 아나키즘 문학 진영은 미적 가치를 추구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론 아나키즘이 무강권만민평등을 지향하는 것처럼 아나키즘 문학 역시 이와 같은 성향을 전제한다. 따라서 아나키즘 문학은 무강권’, ‘자연 추구’, ‘생태와 환경 지향등의 특성을 보인다. 다만 이러한 특성이 문학의 보편적 특성과 겹치는 부분이 많은 탓에 이것을 아나키즘 문학 만의 개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나키즘 문학이 이러한 주제를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아나키즘 문학의 독자적 문학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러한 경향을 드러낸다는 이유만으로 아나키즘 문학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처럼 아나키즘 문학은 마르크시즘 문학처럼 특정한 이즘(ism)을 공고히하는 양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아나키즘 문학이 추구하는 것들은 인간 본성과 맞닿아 있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유연하고 열린 태도를 통해 삶의 본질을 추구한다. 따라서 아나키즘 문학 작품만의 특징적인 지점을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국 아나키즘 문학은 해방 이후 한국 문학의 주류 질서 안에서 연구되지 못했다. 특히 한국 문학사와 관련된 연구는 김화산과 임화의 논쟁과 관련된 부분을 소략하거나 마르크시즘 문학과의 관계를 파악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경우도 대부분 마르크시즘 문학에 대한 논의의 한 부분으로 아나키즘 문학을 언급할 뿐이다. 아나키즘 문학을 독립된 문학사로 다루기보다, 마르크시즘 문학사와 일제강점기 문학사를 설명하기 위한 참고 자료 정도로 다루고 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일제강점기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지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해방 이후 한국 문학 연구자들은 아나키즘 문학을 폄하하고 축소했다. 조연현은 한국현대문학사(성문각, 1977)에서 카프 계열의 작가와 작품만 언급할 뿐, 아나키즘 문학에 관한 내용은 기술하지 않았다. 김윤식의 경우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한얼문고, 1973) 등의 저작을 통해 아나키즘 문학을 언급하지만 신기한 외래 사조에 대한 호기심등으로 치부했다. 이외의 문학 연구자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이다. 일제강점기 아나키즘 문학이 민족주의 문학, 마르크시즘 문학과 함께 한국 문학사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방 이후 기술된 한국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대부분 카프와 아나키즘 문학 진영 사이에 벌어졌던 논쟁을 다루었을 뿐이다. 아나키즘 문학 진영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일제강점기 뿐만 아니라 해방 이후 50~60년대 아나키즘 문학에 관한 연구 역시 미진하다. 한국 아나키즘 문학은 일제강점기에 가장 활발하게 꽃피웠지만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해방 이후의 문학사를 다룬 연구에서도 아나키즘 문학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나키즘 문학인에 대한 개별 연구 역시 미흡하기는 마찬가지다. 김형원, 김화산, 권구현, 이육사, 유치환 등 몇몇 작가들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다른 진영 작가에 대한 연구에 비하면 매우 적다. 대표적인 아나키즘 문학인으로 알려진 김화산, 권구현에 관한 연구 역시 문학사적 비중에 비해 소흘히 다루어졌다. 심지어 아나키즘 문학 논쟁을 주도한 김화산의 작품과 비평은 출간된 바 없다. 또한 이육사와 유치환의 경우는 아나키스트로서 활동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즘 문학인으로 파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가운데 아나키즘과 아나키즘 문학 진영은 다른 진영으로부터 비판을 받으며 대립했다. 아나키즘에 대한 비판은 진영을 막론하고 이어졌는데, “맑시즘, 특히 레닌이즘은 아나키즘을 증오하였고, 모든 스테이티즘statism[國家主義]그리고 우파 반동 철학도 아나키즘을 혐오했다. 그 이유는 다른 진영의 사상이 한결같이 국가라는 제도에 대한 불가치의不可置疑적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아나키즘을 실현 불가능한 로맨티시즘romanticism의 타락 내지는 리버럴리즘liberalism의 환상으로 치지도외置之度外했다. 한국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아나키즘은 마르크시즘과 민족주의 양 진영으로부터 모두 공격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아나키즘 문학도 마찬가지였다. 마르크시즘 문학 진영은 당파성을 문제삼으며 아나키즘 문학은 마르크시즘으로부터는 허구적, 관념적, 타협적 문학론이라 비판받고, 민족주의자들로부터는 기회주의적, 허무주의적이라 비판받음으로써한국 문학사의 주류 질서로 편입되지 못했다. 아나키즘 문학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던 것은 임화였다. 임화는 김화산과의 논쟁 등을 통해 아나키즘 문학이 지닌 한계를 지적했다. 임화의 입장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나키즘 문학에 당파성이 결여되었다는 점을 지적한 부분이다.

임화는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의 기관지 문화전선창간호에 현하의 정세와 문화운동의 당면 임무라는 글을 발표한다. 임화가 이 글을 쓰면서 전제로 삼은 것은 문화에 대하여 정치가 우위에 선다는 사실이다. 물론 임화가 문화가 곧 정치에 종속된다거나 정치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화가 문학의 당파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분명하다. 임화는 이런 입장을 근간으로 하여 당파성이 부재한다는 이유로 아나키즘 문학 진영을 비판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화산이 논쟁을 벌였지만, 아나키즘 문학의 운명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일제강점기 아나키즘 문학에 대해 여러 문학인과 지식인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주류 질서가 되지 못했다. 해방 이후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김영민은 한국현대문학비평사에서 해방 직후 민족문학론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는 한국 문학사를 좌파 문학 운동과 우파 문학 운동으로 나누어 전개하고 있는데, 좌파 문학 운동은 마르크시즘 문학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고 우파 문학 운동은 <중앙문화협회><전조선문필가협회>에 소속된 문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나 좌파 문학 운동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아나키즘 문학에 관한 논의는 제외했다.

김영민은 좌파 문학운동에 대한 내용을 임화의 활동과 시각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나키즘 문학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다. 임화가 아나키즘 문학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기는 했지만, 아나키즘 문학 진영과 논쟁을 벌였다는 점에서 한국현대문학비평사에 그 내용이 빠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김영민은 <조선프로레타리아예술동맹>과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던 아나키즘 문학 진영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나키즘 문학 진영과 마르크시즘 문학 진영 간의 논쟁은 일제강점기 문학논쟁에서 매우 중요한 문학사적 사실이다. 김영민의 해방 직후 민족문학론은 이 부분을 간과했다.

김영민의 한국현대문학비평사에 아나키즘 문학 진영의 입장이 기술되지 않은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비해 해방 이후 아나키즘 문학 진영의 활동이 축소된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해방 공간을 전후한 시기는 여전히 아나키즘 문학 진영의 세력이 사라지지 않던 시기였다. 물론 아나키즘 문학 진영의 활동이 일제강점기에 정점에 이르렀다가 그 이후 축소된 것은 맞다. 그러나 문학사에서 완전히 배제될 정도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아나키즘 문학에 대한 무관심은 이후에 더욱 심화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아나키즘 문학은 한국 문학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아나키즘 문학이 한국문학 연구에서 배제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첫째, 아나키즘 문학의 이론적 배경이 치밀하게 제시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문학에서 이론적 배경이 중심인 것은 아니지만 이론적 토대가 약한 상태에서 아나키즘 문학은 폭넓은 지지와 독자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두 번째 이유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아나키즘 문학인과 아나키즘 동반자 작가들의 상당수가 마르크시즘 문학 진영과 민족 문학 진영으로 입장을 바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아나키즘을 기반으로 창작을 이어간 작가들을 다른 진영의 사상을 가진 작가로 잘못 이해한 경우도 있었다. 세 번째로는 해방 이후 한국문학사가 아나키즘 문학을 배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한국 문학사를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주로 마르크시즘 문학과 민족 문학을 연구했던 이들이었다. 이들은 아나키즘 문학에 관심이 없거나 비판적 입장을 취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나키즘 문학은 한국문학사에서 배제된 채 잊히게 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문학사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 김윤식의 경우만 하더라도 아나키즘 문학을 한갓 신기한 외래사조에 대한 호기심으로 치부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나키즘 문학은 한국 문학사에서 잊힌 존재가 되었다.

이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아나키즘 문학의 작품 수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아나키즘 문학 작품의 수준이 마르크시즘 문학 진영 작가들의 작품이나 민족 문학 진영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러한 주장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아나키즘 문학 진영에 대한 구분과 평가가 왜곡되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주장은 옳지 않다. 아나키즘 문학 진영 작가나 동반자 작가로 분류해야 하는 많은 작가들이 다른 진영의 작가로 분류되었다. 당연히 아나키즘 문학 작품과 작가군()의 외연은 축소될 수밖에 없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일제강점기 우리 시의 저항성의 절경을 보여준 이육사만 하더라도 아나키스트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시인으로만 알려졌다.

아나키즘 문학인의 경우, 작가 스스로 아나키스트임을 밝히지 않는다면 아나키즘 문학인으로 분류하는 것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나키즘이 드러내는 사상적 경향이 인간 보편의 정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아나키즘 문학의 이런 경향 때문에 아나키즘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들조차 아나키즘 문학으로 분류할 근거가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모호성 때문에 오늘날 아나키즘 문학 진영을 파악할 때 외연이 축소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해방 후 아나키즘 문학은 신동엽, 유치환, 장용학, 이경순, 박노석, 김수영 등의 작품에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유치환은 아나키즘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아나키즘 현실정당인 독립노농당 당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장용학, 이경순, 박노식의 작품과 이들에 대한 연구는 활발한 편이 아니다. 신동엽과 김수영의 경우는 이들의 작품을 아나키즘적 특성으로 파악하는 연구가 다수 존재한다. 신동엽과 김수영은 스스로 아나키스트라고 밝힌 바 없으며 아나키스트로서 활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의식과 작품에 아나키즘의 영향이 드리워졌음은 분명하다.

196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아나키즘 문학은 그 이후 명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물론 아나키즘 문학에 관한 연구가 미약하게나마 이어지기는 했다. 그러나 아나키즘 문학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한국 문학사에서 잊힌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나키즘에 대해 호의적으로 생각하는 문학인들이 많지만 이것은 무강권과 자유에의 의지 정도를 작가적 지향점과 유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나키즘 문학과 문학사에 관한 연구는 그마저도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의 시기로 제한된다. 그런데 문제는 아나키즘은 물론이고 아나키즘 문학에 대한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더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나키즘 문학사가 왜곡된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점을 밝히는 일이 쉽지 않다. 흩어져 있는 아나키즘 문학 자료를 한데 모으고 엮어 그것이 하나의 문학사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그럼으로써 한국 문학사는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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