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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신태영 이메일 endlesssun@nate.com
작성일 2022-09-05 조회수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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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민문화연구소 공지 - 2022.09.05.(월)

국민문화연구소 공지 - 2022.09.05.()


 

 1. 20228월 행사

 

1) 819() - 연구소 하기수련회가 경기도 이천의 이원영 이사 댁에서 열렸다

- 원래 12일 일정으로 전북 고창에서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등의 상황을 감안하여 축소 운영했다.

 o 당일 행복과 평화, 그리고 아나키즘이라는 제목으로 신태영 감사의 강연이 있었다. 신태영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이왕이면 우리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입니다. 진정 평화로운 세상을 만든다면 모두 다 행복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방법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아나키즘이고, 그 시작점은 우리 독립혁명가들의 삼균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또 당면한 우리나라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활 속 민주주의실현과 기본소득제도 도입이 절실하다며, 이를 위해 자기 자신부터 철저한 민주주의자가 되어야 하고 기본소득은 자선이 아닌 권리라는 인식 개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o 좌담회에서는 김덕진(시민모임 독립의 대표) 신입회원의 인사와 시민모임 독립에 대한 소개 등이 있었다. 한편 이날 수련회는 이원영 이사가 준비한 성찬으로 시종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수련회를 마친 후 김명섭 선생의 안내로 이천 의병 전적비(이천 신둔면 수광리)에 참배했다. 이 전적비는 을미의병 중 처음으로 봉기한 이천의 의병이 일본군을 대패시킨 것을 기념하여, 전투가 벌어진 그 장소에 이원회(李元會)라는 민간단체에 의해 세워졌다.

     

     

    2. 20229월 행사 안내

     

    1) 9월 27() - 수민 이문창 선생님 출판기념회 개최

    - 강동권 이사(이학사 대표) 출판 진행, 9월 중 700부 출간 예정

      ※ 자세한 일정은 추후 안내 예정

        

         

    3. 그 외 소식

     

    1) 823() - 김자동 선생 별세

    임정의 아들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증언자이신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김자동 선생께서 2022823일 별세하셨다. 선생님은 조선민족대동단 총재인 김가진 선생의 손자이다.

       

      2) 829() - 국치일 민족 각성의 날

      - ()독립유공자유족회 주최, ()한국민족사회단체협의회 주관으로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제112주년 국치일 민족 각성의 날 독립운동선열합동추모대전이 있었다.

       

      3) 91() - 간토학살 제99주기 추도문화제 개최

      - 시민모임 독립에서 8월 한 달 동안 일본 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91일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간토학살 제99주기 추도문화제가 열렸다.

        

       

      4. 이달의 독립운동 약사

       

      91() - 관동학살 99주기

      - 192391일 일본의 관동(간토) 지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자, 일제는 다음날 계엄령을 선포하고 조선인을 학살했다. 이에 따라 조선인뿐 아니라 중국인이나 타지역 출신의 일본인은 물론 일본인 사회주의자 등 최소 6천 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o 92() - 1919년 강우규 의거

      노인동맹단의 강우규(姜宇奎, 1855.7.14. ~ 1920.11.29.) 의사가 남대문역(서울역)에서 신임 총독 사이토에게 수류탄을 던졌다.

       

      o 94() - 1922년 이애라(李愛羅, 1898.1.7. ~ 1921.9.4.) 순국

      이규갑(李奎甲)의 아내로, 본명은 이심숙(李心淑)이고 이애일라(李愛日羅)라고도 한다. 수도 없이 연행되고 고문을 받던 이애라는 1921년에 두 아이를 데리고 러시아로 망명하다가 체포되었다. 고문으로 위독해져서야 석방되었는데, 얼마 후 다시 탈출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지만 결국 병원에서 병사했다.

       

      o 97() - 1924년 안무(安武, 1883.6.29. ~ 1924.9.7.) 순국

      대한제국의 교련관 출신인 안무 장군은 대한국민회 산하인 국민회군의 사령관으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참여했다. 그 후 용정에서 경신참변과 자유시 참변으로 와해된 독립군을 재건하던 중, 일경의 습격을 받고 교전하다가 총상을 입고 포로가 되어, 다음 날 전사했다.

       

      o 99() - 1945년 차리석(車利錫, 1881.7.27. ~ 1945.9.9.) 서거

      차리석 임시정부 국무위원이 중경의 임시정부 청사에서 서거했다.

       

      o 910() - 1910년 매천 황현(黃玹, 1855.12.11.~1910.9.10.) 순국

                          - 1958년 조소앙(趙素昻, 1887.4.10.~1958.9.10) 서거

      황현이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절명시 네 수를 남기고 자결했다.

      -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 된 삼균주의를 창시한 조소앙은 해방 후 전국 최고 득표로 국회의원이 되었지만 6.25 때 납북되었다. 70년대 말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이장되었다.

       

      o 911() - 1919년 통합 임시정부 출범

      상해 임시정부는 1919411일에 수립되었지만, 상해 임시정부를 포함해 3.1운동 전후로 국내외에 7개의 임시정부가 있었다. 이에 9월에 임시정부들이 개헌형식으로 통합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출범했다.

       

      o 912() - 1921년 김익상(金益相, 1895~1925.6.6.) 의거

                             - 1916년 대종교 교조 나철(羅喆, 1863.12.2. ~ 1916.9.12.) 순국

      - 의열단원 김익상이 조선 총독부 청사에 폭탄을 투척하고 중국으로 탈출했다.

      대종교를 창시하고 민족교육을 실시하여 김좌진, 박은식, 김규식 등 많은 애국열사를 배출한 나철이 자결했다.

       

      o 914() - 1920년 박재혁(朴載赫, 1895.5.17. ~ 1921.5.11.) 의거

                          - 1922년 최팔용(崔八鏞, 1891.7.13. ~ 1922.9.14.) 순국

      의열단원 박재혁은 부산경찰서 경찰서장 집무실에서 폭탄을 터뜨려 서장을 폭사시켰다. 폭탄이 터질 때 박재혁도 중상을 입어 현장에서 체포되어 사형이 선고되었다. 박재혁은 왜놈 손에 죽기 싫다며 단식하여 자결했다.

      - 2.8독립선언을 주도했던 최팔용이 출옥 후 귀국했으나 병사했다.

       

      o 915() - 1910년 오성술(吳成述, 1884.5.15. ~ 1910.9.15.) 순국

      - 1907년부터 3년간 광주?나주?담양?함평?고창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오성술이 포로가 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순국했다.

       

      917() - 1940년 대한민국임시정부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설치

      이날 창설식에는 임시정부와 한국독립당 및 중국과 각국 외교사절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광복군은 총사령부 산하 3개 대대를 설치하고, 총사령에 이청천을 임명했다.

       

      920() - 1932년 쌍성보(雙城堡) 전투

                          - 1909년 이인영(李麟榮, 1868. 9. 231909. 9. 20) 순국

      독립군은 만주국에 반대하는 중국군과 함께 만주국의 쌍성보를 공격해 승리했다. 쌍성보는 장춘과 하얼빈을 잇는 철도 사이에 있는 도시로, 만주의 물산이 집결되는 요충지이자 친일 부호와 고관들이 많이 사는 곳으로 만주국군 차오페이단(剿匪團)의 주력부대가 주둔한 곳이다. 당시 독립군은 쌍성보의 서문을 돌파했다. 920일의 1차 전투에서는 승전하였으나, 1117일부터 22일까지 벌어진 2차 전투에서는 패했다.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봉기한 13도창의군의 총대장인 이인영이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했다.

        

      923() - 1910년 이근주(李根周, 1860.02.03. ~ 1910.09.23.) 순국

      이근주는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대궐에 나아가 적신의 죄를 성토하려고 했지만, 병세가 심하여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이에 이근주는 매국노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며 부친의 묘 앞에서 자결했다.


      925() - 신규식(申圭植, 1879.1.13. ~ 1922.9.25.) 순국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을 지낸 신규식이 임시정부의 분열을 통탄하며 25일 동안 불식(不食) 부언(不言) 불약(不藥)을 고수하여 자결했다.

       

      926() - 이남규(李南珪, 1855.11.3. ~ 1907.9.26.) 순국

      대한제국의 궁내부특진관을 지낸 이남규가, 의병과 관련이 있다고 하여 아들 이충구(李忠求)와 가마를 메고 가던 김응길(金應吉)과 함께 온양에서 일본군에게 피살되었다.

       

      927() - 허위(許蔿, 1854.4.1. ~ 1908.9.27.) 순국

      이인영과 13도창의군을 조직하고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했던 의병장 허위가 체포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했다.

       

      928() - 1920년 유관순(柳寬順, 1902.12.16. ~ 1920.09.28.) 순국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한 유관순이 19세의 나이로 옥사했다.

       

      930() - 1910년 이재명(李在明, 1890.10.16. ~ 1910.09.30.) 순국

      - 이재명은 19091222일에 이완용을 처단하고자 칼을 휘둘렀지만 세 곳에 중상만 입혔다. 공범이 있느냐고 질문에 공범이 있다면 2천만 우리 동포가 모두 나의 공범이다.”라고 답했다. 사형을 선고받고 순국했다.

        

       

       ※ 본 국민문화연구소 회원들에게 알리고 싶은 소식이 있으시면,

          anarpeople@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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