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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5월 18일은 수곡樹谷 유정렬(劉正烈) 선생 25주기 입니다. 연구소에서는 별도의 행사 없이 가족과 친지 만 모여 조용한 추모식을 치를 예정입니다. 수곡 선생님의 간단한 약력을 소개합니다.
젊은 시절의 수곡은 1930년 2월 충북 괴산 증평에서 청년들의 낭비를 줄이고 저축을 장려하는 뜻에서 열린 절제동맹 창립대회에서 회장으로 선임됩니다. 같은 해 충북 음성의 읍내리 교회에서 열린 엡윗청년회 창립총회에서 개회사를 맡게 됩니다. 해방 직후에는 유정렬을 비롯한 무명회 또는 자련의 멤버들은 임시정부와 독립촉성선전총본부 사이의 간극을 봉합시키고, 선전활동을 겸한 민정 시찰을 위해 지방유세를 떠납니다.
또한 같은 수곡을 비롯해 이을규, 이정규, 조성환(曺成渙), 정인보(鄭寅普), 유창준(兪昌濬), 안호영(安鎬瀯)이 모여 한국혁명위원회를 발족시키며 1947년 3월 1일 독립선언기념대회 식장에서 임시정부 봉대를 결의하고 정부 수립을 선포하고자 했습니다.
이 임시정부봉대 운동에는 이들 외에도 양희석, 양일동, 이규호, 김형윤, 김지강, 신현상 그리고 조한응 등과 같은 자유사회건설자연맹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수곡樹谷은 국민문화연구소의 청년 교양운동을 지도하는 한편으로 축산협동촌 건설운동에 전념했습니다. 이런 수곡의 축산협동촌운동은 원래 정부 수립 전 도시 소시민의 자율적 생계 보조 수단으로서의 가내부업운동 전개에 착안하여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6.25이후 「한국축산회사」를 설립한 다음 「전국양계인대회」를 소집(서울수의대 강당에서)하여 계란 출하조합을 구성하는 등 집단 양계촌 중심의 새 협동운동을 전개하는 쪽으로 발전했습니다.
여기에는 일제 때부터 YMCA를 중심으로 협동조합운동을 해오던 홍병선(洪秉旋) 목사라던가 서울대 농대의 최응상(崔應祥) 교수와 같은 농촌문제에 일가견을 가진 전문가들의 영향이 크기도 했습니다.
1964년 3월 국민문화연구소가 문교부로부터 사회단체 제1호로 발족할 당시 회장에 이정규, 이사로는 유정렬 외에 홍병선, 손갑성, 박선양, 최윤석이, 총무이사로는 수민 이문창이 선임되었습니다. 1989년 제2회 우관상 수상했으며, 만년에는 한국개신교 원로원 창립회장을 지냈습니다. 연구소의 대야미 소재 임야 3,000평은 수곡 선생님이 물려주신 귀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현재 연구소의 이사로 계신 유재명 선생님의 부친이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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