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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창덕 이메일 guso9662@daum.net
작성일 2026-04-20 조회수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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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민문화연구소 창립 79주년 인사말

해방 이후 한국 아나키즘 운동과 국민문화연구소의 발자취

-자유공동체 건설을 향한 투쟁과 새로운 사명-

 

국민문화연구소 회장 김창덕

 

1. 서언: 설립 79주년의 성취와 선배 지사들께 바치는 헌사

오늘 국민문화연구소는 설립 79주년이라는 뜻깊은 역사의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1947년 해방 정국의 혼돈 속에서 자유사회의 숭고한 씨앗을 뿌린 지 어느덧 8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역사를 자축하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사상적 토대를 닦기 위해 평생을 바치셨으나 이제는 이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선배 지사님들께 머리 숙여 깊은 존경과 감사를 올립니다.

선배님들의 헌신은 여전히 연구소의 등불로 남아 있으나, 이 영광의 자리에 함께 모셔 고견을 듣지 못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이 남긴 유훈을 받들어, 연구소가 걸어온 고난과 실천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명을 엄숙히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2. 횃불을 든 선구자: 초대 회장 우관 이정규 선생의 생애와 사상

국민문화연구소의 이 모든 역사적 발자취의 근간에는 본회 창립을 주도한 초대 회장 우관(又觀) 이정규(李丁奎, 1897~1984) 선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생은 평생을 자유, 평등, 상호부조의 사회 건설에 진력한 아나키즘 운동의 위대한 실천가였습니다.

?독립운동과 국제 연대의 최전선 (청년기~일제강점기)

1897년 경기도 옹진군에서 출생한 선생은 1916년 일본 게이오(慶應)의숙대학에 입학하여 유학생 조직을 정비하며 항일 의식을 키웠습니다. 1919년 동경 유학생의 2·8 독립선언에 참여하고 3·1 독립선언문을 배포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정부에 합류했습니다. 1922년부터 북경대학경제학부에 수학하며 우당 이회영, 단재 신채호, 중국의 루쉰 형제 등과 교유하며 사상적 깊이를 다졌습니다.

1924년 선생은 이회영, 백정기, 류자명 등과 함께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고 정의공보를 간행하며 본격적인 아나키스트의 길을 걸었습니다. 1928년에는 난징(南京)에서 아시아 각국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동방무정부주의자대회를 개최하고 아시아 최초의 국제적 연대 조직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러한 치열한 반제국주의 투쟁의 대가로 선생은 1928년과 1934년 두 차례나 일경에 체포되어 총 6년 이상의 혹독한 옥고를 치러야 했습니다.

?교육과 자치 운동을 통한 헌신 (해방 이후)

해방 후 선생은 정치적 권력 투쟁을 배격하고 교육과 인재 양성에 투신했습니다. 1947년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전후 대학 재건에 힘썼으며, 훗날 부총장과 제7대 총장(1963~1966)을 역임했습니다.

선생은 1947국민문화연구소를 발기한 이래, 인류 공동체의 생존적 자유권 탈환이라는 대과업을 '민중 스스로의 자주협동적 역량'으로 개척하고자 정진했습니다. 선생은 "인간은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지 남이 살려주어서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철저한 자치 정신을 역설했으며, 1978년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었던 아파트마저 연구소에 기증하며 무소유와 상호부조의 삶을 온몸으로 실천했습니다.

 

3. 전사(前史): 자유사회건설자연맹과 자치의 열망 (1945~1946)

이정규 선생을 필두로 한 아나키스트 지사들은 조국 광복 직후 자본주의의 독점적 착취와 공산주의의 정치적 예속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들은 상호부조와 자치·자립에 기초한 신국가 건설을 위해 1945929자유사회건설자연맹을 발족했습니다. 이어 1946년 산하에 한국노동자자치연맹농촌자치연맹을 조직했습니다. "농지는 농민에게, 공장은 노동자에게"라는 대원칙 하에 민중이 생산 수단을 스스로 관리하는 협동조합적 경제 구조를 실현하려 했던 이 시도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선구적인 자치 운동의 기록입니다.

 

4. 시련과 전환: 예관동에서 피어난 문화 운동의 결단 (1947. 4. 21)

그러나 해방 공간의 현실은 참혹했습니다. 미군정의 억압 속에서 좌우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극단으로 치달았고, 특히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을 위시한 좌익 세력은 노동운동을 파괴적인 계급투쟁과 권력 쟁탈의 도구로 전락시켰습니다.

194731, 자주적 통일 정부를 세우려던 임정봉대운동마저 좌절되자 선배 지사들은 중대한 사상적 성찰에 직면했습니다. 맹목적인 권력 정치만으로는 민중의 진정한 해방이 불가능함을 통감한 이들은 1947421, 서울 예관동에 모여 "우리 자신을 돌이켜 자기를 아는 문화적 각성이 신생 한국의 기초"라는 결론 하에 ?「국민문화연구소를 창립했습니다. 이는 연맹의 일시적인 정치적 열망을 대중의 자발적 계몽이라는 영구적인 토양 속에 뿌리내리게 한 역사적 승화였습니다.

 

5. 79년 실천의 궤적: 자치 공동체 모형의 구체화

창립 이후 연구소는 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민중 스스로 삶을 조직하는 구체적인 공동체 모델을 끊임없이 실천해 왔습니다.

?1940~50년대 (자립의 기초):청년 학습 조직인 설형회(雪螢會)’를 통해 자주적 인재를 양성하고, 6·25 전쟁 중 피난지 야학과 환도 후 축산장려운동을 전개하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민중의 자립을 도왔습니다.

?1960년대 (모형의 확산):4·19 혁명 이후 대학생들을 훈련시켜 전국 농촌에 파견하는 부나르도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경기도 양주의 진건수산센터건립은 스웨터 가내공업 등 경제적 자립 모델을 농촌에 도입하여 생산과 소비의 자치를 실현한 획기적인 실험이었습니다.

?1970~80년대 (협동의 실천):우관 선생의 주도 하에 1973전국농촌운동자협의회를 창립하여 농민의 생존권을 수호하고, 도농 직거래를 위한 실험소비조합을 발족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한국 생활협동조합(생협) 운동의 소중한 모태가 되었습니다.

 

   6. 새로운 사명과 사업: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새로운 제안

79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연구소는 과거의 유산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 사회의 병폐를 해결하기 위한 아나키즘의 새로운 제안을 실천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여전히 극심한 좌우 대립과 자본주의의 심화된 모순, 그리고 획일화된 사고에 갇혀 있습니다. 연구소는 이러한 한계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상호부조를 회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신규 사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의 업적 발굴 및 선양:자유사회를 위해 헌신했으나 역사의 뒤안길에 잊힌 선배 지사들의 발자취를 철저히 고증하고 발굴하여 세상에 알리고 있습니다. 이는 굴절된 역사를 바로잡고 그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미래 세대에 계승하는 핵심 운동입니다.

?잡지 아나키즘발간:권력 중심의 담론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일상의 언어로 복원하고, 자본주의 모순의 대안을 모색하는 사상적 소통의 창구가 되고 있습니다.

?2아나키즘 학교운영: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획일화된 사회 구조 속에서 어떻게 주체적이고 평등한 공동체를 구성할 것인지 학습하는 상시 교육의 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7. 결언: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롭게 행복한 세상을 향하여

국민문화연구소79년은 이정규 선생을 비롯한 선배 지사들이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민중의 자율성을 신뢰해 온 위대한 여정이었습니다. 비록 선배님들은 우리 곁에 계시지 않지만, 그분들이 예관동의 작은 방에서 결의했던 '지배 없는 세상'의 꿈은 오늘날 우리의 실천을 통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우리는 설립 79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 역사 발굴과 교육 사업, 잡지 발간을 통해 아나키즘의 정의로운 가치를 확산시키고, 모든 인간이 억압 없이 평등하고 자유롭게 행복을 누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선배 지사님들이 닦아놓으신 이 거룩한 길 위에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굳건히 미래로 나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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