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소 고민이시자 원로 회원이신 박승한 선생님께서 2022년 11월 29일 별세하셨습니다.
박승한 선생님은 연구소 고문이시자 문경 박열의사기념관의 가네코 후미코 묘비에 새겨진 묘비건립위원 중 유일한 생존자로, 철저한 아나키스트로서 생애를 일관하신 분이십니다. 3년 전 <꽁리! 자유의 친구들> 제27호의 ‘원로 회원 소식’에 박승한 선생과 진행한 인터뷰 기사에, 선생님의 간략한 생애와 활동이 실려 있습니다.
선생님은 1927년 1월 21일 춘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51년 피난 중에 대전의 한 고서점에서 구입한 {크로포트킨전집}을 읽은 후 아나키스트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고, 1953년 조부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농토가 없는 가까운 친지들에게 나누어주었으니, 당시 선생의 나이 27세였습니다. 1954년 선생은 우관 이정규 선생을 방문한 후, 농촌과 농업을 살리는 운동에 매진하셨습니다. 선생님은 1980년 4월 전국농민단체연합회 공동주최로 농민대회를 열고 헌법 및 농림법령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지만, 전두환의 독재와 계염령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정보당국의 감시와 감찰로 활동의 제약을 받자, 1986년에 미국으로 이민 겸 망명 생활을 단행하셨습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1992년 귀국하여, 1994년 춘천 경실련 공동대표를 맡았으며, 2002년 우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박승한 선생의 생애와 사상은 문집인 {증보 북한강}(도서출판 태원, 2017)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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